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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2. 2022

60나이 내 인새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7)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22일 파리     


여행은 페르소나로 살던 내 모습에서 잠시 떠나 진정한 나를 찾는 검색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검색 여정에는 사전 계획을 비웃는 듯 예상하지 못한 숱한 변동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매일같이 겪어야 하는 그 무수한 불가예측 상황들을 하나하나 클릭해 가면서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길이 됩니다. 오히려 불가예측 상황들이 어쩌면 올바른 길에의 이정표가 되겠다 싶습니다. 클릭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필터링 기능이 있으니까요.  

불가예측 미래에의 불안감은 사람이 품어야 할 고통스러운 운명입니다만, 그것을 극복하는 운명도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불가예측의 미래, 걱정보다는 헤쳐 나가겠다는 정신만 잃지 않으면 진정한 나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누구든 작은 것이라도 겪으며 극복하고 나면 분명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 진리입니다. 깨닫는다는 것. 별것 아닙니다. 깨달음은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거창하게 다가오는 깨달음은 없습니다.

여정을 마무리할 때가 되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몰려오고 몰려가는군요.     

아침 일찍 기상. 오늘이 이 여정의 마지막 날입니다. 파리 근교로 나가 보려 했던 생각은 파업 때문에 포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시내 몇 군데는 둘러보는 것으로 보상받아야겠습니다. 

저녁에 샹송(Chanson) 공연을 보고 싶어서 트루빌 도빌에서 파리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핸드폰 검색으로 찾아보았지만, 파업 때문인지 몇몇 카페가 영업하지 않는다는 둥 그런 내용만 뜹니다. 영업하는 카페들 역시 파업으로 찾아가고 되돌아오는 길이 멀고 힘든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 접어야죠. 파리에까지 와서 라이브 샹송 한 곡 듣지도 못하고 가나 싶어 제법 아쉽습니다. 

자, 마지막 하루짜리 코스는 일단 엊그제 겉만 핥아야 했던 루브르 박물관 구경으로 정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일요일인지라 사람들이 제법 많군요. 한 시간 줄 서서 입장, 내부 들어가서 표 구입.























드농(Denon) 관에서부터 발걸음을 놓기로 합니다. 0층 조각상 전시, 1층 고대 이집트 유물 전시. 























1층은 유명한 걸작 회화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컷 구경하는 중에 한참을 둘러봐도 모나리자는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마에 김 오르는 중에 겨우 눈에 띈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씩 웃으며 회화 전시관 뒤쪽으로 돌고 돌아 들어가는 길을 알려 줍니다. 루브르 내부가 좀 복잡하긴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품이 많다는 것. 그것은 곧 그만큼 외국으로부터의 약탈품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네들의 문화적 빈곤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회만 되었다 싶으면 외국 문화재를 힘으로 약탈한 나라 프랑스. 그 약탈 문화재로 자기네 문화적 힘을 대신하려 하는 나라 프랑스. 조선 말 병인년 규장각 의궤를 훔쳐 갔다가 10년 전 한국에 돌려보낼 때 담당 직원들이 울부짖으며 반대했던 나라 프랑스. 중세 후반기까지 서로마제국에 밀려 문화 후진국이었던 주제에,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겨우 회화 작품 좀 챙긴 주제에, 나폴레옹 정복시대 이후 외국으로부터의 약탈 문화재를 열심히 챙겨가지고 이제 와서 저네들이 지구상 최고 문화예술국가요 민족이라고 울부짖고 있는 나라 프랑스. 그 약탈 문화재를 끝까지 되돌려주지 않는 나라 프랑스. 이 얘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내자면 ‘문화예술 궁핍이라는 자격지심으로 남의 문화예술품들을 도둑질했다.’로 귀착될 뿐입니다. 그런 것만 놓고 보면 참 어이없는 민족이요 나라입니다. 

찝찝한 기분을 삭이며 안내원 말을 되새기며 이리저리 돌고 돌아 어딘가로 들어가니 저 안쪽에서 모나리자가 방긋거리고 있습니다. 워낙 인기 높은 그림인지라 20분 정도 줄서서 기다린 끝에 간신히 모나리자와 눈을 맞춥니다. 저 작은 그림 한 점에 전 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난리를 치나 했습니다만, 관람객에게 주어지는 그 짧은 시간에 쫓기듯 봤음에도 대단한 그림 같기는 합니다그려. 

