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늘 내맘 같지 않아요...
J와 만났다.
그는 친구 집에 들렀다가 우리 집에 잠시 들렀고, 토요일 늦게 만나 함께 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자, 그는 무심히 떠났다.
그가 떠난 후 활기 가득했던 내 방 공간은 어쩜 그리도 휑해보이던지.
내 마음도 그가 떠남과 동시에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 마음이 거기까지인 거겠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잖아. 만족하자.'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려 해도,
역시 밤을 같이 보내고 나면 내 안의 소유욕은 쉽사리 잠잠해지질 않는다.
이런 내 마음 상태를 지켜보고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가 만나자고 연락오기 전까진
나름 혼자 잔잔하고 평온한 일상을 잘 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평화로운 호수에 큰 돌을 던져버린 것 같달까.
그리고 그 돌이 만든 파동은 일요일 하루 내내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게 다 관계 후에 나온다는 옥시토신 호르몬 탓인가..
그는 떠난 이후 연락 한 통이 없었고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OO앱 추천해줘서 고마워. 과제에 잘 쓰고 있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냈고,
한참 뒤에 도착한 답장 하나에 내심 기뻐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다시 반나절이 지나 답이 왔다. 기분은 조금 상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을 보낸다.
그는 하룻밤 사이의 내 심경 변화를 느낀건지,
마치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나기 전엔 그렇게 빠르게 오던 답장이
묵묵히 멀어지는 듯하다.
그와의 관계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가,
훅 밀려난 기분. 공허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사람에게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건 결국 너만 상처입게 될 뿐이야.'
'그 사람은 널 사랑하지 않고 너 또한 그걸 알고 있었잖아. 너 지금 그냥 호르몬탓에 잠시 혼란에 휩싸였을 뿐이지, 그 전엔 네 일상을 잘 살면서 그를 그렇게까지 애타게 보고 싶어하지도 않았잖아.'
'그냥 할 일에 집중하자. 그렇게 지내다보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열정적으로 네 인생을 살아가! 그 사람이 이미 그러고 있듯이.’
이렇게 아무리 스스로를 타이르고 설득해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공허함과 집착이 나를 흔든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필요할 때만 꺼내드는 장난감처럼 다뤄지는 게 아니라
그가 나를 조금 더 가치 있게 대해주길 바랄 뿐인데 말이다.
심심해서, 밤이 외로워서 잠깐 만났다가
그 이후엔 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관심없는 건조한 관계가 아니라
조금 지루하고 일상적이더라도 매일 안부를 물어봐주고 떨어져 있더라도 느슨한 연결감이 있었으면 하는 것 뿐인데
나는 그와 그러한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걸 마주하는 건 참 쓰리다.
이건 지구 어딘가에서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평범한 짝사랑 에피소드지만,
막상 그 주인공이 내가 되면 그건 ‘별일’이 되어버린다.
'내 것이면 내 옆에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흘러가겠지.'
기분이 가라앉을때마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되뇐다.
유퀴즈에서 배우 송혜교가 말했듯,
'너무 원하면 내 것이 안 되더라.'
이 말이 지금처럼 크게 다가온 적도 없었다.
법륜스님 법문처럼
이 지금을 관조하려고도 해본다.
'힘든 상황은 늘상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신의 인생은 밝게도, 어둡게도 그려질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상대를 탓하지 않기위해
그는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삶의 하나의 조각을 보여주고 간 사람이라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가 내게 보여준 새로운 세계에 초점을 돌려 감사한 지점을 찾아본다.
나는 지금 아무리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 있고 싶어도, '상대의 마음을 억지로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내가 내 마음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가 진짜 사랑의 훈련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인가보다.
그가 남기고 간 긍정적인 것에도 집중하려 해본다.
그가 알려준 툴 덕분에 과제를 일찍 끝낼 수 있었던 것, 그가 놀러온 덕분에 그날 밤은 외롭지 않았던 것, 그와의 대화는 나를 웃게 했고
무심한 듯 내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보면 고마워야할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를 찾아주고, 한달에 몇 번 시간 맞춰 만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보면 행복한 일이지.
함께 밤을 보낸 후, 올라오는 상대에 대한 애착과 공허함은 며칠 뒤면 가라앉을 호르몬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가 만나자고 했을때 응한 것도 나고
그로 인해 생긴 기대감도 내 몫이며
그 잔류감정은 결국 내가 정리해야 할 과제라, 상대에게 케어를 바랄 순 없다.
그런 것을 바랐다면 좀 더 용기를 내었어야지.
만나자, 사귀자고 고백할 용기도 없으면서
어째 사람이 염치가 없나.
하긴 그 조차도 의미가 없나
요즘 나에겐 '사귀자'는 말 자체도 그저 의미없는 명명행위에 지나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관계는 ‘이름’으로만 정의되지 않으니까.
