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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May 22. 2022

60나이 내 인생 내일도 거침없이 Yalla(18_끝)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 2019년 겨울의 마음여행에세이


12월 23일 파리~인천(귀국)     


아침 일찍 배낭 둘러매고 숙소 출발, 북 역 도착. 북 역에서는 ERE B선을 타고 샤를드골 공항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군요! 트루빌 도빌에서 파리로 돌아온 날 지하철역에서 내게 숙소 찾아가는 길을 알려 준 어느 여대생과의 인연 스토리, 기대 만빵 예고했죠? 이제부터 그 기가 막힌 얘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트루빌 도빌에서 파리로 돌아오던 그 날. 기차가 도착한 상라자르 역에서 숙소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했지만 파업으로 운행 중단. 버스 편도 모르는 처지.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어깨를 으쓱대는 것이 영어 불통입니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나 그렇게 진땀 흘리며 지하철 플랫폼에서 서성대노라니 근처에 있던 여대생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친구는 영어를 하겠구나 싶어서, 길 좀 묻자, 했더니 내 방향을 확인하고는 따라오랍니다. 그곳에는 국철도 다닌다, 하면서 ERE E선을 자기랑 타면 된다는 것입니다. 거의 구세주였죠. 

자, 이것이 파리에 돌아오던 날 숙소 찾아가던 스토리였습니다.     

어린 친구의 이름은 루이사(이때는 요렇게 들었습니다). 참 착하고 귀엽게 생겼습니다. ERE E선을 타고 가는 중에 내가 파리에 머무는 동안 저녁 한 번 먹자고 했습니다. 오늘 일이 고맙기도 했고 파리에서의 스토리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거절당하나 했습니다만, 웬걸, 숨도 안 쉬고 오케이 해 주네요. 명함을 주니 그 친구는 메모지에 자기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습니다. 그 쪽지, 배낭 앞쪽 포켓에 잘 챙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우리는 다시 만날 것에의 기대감을 담은 뜨거운(?) 눈길을 격하게 주고 받았더랬지욥! 

또 그런데······. 그 이후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느냐, 그렇게 헤어져 숙소에 가서 짐을 풀면서 이메일 주소 쪽지부터 찾아보았습니다. 쪽지. 보이지 않습니다! 암만 뒤지고 털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하철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동안 쪽지 잘 있나, 한 번 꺼내 본 적이 있습니다. 보고 나서 분명히 배낭 포켓에 도로 넣고 버스 잘 타고 숙소 잘 찾아왔건만, 파리 귀신이 곡할 일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단이 났던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쪽지는 사라졌고 그 후 그 친구로부터 이메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잊었더랬습니다.

또 그런데······. 오늘 아침 RER B선을 타고 공항 가는 중에 두개 역 지날 즈음해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탑승하더니 내 옆 자리에 앉습니다. 어라? 이 친구 생긴 것이?······. 분명 루이사와 비슷합니다. 망설이던 끝에 물었습니다.

“너, 혹시 루이사 아니냐?”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쩝~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떫은 감 씹는 표정이나 짓고 있자니 정류장 하나 지날 즈음 이 친구, 고개를 돌려 내 긴 머리를 노려봅니다. 그러다가 묻습니다.

“혹시, 한국에서 왔나요?”

얼래? 그건 왜 묻는데? 그렇다고 해 주자 이 친구, 급 흥분합니다. 그 아이 이름은 루이사가 아니고 리사(Liza)다, 내 친동생이다, 당신이랑 헤어진 후 나에게 자기가 당신을 도와줬다며 자랑했다, 또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면서 정말 기뻐하더라, 그런데 당신으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동생이 실망하더라······. 리사는 제 언니에게 나를 한국에서 온 ‘긴 머리 남자’로 설명했던 모양입니다. 이 친구가 내 긴 머리를 노려본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쨌든, 급히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며 기가 막혀집니다. 허~! 자기가 먼저 이메일 띄우면 새가 뒤집어 날기라도 하나, 웅?!

“그런데 이렇게 내가 당신을 만나다니요!”

이름이 디야(Dyhia)인 이 친구는 몇 년 헤어진 제 서방 만난 것처럼 연신 감격해 합니다. 메모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참 아쉬웠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하는 얘기를 해 주면서 보통 인연은 절대 아닌 이 인연에 같이 기뻐했습니다. 우리의 영어 대화를 이해한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웃으며 신기해합니다. ㅎㅎ 디야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리사와 함께 와라, 오면 내 근사한 구경 잔뜩 시켜 주마,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 도장 찍어 약속해 주었습니다. 

디야로부터 리사의 이메일 주소를 다시 받았습니다. 디야에게는 내 이메일 주소를 주었고 말이죠. 리사나 디야는 알제리계로 둘 다 학생 겸 워킹걸입니다. 디야는 중간에 내려 함박웃음을 보이며 사라졌고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리사에게 이메일을 띄웠습니다. 리사로부터의 답신, 곧바로 왔고 말이죠. 

파리에서는 이런 극적인 일도 겪습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파리를 떠나는 내 마음, 너무도 상쾌하기만 합니다! ㅎㅎ

그렇게나 기분 좋은 일 겪으니 탑승 수속 창구에서의 일도 편하게 진행됩니다. 화장실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통로 쪽 좌석도 얻고, 중간 환승도 없이 직행으로 들어가니 만큼 배낭을 깔끔하게 개리지 수송하는 것으로 해서 그 무거운 짐에서도 벗어납니다. 배낭 맡길 때도 한 차례 웃기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탑승권 발권하는 데스크 앞 플로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탑승객들을 살펴보고 있던 여직원 한 명이 개리지로 부치려는 내 배낭을 같이 들어 주겠다고 달라붙었습니다. 제 딴에는 내 배낭이 꽤 무거워 보였나 봅니다. 괜찮다, 혼자 해도 된다, 했건만 친절을 부립니다. 그렇게 둘이서 배낭을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하던 순간 내 손등이 따끔해졌습니다. 그 여직원의 기다란 손톱에 찔린 것입니다. 여직원은 필요 이상으로 기겁해하며 급히 사과해 옵니다.