다음은 쉴리(Sully) 관으로 입장. 고대 근동 이집트 그리스 유물들 만나본 후 리슐리외(Richelieu) 관까지 뜁니다. 그렇게 저렇게 무려 네 시간 동안 루브르에 머물며 영혼까지 탈탈 털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뽕은 뽑았습니다.

약탈문화박물관 루브르와의 진한 만남을 마무리하고 이제 발걸음을 돌려 다시 한 번 몽마르트 언덕을 찾아갑니다. 파리 전경을 바라보면서 작별이나 하자, 그 생각입니다.  

다시 찾은 몽마르트 언덕 아래. 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주욱 이어져 있는 거리를 걸어서 몽마르트 언덕 밑에 도착. 언덕 밑에서부터 위까지를 이어 주는 푸니쿨라 역시 파업 때문인지 운행하지 않습니다. 별 수 없이 걸어 올라가야죠.

그렇게 몽마르트 언덕 계단을 오르려는데 젊은 흑인 친구가 달라붙어 팔찌를 자꾸 들이댑니다. 얘네들의 원래 시나리오로 한다면 관광객에게 달려들어 손목에다 팔찌를 휙 두르고 나서 뻔뻔스럽게 바가지 급 돈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필 내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걷고 있는 고로 그런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그냥 어정쩡하게 달라붙는 것입니다. 귀여운 녀석. ㅎㅎ

노 쌩큐를 몇 번이나 했는데도 이 딱한 친구, 끈질깁니다. 결국 확 노려보면서, “노 쌩큐라고 했지, 이 형아가.” 뽀스 넘치게 자근자근 얘기해 주니까 그제야 주뼛거리며 물러갑니다.

몽마르트 언덕은 계단을 걸어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중간 즈음 이르렀을 때 근수 제법 나가는 중년의 흑인 여인이 홀로 무거운 캐리어를 잡아 힘들게 끌어올리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잠시 나도 다리 쉼 좀 하자고 서서는 여인을 딱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웬 흑인 사내가 여인에게 다가들어 자기가 캐리어를 들어 주겠다고 작업 겁니다. 저놈 위험한 놈입니다. 다행히 여인도 이상하다 느꼈는지 노 쌩큐라 했고 그 말에 사내는 두어 걸음 물러난 채 지켜봅니다. 급히 여인 쪽으로 내려가서 여인과 사내 중간에 끼어 섰습니다. 여인에게는 눈짓을 주고 말이죠.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 사내, 썩은 표정으로 나를 한 차례 노려보고는 서둘러 사라졌습니다. 이제 여인에게 설명해 줍니다. 너 거절 잘했다, 저런 놈 대부분이 도둑이다, 도와주겠다고 해 놓고 못된 짓 한다······. 여인은 함박웃음 지으며 고마워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또 도와주겠다는 말했다가는, “너도 도둑놈?” 이럴까 봐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한 채 천천히 여인 혼자 언덕 위에 오르기까지 에스코트만 해 주었죠. 힘들게 언덕에 오른 여인 보고 숨 좀 돌리라 하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뉴욕에서 왔다는군요. 파업으로 불편할 때 와서 어쩌냐, 걱정해 주니 자기도 도착하자마자 엄청 고생했다며 끔찍하다는 말을 연발 토해냅니다. 잠시 후 그녀는 오늘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기 숙소를 찾아 사라져 갔습니다. 여인의 뒤에 붙어가는 그 무거워 보이는 캐리어가 안쓰러워 보이기만 합니다. 

여인을 떠나보낸 후 파리 야경을 잠시 감상합니다. 뒤편의 예쁜 사크레쾨르 성당 야경에도 눈길 좀 줘 봅니다. 

자, 이제, 지금부터, 오늘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찾아갑니다. 어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냐고요? 내가 이제 파리를 떠난다고 파리 귀신들이 떨쳐 나와 나를 돕나 봅니다. 무엇을 돕느냐, 바로 나로 하여금 정통 샹송을 즐길 수 있는 기가 막힌 카페를 찾게 해 준 것입니다! 

