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
하늘을 바라보니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기다란 구름열차가 생겼다. 얼마나 바라봤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미 구름열차가 만들고 지나간 뿌연 연기가 하늘에 흩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파란 하늘 뿐이다. 요즘 들어 어딘가에 앉아서 가만히,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엔 이런 짓이 정말 쓸데 없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마냥 좋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배운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마을에 알고 지내던 어르신이 날 알아보시고는 말을 걸어주셨다. 아니, 걸었다(안걸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주셨다'표현은 아닌 듯하다.) 어르신은 스크린 골프도 칠겸 헬스장을 함께 등록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를 보시더니
"자넨 골프칠 생각 없나?" 하신다.
아쉽게도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헬스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말하며 헤퍼보이는 웃음을 날렸다. 어르신은 집요하시다. 자신이 쓰던 예전 골프장비들을 빌려줄테니 함께 치자고 하신다. 남자가 사업을 하면 골프도 치고 사람도 만나고 취미로도 골프만한 게 없다고 말씀하신다.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어르신은 점심 드신다고 떠나셨다. 아직 해야하는 운동세트가 수두룩하게 남았지만 나도 그냥 가게로 돌아왔다. 진이 빠졌다. 어르신이 하신 말씀 중에 '사람도 만나고'라는 단어가 가장 나를 지치게 했던 문장이란 걸 느낀 건 그날 밤 자기 직전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걸 선호한다. 난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누군가와 얽히면서 생기는 파동들은 내가 견뎌내기엔 너무 거칠다. 그 파도를 견디는 것도, 느끼며 함께 출렁이는 것도 모두 다 나에겐 힘든 일일 뿐이다. 난 그저 바다 위에 목적을 잃은 부표마냥 그 자리에 있고 싶을 뿐이다.
타인에게 내 삶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타인에게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강요받는 것도 싫다. 그러니까 난 움직이지 않는다. 행여나 잘못 움직였다가 생길 것같은 작은 만남도 경계한다. 이런 사람이 되고나니까 여행도 이후로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가질법한 여행은 모두 차단했다. 한때는 도전한 적도 있지만 모두 스스로를 두더지처럼 더 깊은 곳으로 파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냥 웃는다. 누군가 접근하면 손을 흔들고 눈은 웃으며 입은 씁쓸함을 감춘다. 힘든 일이 지나가면 난 움직이지 않고 그저 자리에 주저 앉아 숨을 고른다. 그리고 안도한다. 나는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결혼식에 가지 않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부터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래도 얼굴이라도 비추자는 식으로 살았지만 코로나 덕분에 결혼식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 이후부터는 친한 친구나 지인 등의 결혼식도 참여하지 않는다. 나의 정성을 담아 축의금과 전화 한 통에 마음을 전한다. 이런 식으로 처음 했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결혼식에 가더라도 단상에 올라가 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나같은 사람이 괜히 자리 차지하고 밥이나 축내는 것보다 비켜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만남도 배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진다. 다른 이들의 눈으로 봤을 땐 나는 참 사회성 없는 머저리로 보일 것같다. 그래도 괜찮다. 머저리 맞으니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난 또다시 흔들리지 않았음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걱정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시기다. 날씨가 추워져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인간관계에 대한 내 스탠스가 눈에 보이셨나보다. 죄송하다. 난 모르겠다. 내가 막지 않고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걸까? 아니, 나를 받아달라고 내가 스스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걸까?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 있긴 한걸까? 그냥 이런 생각을 하기가 싫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