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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2.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4)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17일 리스본~파리     


파리행 비행기 타기 전 핸드폰으로 파리 사정을 검색해 봅니다. 심상찮습니다. 파업이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항버스도 기차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예정된 여정입니다. 이제 와서 무르고 피하고 어쩌고 자시고 할 바 아닙니다. 혼돈의 파리로 향합니다. 악으로 깡으로, 얄라!

4시간 날아서 파리에 도착. 핸드폰 로밍 전환되자마자 파업 현황부터 확인합니다. 일단 지하철이 파업 중이라고 뜹니다. 트루빌 도빌(Trouville Deauville) 가는 기차는 어찌 될까 걱정입니다. 착잡한 심정으로 공항 출구 근처에서 파리 대중교통 승차권인 나비고(Navigo) 카드를 7일짜리로 삽니다. 이제 시내로 어찌 들어갈 수 있는지 여기저기 묻고 물어서 RER이라는 국철이 지하철과 같은 코스로 운행 중이니 그것을 타면 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정보를 챙깁니다. 간신히 지하철 역 플랫폼을 찾아 가서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RER B선 국철을 탑니다. 그리고 한 30분을 달려서 북 역(Gare du Nord)에 도착, 10분 정도 걸어서 마젠타 역(Gare du Magenta)으로 이동, 그곳에서 역시 다른 국철을 타고 센(Seine) 강 정북쪽에 위치한 상라자르 역(Gare Saint Lazare)에 도착. 이때가 초저녁 6시 즈음. 곧바로 프랑스 북부의 작은 항구 마을 트루빌 도빌행 기차 편을 알아봅니다. 그 와중에 공항 도착 때부터 트루빌의 숙소 쥔장 니콜 할매로부터 두어 번 문자가 날라 왔습니다. 파업 때문에 분명 교통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일정을 취소해라, 환불해 주마. 무조건 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의 파업은 끝내 내 계획에 차질이 나게 했습니다. 기차도 파업 중이라고 오늘의 트루빌 도빌행 기차 운행은 이미 끝나 있습니다. 역무원에게 매달려 고속버스 편이니 블라블라 카(카 쉐어)니 알아봐도 고속버스도 파업이라 끊겼고 블라블라 카도 호출에 무응답. 이러면 별 도리 없죠. 기다리고 있을 니콜에게는 내일 첫 기차로 간다고 알려준 후 역 근처 호텔에서 1박 들어갑니다. 호텔비로 쌩 돈 60유로가 시원하게 사라져 갑니다. 

호텔에 들어서는 곧바로 샤워하고 숨 좀 돌리고 나서 주변 마실이나 다녀오자고 호텔을 나섭니다. 콩코드 광장까지는, 아니 상제리제 거리까지는 갔다 올 수 있겠습니다. 예정에는 어긋나게 되었지만 그래 봤자 이것도 다 나그네 길입죠.     


#예정에는 변수도 따르니 변수에 대응할 순발력을 갖춰라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 파업으로 기차를 타지 못해 예상치 못한 파리 숙박을 하게 된 것이 더 좋은 선물을 가져다 주는군요. 밤거리 마실 좀 다녀오자고 나선 길이 콩코드 광장으로 이어졌고 콩코드 광장에 물려 있는 상제리제(Champs Elysees) 거리까지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상제리제 밤거리를 걸어 보자는 생각 전혀 하지도 못했더랬습니다. 그만큼 파리에 대한 내 정보가 단편적이었던 것인데(오만 곳 싸돌아다니려한 것이 아닌 만큼) 파업 덕에 상황이 바뀌고 보니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km는 족히 넘을 길거리를 야금야금 다 걸어서 상제리제 거리 끝에 있는 개선문까지 찍고 말았습니다. ㅎㅎ     

멀리 에펠 탑(Tour Eiffel)에서 비춰 나오는 대형 서치라이트 빛줄기는 천천히 사방을 돌면서 밤에 묻힌 파리를 훑어 주고 있습니다. 그 빛줄기가 비추고 지나가는 콩코드(Concorde) 광장. 이 콩코드라는 명칭에는 화합이라는 좋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콩코드 광장에는 아이러니한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루이(Louis) 14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 바로 이 콩코드 광장, 현재의 오벨리스크 옆 분수대 자리였습니다. 

단두대에 오르던 마리가 그만 실수로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고 맙니다. “어머나 미안해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여~” 덜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푼수덩어리입니다.

콩코드 광장의 주인공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있던 것을 1833년 이집트 총독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파샤(Pasa. 고위직 사람을 이르는 총칭)가 멀쩡히 있는 것을 생니 뽑듯 뽑아서 프랑스 왕 루이 필립(Louis Philippe)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운송 기간만 4년. 그리고 파리의 장인들이 달라붙어서 다시 세우는 대역사가 이어집니다. 오벨리스크 하단에 그 작업 공정들이 일일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을 만큼 당시 이 오벨리스크는 파리 전역에 대단한 화제였다고 합니다.