파리 야경을 감상하다가 그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이다 여기면서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파리의 샹송 카페를. 카페 몇 개가 빨간 점들로 뽀로롱 뜹니다. 대부분 이미 포기한 카페들입니다. 그런데 못 보던 점 하나가 보입니다. 바로 내 등 뒤 쪽 가까운 위치임이 분명한 곳에서 빨간 점 하나가 뜬 것입니다. 화면을 확대해서 손가락에 기를 넣어 신중하게 클릭했더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소개 내용이 이어집니다!


정통 샹송 카페, 라팡 아질(Cafe au Lapin Agile). 19세기 말에 문을 연 유서 깊은 샹송 카페. 카페 이름이 라팡 아질로 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카페 외벽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그 외벽에는 큰 냄비 속에서 술을 들고 튀어나오는 토끼 한 마리가 솜씨 좋게 그려져 있습니다. 1875년 화가 앙드레 질(André Gill)이 그린 것이고 그 양반 서명인 즉 아질(A.Gill)입니다. 가운데 점을 빼고 붙이니까 아질(Agile, 재빠른)이 된 것이고, 토끼니까 라팡(Lapin), 그래서 재빠른 토끼, 라팡 아질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가난한 예술인들의 영혼의 쉼터였던 곳. 피카소(Picasso), 모딜리아니(Modigliani) 같은 화가들은 아예 출석부 만들어 놓고 이곳을 들락거렸고, 샹송 여제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도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카페에서 숙소까지는 2km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거 정말 왔다 땡입니다! 이 귀한 카페가 왜 어제 그제 검색에서는 보이지 않은 것이냐! 고, 콧구멍 벌렁대며 흥분합니다. 카페 여는 시간은 저녁 9시. 현재 시간은 저녁 7시. 일단 장소부터 확인한 후 저녁밥을 먹든 뭘 하든 하자는 생각으로 핸드폰 구글 맵을 노려보며 카페로 향합니다. 찾아가는 내내 심장 뛰면서 흥분이 몰려듭니다. 샤크레쾨르 성당 왼쪽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서 그 뒤쪽에 붙어있는 몽마르트 성 피에르 본당에게는 손 인사 보내고, 그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갑니다. 고풍 넘치는 골목들이 꼬불꼬불 이어집니다.      


#진정한 행운의 카드는 마지막에 뜬다      


골목. 낯선 골목을 걸을 때마다 갖는 묘한 느낌. 이 길이 끝나면 어떤 길이 또 이어질까. 예쁜 가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더러운 냄새가 날까, 사나운 사람이 마주 오고 있을까, 착한 아이가 놀고 있을까······. 사람은 큰길만 걸으며 살지 않습니다. 큰길과 함께 수많은 골목을 걷습니다. 나는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골목을 만났을까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탁 트인 길로 통하는 골목을 만났고 때로는 진창길로 이어진 골목도 만났습니다. 맞는 길을 알려 주던 안내자도 만났고 반대 방향을 알려 주던 안내자도 만났습니다. 골목. 내게는 늘 새로움을 선사하던 인생길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겠죠.      

  

#골목은 새로운 세계의 입구다     


그렇게 한 10분을 걸어서 마침내 카페 라팡 아질에 이르렀습니다. 백수십 년 되었다는 것이 바로 느껴질 정도로 고색창연합니다. 아직은 굳건히 닫혀 있는 문.      

그래도 카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외양을 살펴보노라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늙은이 사내가 나타나 활짝 웃으며 묻습니다.

“너 오늘 여기 입장하려고?”

“웅. 이따 9시 공연, 맞지?”

사내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잠그고는, “이따 봐~” 말을 남긴 채 어디로인가 총총히 사라집니다. 목소리가 아주 기름진 것이 저 선수도 샹송 좀 부르겠다 싶습니다.

