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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2.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5)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19일 트루빌 도빌~파리     


먼동이 어스름할 무렵 잠에서 깨었습니다. 어제 밤의 잠은 기분이 맑아질 정도로 숙면이었습니다. 옆방의 니콜도 깨어났는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커피 생각에 주방으로 갔더니 이 할매, 윗도리는 입었지만 아랫도리는, 얼래? 아슬아슬 삼각팬티 차림입니다. 환장~ 

니콜은 팬티 차림임에도 태연하게, “봉주르~” 인사를 하고는 아주 느긋하게,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커피는 여기에 있고 설탕은 여기에 있고 우유는 냉장고에 있다, 일일이 알려 주고는 자기 커피 잔 들고 제 방으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중에 잠시 뜬금없는 생각 듭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그렇지 니콜은 스스로 여자임을 포기하고 사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아예 사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이 현상이 그저 에헤라디여~인가······. 실없는 생각 중에 헛웃음이 흐릅니다.  

삼각팬티 차림으로 아침부터 나로 하여금 실소 짓게 만든 니콜이었지만 고맙게도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할매였습니다. 덕분에 아주 그윽한 향의 커피를 즐기며 어제 사 두었던 것 중에 남은 요거트 한 개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샤워 후 트루빌 마을 안쪽을 손 뒷짐 지고 슬슬 돌아봅니다. 작은 교회 하나, 예쁜 집들, 반짝반짝 빛나는 상점들. 작은 갤러리, 이 정도면 이곳에서의 휴식 일정은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숙소를 떠날 때 니콜은 아파트 입구에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습니다. 그러는 니콜의 볼따구에 작별 뽀뽀를 묻어 주니 소녀처럼 수줍게 웃습니다. 이제 10시 20분발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합니다. 

그렇게 파리 상라자르 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부터 전쟁입니다. 일단 숙소 근처의 역이 노선에 있는 지하철 12선을 타야 하지만 깔끔 파업 중인지라 별 수 없이 국철 RER을 타야 합니다. 한 어린 여대생이 다행히 최대한 가깝게 도착하는 RER선을 안내해 주어서 크게 어렵지 않게 숙소를 찾아 들었습니다. 아, 내게 길을 알려준 이 여대생과의 인연은 파리를 떠나 귀국하는 날 엄청난 일로 다시 찾아듭니다. 기대 만빵~ 

    

#인생은 파업 없는 RER      


배낭 매고 숙소 찾아드느라 땀에 젖은 몸 좀 씻고 나서 잠시 숨 조절, 그리고 파리 여정 시작합니다. 일단 몽마르트 언덕으로 향합니다. 우버 택시를 타니 요금은 그리 비싸지 않게 나오더군요. 거리도 멀지 않고요. 택시는 몽마르트 언덕 위에 위치한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 Cœur de Montmartre) 앞에다 나를 척 내려 줍니다. 단아한 모습을 띄고 있는 성당. 어디를 가도 랜드 마크 선두주자는 종교 건축물일 수밖에 없는 유럽 역사와 문화를 보면 일견 딱하기도 합니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은 첨탑 대신 둥근 탑을 취하고 있는 걸 보니 비잔틴 양식이겠다 싶습니다.

성당 앞에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 말라고 철망 펜스를 세워 놓았고 거기에 사랑언약 자물통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습니다. 이곳에다 이미 자물통 걸었던 친구들, 다음에 또 다른 짝 데리고 와서 영원한 사랑을 울부짖으며 새 자물통을 걸 수 있을까요? 잠시 헛웃음 흐릅니다. 약속, 함부로 할 것 아닙니다.      


#달을 두고 맹서하지 말지니 수시로 변하는 것이 달인즉


사크레쾨르 옆으로 돌아 들어가니 성당이 또 있습니다. 몽마르트 성 피에르 본당(Paroisse Saint Pierre de Montmartre). 오래 전부터 상상으로만 떠올렸던 곳 몽마르트 언덕. 예술인들의 놀터요 연인들의 낭만이 살아 있는 곳. 그러나 내가 와서 직접 보고 있는 현실 상황은? ‘쩝~’ 수준이었습니다. 예술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하다못해 캐리커처 환쟁이도 보이지 않고 아니면 그 유명한 소매치기 놈들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재미가 없더라, 그것입니다. 그저 옛부터 생각했던 것, 몽마르트 언덕 계단에 앉아 혹은 그 아래 벤치에 앉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잠시 멍 때리기나 해 봅니다.

오후 시간을 그렇게 때우고 나서 몽마르트 언덕 아래 쪽 지점에서 출발, 상제르망(Saint Germain) 거리를 지나 몽파르나스 탑(Tour Montparnasse)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파업 때문에 이 시간에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는다고 하니 별 수 없이 관광안내 부스에 들어가서 버스로 가는 방법을 알아냅니다. 54번 버스 타고 서너 정거장 가서 95번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은 더 가야 합니다. 파업 때문에 퇴근시간 전부터 차량들로 길들이 일대 막히고 있습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 버스가 답답해집니다. 

