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May 21.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3)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15일 리스본     


새벽부터 숙소 다락방의 하늘이 보이는 천장 창문에 빗방울 떨어지는 툭툭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이 되어 주룩주룩 비로 변했습니다. 몸도 조금 피곤합니다. 점심 무렵 될 때까지 방에서 쉬면서 빨래하고 사진 정리하다가 비 그치면 슬금슬금 시내 나가서 툭툭이 타고 타구스강을 둘러보고, 강변에 있는 리베이라 재래시장(Mercado da Ribeira)에 들러 리스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물요리를 맛볼까 어쩔까 생각 중입니다.      


지하철 타고 테리오 두 파코(Terreiro do Paço) 역에서 내리면 곧바로 옐로우 보트 선착장으로 이어집니다. 선착장은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에 붙어 있고 말이죠. 이 코메르시우 광장은 리스본 관광의 중심점이 되는 듯합니다. 광장은 16세기 초 마누엘(Manuel) 1세 궁전이 있었다 해서 궁전 광장으로 불립니다. 마누엘 1세는 행운 왕으로도 불릴 만큼 대항해 시대가 시작될 무렵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의 인도 항로 개척과, 왕명 수행 차 인도로 가던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 훗날의 브라질 초대 황제 페드루 1세)이 폭풍으로 우연히 브라질을 발견해서 식민지로 삼은 일 등이 마누엘 1세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분명 포르투갈을 강국으로 융성시켰던 왕이었습니다만 그만큼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철천지원수가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는 현지인 대살육 시대였으니까요.

대항해 시대에 너무도 잘 나갔던 포르투갈. 하지만 식민지 관리에 점점 힘 빠지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으로 주앙(Juan) 6세 때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왕세자가 브라질을 차지하고는, “지금부터 이곳은 내 땅~!” 독립선언을 하고 나서부터 포르투갈은 절단나기 시작합니다. 2류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포르투갈의 번영기,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타구스강은 곧바로 대서양과 만나기 때문에 거의 바다다 싶습니다. 툭툭이 대신 유람선 옐로우 보트를 타고 강 일대를 둘러봅니다.

배가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에 이르기 전 즈음부터 왼쪽으로 무엇인가 요상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타구스강을 가운데에 두고 리스본 맞은편에 위치한 알마다(Almada)의 대형 그리스도 입상(Santuário Nacional de Cristo Rei)이 그것입니다. 이것과 똑같이 생긴 것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코르코바도(Corcovado)산 위에도 있습니다. 원본은 알마다의 그리스도 입상이라는 거.

그리고 바다를 향하는 방향으로 볼 때 강변 오른쪽에는 발견기념비(Padrão dos Descobrimentos)라는 것이 우뚝 서 있습니다.  

포르투갈이 해양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주앙 1세 왕의 셋째 아들내미요 훗날 항해자(Navigator)로 불린 엔리케(Infante Dom Henrique) 왕자, 그의 사망 5백주년을 기념해서 1960년에 범선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바라보자니 감정 또 오릅니다. 콜럼부스의 ‘카리브해 발견’이 아이티 원주민 수십만 명을 죽여서 종족 씨를 말린 것으로 이어졌듯이 그들의 발견은 곧 현지인들의 엄청나고 끔찍한 희생을 요구한 것이었음에도, 다시 한 번 말해서, 대항해 시대의 콜럼부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등등 소위 ‘발견자’들의 ‘발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패악한 행각이었음에도, 나의 행복이 너의 악몽이었음에도,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세비야 황금의 탑에도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찌 뻔뻔스러운 것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뿐이겠습니까? 대항해에 나섰던 그 옛날 종자들, 다 한통속이겠죠.

발견기념비에 이어 이번에는 벨렘탑(Torre de Belém. 베들레헴 탑)이 나옵니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출발점을 기념하기 위해, 또 16세기 초 타구스 족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하니 이 유람선, 괜히 탔다 싶습니다.

