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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1.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2)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13일 세비야~리스본     


아침 일찍 서둘러 시외버스 버스터미널 도착. 첫차 표 구입해 보니 9시 출발입니다. 한 시간 가까이 여유가 생깁니다. 근처에 알폰소 운하와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그쪽에 카페 하나가 있습니다. 작은 샌드위치 하나, 물 한 병 사가지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요기 때우는 중에 웬 후줄근하게 차린 중년의 동양 남자가 나를 보고는 흘깃흘깃 눈치 보면서 다가옵니다. 중국 사람입니다. 중국말로 인사를 해 오더니 갑자기 내 맞은 편 의자를 당겨 앉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왜 여기 앉느냐, 그냥 가시라, 짧은 중국말로 들려주니까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곧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비척거리며 사라집니다. 이런 아침 시간에 이런 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같은 동포 만났다고 얘기를 나누려 한 것. 그런 얘기 끝에 애절한 표정 지어 가며 돈 좀 달라고 할 것이 분명한 룸펜 나부랭이거나, 타국 생활 중에 돈 다 쓰고 고국으로는 돌아가지 못한 채 하루하루 힘들고 외롭게 견디는 처지 딱한 사람 아닌가 여겨집니다. 내 마음이 아련하다 해도, 내가 그대를 구원해 줄 여력은 없다네, 이 사람아.

그렁저렁 시간 보내다가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갔습니다. 버스 타기 전 화장실 들러서 쉬야부터 해결합니다. 그렇게 몸무게 좀 빼고 나서는 이제 플랫폼으로 가서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리면 됩니다. 콧노래 흘리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내 옆 2m 떨어진 기둥 옆에서는 두 여인네가 작별의 주둥이 쪽쪽 행각 삼매경입니다(레즈비언). 그러다 입술 뜯어져 나가겠다, 이것들아~

그나저나 어째 이상합니다. 내가 탈 버스는 출발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차표를 꺼내 들여다봤습니다. 염병~! 버스 시간을 잘못 안 것입니다. 지금 시간은 9시 10분. 내가 탈 버스는 8시 출발.  

“리스본 가는 첫 번째 버스(First Bus) 표 주어.” 해서 샀던 표가 ‘08:00’인 것을 ‘09:00’로 잘못 본 것입니다. 눈에 세비야 귀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표 끊지 뭐. 이번에는 그 다음 차편인 12시 30분발 버스표를 새로 끊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리는 시간, 알폰소 13세 운하 산책으로 때우기로 합니다. 대합실 라커 박스에 배낭을 우겨넣고는 건물을 나와 곧바로 운하 쪽으로 발걸음을 놓습니다. 나그네는 헤매는 길조차 나그네 길로 여기면 기분 상쾌해질 수 있습니다.       

운하 길을 따라 죽 걷다 보니 어제 지나친 황금의 탑에 도착합니다. 어제는 그냥 소 닭 쳐다보듯 하고 외면한 것이 좀 미안했었는데, 잘 되었습니다. 3유로 주고 입장, 내부 둘러보고 탑 꼭대기에도 오릅니다. 내부 전시 설명문구 판에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니, 바스코 누네스 드 발보아(Vasco Nunez de Balboa)니, 페르난 드 마젤란(Fernão de Magalhães)이니, 후안 세바스찬 엘카노(Juan Sebastián Elcano)니 하는 인물들이 ‘새 세상을 열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너희들에게는 새 세상 열기였겠지만 당한 사람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식민지 개척의 시발점이었고, 특히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의 카리브 해 지역 개척은 아이티와 쿠바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도살당함의 시작이었지. 이 자들로 인해 오늘날까지 지구상에 인종차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래턱이 다 떨립니다. 

단체로 견학 온 어린 아이들과 엉킵니다. 아이들은 긴 머리 동양인을 쑥스러운 눈길로 훔쳐봅니다. 그중 용기 있는 녀석이 “사진?” 하면서 다가옵니다. 녀석을 끌어안고 탑 꼭대기에서 멀리 세비야 대성당을 배경 삼아 한 컷.  


리스본에는 현지 시각으로 밤 7시 30분 즈음에 도착했습니다. 부슬비가 쉬지 않고 내립니다. 

