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단상 20211224
친구 한 녀석이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저녁 늦게 연락을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다보니 항상 시시껄껄한 이야기만을 늘어놓다가 전화기를 내려놓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 그보다 자신이 어떤 선물을 받았는 지, 어떤 선물을 줬는 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친구 녀석은 꽤 좋은 시계와 고급 브랜드의 넥타이, 지갑 등을 선물 받았고 부모님과 여자 친구에게 고가의 핸드백, 눈부신 목걸이를 선물했다고 이야기 해줬다.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나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배아프냐고 묻는다면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했다는 대목에서 살짝 배아프긴 했다. 그래도 다른 일들은 정말 함께 축하할 일 아니겠는가. 나도 기쁜 마음으로 친구의 이야기에 응답했다. 자기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안 친구는 나에게 되물었다.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느냐고.
난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책방에서 손님을 맞이할 것이고, 다음 주까지 읽어야 할 책들을 들춰보고, 손님께서 선물해주신 산수유 차를 호호 불며 앉아 있을 것이라 했다. 친구는 내 이야기가 시시했는 지, 아니면 이렇게 말하는 내가 안쓰러웠는 지 거짓말이라도 오랜 만에 이천으로 드라이브라도 가겠다고 말을 꺼냈다. 나는 급구 사양하며 예약 손님들이 많아 도와주지도 못한다고 전했다. 친구는 말했다. 나는 좀 더 멋진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 말이 너무 고마웠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했다.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이 작은 시골 책방에서 또 한 번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고, 책방지기라는 타이틀이 아직 보존되고 있음에 감사하고 말이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정말 많은 책방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순간 불타 올랐던 책방 열풍은 이 불안한 시대로 인해 주춤했고 책과 함께 하는 삶이 가지고 있던 환상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운영하는 책방은 4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그것도 참으로 모난 성격의 책방지기와 제멋대로인 책방 운영을 손님들이 견뎌내셨다. 손님들이 책방지기 욕심을 견뎌야 하는 이 바보같은 상황임에도 크리스마스를 다시한번 책방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감사와 행복 그 자체일 것이 분명하다.
친구는 내 이야기가 싱거웠는 지 전화기 넘어에서 담배불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인지 담배 연기를 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긴 호흡이 들린 후,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케이크는 챙겨 먹으라고. 카톡 소리가 함께 울렸다. 고맙디 고마운 친구의 홀케이크 선물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방에서 밤을 지세운다. 책과 크리스마스와 선물과 케이크와 빨강과 노랑과 초록과 파랑과 밤하늘의 별이 함께하는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이브가 내년에도 다시 찾아와주길 바란다. 1년 동안 준비해온 산타 할아버지의 나만을 위한 선물이 아닐까. 내년에도 받고 싶다 말하면 너무 큰 욕심 같아 보이니 일단은 지금의 이 행복을 곱게 간직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