나는 꼰대가 되었다

by YS

작가 친구들과 전시 준비를 할 때였다. 콜라보 작품을 해야 해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구상하느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느라 점심을 거르다시피 간단하게 먹고 늦은 오후쯤 되어 한 템포 여유를 갖고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모두 배고프고 힘들었는지 “저녁에 고기 먹는 게 어때?”라는 말에 눈이 반짝거린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L, Y, H, K, 그리고 나, 다섯이 작업실 근처 숯불 구이집으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먼저 한 잔 마셨다. 지치고 배고픈 상태에서 맥주를 한 모금 넘기니 벌써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나의 발그레한 얼굴은 언제나 이 친구들의 가벼운 안주거리다. “여기 있던 술 다 어디 갔어?” 하면, “내가 다 마셨어”하고 장난을 친다. Y는 소맥 제조기다. 소주와 맥주가 나오면 제일 먼저 손을 뻗어 자기만의 완벽한 비율로 섞어 한 잔씩 나누어 준다. L은 술 대신 물을 마시고, 나는 기껏해야 맥주 한두 잔 정도 마시고, 나머지는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 언제 마셨나 싶게 술잔이 빈다. 그리고 빈 술잔은 다시 Y 앞에 놓인다. 소맥을 만들어 달라는 말없는 요구다.

술 한 잔을 애피타이저 삼아 마시면서 H가 L에게 타투하기로 결정했냐고 물었다. L이 예전부터 팔에 예쁜 타투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좀 과장하면 L이 타투 얘기를 한 것이 한 10년은 된 것 같다. 지난번 모였을 때도 L은 타투할 그림 후보들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한 사람씩 의견을 물었다.

“언니, 이 그림 팔에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예쁘지 않아요? 내가 계속 얘기해서 타투해도 된다고 엄마한테 허락도 받았어요.”

“음, 다른 것들도 좀 더 찾아보는 게 어때?”하고 H가 말했다.

“왜요? 이거 예쁘지 않아요?”

예쁘다는 말을 못 들어 실망했는지 얼른 사진을 Y에게로 가져가 묻는다. 사진을 보더니 Y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다. “너 불교야? 이거 누가 봐도 불교 연꽃무늬 같은데?”

“이거 예쁘지 않아요? ……” 말끝을 흐리며 연달아 다른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다른 후보도 예쁘다는 반응을 얻지 못하자 L은 뽀로통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진 보여주면 괜찮다고 하라고 하는데 왜 다들 내가 타투하는 걸 반대해요?”

우리 중 누구도 L이 타투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림이 어떠냐는 질문에 우리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줬을 뿐이다. 우리에게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정작 L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견이 아니라 “동의”였던 것이다. 이런 L에게 Y가 말했다.

“우린 네가 타투하는 거 반대한 적 없어. 네가 그림 예쁘냐고 물어봤잖아. 안 예쁜 걸 어떻게 예쁘다고 하니? 그걸 예쁘다고 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야? 너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충 하라고 하지 않아. 그 사람이 너한테 친구인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그 그림이 맘에 들면 그냥 하면 되지, 왜 사람들한테 허락을 구해. 네가 정말 하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하는 거야.”

Y는 말은 직설적으로 해도 L을 많이 아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조언도 서슴지 않고 한다. 도움이 안 되는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것보다 당장은 듣기 싫고 따가워도 옳은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게 진정한 친구다.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말을 해줄 수도 없다. 다행인 것은 L이 Y가 자신을 위해 해주는 말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고기가 달궈진 불판 위에 쫘악 소리를 내며 올려졌다. L은 샐러드를 먹으며 홍대에 유명한 타투 샵을 찾았는데 예약을 하는 데도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타투의 매력이 뭐야?”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던 데요”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 말고 네가 생각하는 타투의 매력이 뭔데? 너의 신체를 컨트롤하고 싶은 거야? 타투는 너의 신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고, 실제로 신체를 컨트롤하는 건 타투이스트인 것 같은데?”

“뭐, 자신의 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기 몸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하던 데요.”

“자기 몸을 컨트롤하는 것이라면서 한 번 새기면 바꿀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잖아. 그게 정말 컨트롤하는 것 맞아?” H가 말했다. 나는 아는 언니의 얘기가 생각나서 말을 이었다.

“그러게 타투는 한 번 하면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 나 아는 언니 딸이 팔 전체에 타투를 해서 여름에도 긴 팔 입고 다닌대. 지금은 후회하고 지우고 싶어서 피부과 갔는데 완벽하게 지우는 것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고 속상해하더라.”

그때 L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언니! 그만 좀 해요! 꼰대 같아요! 언니가 타투 싫어하면 그만이지 왜 타투하는 걸 비난해요? 그만 좀 하라는데 왜 자꾸 타투 얘기를 해요?”

순간 우리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Y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타투는 네가 하고 싶다고 얘기했잖아. 하고 싶으면 네 맘대로 해. 누가 뭐라고 한다고 어디에다 성질이야?!”

“타투 얘기 그만 좀 해요!”

L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주지 않는 친구들의 얘기가 일반적인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 반대하고 타투하는 것을 비난한다고 여겨진 모양이다. 마음이 여려서 사람들에게 휘둘린 경험이 있는 L의 방어기제가 촉발된 것 같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타투를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한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싫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을 모두 실행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L이 성질을 부려서 순간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밉지는 않았다. L은 자신의 일그러진 외형에 늘 자신 없어한다. 잦은 수술과 큰 수술로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천만다행인 사람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미적인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L 하고 그의 외형과 그가 생각하는 “미(美)”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자기 자신에게만 크게 느껴지는 콤플렉스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알아채는 것은 아니다. 드러내지 않으면 드러나지 보이지 않는 것들. 굳이 말하지 않으면 인지조차 못하는 것들. L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같은 일도 저마다 다르게 경험하는데 그 사람이 되어 겪어보지 않은 일을 다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니까) 감추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누가 그렇게 나를 세세히 관찰하고 들여다보겠는가? 사회라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남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니까. 결국 우리를 시선의 굴레 속으로 집어넣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느 날 나는 타투 스티커를 사서 L의 작업실에 들렀다. 스티커를 테이블에 펼쳐 놓고 마음껏 골라 보라고 했다. 진짜 타투는 아니지만 아무 때나 하고 싶을 때 하고 지우고 싶을 때 지우고, 그야말로 마음대로 컨트롤하라고. 나는 손목 안 쪽에, L은 하고 싶어 하던 팔뚝에 하나씩 새겼다. 꼰대의 타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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