센 강 건너기 전 어느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 무엇인가 감이 옵니다. 여기서 내려야 한다는 직감. 여행 중에 나는 이런 때를 종종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직감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좋은 추억이 만들어지곤 했죠.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무엇인가 눈에 번쩍 뜨입니다. 워따요? 이것이 여기 있네그랴?!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는 오른쪽 창가에 붙어서 있었기 때문에 왼쪽 편의 이놈을 못 본 것입니다. 바로,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엎어졌더니 참외 밭이었던 것입니다. 또 다시 내 직감이 한 건 올리는 순간입니다. 날씨가 흐린 탓에 5시 30분경인데도 벌써부터 삼삼한 야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일단 이것부터 둘러보는 것이 왔다 땡이겠습니다. 

박물관은 폐장 시간이고 내일 아침 9시에 오라고 하는군요. 멋진 야경사진 찍어 가며 겉껍데기 구경하고 나서는 센 강으로 가서 다리 난간에 걸쳐 선 채 잠시 숨 좀 돌립니다. 그러는 중에 삼륜차가 다가와 호객하기에 몽파르나스 탑까지 가격을 물었더니 25유로 내랍니다. 미친 것, 택시를 타도 그 절반 값이면 되는 고작 2km 정도 떨어진 곳이거늘! 끌끌 혀를 차 준 후 슬슬 걸어서 몽파르나스 탑 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멀찌감치 보이는 형태를 보자니 그냥 고층 건물에 불과합니다. 저 위에 올라가서 파리 야경을 보자고 계속 걸어가야 한단 말이더란 말이냐? 파리 야경은 내일 에펠 탑에서 즐길 것이니 만큼 미련 없이 발걸음 돌립니다. 상제르망 거리로 내려가서 가판대를 찾아 따뜻하게 데운 와인 한 잔과 프레첼 빵 한 덩어리 사서 주린 배를 달랩니다.

이제부터 또 고생길입니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맨 것이 길고 긴 고생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지하철은 운행 중지 시간이었기 때문에 도무지 깜냥이 안 섭니다. 별 수 없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북 역까지 버스를 타고 간 후 RER B선을 타기로 했습니다. RER B선을 타는 방법은 버스에서 만난 크레익(Creig)이라는 젊은 친구가 알려 준 것입니다.

지하철과 버스 파업 때문에 외래 방문객들이 고생한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갖는지 젊은 친구가 배려 깊게 안내해 주더군요. 이 친구뿐 아니라 내가 겪은 파리 사람들은 죄 그렇게 정성을 보여줍니다. 내가 길 잃고 헤맨 것을 미안하게 여겨 주던 크레익에게 한 마디 해 주었습니다.

“길을 잃는 것도 나그네의 길 중 하나라네.”

젊은 파리지앙, 잠시 멈칫 하더니 미소 머금으며 나를 그윽하게 바라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되었습니다, 선생님.”

착하고 마음씨 따뜻한 친구입니다, 크레익.

북 역에 도착해 보니 RER B선은 운행이 끝났고 대신 D선을 타야 한답니다. 이게 또 숙소 근처로 지나가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최대한 가까운 역에서 내려도 3km는 걸어야 합니다. 북 역에서 RER D선을 타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내리니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역 광장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를 팔고 있군요. 너 잘 만났다, 오늘 밤 와인과의 궁합을 기대하며 꼬치 세 개를 샀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섰더니 트램이 보입니다. 낼름 올라타서는 먼저 타서 앉아 있던 중년 사내에게 숙소 위치 보여 주었더니 두 정거장만 가면 종점이고 그곳에서 내린 후 트램 가던 방향으로 주욱 걸어가라고 알려 줍니다. 덕분에 1km 정도는 벌었습니다. 부슬비가 내립니다. 비를 맞으며 숙소 방향으로 2km를 걷습니다. 오는 도중에 케밥 하나, 바나나 한 덩이, 와인 한 병 샀습니다. 파리의 파업. 파리가 파업으로 나를 격하게 반기는군요.



12월 20일 파리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지만 파업 여파로 북 역에서 상라자르 역까지 가는 RER E선을 무려 40분이나 기다린 끝에 탈 수 있었습니다(일찍 일어난 것이 억울합니다, 쒸).  

게다가 러시아워가 지난 시간인데도 역 내부는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 가만히 서 있어도 뒷사람들에게 밀려 나갈 정도이다 보니 오늘은 아침부터 제법 버겁습니다.  

파리 지하철의 환승 환경을 비롯한 전체 시스템은 왕짜증 났던 오사카 지하철이 사타구니에 새납 소리 나도록 달려와, “아니끼(형)~!”를 외치며 절 올릴 정도로 끔찍합니다. 사회기간망이라는 것이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어야 하거늘 파리의 그것은 사람들 생고생만 시킬 뿐입니다. 옛 시대의 유물이라서 어쩔 수 없겠죠만. 