숙소는 작은 아파트라서 나흘 머무는 데에 딱 좋습니다. 다만 공항이 가깝다 보니 이착륙 소음이 수시로 들립니다. 샤워 후 배 좀 채우려고 마을을 나섭니다. 숙소 쥔 사내가 추천해 준 숙소 건물 뒤쪽의 오 택시(O Taxi)라는 선술집을 찾아가서 돼지 쪽갈비를 15유로 주고 삽니다. 뼈 열두 개 정도 붙어 있는 덩어리 구이인데 이 정도면 두 번 나누어 먹을 양입니다. 숙소에서 와인과 먹으면 딱이겠습니다.

선술집의 포르투갈 사람들, 한국 사람들과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요. 왁자하니 분위기 돋우며 먹고 마시고······. 

포르투갈 사람들은 인종 차별은커녕 인종 구별조차 하지 않습니다. 혼혈이든 흑인이든 아시아인이든 백인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 역사 때문입니다. 대항해 시절 걸핏하면 바다로 나간 사내들이 사고로 죽거나 아니면 바다 너머 현지 여인과 살면서 영 돌아오지 않으니, 사내들 씨가 마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남아 있던 여인들, 어쩌겠습니까? 흑인 노예라도 옆에 끼고 살아야 했죠. 귀족 여인들조차 흑인 노예를 떡하니 서방으로 맞이했다고까지 합니다. 그런 일이 흔하다 보니 인종 구별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죠.     

  

#구별은 좌우를 나누는 것이고 차별은 상하를 나누는 것이다     


선술집 사람들, 먼 데서 온 이 나그네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줍니다. 쥔장의 딸내미로 보이는 처자가 영어로 주문 받습니다. 주문을 마치니 어디서 왔느냐, 묻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봅니다. 그 사람들 눈길이 분명 나를 환영하는 듯합니다. 쥔장은 또 특별히 신경써 주는 척 구워낸 고기 위에 이런저런 양념을 나 보란 듯이 정성들여 발라줍니다. 이 술집, 느낌이 참 좋습니다.

아침거리 빵도 챙기려고 근처 구멍가게에 들렀더니 가겟방 쥔 사내가 유심히 바라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한국말로, “반가워요!” 합니다. 읭? 야 보소? 리스본 사람으로부터 한국말을 다 듣습니다. 연유를 묻자 경기도 성남시에서 10년 간 일했다는군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달이 참 묘한 빛을 냅니다. 주변에 오렌지 색 링을 보입니다. 급히 핸드폰 카메라를 열어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오렌지 링이 거의 사라졌더군요. 리스본의 푸근한 첫날밤이 지나고 있습니다. 


12월 14일 리스본~신트라~리스본  

   

아침이 되었고, 지난 밤 잠은 달게 잤고, 지금 기분은 좋고, 그렇습니다. 오늘은 시내보다는 외곽으로 나가서 에덴의 동산 급으로 쳐주는 동화 같은 마을 신트라(Sintra)에 가 보기로 합니다. 그곳에는 여러 코스가 있는데 다 뛰기는 힘들고 세 코스만 정해서 예약합니다. 비용은 30유로. 조금 비싸다 싶습니다.

아침은 가볍게, 어제 산 빵을 전자레인지로 덥혀서 버터 발라 먹는 것으로 해결하고는 숙소를 나섭니다. 지하철 잡아타고 호시우 리스보아(Rossio Lisboa) 기차역에 도착, 그곳에서 신트라로 향합니다.     

기차 타고 사십 분 걸려서 신트라 도착, 기차역에 붙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잡아타고 십 분 정도 달리니 첫 번째 코스 페나 성(Palácio Nacional da Pena)이 나옵니다. 산 정상에 있는 궁전입니다. 정취가 그럴 듯합니다. 공기도 맑다 보니 멀리 대서양도 보여서 경치 구경이 아주 좋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시간 보내다가 궁전을 나서자니 아까 신트라 기차역에서 잠깐 얘기 나누었던 젊은 처자가 나를 보고 싱긋 웃습니다. 기차역에서 버스 정류장을 찾는 중에 핸드폰으로 무엇인가 뒤적이는 친구가 있기에 얘도 버스 정류장 찾고 있나 싶어 물었더니(얘가 찾아내면 쫓아가려고), 자기는 도보 코스를 찾고 있답니다. 김 빠져가지고, 그러냐? 해 주고 돌아서서는 사람 많이 모여서 기다리는 곳을 가 보니 그곳이 다행히 버스 정류장이었기에 쉽게 버스를 잡아타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렇게 그 친구와는 헤어져 온 것인데 출구에서 다시 만났다는 것. 잘 하면 추억거리 하나 또 얻겠다 싶습니다. 