옐로우 보트는 다시 코메르시우 광장 선착장으로 돌아옵니다. 이 광장의 주인공은 요셉(Joseph) 1세 왕입니다. 이 양반이 왕으로 먹고 살고 있을 때 1775년 리스본에 끔찍할 정도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6만 명 사망에 건물이 만 2천 채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요셉왕은 그 시련을 무릅쓰고 복구를 이루어냈기에 리스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타구스강 구경은 얼추 했으니 잠시 쉬었다가 골동품 같은 빨강 트램을 타고 올드 타운을 돌아볼까 합니다. 빨강 트램은 관광 전용으로만 운행합니다. 옐로우 보트 티켓 사는 곳에서 빨강 트램 탑승권도 패키지로 묶어 팔기에 엣다 모르겠다~ 샀던 것입니다. 트램 타고 올드 타운 구경 후에는 리베리아 시장행~해물요리 찹찹, 그리고 시간 되면 파두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싸구려 선술집을 찾아볼까 합니다.

시간이 되었고 딸랑 한 칸짜리 예쁜 빨강 트램에 올라탔습니다. 출발지는 역시 코메르시우 광장. 그런데 운 좋게 나 혼자만 탄 채 출발합니다!

트램 기사는 예쁜 처자입니다. 사진도 같이 찍고 하면서 눈이 참 예쁘다 해 주니까(이런 것은 작업 거는 행위가 아니고 여행 중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믿어 주소사), 그 말에 긴장이라도 했는지 단 둘이 있는 좁은 트램 공간 안, 눈에 띄도록 그때부터 버벅댑니다.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리스본의 트램은 동네 좁은 골목을 비집고 다닙니다. 어느 곳에서는 아슬아슬하게 건물과 스치듯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이 제법 재미납니다. 관광객들로 꽉 찬 다른 트램이 지나쳐가기에 그쪽 인간들에게, “여긴 나 혼자 타고 가거든?” 몸짓 손짓으로 알려 주면서 혓바닥 내밀어 메롱~거려 주니까 그쪽 트램 사람들, 깔깔대며 엄지 척 해 줍니다.

그런데 분명 관광객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어느 젊은 여자 친구 하나가 와락 제 코를 트램 유리창에 밀어붙여 들창코를 만들어 보이며 개깁니다. 쒸······, 니가 그렇게 씨게 나오면 내가 밀리잖어~!

트램은 한 시간 가까이 올드 타운 곳곳을 들여다보게 해 줍니다.

리스본 올드 타운인 알파마(Alfama) 지역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마드라과(Madragoa) 지역으로도 건너가서 한 바퀴 돈 후 출발지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리스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무슬림 성인 상 조르쥬 성(Castelo de São Jorge), 종탑과 첨탑이 장엄해 보이는 바실리카 성당(Basílica da Estrela),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타구스강이 시원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원래 전망 좋은 곳으로 소문난 산타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 그 외에도 작은 구멍가게들, 유서가 깊어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 귀여운 툭툭이들, 빨강 트램과는 사촌 간으로 정규 노선을 뛰는 노랑 트램, 비카선 푸니쿨라, 한쪽이 엄청 좁게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희한하게 생긴 건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단장된 카몽이스 광장(Praça Luís de Camões) 등등, 눈 행복해지도록 오만가지 스토리를 보여 주고 들려 줍니다(관광객용 리시버로 설명 들을 수 있음).

한 시간 가까이 트램 투어를 즐긴 끝에 다시 코메르시우 광장에 돌아옵니다. 리스본은 다른 것은 시큰둥 맛이고 파두 공연과 함께 이 빨강 트램 경험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관광 유적지 찾아다니면서 사진이나 찍고 홱 돌아서는 그런 여행,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을 만나는 것이 진짜 여행의 재미라는 것.

비가 띄엄띄엄 오더니 이제는 바람이 비를 물고 거세게 불어 댑니다. 추위가 느껴지면서 그 다음 행보에 갈등이 생깁니다. 재래시장을 가, 말어? 이따 밤에는 파두 공연 볼 수 있는 선술집은 어쨔?······.

결심합니다. 사람은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 오늘 해결 못한 코스는 내일로 미룬다!~ 저녁 이후의 코스는 깔끔 접고 숙소로 발걸음 돌립니다.

