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면 도망간다
6년 째 지속되는 독서모임을 진행하다가 옛날 이야기들이 나왔다. 나는 서울에서도, 일본에서도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다들 길게 가지 못했다. 특히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모임들은 1년 아니, 3개월을 가지 못하고 해체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독서모임에 들어온 목적이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더 깊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어려운 논제와 자료들을 가져오지만 가벼운 만남을 원했던 이들은 책조차 읽지 못하고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체 이유는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이 너무 깊어지면서 발생하는 감정 문제였다. 그냥 사랑 때문에 터졌다고 말하는게 편할 듯하다.
엄마들의 독서모임을 진행하시는 분께 모임이 해체되는 이야기를 들은 적있다. 엄마들끼리는 그안에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생기거나 별것도 아닌 걸로 가스라이팅이나 편가르기가 생겨서 한쪽이 아예 안나오게 되고 결국 흐지부지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더 큰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건 이 글의 취지에 맞지 않으니 닫아두기로 하자.
나는 내 독서모임을 최대한 드라이하고 심플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책만 읽어오면 되도록, 누구도 논제를 정하지 않도록,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말이다. 단톡방에서도 일절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정보 전달 차원으로만 이용한다. 사무적인 일들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회원들에게 연락도 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왔더니 맴버들은 계속해서 바뀌었지만 6년째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독서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나름의 성공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딱 그 날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던지고 갈 수 있는 모임을 만드니 듣는 나도 너무 편하다. 이 성공 덕분에 사실 내 인생관이 많이 변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괜찮다고 느낄 때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깊어지려는 관계에 선을 긋는 버릇이 생겼다.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주는 것도 어려워하는 내게 있어서 누군가와 조금만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면 난 도망간다. 반대로도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나와 타인과의 거리는 공사장 시멘트 벽돌 정도로 채워진 벽 하나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추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일그러진 감정통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줄 게 없고 행복이란 걸 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러니까 도망간다.
나는 도망자다. 대도시에서 도망쳤고 이미 맺어진 관계에서 도망쳤고 새로운 관계들에서도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도망칠 것이냐고 물어봐주는 사람도 없다. 있을리가 전무하다. 그러니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도망칠 거냐고.
언제까지나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계속 도망치면
도망칠 필요 없는 곳으로
눈을 영원히 감을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추석이다.
마을이 시끌벅적하다.
나는 행복을 전하는 책방지기다.
손님들의 행복을 오늘도 바라본다.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난 혼자 있다.
그런데 외롭지 않다.
난 혼자 있는 맞으니까.
그래서 외롭지 않다.
추석이다.
스물아홉의 추석이다.
앞으로 수십년은 더 보게 될 혼자의 추석일지도 모른다.
도망치니 편하다.
그래도 내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다.
행복이 담겨 있는 책을 읽는 하루를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