“너 걸어온다며?”

그러자 씩 웃고는 자기도 버스 타고 왔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코스는 무어 성(Castelo dos Mouros)으로 같습니다. 자연스레 함께 걷습니다. 브라질에서 온 의대생 우리아(Uriah)라는 처자로 혼자 여행 중이랍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기침 감기 기운이 어제부터 콧물감기로 전환, 훌쩍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아도 훌쩍거립니다. 얘도 콧물감기랍니다. 둘은 같이 훌쩍거리면서 무어 성을 향해 산을 오릅니다. 

“너는 브라질 여자, 나는 한국 남자. 둘이 코찔찔이 되어서 여기서 만나다니, 참 대단한 인연이다.”

키득키득 낄낄낄~

세 번째 코스는 서로 다릅니다. 나는 신트라 국립 궁전(Palácio Nacional de Sintra)으로 가야 하고 우리아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순수한(?) 인지상정상, 내 코스를 포기하고 우리아와 함께 할 수도 있지만 굳은 마음으로 우리아와 작별합니다.

나의 ‘홀로여행 관(觀)’은 이렇습니다. 17살 어린 나이 때부터 혼자만의 여행을 해 왔던 나로서는 여전히 누구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 불편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여정이 흐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일정을 약속했어도 여행 중에는 반드시 이견 충돌이 일어나기 십상입니다. 결론적으로, 동행한 사람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여정을 주장하면 여행 자체가 어긋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문제입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 돌연 스트레스 쌓이는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그런 모습,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 연인 간에 부부 간에도 코스 가지고 다투는 모습 심심찮게 봤습니다. 아무리 어찌어찌해서 서로 간의 이견을 조율한다 해도 원론적으로 상대방에게 묶여 끝내 자유로워지지 못하게 됩니다.

홀로 여행의 참맛은 나만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 그리고 때로는 원래의 계획조차 뭉개 버리는 그때그때의 내 올곧은 직관에 따라 움직이기, 입니다. 나만의 ‘홀로 여행’은 올곧이 ‘나’가 중심이 되어 ‘나만의 자유’를 구가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과연 누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능해질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여행 중에는 쿨하게 다른 나그네를 만나고(Cool Hi) 서로 매너 있게 대하다가 쿨하게 헤어지면(Cool Bye) 되는 것입니다. 여행 중 만난 나그네와 필요 이상의 동행에는 앞서 얘기한 불편함이 따를 뿐입니다.      

브라질 처자 우리아와 헤어진 후 무어 성에서 신트라 국립궁전까지는 앙증맞은 툭툭이를 타고 내려갑니다. 걸어가려면 한 시간은 걸릴 듯해서 그렇습니다. 서두르려는 것은 아니고, 시간을 아껴야 오늘 저녁 예약해 둔 파두(Fado)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툭툭이를 모는 여기사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이 차 수명이 40년 되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답니다.” 

40년 연식의 고물차가 훌륭하게 한 인간을 돕고 있습니다. 내게도 이런 차 한 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들더군요.     

신트라 국립 궁전에서 눈길을 끌던 공간은 바로 주방입니다. 중세 후반 서유럽 사람들의 음식 문화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세 곳, 재미지게 돌아봤습니다. 산 아래 예쁜 마을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잠시 카페에 들러 쉼을 한 후 리스본으로 돌아갑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우리와 비슷한 정서가 있습니다. 사우다데(Saudade)입니다. 해석하자면 갈망(渴望), 향수(鄕愁) 정도가 됩니다. 물론 이 말에는 슬픔과 삭이기도 내포되어 있어서 우리네 한(恨)과도 상통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사우다데가 대표적으로 표현되는 문화 장르가 노래이고 그것이 바로 파두(Fado)입니다. 나라 이름 ‘포르투갈’의 뜻이 ‘항구의 나라’인 만큼 바다로 나간 남정네들이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여인네들의 애환이 깊었으리라 상상됩니다. 그런 슬픔을 딛고 살던 포르투갈 여인네들의 정서가 바로 사우다데가 되어 파두에 스며든 것이겠죠. 물론 한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시대적 아픔도 한몫 했을 수 있습니다. 