‘우리 오늘부터 1일’ 말 하나로, 만난지 단 한달밖에 안된 상대와 하루 아침에 특별한 관계가 되어버린다는게..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관계 정립을 하고 나면, 비즈니스처럼 열심히 해야한다. 꽃에 물을 주듯 말이다.
연인이니까 주말마다 만나야하고
적어도 1시간마다 연락해야하는 등..
그 '사귀자'란 말 한마디로 서로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대에 대한 독점력이 부여되고 여자친구 남자친구로서 부가적인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비슷한 매력도의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상대에게 말이다.
이 구두약속이 오히려 더 관계에 큰 피로를 가져오는 것 같아서
요즘은 오는 소개팅도 다 뻥뻥 거절하던 나였으니
이 정도 공허함은 감수해야 마땅치않을까.
다 자업자득이다.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하고 있자니
날 많이 좋아해주어서 소개팅 만남 세 번 만에 사귀어버린 남자와
사귄 후에도 금방 마음이 식어버려 몇 번 만나지 않고 쳐내버린 상대들이 떠오른다.
모든 것엔 빛과 그림자가 있듯,
모든 관계에도 명암이 있는 법..
그들과의 만남은 안정적이었지만 크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영혼 없이 소개팅을 거치며 만나왔던 그런 그냥저냥의 관계들에 진력이 났지만서도,
그렇게 지나간 수많은 인연들에게 내가 줬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떠오른다.
그래.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내눈엔 피눈물 난다던가.. 지나온 연애 속에서 나도 누군가에겐
큰 상처를 남긴 사람이었겠지.
그 기억을 떠올리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마음과
단호하게 쳐내버린 수 많은 인연들이 떠오른다.
나 또한 J에겐 그러한 사람 중 하나인거겠지.
그래 뭐.. 어쩔 수 있나
인생의 쓴맛을 받아들이자.
우린 그저 그럴 운명이었던 거지.
수 천년전부터 그 사람과 나는 이렇게 상처를 주고 받기로 정해져있었던 거라 생각해버린다.
쓸데없이 상처받을 필욘 없다.
그는 그저 내 인연이 아닌 것일 뿐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면 된다.
나도 모르게 이런 쓸데없는 기대감이 불쑥불쑥 올라오는건 다 '관계 후에 폭발하는 옥시토신' 탓이거니 생각하고 일찍 잠을 청해보지만,
괜시리 아쉬워 답장 오지 않는 폰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된다.
일이 많은 사람이니 밤 늦게까지 정신없이 바빠서이지 않을까 합리화 해버린다.
나와 만나기 전엔 그렇게 칼답이던 답장 속도는 금붕어처럼 잊어버리기로 한다.
그저 내 마음 편한대로 생각이 흘러간다.
이 관계가 나에게 무얼 남기고 갈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높은 확률로 '수행하는 마음과 넓은 포용력'이 아닐까. 상대를 내 입맛대로 길들이려 하지 않고, 그 사람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좋아하는 상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저 산과 바다를 바라보듯 그저 좋아만 하는 마음을 내는 법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관계가 꼭 내 마음처럼 이뤄지지 않고 결국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마 J를 떠나보내고 난 뒤의 나의 마음 그릇은 태평양처럼 넓어져있지 않을까.
그리고 혼자서 잘 지내며, 나빴던 기분을 회복하는 법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겠지.
또, 쌍방으로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진짜 '내사람'을 만났을때, 그를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지 않을까?
지금의 경험이, 진짜 '내 인연'과 소중한 관계를 잘 만들어가기 위한 초석이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은 쓰리지만, 이 과정이 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생각해버린다.
'자고 일어나면 더 괜찮아 질거야. 저녁이라 그런거야. 수 없이 이별을 겪어봤으니 이런 감정도 익숙하잖아. 내일 할 일에 집중하면 옅어질 거야.'
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인스타에 들어가 그사람의 근황을 체크하고 싶은 마음은 눌러둔다.
눈을 꾹 감아버리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쉽게 하지 못할 행동을 스스로 다짐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선 저 사람을 멀리해야한다고
그러지 못할 것 같다면, 진심을 다한 고백을 해보고 멋지게 까여버리라고
어차피 결말은 똑같겠지만, 적어도 감정을 솔직히 털고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했을때 그 관계엔 후회가 덜할테니
이런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어느 날, 여자친구가 생긴 그를 마주하면 더 큰 상처로 다가올텐데 말이다.
이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게 좋지 않을까. 이것도 공부다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끊어내든
결과를 알면서도 고백해보든
두 선택지 모두 그를 완전히 끊어낼 각오가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대로 현상유지 하기엔 내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앞으로 이 관계에서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알을 깨고 나오려면 생채기를 내야하는 법인데
참.. 뭣 하나 쉬운 게 없다.
'고백'이라 말하지만, '관계를 끊을 용기'가 되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