상제리제 거리 야경은 정말 로맨틱합니다. 횡단보도 중간에서 개선문 쪽을 배경으로 해서 연인끼리 달콤한 키스 나누기 딱 좋은 곳이겠습니다. 

개선문을 바라본 방향으로 상제리제 거리 왼쪽 옆구리에 붙어 있는 몽테뉴(Montaigne) 거리 야경은 개평. 파리의 첫날 밤, 이렇게 멋들어지게 흘러갑니다.


12월 18일 파리~트루빌 도빌~옹플레르~트루빌 도빌     

    

아침 첫 기차로 트루빌 도빌 도착. 숙소 쥔 할매 니콜이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깡마른 몸으로 아직 꼿꼿하지만 나이는 60대 중반 되어 보입니다. 어투라던가 행동을 보아 하니 상당한 지성을 쌓은 여인이다 싶습니다. 그런 프랑스 할매가 한국의 선비를 만나 살짝 흥분하는군요. 니콜이 조금만 젊다면(한 20대 정도로 ^^) 뽀뽀 한 번 해 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파트 5층에 위치한 니콜의 집은 복층 구조에 내부 시설이 훌륭합니다. 무엇보다도 청결해서 마음에 쏙 듭니다. 1박에 4만 원이라는 것이 미안할 정도입니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내리자 니콜은 발코니로 나와 보라고 합니다. 단장을 예쁘게 해 놓은 발코니에서 내다보는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조금 전에 내린 기차역이 도랑 너머 바로 보이고 멀리 우측에 바다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이곳은 두 개 마을이 붙어서 큰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는 구조입니다. 트루빌과 도빌. 그래서 기차역 이름도 ‘트루빌 도빌 역’입니다. 기차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리 아래에는 바다로 향하는 도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도랑을 기준 삼아서 바다 방향으로 오른쪽이 트루빌, 왼쪽이 도빌, 이렇게 됩니다. 두 곳 모두 마을이 휴양지다 보니 엄청 부유해 보입니다. 휴양지인 포르투갈 카스카이스의 아담한 집들에 비해 이곳 집들은 퍽 큽니다. 

노르망디(Normandie, 일명 영국해협)를 만나려면 트루빌로 빠져서 바다를 향해 나가는 길이 편합니다. 니콜로부터 아파트 입구 문 코드 넘버, 집 현관 열쇠를 건네받고 길을 나섭니다. 숙소 근처 도랑가에 벼룩시장이 자리 잡고 있어서 내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말인즉 벼룩시장이지만 가격들이 제법 비쌉니다. 마음에 드는 모자가 보여서 사려고 했다가 80유로 가격에 뜨악 놀랬죠. 부자 동네라 그런가 싶습니다.

아침을 걸렀으니 이곳에서 요기를 해야겠다 싶어 역시 비싸다 싶은 7유로짜리 아침을 사 먹습니다. 요리사 겸 상인은 자꾸 서비스로 고기 야채 볼 튀김을 얹어 주네요. 이런 부촌에도 시골 인심은 있나 봅니다.

요리사 인심으로 넉넉히 배를 채운 후 노르망디 바다를 만나러 플뢰히 해안(Côte Fleurie)으로 갑니다. 해안에 들어서면서 오른 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르아브르(Le Havre) 마을이 까무룩 보입니다. 실은 저곳이 더 멋지다는 얘기가 있어서 솔깃했으나 제법 멀어서 가지는 못할 것이고, 그 대신 중간 지점 즈음에 있는 니콜이 강추한 옹플뢰르(Henfleur)에는 갔다 올 생각입니다. 어차피 이곳은 돌아다니며 관광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 대신 가볍게 기분 전환 차 왔으니 만큼 가급적 먼 거리 행보는 자제하고 싶습니다.    

노르망디 바닷물은 수줍은 새색시마냥 조심스럽게 밀려듭니다. 그 밀물에 신이 또 적셔집니다. 내 신에서는 지중해 냄새, 사하라 냄새, 대서양 냄새가 나거늘 이제 노르망디 바다 냄새도 추가됩니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손도 담가 보고 조개껍데기도 주워 봅니다. 노르망디 너머 저 멀리에는 사우스햄턴 땅으로 시작되는 영국이 있겠죠. 조만간 가 봐야 할 곳. 

이 해안에서 오래 전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감독이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의 유명한 해안 씬을 찍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던 아누끄 에메(Anouk Aimee)를 참 좋아했었죠. 지성미와 청순미가 차고 넘치던 그 단아한 모습. 그런 영화가 탄생한 해안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칭하는 3인칭 대명사로 영어에는 He와 She가 있지만 이것에 대응하는 명칭 ‘그’와 ‘그녀’는 원래 우리말에 없던 것으로, 일제강점기 초에 생긴 것으로 봐야 합니다. 강점기 당시 어느 문인들 모임에서 양주동이 김동인에게 제안합니다.     