중세 때 서남아시아에서 생겨난 인도계 집시족들이 헝가리를 기점으로 삼아 유럽 일대에 퍼져나가면서 저네들의 음악을 곳곳에 뿌립니다. 그중 한 갈래가 오늘날 스페인 플라멩코 춤에 곁들여지는 노래가 됩니다. 하지만 파두는 출생이 다릅니다. 바로 중세 때 주로 프랑스에서 많이 생겨난 종글레르(Jongleur, 농부 출신의 음유시인)들의 모노폴리(Monopholy, 단선율 음악)를 파두의 시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샹송(Chanson)이 종글레르 모노폴리의 후예가 되어 프랑스 사람들 정서에 맞춰 전해져 왔고 말이죠. 이탈리아의 칸초네(Canzone)도 그렇게 봐야 합니다.  

신트라에 다녀온 후 저녁 8시에 맞춰 미리 예약한 카페 루소(Cafe Luso)로 갑니다. 포르투갈 전통 음식과 정통 파두 공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페 입구는 조촐하지만 내부는 거의 호텔 급 수준입니다. 넓은 홀이 고급스러운 테이블로 넘쳐납니다. 이윽고 식사와 함께 공연이 이어집니다. 공연 시작되기 전 조명을 어둡게 합니다(그래서 촬영한 사진들이 어두움). 네 명의 가수가 나와서 각각 3곡씩 부릅니다. 오~ 실력들이 제법 좋습니다. 맨 처음 여가수는 제가 좋아하는 「바다의 노래(Cancao Do Mar)」를 부르네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ália Rodrigues)가 불렀고 그녀의 딸 둘세 폰테스(Dulce Pontes)가 불렀던 노래로, 둘세가 부른 이 노래가 오래 전 우리네 어느 화장품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한국 사람들이 갑자기 사랑하게 되었더랬죠. 










공연이 마쳐지고 식사도 끝났습니다. 잠시 요리와 파두의 뒷맛 여물질 좀 하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계산대에 가서 식사비로 나온 거금 50유로를 눈물로 계산하고 있자니 카페 쥔 여인네가 다가와 인사를 해 옵니다. 그 인사 받아주고 잔돈 기다리는 중에도 계속 나를 쳐다봅니다.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입니다. 내 꼴 태가 아무래도 수상쩍다, 그런 표정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공연과 축제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파두 공연을 보고 싶어서 오늘 이곳에 온 것이다, 얘기해 주었더니,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자기 이메일 주소를 적어 줍니다. 한국 공연예술계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면서요. 최선을 다할 테니 언제든 연락 주기 바란다는 말을 하면서 나를 끌어안고 볼따구 비빔 인사를 해 옵니다. 밖으로 나오는데 웨이터 두어 명이 전송까지 해 주네요. ㅎ

오냐, 그래. 돈이야 제법 썼지만 까짓것, 오늘 기분 삼삼했다. 지금은 굿바이고, 다음에 인연되면 또 보는 것이지~

호시우 광장으로 내려가기 전 카페 근처에 있는 사웅 페드루 드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에 들러 리스본 야경을 감상합니다. 야경은 뭐 그다지 예쁘지는 않더군요. 시간은 늦어져 가고 해서 오래 머물지 않고 곧 그곳을 떠납니다. 전망대 바로 아래쪽에는 푸니쿨라(Funicular)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푸니쿨라를 이용해서 호시우 광장으로 내려가 지하철 타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리스본에는 독특한 트램이 있습니다. 바로 푸니쿨라입니다. 경사진 곳을 오르내리는 전용 트램입니다. 경사용 트램이 생긴 이유는 리스본 도심지가 구릉지대 위에 형성되었기에 오르막 내리막이 제법 많습니다. 그래서 평지를 돌아다니는 트램 외에 구릉 지역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트램도 생겨난 것이죠. 

가장 오래된 것으로 라브라 선 푸리쿨라(Largo Da Anunciada Ascensor Do Lavra), 알칸타라 전망대와 호시우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글로리아 선 푸니쿨라(Elevador da Glória), 떼주강으로도 불리는 타구스(Rio Tajo)강을 배경으로 오르내리는 비카 선 푸리쿨라(Elevador da Bica)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내가 탄 것은 글로리아 선 푸니쿨라였고 말이죠. 

     

#우리네 인생살이의 시종(始終)은 평지이니 올라갔으면 내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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