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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2.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6)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21일 파리     


아침 9시. 피로가 덜 풀렸지만 씻고 다듬고 나서 숙소를 나섭니다. 어제 갔던 에펠 탑에 다시 가야 합니다. 며칠 있으면서 파리에 적응이라도 했는지 찾아가는 길이 이제는 한결 쉬워졌습니다. RER E선 타고 상라자르 역 도착, 그곳에서의 버스 환승도 착착 이루어집니다. 

에펠 탑을 다시 찾은 이유는 이날 누구를 이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 시간이야 오후이지만 일부러 두어 시간 여유 있게 도착했습니다. 그 여유 시간에 낮 시간의 에펠 탑도 감상하고 에펠 탑을 품고 있는 마르스 광장(Champ de Mars) 공원도 산책해 봅니다.

12시 즈음되어 가벼운 점심을 먹은 후 마르스 광장 남쪽에 해당하는 15구역 주변까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이 동네 쪽에는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등 제법 부자동네라고 하는 말이 맞는지 건물들이 단아하고 거리에 쓰레기 날리는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한결 잘 정돈된 마을 거리를 걸으며 운기 조식 합니다.

오늘 약속 잡아 놓은 방문지. 마르스 광장 공원 내에 있는 아동 인형극 전용극장인 ‘마르스 광장 마리오네트 극장(Marionettes du Champ de Mars)’입니다. 극장 대표인 줄리앙(Julien)과는 두어 달 전부터 이메일로 교신해 왔습니다. 

“내가 파리 가서 너 좀 만나야겠다.” 했더니, “네, 기다릴게요.” 했던 친구. 내가 왜 이 친구를 만나려 했느냐, 그 친구가 만든 프랑스 전통 인형극 기뇰(Guignol)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인형극 듀레이션은 45분.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시간입니다.   




공연 후 줄리앙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이 대표이면서 극장주인도 되고 배우까지 겸한답니다. 오늘 공연의 모든 인형을 혼자 조정했다는군요. 놀라운 친구입니다. 모든 기뇰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해 치러지느냐 물으니, 그것은 아니고 작품에 따라 인형조정자 수가 2~3명까지 늘어난다고 합니다. 언제인가 내가 인형극축제를 만들 때 반드시 부를 아이템입니다. 그래서 이 친구를 만나려 했고 기뇰 공연을 보려고 한 것입니다. 줄리앙에게 훗날의 계획을 대충 들려 주고는, “너, 내가 부르면 올 거지?” 물으니, 꼭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줄리앙과 기뇰과의 흐뭇한 만남이었습니다.      

이제 기뇰 극장을 떠나 에펠 탑 아래 센 강으로 가서 바토부스(Batobus) 유람선을 탑니다. 잠시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미라보(Mirabeau) 다리를 둘러볼까 했습니다만, 이 유람선은 센 강 남쪽에 위치한 미라보 다리 쪽에서는 운행을 하지 않기에 거기까지 걸어서 갔다 오기에는 제법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쉬움 달래 가며 유람선에 몸을 싣습니다. 

오늘 저녁은 뇌프 다리(Pont Neuf)와 노틀 담(Notre Dame, 성모 마리아) 성당을 만나는 데에 몰두해야 합니다. 다른 곳까지 밤늦도록 일일이 돌아다니다 보면 파업 중인 지하철도 버스도 타지 못해, 또 택시를 탄다면 엄청난 요금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센 강을 거슬러 올라 노틀 담 성당으로 향합니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고 강물도 그에 맞춰 거친 혀를 낼름거립니다. 내가 끊은 표는 노틀 담 성당까지 타고 갈 수 있는 표였지만 생각을 바꾸어서 중간 하선장에서 내린 후 성당까지 센 강변을 걷기로 합니다. 띄엄띄엄 서 있는 가녀린 가스등들이 오렌지색 빛을 흩뿌리고 있는 강변을 걷다 보니 뇌프 다리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강변길을 벗어나 뇌프 다리에 올라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센 강을 바라보며 숨을 돌립니다. 그리고 만나지 못하고 온 미라보 다리를 떠올려 봅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마음 속 깊이 새겨두나니 

기쁨은 고통 뒤 찾아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센 강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무네······.”