세비야에서는 밤 10시부터 동네 마켓에서 술 판매를 금지했고 이곳 리스본은 밤 9시부터 술 판매 금지입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숙소 마을로 와 보니 역시나 마켓들, 문 닫았습니다. 별 수 없이 빠에 들러서 와인 좀 사자, 했습니다. 그러자 빠 안에 있던 사람들이나 빠 밖에서 담배 피우며 술 마시던 마을 사람들 와락 달라붙어서는 이 와인이 좋네 저 와인이 좋네, 어떤 노인네는 쥔 할매에게 와인 값까지 깎아 주라고 성화입니다. 왜 그러죠, 이 사람들? 노인네들의 추천 손가락이 가리키는 와인병을 일일이 확인해 가며 레드 와인 한 병, 화이트 와인 한 병 골랐습니다. 잘 골랐다고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이제는 싸게 내주라고 성화, 쥔 할매도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가져가~, 지화자 난리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와인 큰 것 두 병 10유로에 샀습니다. 리스본 사람들, 정말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숙소에서 맛보니 맛 죽입니다. 과연 세계 최대 와인 생산국답습니다. 모르고 있던 상식. 포르투갈이 전 세계 40% 물량 공급을 도맡는 물품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와인 병 콜크 마개입니다. 포르투갈은 콜크 나무 농업이 널리 시행되는 나라입니다.

12월 16일 리스본~호카곶~카스카이스~리스본     

리스본에서는 비를 자주 만납니다. 아침부터 조용한 비가 나리면서 리스본을 적십니다.

호시우 리스보아 기차역에서 기차 타고 엊그제 갔던 신트라에 다시 갑니다. 오늘은 궁전 마을 대신 한적한 곳을 가고 싶습니다. 찻간에서 창밖 나리는 비를 보며 카롤리나 타바레스(Carolina Tavares)의 파두를 듣습니다. 오늘 저녁 리스본 시내 선술집에서 파두를 즐기게 되길 바랍니다. 감히 카롤리나 급은 기대 않습니다. 그저 내 마음을 적셔 줄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비는 리스본을 적시지만 내 마음은 충분히 적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트라 역에서 내리자마자 403번 버스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한 곳은 호카곶(Cabo da Roca). 유럽 대륙의 서쪽 끝 땅이 되는 곳입니다. 초입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최서단(最西端) 도착 증명서’를 십 몇 유로 받고 발급해 줍니다. 증명서는 내 마음 속 기억이라네~ 몸을 돌려 절벽 끝자락으로 갑니다. 140m 절벽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등대가 보입니다. 등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십자가 세워 올린 돌기둥이 있고 기둥면에는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제 절벽 끝 지점에서 대서양과 유럽땅 끝이 장대하게 부딪히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그 광활함을

그 고고함을

그 웅대함을

그 장쾌함을

한 시간 넘도록 미친 듯이

눈에

가슴에

새기고 새기면서

입으로는 장탄식을 토해 냅니다.

아~!

수억 수십억 년을 거기 있으면서

뭍이 외롭다 하면 성난 파도 일으켜 희롱타가

뭍이 잠든다 하면 물러나 저도 눈 감았거늘

우리네 하찮은 짧은 인생 무슨 격에 바쳐서,

오늘 외로우니 내일도 그럴까

오늘 즐거우니 내일도 그럴까

하루하루를 일희일비로 살아가는지,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초연한 양 살아가는지.

아~!

나 그렇게 헛된 가면으로 나를 가린 채 살아온 것 아닌지······.       

바다는 수시로 모습을 바꾸지만 바다는 바다입니다. 성을 낼 때도 웃을 때도 바다입니다. 바다가 지키는 것은 바로 이것, 본성(本性)입니다. 그렇게 자연은 온새미로의 본성을 지켜가건만 우리네 인간들이란······.

우리는 자연을 두고 풍요를 준다, 거칠다, 무섭다, 평화롭다, 그렇게 묘사합니다. 자연은 그저 그대로 존재할 뿐이라 자연(自然)입니다. 속 좁고 간사한 인간들이 자신에게 맞춰서 자연을 이렇게 저렇게 평하는 것입니다. 자연이 인간을 존중하듯 인간도 자연의 본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평소 우리는 자신에게 맞춘 각자의 페르소나로 삽니다. 여행은 그런 페르소나를 던져 버리고 각자의 진정한 본성을 찾게 해 줍니다. 이 여행, 이곳에서, 나는 바다의 본성을 보며 나의 본성을 헤아려 봅니다.       