장소 확인해 두었겠다, 이제 느긋하게 콧노래 흘리며 근처 골목을 배회하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 정도를 돌아다녔나 싶은 중에 피로가 몰려든다는 생각에 작은 카페의 거리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 달라고 해서 마십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의 네 시간 코스 뛴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싸돌아다닌 것 등이 제법 무리였던 모양인지 내 몸은 진즉부터 소금물 먹은 솜 덩어리처럼 무겁고 눅눅해져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면 피로가 조금 풀리죠. 그렇게 또 한 시간 정도 개기면서 잘 쉬고 나서 시간을 보니 8시 30분. 이제 라팡 아질로 가야 합니다. 혹시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서게 된다면 오늘 밤 한 번밖에 없는 이 기회, 자칫 날아갈 수 있습니다. 발을 종과서 카페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다행히 매진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젊은 처자 몇 명도 보이지만 대부분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입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카페로 입장합니다. 입장료(관람료) 27유로는 나중에 쇼가 끝나고 돌아갈 때 내라는군요.

실내는 무척 어둡습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대여섯 평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조명도 불그스레한 등 몇 개로 겨우 실내를 밝히고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실내 곳곳에 예전 장식이 여전히 살아 있을 정도로 제법 묵직한 전통이 느껴집니다. 자, 이런 어마무시한 곳을 찾아내어가지고서는 파리의 마지막 밤을 사정없이, 가열차게 불태우게 되었으니, 이런 행복을 어디서 또 얻겠습니까? 며칠 동안 느꼈던, 파리가 이래저래 엉성하다 싶어 아쉬웠던 그런 기분을 한 방에 털어 버린, 승리의 밤인 것입니다! ㅎㅎㅎ 

아까 저녁 때 카페 문 앞에서 나와 마주쳤던 친구가 나를 알아보고 반겨 줍니다. 어둠을 더듬으며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바로 왼쪽 옆자리 할매들과 할배들이 인사해 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더군요. 옆 자리 할배가 말을 걸어 옵니다.

“자네 이스라엘 노래, 좀 아는가?”

“물론 알고 말곱쇼.”

내가 좋아하는 이스라엘 여가수가 있습니다. 하사 알버슈타인(Chasa Alberstein). 이름을 대니까 어떻게 니가 갸를 알고 갸가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냐고, 옆 할매들과 동시에 놀라면서 갑자기 되게 친한 척해 옵니다. 내 사진을 찍어 주질 않나 자기들도 찍어 달라는 둥.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나라 아줌마, 할매, 할배들도 너도나도 손들고 우리도 찍어 줘~ 하면서 난리 칩니다. 졸지에 찍사가 되어서 판을 휘젓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예 여기서 찍사로 살아라, 적극 권유까지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괜찮을 듯도 합니다. 

하여튼 잠시나마 인기 짱 먹었습니다. 만석을 채운 사람들 중 동양 사람은 나와 서양 부모와 함께 온, 입양된 걸로 보이는 동남 아시아계 20대 초반 처녀뿐인지라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내 긴 머리가 또 특이하게 보였겠죠. 어쨌거나 아주 다들 살갑게 대해 주더군요.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 우크라이나 처녀들과도 인사 나누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공연을 기다립니다.   

9시. 공연 시작되니 작은 잔에 정말 맛난 와인을 한 잔씩 내주는데 이것이 또 보통 맛이 아닙니다. 와인잔 아래는 포도알이 서너 개 들어 있어서 그중 한 알 집어 들어 먹어 보니까 달면서 시큼하면서, 하여튼 요상한 맛이 나더군요.

공연이 시작되고 젊고 늙은 남녀 가수 6명이 주루룩 들어와 카페 중앙의 테이블에 앉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관객도 되고 하는 모양새입니다. 이제 한 명씩 피아노 연주자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부르거나 하는 식으로 공연은 이어졌습니다. 나를 반겨 주었던 머리 절반 까진 사내 역시 예상대로 가수였고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샹송을 멋지게 불러 대더군요. 그렇게 2시간 동안 마음을 적시는 옛 샹송들이 카페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나를 비롯한 손님들은 노래 흐르는 중에 아는 대목이 나온다 싶으면 냅다 따라 부르며 함께 아름다운 샹송에 취해 갔습니다. 

이 공연은 원래 3시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나는 2시간 공연 후 밤 11시 즈음인 인터미션 때 나머지 공연을 포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카페를 떠나기 전 가수 두어 분과 기념사진을 찍는 내내 한국 사람들은 매너가 좋다며 가수 분들, 일일이 다가와 따뜻하게 대해 주는군요. 