미라보 다리를 만나면 그 위에서 내가 대학생 시절 무척 좋아했던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이 시를 읊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센 강은 밤바람 맞으며 흘러만 가고 파리와의 작별을 준비하는 나는 여기 머뭅니다.     

노틀 담 성당. 인류문화유산 중 멋들어졌던 것이 불에 타 절반이나 상실당한 모습으로 슬픔에 차 있습니다. 바라보는 내내 심정은 망연할 뿐입니다. 

성당 바로 옆 강변 카페에 들어가 늦은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을 즈음해서 진눈깨비가 흩뿌려지나 했더니 곧 굵은 빗줄기까지 더해집니다.

밤 8시를 훌쩍 넘은 시간, 이미 모든 지하철은 파업으로 인해 죄 끊겼습니다. 사람들의 귀가 전쟁이 벌어집니다. 숙소행 버스를 타러 정류장에 갔더니 핸드폰 앱(Moovit)이 알려 주는 예정과 달리 버스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숙소 가까이 가는 다른 버스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류장 사람들에게 버스 편을 물어봤지만 모두 영어를 하지 못한다며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어떻게 하나, 궁리 중인 내 모습을 지켜보던 근처 어린 여학생 하나가 분연히 다가와 능숙한 영어로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다른 버스가 있긴 있는데 그것도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답니다. 기다리는 동안 꼬맹이(키는 나보다 훨 크지만)와 이런 저런 얘기 좀 나눕니다. 어린 친구가 영어를 곧잘 합니다. 이름은 줄리(Julie), 고딩입니다.

하늘이 도우사 숙소행 버스가 왔습니다. 줄리와는 작별하기 전 사진 한 컷. 버스 잡아타기 전 급하게 찍느라 심하게 초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버스는 이미 콩나물시루입니다. 나도 그 콩나물 한 가닥이 되어 30분 동안 시달리며 숙소를 향합니다.

도중 어느 정류장에서 사건이 생깁니다. 버스 기사는 더 이상은 사람 태울 수 없겠다 싶었는지 그냥 지나치려는데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 외벽을 두드리며 항의해 옵니다. 버스 안에서도 태워 주자 말자 그런 내용인 듯 고성들이 연신 오갑니다. 그러다가 차문이 열렸고, 사람들 몇이 게거품 문 채 억지로 버스 안으로 진입하고 버스 안에서는 온갖 비명이 난무합니다. 그 때 웬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무슨 말을 크게 외쳤고, 그 직후 버스 안 사람들, 생판 모르는 옆 자리 사람의 어깨고 허벅지 어디고 간에 그저 마구 쳐 가면서 배를 잡고 웃어 댑니다. 무슨 얘기를 했기에 그런가 싶어 마침 내가 서 있는 자리 아래에 편히 앉아 가던 젊은 여인에게 물었더니, 두 남자 사이에 끼인 그 여자가 자신의 몸 어느 부분(?)이 터지겠다고 소리친 것이랍니다. 그 말에 나도 푸훗~ 웃음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중에 퍼뜩 생각 하나 듭니다. 아~ 프랑스 사람들, 제법 강인한 종자들이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내 심장이 갑자기 쫄깃해집니다. 그리고는 대퇴부를 출발한 뜨거운 덩어리 하나가 소뇌를 거쳐 머리 꼭대기에 도달해서 팍 터집니다. 매일같이 지옥 같은 교통문제로 힘들어 하면서도 이 사람들은 웃을 수 있구나! 아니, 웃음을 만들어내는구나!······.  