#본성(本性)은 변하지 않는 대신 지키지 않으면 사라진다


갑자기 절벽 아래가 궁금해졌습니다. 펜스로 삼은 목책을 넘으면 곧바로 낭떠러지입니다. 최대한 절벽 위 땅 끝 가장자리까지 다가갔습니다. 내 눈으로는 절벽 아래 볼 수 있는 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보련다, 셀프 카메라 봉 뽑아 카메라를 걸고 앞으로 내밀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가 불쑥 일어난 현기증에 중심을 잃었습니다. 휘청~ 하지만 대서양이, 유럽 땅 끝자락이, 여기는 네깟 놈 감히 떨어져 죽을 곳 아니다, 하는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본성을 잃고 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이 자리에서 훌쩍 뛰어내리면 이 육신을 짓누르는 오만 고민도 끝날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떠나기 싫은 발걸음을 떼어 이제 버스로 30분 걸리는 카스카이스(Cascais)로 이동합니다. 조용한 휴양 마을로 상당히 고급스러운 동네입니다. 도착하자마자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기차역 위치 확인한 후 배를 좀 채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스카이스 해변과의 만남. 넓게 펼쳐진 해변을 따라 걷기. 바람 때문에 파도가 제법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계속 걷자니 바다는 더 성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더 높은 파도가 해변 방파제에 부딪히며 엄청난 파도 파편을 퍼뜨립니다. 내 온 몸이 그 파도 파편 유탄에 맞아도 기분은 좋기만 합니다. 이 여행 전 나를 덮쳐 왔던 파도는 걱정 파도였습니다만, 이 카스카이스의 파도는 나를 정화(淨化)해 주는 파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신고 있던 신도 그 물벼락에 성할 수 없죠. 이번 여행길을 책임지고 있는 내 신. 지중해 물에 적셔지고, 사하라 모래에 묻히고, 이제는 대서양 물에 적셔집니다. 해변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 한 잔으로 호카곶과 카스카이스의 바다를 잊지 말자고, 점 하나 찍습니다.

해변 산책 후에는 기차역 근처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을은 참 예쁩니다. 간단한 기념품도 챙기고 마음에 드는 중절모도 하나 아주 싸게 샀습니다. 비가 슬금슬금 오다가 이제 폭우로 변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칩니다. 스콜인가 싶습니다.

오늘의 호카곶과 카스카이스는 내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나라는 인간의 나약함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내 마음 속 걱정을 넉넉하게 씻어 주었습니다. 큰 치유였습니다.     

여행 중에 좋은 경관을 보고 감흥을 얻는 것이 바로 명약이 되기도 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의사는 마지막 권유를 합니다.

“어디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 좀 다녀오시지요.”

그래, 죽기 전에 눈 호강이나 좀 해 보자, 병자는 경치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두어 달 후, 병자는 완쾌되어 돌아옵니다. 그 모습을 본 의사는 껄껄 웃습니다. 이것이 무슨 중 목탁으로 찬송가 장단 맞추는 소리냐······.

사람은 눈으로 좋은 것을 볼 때 감흥을 느낍니다(짐승들도 그러합니다). 그 감흥에 자극받아서 신체 내부에서는 호르몬을 열심히 분비합니다. 바로 그 호르몬이 병을 이겨내는 명약이 되는 것이다, 그 얘기입니다.

실제로 내가 이런 현상을 겪은 적 있습니다. 수년 전, 2년을 계약기간으로 해서 어느 인구 8만 명 정도 도시의 문화재단 임원이 되어 간 적이 있었고, 마침 그곳은 대단한 순수 자연 경관을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재단 사무실은 시내에서 20km나 떨어진 산 입구에 있었습니다. 별 수 없이 아침저녁으로 그 먼 길을 출퇴근해야 했죠. 그렇게 오고 다녔던 그 길이 바로 옛 도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도로 좌우에 아름다운 경관들이 수시로 나타나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원래 편두통을 앓던 나였습니다만, 그런 멋진 풍경들을 매일 같이 눈에 담으며 볼 때마다 탄성을 내다보니 두통약 먹을 일이 사라지더군요. 결국 완전 치유를 보게 된 것입니다.      