양: 선배님, 우리가 ‘He’와 ‘She’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그’와 ‘그녀’를 쓰는 건 뭔가 불분명하고 어색하다고 봅니다.

김: 그래서?

양: 당연히 우리 정서에 맞도록 써야 합니다.

김: 어떻게?

양: 이래야죠. 그와 그녀 대신, 그놈과 그년, 이렇게 쓰고 부르자 그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김동인은 양주동 이마빡을 향해 술 주전자를 힘껏 던집니다. 양주동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다면 영화 「남과 여」도 이렇게 불렸을 수 있겠죠. 「그놈과 그년」     

노르망디 바다와 헤어져 아까 그 벼룩시장에 다시 들릅니다. 파는 먹거리 중 가장 싸다 싶은 것을 찾으니 요거트가 보이는군요. 요거트 두 개 사고 수제 코냑 한 병 작은 것도 사서 숙소에 가져다 놓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이번에는 다리 건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도빌 마을을 보러 가야죠. 가는 길에 트루빌 도빌 기차 역사(驛舍)를 보니 이것도 작품이다 싶을 정도로 외관이 끼끗합니다. 

도빌 또한 부자 마을로 마을 한 쪽에 폴로 경기장까지 있지 않나, 마을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와 있는 만(灣)에는 화려하고 예쁜 요트들이 가득하지 않나, 마을 집들은 대단히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지 않나, 아무튼 대단하다 싶습니다.   

유럽의 가옥 외형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보니 일단 예뻐 보일 수도 있고, 고풍스러운 집들 역시 외형상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에 들어가 본다? 한국 사람들 열의 열, 불편하다고 투덜댈 것이 분명합니다. 내부 공간 비좁아(물론 부자 동네 집들이야 넓지만), 냉난방 시설 유연하지 않아, 전기 소켓은 어디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있어도 충분치 않아, 실내는 청결하지 못해······.

현시점의 주택 환경을 놓고 보면 한국의 그것이 당연 유럽 수준을 크게 앞섭니다. 결론인 즉, 유럽 가옥의 외양은 참 예쁘지만 내부는 그다지 즐겨 살 만한 공간은 아니다, 그것입니다. 각종 편의 환경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주는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곳에 오기는 정말 잘했습니다. 여기서 머물 이틀 동안의 시간. 충분히 힐링되겠다 싶습니다. 비단 파리의 파업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1박이 날아갔지만 어차피 어제 왔어도 밤늦게나 도착했을 것, 오늘 아침 일찍 온 것이나 별반 차이 없습니다. 

도빌 마을 구경을 마치고 기차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2유로 50센트짜리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서 옹플레르에 도착합니다.

가는 내내 눈에 들어올 때마다 푹푹 빠지게 만드는 목가(牧家) 풍경. 이런 것이 힐링이겠죠.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예쁘고 앙증맞은 작은 항구 마을 옹플레르. 여행 초에 바랐던 것은 그저 지중해와 사하라였습니다만 대서양과의 짜릿한 만남도 있었고 노르망디라는 큰 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붙여서 이 예쁜 옹플레르까지 접하니, 감격스러운 나머지 한국 선비로서의 기품 있는 탄성이 점잖게 나옵니다.

“꺄으~!”

요트들이 들어찬 만(灣) 바로 옆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군요.     


#내 마음 속의 만()에는 무엇이 들어와 있을까


옹플레르 역시 항구를 끼고 있는지라 바다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무엇보다도 마을 전체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착하고 친절하기만 합니다.  

넉넉한 마음 품은 채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서녘에 석양이 물들고 있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4유로짜리 와인 한 병 삽니다. 아까 벼룩시장에서 샀던 꼬냑은 파리에 가서 즐길 생각입니다. 편의점에도 들러서 샌드위치 하나 챙깁니다. 요거트도 사 두었겠다, 오늘 저녁거리는 충분합니다. 샤워 후 일찌감치 침대에 뒹굴어 대면서 휴식 취합니다. 이 정도면 오늘 일정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생각을 좀 해 봅니다. 내일 파리로 돌아가서부터의 일정을 따져 보니 가급적이면 일찍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낮 시간에는 분명 버스고 지하철이고 파업 중일 것이니 만큼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숙소를 찾아드는 것이 도움될 것이요, 그렇게 아낀 시간을 잘 이용한다면 늦은 오후부터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을 포함한 몇몇 일정을 훌륭하게 소화해 낼 수 있을 듯합니다. 반나절 시간만 알뜰하게 활용해도 다른 일정에 여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트루빌 마을 뒤쪽을 산책삼아 돌아보면 이곳에서는 더 바랄 것 없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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