파리의 마지막 밤, 이렇게 환상적으로 보낼 줄 몰랐습니다. 아으 다롱디리~ 정말 행복합니다. 

숙소까지는 걸어가도 30분 정도면 충분했지만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카페를 나서면서 우버 택시를 부르니 5분도 되지 않아 나타납니다. 늦은 밤 시간인지라 요금도 초저녁 때에 비해 절반 값입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서 내일 아침 마지막으로 쓸 세면도구만 빼 놓은 채 배낭 짐 정리 들어갑니다. 정리를 마치고 길게 숨 한 번 뿜어 봅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마지막 여정이었던 하루를 그렇게 기분 좋게 마감하니 모든 것이 정말 좋았다 싶습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쓴 여비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4백5십만 원을 넘지 않았다는 것도 덤으로 나를 흐뭇하게 만듭니다.     

 

파리에 대한 감상, 정리해 봅니다.

■ 파업 때문에 고생깨나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만큼 파리시 정부의 위기 상황 대처 능력은 수준 이하였습니다.

■ 파리는 정말 더럽습니다. 거리에 쓰레기 날리고 개똥까지 걸핏하면 보입니다. 이 사람들 시민성숙도, 조금 더 여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천카페 거리에 나앉아 먹고 마시는 것을 선호합니다. 쓰레기 날리고 심지어 더러운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어도 거리 공간에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인데, 이유가 있습니다. 파리 날씨가 하고한 날 우중충하다 보니 햇볕에의 주림 현상이 있어서 기회만 된다 싶으면 햇빛 받아 비타민D 좀 보충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먼지가 날리든 쓰레기가 날리든 햇빛이 중요합니다, 이 인간들에게는.

■ 물가는 조금 비쌉니다. 유럽연합 될 당시 공식 화폐가 프랑에서 유로 단위로 바뀌면서 심하게는 다섯 배 정도의 물가폭등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이민자들의 문제가 더 심각한 듯합니다. 이민자들이 몰려 사는 지역(주로 센 강 북쪽 구역)에는 24시간 경음 울리며 달리는 경찰차들이 수시로 목격됩니다.

■ 사람들은 참 착합니다.

■ 지하철 시스템은 딱할 정도입니다. 지금 와서 전체 구조나 환승 환경을 개선하려면 몇 조 원 이상 정도는 들여야 할 것인즉, 아예 손도 못 대는 것이겠죠. 문화나 문명은 당연히 늦게 시작하는 곳이 더 발전합니다. 선도자의 장단점을 벤치마크해서 좋은 점만 취하기 때문입니다. 파리의 지하철 100년 역사는 초장부터 장기설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요 모양 꽐라 꼴인 것이고, 30~50년 역사의 서울 지하철은 당대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문화는 늘 주변 문화보다 발전하지 못합니다. 유럽의 르네상스 문화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 파리에 대한 환상? 동네 워리에게나 줘야 합니다. 낭만 넘치는 파리 시내 정경? 멋진 선글라스 낀 금발 여자? 아름다운 여인들의 우아한 패션? 여인네들 애간장 녹이는 멋쟁이 남자들?······. 다 미디어로 만들어진 신기루입니다. 미디어에서 파리 이미지로 걸핏하면 내세우는 리도 쇼와 캉캉 춤, 센 강,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상제리제 거리. 이것들 빼면 도무지 파리의 어떤 면들이 예쁘고 좋은지를 모르겠습니다. 와서 직접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낭만이 넘치는 거리, 멋진 여자와 남자들, 한국에 더 많습니다. 그러니 철없는 국내 방송물들과 이런저런 국내외 영화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기 바랍니다. 

■ 문화 예술적 기반은 엄청 든든합니다. 여러 나라로부터 훔치고 빼앗은 문화예술로 충만하니까요.

■ 파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파리뿐 아니라 유럽 대도시들의 운명이죠. 그냥 정체된 채 풍화되어 갈 뿐입니다. 

■ 거리 같은 개방된 공간에서 도움을 요청받기 전에는 함부로 남을 도와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둑놈으로 오해받습니다. 또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다가와 친절을 떠는 인간들은 죄 도둑놈으로 여겨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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