   

#젊을 때는 재미있는 곳으로, 결혼 후에는 아이 데리고 문화유적지로, 늙어서는 경치 좋은 곳으로, 그렇게 여행을 하라     


기차 타고 리스본의 또 다른 기차역 카이스 두 소드르(Cais do Sodre)로 돌아왔습니다. 카이스 두 소드르 역이 고맙게도 어제 저녁 포기했던 코스, 리베이라 시장 바로 코앞입니다. ^^

타임아웃 시장(Time Out Market)으로도 불리는 리베이라 시장은 말 그대로 시장은 아니고 푸드 코트(Food Court)로 봐야 하는 곳입니다. 대형 창고 같은 건물 안에 각각의 요리를 파는 다양한 먹거리 가게들이 자리 잡고 앉아 특히 리스본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개념의 식당가입니다. 양은 적고 가격은 시중가보다 조금 비쌉니다. 어느 한 가게에서 참치 요리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문해서 맛보기에 들어갑니다. 비쌌지만 이것이야 리스본을 느껴 보자고 원래 계획했던 코스인지라 굳게 마음먹고 실행합니다.

내 앞에 나온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요리. 원 살덩어리 그대로 낸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 다져서 다시 세팅하는 듯합니다.

리스본의 물가는 교통비와 외식비만 놓고 본다면 조금 비싼 축에 든다고 봐야 합니다. 지하철 표 값이 최하 2유로나 됩니다. 밥값도 웬만하면 우리 돈 만5천 원 안팎입니다. 열 받아서 웬만하면 점심은 굶거나 아주 싼 빵을 사 먹곤 했습니다. 저녁도 쫄쫄 굶다가 숙소에 와서 늦은 시간에 동네 마켓에서 산 싸구려 먹거리로 때웠습니다. 오늘 리베이라 시장에서의 저녁 식사비는 거금 25유로. 파두 공연 본 카페 루소에서도 50유로를 털렸고 말이죠.

이제 파두 공연을 한 번 더 즐기려고 선술집 타입 카페 타스카 두 치코(Tasca do Chico)를 찾아갑니다. 가는 도중 카몽이스 광장의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도 구경합니다. 하지만 기껏 찾아간 카페는 알려진 대로 싸구려 선술집은 아니었습니다. 입구 옆 거치대에 놓인 가격표를 보니 비싼 식사비에 공연비를 따로 책정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대략 50유로 정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입구 앞에서부터 길게 줄을 서 있기도 합니다. 오늘, 파두에까지 취하는 것은 사치이겠다 싶습니다.

훗~ 이미 대서양 물 많이 먹고 대취했다 오늘······. 파두는 엊그제 만난 카페 루소의 파두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바로 지하철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샤워부터 합니다. 포르투갈 여비 몫으로 쓰고 남은 돈을 헤아려 보니 30유로 정도가 남았습니다. 첫날밤의 선술집에 가서 쪽갈비를 샀습니다. 쪽갈비 사는 데에 15유로 쓰고 마켓에서 4유로 주고 와인 한 병도 챙깁니다. 남은 10유로는 내일 아침 공항 갈 때 우버 택시비로 쓰고 비행기 타기 전 커피 한 잔(보통 1유로 몇 십 센트 정도임) 사 마시면 딱 떨어집니다.

돈 아끼다 보니 리스본까지 와서는 포르투갈 대표 와인인 마테우스 로제 스파클링(Mateus Rose Sparkling)을 맛볼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가난한 나그네 행각질에. 그렇게 리스본에서의 행로를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마지막 밤을 넘깁니다.       


리스본과 외곽 마을 몇 군데 겪은 것을 토대로 포르투갈에 대한 감상을 말씀드립죠.

■ 포르투갈 사람들, 스페인 사람들보다 한결 더 착합니다.

■ 역시 이곳도 흡연 천국입니다.

■ 역시 이곳도 음식이 짭니다.

■ 문화나 민족성이 이웃나라 스페인과 상당히 다릅니다(물론 내일부터 겪을 프랑스와도 다르겠죠?).

■ 물가가 우리보다는 조금 더 비쌉니다.

■ 인종 구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 와인이 맛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