파리의 어느 날 밤, 인간의 맑은 웃음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대중교통 파업이라는 고난에 빠진 시스템을 극복하고 있었고, 그 모습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심하게 말해서 돈오돈수라고 해야 할까, 축제로 밥 먹고 사는 놈으로서 그동안 희미하게만 떠올리곤 했던 축제적 관점 하나를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사시대 원시인들은 축제를 통해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으로 풍요를 기원하고 끔찍한 자연 재해로부터 안전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국가가 생겨나면서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던 고대와 중세 사람들은 종교의식으로 꾸민 축제에다 전쟁으로부터의 생존을 의탁했습니다. 세계대전 직후 경제적 회복을 통해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도시를 재활시키자고 동서 막론 수많은 축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든 인간의 일생에서 겪어야 하는 인간적인 고통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축제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 하나 거의 유일한 모델은 있습니다. 바로 브라질의 삼바 카니발(Samba Carnival)이 그것입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아프리카에서 브라질에 끌려와 노예로 살면서 온갖 수난을 겪었던 19세기 흑인 노예들. 그들은 현존 세계 최고 축제인 삼바 카니발의 창조자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의 성 착취와 노동 착취 등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비인간적 대우에 검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들은 엥트루드(Entrude)라는 요란스러운 축제로 저네들의 깊고 깊은 한을 달랬습니다. 이 엥트루드가 바로 삼바 카니발의 원형인데 삼바 카니발처럼 진한 인간적 고통 속에서 생겨난 가장 인간적인 축제는 더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또 다른 관점의 인간적 고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인간적 고통은 무엇인지를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전쟁으로 인한 패망의 쓰라림을 고통으로 볼 것은 아닐 것이고, 이 시대에 무슨 노예가 있어서 노예의 한을 시대적 인간의 고통으로 볼 것도 아닐 것이고,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死別)에 따른 복받치는 슬픔 또한 고통으로 볼 것은 아니겠습니다. 어쩌다 생겨나는 전쟁으로 인한 국가적 몰락까지 축제로 걱정할 바 역시 아닙니다. 그런 것이야 정치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19세기 흑인 노예들의 한은 이미 삼바 카니발로 씻었습니다. 정든 사람을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슬픔은 레퀴엠으로, 굿으로 씻어 왔습니다. 분명 그런 것들에서는 마땅히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인간의 고통으로 인식해야 할 것인가를 따져 볼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일상의 삶 자체가 고통이다, 그것입니다. 물론 사는 동안 즐거운 일이 왜 없겠습니까만,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 특히 이 경쟁 심한 현대 사회에서 쳐지지 않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는 것, 그것은 진정 우리네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고통이겠다 싶습니다. ‘삶은 고해(苦海)다.’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관점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상황 혹은 오브제는 달리 보일 수 있습니다. 거리의 떡볶이 가판대는 먹고살기 위해 고통 속에서 버둥대기만 하는 초라한 모습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길거리 음식 가판대들과 함께 축제장에 넉넉히 풀어놓으면 훌륭한 축제 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해서 비싸기만 한 대중가요 가수도 축제 인자가 될 수 있지만, 이름 없는 가수나 일반인들도 저네들의 노래로 저네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또 그것을 특별한 패키지로 모양 좋게 꾸밀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제의 훌륭한 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첨단 미디어 장비도 멋진 축제 인자가 될 것이겠지만 주제와 스토리를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행위가 바로 축제의 우선적 인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인자들이 지극히 저급하거나 추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축제의 꽃을 피우는 청량수가 될 것입니다.

생활 속의 상황, 그 상황 속의 인간적인 고통을 축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묵은 관습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인간적인 축제, 인간 삶의 고통을 달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인간적인 축제가 생겨날 것 아니겠는가, 하는 깨달음. 그 깨달음이 파리의 고통스러운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초라한 축제쟁이를 찾아온 것입니다. 

사하라에서는 얄라를 얻었고, 파리에서는 인간적인 축제 관점을 얻었습니다. 두 가지 걱정 풍선이 빵빵 터져나가는 그런 상쾌한 기분이 온몸을 짜릿하게 만듭니다.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짜부가 일어나는 곳에 깨달음이 있고 고통이 있는 곳에 웃음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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