상라자르 역에서 RER C선으로 갈아탄 후 스쳐가는 파리 외곽 정경을 즐깁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달렸나 싶을 즈음에 종점 베르사유 리브 고세(Versailles Rive Gauche) 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가 흐릅니다. 이 교통편은 어제 만났던 크레익이 알려 준 것입니다. 또 다시 고마운 크레익. 

역에 내려서 거리를 걷는데 웬일인지 관광객이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10분 정도 걸어가는 길 내내 현지 마을 사람들도 듬성듬성 보일 정도도 한적합니다. 나야 좋죠, 뭐. 설렁설렁 마을 구경하면서 베르사유 궁전(Palace and Park of Versailles)에 이르렀습니다.      

장장 70년 넘도록 권좌를 누렸던 절대 군주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현란한 망국 쇼가 있었던 베르사유 궁전을 둘러봅니다. 나라 망하는 데에는 지배층이 화려하게 놀았느냐, 아니면 그러지 않았느냐가 판가름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과연 알 수 있겠습니다. 방방마다 걸려 있는 우아한 그림들과 홀 천장화, 매일같이 무도회를 열었을 대연회실. 당시에 왕족과 귀족들이 얼마나 쌩 쇼를 하면서 살았는지 참······. 

마리 앙투아네트의 침실, 그녀가 실제로 입었던 드레스, 루이 14세의 침실,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즈(Paolo Véronèse)가 그려서 바쳤다는, 전 세계 왕궁 건물 벽화 중 가장 큰 그림이라는 ‘시몬의 집에서의 식사(Le Repas chez Simon)’.

















그리고 엄청난 넓이와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정원. 베르사유 관람 후 감상을 말하자면 이렇게 될 듯합니다. “화려함의 극치를, 지치도록 달렸다.”

그렇게 베르사유와 헤어지고 나서 기차역까지 가는 도중에는 재래시장이 있어서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베르사유보다 훨씬 푸근합니다. 역시 나는 재래시장 스타일~

날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RER C선을 타고 다시 상라자르 역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42번 버스로 에펠 탑을 찾아갑니다. 에펠 탑. 이 나이 되도록 사진과 영상으로, 파리의 상징으로 봐왔던 이 친구를 실물로 보니 과연 대단합니다. 일단 크기에서 압도당합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어떤 건물을 돌아 넓은 곳으로 돌아 나가자 느닷없이 눈앞에 쿵~ 나타난, 조명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바벨 탑!

강력 펜스로 탑 주위 공간을 차단하고는 입장객들의 소지품을 꼼꼼히 살핍니다. 무장 군인들도 총에 실탄을 보유한 채 경계를 섭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군인들이 개폼 잡고 있었죠. 아무래도 과격 이슬람 세력의 테러 방지를 위해서인 듯합니다. 

에펠 탑은 리프트가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가 파리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1층(꼭대기)까지는 25유로, 2층(중간)은 16유로. 1층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에펠 탑에 대한 개김적 얄팍한 욕심. 2층도 충분히 높네, 이 사람들아. 돈도 아낄 겸 자중하자는 의미로 2층에 올라 멋진 야경을 둘러봅니다. 파리 야경은 당연하겠지만 센 강 쪽이 한결 예쁩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편은 용케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착착 맞아 떨어져 편하게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역에서 숙소까지 10분 정도 걸어가는 동안 거리의 지저분한 몰골에 혀가 차입니다. 파리는 정말 지저분합니다. 거리에 쓰레기가 차고 넘칩니다. 시각적으로도 좋지 않고 또 때로는 악취도 풍깁니다. 2년 전 한국에 왔던 프랑스 친구가 서울의 시내 거리를 보고 너무 깨끗하다면서 무척 놀라워했는데, 이제 그 친구 마음을 알겠습니다. 

파리의 더러움에 대한 얘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중세 때 궁 안에서는 왕족이든 귀족이든 인간들이 하도 똥들을 싸 놓는 바람에 여인네들은 하이힐을 신고 다녀야 했다는 얘기, 마을 건물의 2층, 3층 가정집들에서는 통에 모아둔 똥오줌을 창밖 거리로 휙휙 뿌려 대는 바람에 사람들이 거리에 나설 때는 우산을 써야 했다는 얘기, 등등. 또 한때 왕족 귀족 여인들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레뷔 공연(풍자극) 같은 데에 등장하는 심하게 부풀린 치마를 입은 이유가 있습니다. 연회 중에 쉬야나 응아가 마려우면 대령된 변기통을 그 넉넉한 치마로 덮고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엄숙경건하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파리는 그렇게 지저분하고 또 날씨도 거의 매일같이 우중충하도록 습합니다. 상제리제 거리나 몽마르트나 에펠 탑 같은 예쁜 구석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된 도시는 분명 아니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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