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Changer, The Life Changer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질병을 치료하는 약과 같다고 여겼고, 마찬가지로 동양 의학에서도 대부분 음식으로 몸의 이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시대는 물건도 쓰레기도 넘치는 세상이고, 먹는 것 또한 넘쳐나는 세상이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너무도 많다. 양질의 맛있는 음식도 많지만, 입에는 즐겁고 몸에는 해로운 음식도 아주 많다. 우리가 이런 음식을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즐긴다는 것이 문제이겠지만. 어떤 한의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을 찾아서 “더” 먹을 게 아니라 덜 먹고 해로운 것을 안 먹는 것이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식탐이 좀 과한 지인이 있다. 친구와 친구의 친구인 이 지인과 셋이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 메뉴가 3인분 정도의 양이라 꽤 많은 편이었는데 다섯 가지 정도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오자 이 지인은 기쁨으로 먹기를 서둘렀다. 먹으면서도 개인 접시에 옮겨 담느라 바쁜 듯 보였다. 친구와 나는 대식가가 아니라 중간에 수저를 내려놓았고 나머지는 지인이 말끔하게 다 먹어 치웠다. 한 번은 여럿이 방어를 먹은 적이 있다. 방어 접시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고 맛있는 부위를 빼앗길 수 없다며 세, 네 조각을 한꺼번에 먹고, 나머지는 자신의 개인 접시로 수북이 옮겨 담았다. 이 지인이 많이 먹는다고 흉을 보려는 게 아니다. 나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과식도 잘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지인은 음식도 잘하고 (심지어 편의점에서 산 간편식으로도 그의 손을 거쳐 요리가 되어 나온다), 맛있게 먹는 팁과 맛집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먹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즐김을 넘어서 과함이 되었을 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지인의 경우 건강상의 문제로 검사를 해야 했는데 지방층이 너무 두꺼워 초음파 검사를 진행할 수 없었고 수술도 미루어야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위 절제술을 감행했다. 굶기와 폭식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다이어트 업체에 수익을 안겨주고, 온갖 다이어트 약을 다 복용해 보았다고 한다. 항상 ‘먹으면 안 돼’가 머릿속을 채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덜 먹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오히려 더 많이 먹는다. ‘먹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하면 먹을 게 더 생각나고, 아니 먹을 것만 생각나고 먹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진다. 한마디로 금지가 욕망을 낳는다. 결국 이 친구는 위 절제술을 했고, 그 결과 아주 조금씩 밖에 “못” 먹는다. 말 그대로 많이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그의 말, “먹고 싶은 욕구는 아직 남아 있는데 배가 차면 더 이상 못 먹어요. 제 양을 모르고 좀 더 많이 먹은 적이 있는데 위로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그의 한 끼 양은 김밥 다섯 알이다. 물론 때에 따라 약간의 과식은 가능하지만. 그는 40kg을 감량했다며 자기 몸에 20kg짜리 쌀 두 개를 붙이고 다녔으니 얼마나 무거웠겠냐고 농담처럼 말한다. 이 친구가 전처럼 살이 찔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안 먹으려고 힘들었고, 지금은 너무 조금밖에 먹을 수 없어서 먹는 것에 아주 예민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먹는 행위에 몰두하는 것일까?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한편 우리가 맛을 즐기는 것인지 먹는 행위를 즐기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심리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나도 한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 적이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해소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또 먹고, 그로 인해 속은 답답하고 몸은 무겁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는 또 쌓이고, 악순환의 고리였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걱우걱 먹기만 한 것이다. 포만감을 느꼈다면 그렇게 먹어 대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다큐멘터리 <The Game Changers>와 <We Are What We Eat>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몸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We are what we eat이라니! 그만큼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채식과 육식(가공식품 포함)을 했을 때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가지 면(혈액의 농도, 체지방, 근육량, 운동 능력, 등)에서 대조 실험을 하는 것이다. 채식과 육식을 섭취한 실험군에서 혈액을 채취해서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는데, 맑은 물과 걸쭉한 오염 물 정도라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보통 우리는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를 떠올린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식단에 육류를 포함하는데, 이들이 채식을 했을 때 예상과는 달리 근육량이 줄거나 운동능력이 저하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체 능력이 더 좋아진 선수들이 있었다. 한 운동 코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다. 운동선수들 뿐만 아니라 신체조건이 아주 비슷한 쌍둥이들의 실험에서도 결과로 보여주는 수치는 우리 인간의 몸에는 확실히 채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탁한 혈액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 두 달간 채식을 하고 내 몸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병리학적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호기로운 실험일 뿐이었다. 처음엔 육식만 제한하다가 나중에는 동물성 식품을 모두 뺏다. 나는 고기를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고기를 안 먹는 것에 별로 불편함이 없었다. 채식을 하기로 했으니 평소에 귀찮아하던 야채를 좀 더 잘 챙겨 먹고, 과일은 워낙 좋아해서 매일 먹던 대로 먹고, 식단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정도였다. 고기를 식단에서 제외했을 땐 이 정도쯤 이야 하고 수월했는데, 동물성 식품을 모두 빼려고 하니 우유, 계란, 요구르트, 치즈까지 해당되었고 우유나 계란이 들어간 식품이 예상외로 많았다. 김밥조차 햄과 계란을 빼고 먹든지 먹지 말아야 할 메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동물성 식품을 대체하는 비건 식품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내 식단의 다양성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채식을 하는 동안 충분히 괜찮았다. 어쩌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채식을 끝내야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확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이라 나조차도 의아했다.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식단의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주문할 때 오이를 뺀다든가 고수를 뺀다든가 하는 것처럼 제한하기로 한 식품을 빼고 먹으면 되니까) 왜 압박에서 풀려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은연중에 ‘채식 = 제약, 제한’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사람들과 같이 먹을 때는 제약이 아닐 수 없었다. 나만을 위한 메뉴를 정할 수도 없고. 그리고 채식은 비주류인 데다가 대체로 사람들은 채식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이 또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을 때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는데 먹지 말아야 할 금지가 생기자 알게 모르게 일종의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VS(versus)의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채식 vs 육식,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어느 한쪽이 좋고 어느 한쪽은 나쁜 것으로 대립하여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기보다는 통합적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실험들이 육식이 건강에 해로우니 채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무엇을 먹든 개인의 선택이다.) 음식과 운동, 균형이 깨졌을 때 우리 몸의 건강 또한 심각해질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대부분은 채식이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야채를 먹이려 온갖 노력을 하는 부모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육식이 해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육식은 좋은 점과 나쁜 점,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다. 육식을 과하게 섭취했을 경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식품으로 섭취해야만 하는 필수 아미노산인 류신은 주로 동물성 단백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만큼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고기를 먹을 때 상추, 깻잎, 고추, 버섯, 파를 곁들여 먹는 한식은 꽤 좋은 조합인 것 같다. 조화로움은 음식에도 삶에도 필요한 것 같다. 고기에 상추처럼.
나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음식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 (누구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마는.) 20대 어린 나이에 큰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어른들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과 같다고 한 말의 의미를 그때 알게 되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나는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은 없다. 바란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람이다. 한참을 무디어져 있던 나에게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톡, 한 방울 튕겨주는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삶으로 존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