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단상 20211223
흉측한 몰골에 자신을 바라보면 누구든지 돌로 변하게 했던,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만 '메두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일설에 의하면 메두사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하고도 견줄만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매일 같이 남자들이 구혼의 목소리를 높혔고 메두사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여신 아테나에게 들키고 말았고 메두사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아테나의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웅 페르세우스를 시켜 그녀의 목을 무참히 베어 방패에 걸어두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나는 내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키도 크지 않고 매끈한 피부도 아닐 뿐더러 TV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연예인들처럼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지금의 모습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스스로가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이런 생각들이 차츰 쌓이다보니 마음이 허해진 것일까. 점차 크면서 '나는 왜 이렇게 생긴 걸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상당히 어둡게 바라보는 시점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때 만난 이 메두사의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의외의 단상을 남기게 된다. 나는 메두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메두사가 저주를 받게 된 것은 '그녀가 여신의 아름다움까지 넘볼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모습으로 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나의 복수가 멈추지 않았던 것을 보면 메두사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외면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감히 여신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내면의 아름다움까지는 저주로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메두사처럼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또한 맞다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그래도 스스로가 잘생겼다고 자만하지 못할 정도의 생김새를 만든 것이라면 나는 그만큼 신의 시기를 받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본래 모습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수준.
다시 돌아가서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려 본다. '나는 왜 이렇게 생긴 걸까?'에 대한 대답에 이렇게 끄적여 본다. '나의 아름다움은 신의 질투에 반비례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얼마나 우리는 행복한가. 신에게 질투를 받는 존재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저주라는 단어가 행복으로 느껴지고 내 모습에 당당함을 얻고 죽지 않은 걸 보면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직 신에게 못미친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