“아이고, 미안해요!~ 아웅, 어쩌죠?~”

참나, 별 걸 다 가지고 요란 떠네그랴.

“실은 나 그런 거 좋아해. 뭔가 느낌 오거든. 한 번 더 해 줄래?”

눈을 반쯤 감은 뻑 가는 표정 지으며 절정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렸더니 이 친구,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배를 잡고 웃습니다. 배낭 무게를 재는 중에 그동안 샀던 기념품도 쟁여 놓았으니 무게 좀 나가겠다 싶어, “요금은 붙는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싱긋 웃으며, “공~ 짜~” 요럽니다. 이뿐 것.

자, 이렇게 한 달 여정이 마무리 되었고 이제 편한 마음으로 귀국합니다.   

   

#살면서 겪는 모든 만남은 그대 삶의 역사다     


여행은 ‘어디를 돌아다닌다.’가 기본입니다만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났다.’가 첨부될 때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챙길 수 있다는 얘기, 여러 차례 했습니다. 모처럼 가져 본 이 장기간 여행. 스페인과 모로코, 포르투갈, 프랑스. 여러 도시와 마을들에 내 발걸음을 묻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런 일 저런 일 겪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만난 지중해와 플라멩코, 모로코에서 만난 사하라와 아히두스, 포르투갈에서 만난 대서양과 파두, 프랑스에서 만난 노르망디와 샹송. 내가 생각해도 참 대단한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안타깝고 아쉽고 가슴 아픈 대목이 없을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들이야 마음속에 묻어 놓아야죠.      


한 달 동안 잘 놀았습니다.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소중한 것 몇 개 잘 챙겼습니다.     

저와 같은 연배의 분들께도 권하고 싶습니다. 이 나이에 돈 많이 들이지 않고 홀로 뛰는 한 달짜리 배낭여행. 누구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용기 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첫 여정 날 바르셀로나의 모누멘탈 투우장을 지나칠 때 떠올라 내 가슴 한쪽을 시리게 했던 퀘렌시아. 그 퀘렌시아에 들어서는 비장한 심정으로 떠났던 이 여행에서 오히려 걱정과 불안이라는 죽음 대신 새로운 숨을 얻어 돌아온 기분이 온 몸에 충만합니다. 예순 나이 목전의 중년 나그네가 이 여행으로 새로운 기운을 얻어 삶에의 걱정과 불안을 제법 많이 덜어냈습니다.      

몇 년 전 라오스 오지(奧地) 여행 중 내 편한 방식으로 지어 보았던 시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으로 다독거려진 내 심사에 맞겠다 싶어 읊어 봅니다.      

離開俗世(이개속세)  세상을 잊자고 길 떠나네  

遇河問起(우하문기)  강을 만나 물어보나니 

求法忘俗(구법망속)  어찌하면 세상을 잊겠는가

流河里說(유하리설)  강 흐르며 말하나니

子程同俗(자정동속)  그대 걷는 길도 세상이려니


離開俗世(이개속세)  세상을 잊자고 길 떠나네

接雨問起(접우문기)  비를 만나 물어보나니 

求法忘俗(구법망속)  어찌하면 세상을 잊겠는가 

下雨里說(하우리설)  비 나리며 말하나니 

先忘記汝(선망기여)  세상보다 그대부터 잊기를      



글을 마치며     


여행 시작 즈음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던 말, “그래도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끝날 무렵, 이 말의 뜻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내일이 되면 전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라는 뜻이 아니고, “내일도 또 하나의 오늘이다.”라는 것을 말입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태양입니다. 태양이 다시 뜬다는 것은 기회의 재 제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떠오르는 태양을 새로운 태양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새로운 태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순 나이를 목전에 둔 나. 앞으로 하루하루가 걱정되고 불안스러운 일들로 점철되겠지만 그래봤자 그런 하루하루들도 지나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노마드가 되어 새로운 내일에의 여정에 올라타서 얄라~! 하면 됩니다. 오늘의 걱정으로 내일을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 마을 뒷골목이 떠오릅니다. 지금 걷는 골목이 끝나면 새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새 골목에 무엇이 나를 기다릴지는 꺾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골목에서 내일의 골목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새 골목을 만나면 그곳에 펼쳐 있는 풍경에 맞춰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또 다른 새 골목, 그 다음 날이 나오겠죠. 

더는 힘들어 못 살겠다, 삶에의 원기를 상실한 채 스스로 포기하거나 독한 마음 품고 스스로 인생 마감한다 해도 내일은 그런 것 거들떠도 안 봅니다. 내일이라는 놈은 그저 저 하던 대로 떠오르는 해 맞이하고, 시간 흐르는 대로 흐르고, 때 되면 지는 해 보낼 뿐입니다. 그렇게 내일은 오늘처럼 늘 매양(每樣)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세상이, 오늘이, 내일이 포기하고 외면합니다. 물론 갑자기 슬픈 일도 찾아올 수 있고 기쁜 일도 생길 수 있죠. 사고로 다리 하나 부러져 나가거나 로또 복권 당첨되거나. 그 정도로 큰 이슈가 아니라면 웬만한 슬프고 기쁜 일들, 역시 하루의 일상에 묻힐 뿐입니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동시에 찾아와 그 하나가 내 저녁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면 다른 하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린다고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이 말했듯이, 기쁨과 슬픔에 일일이 일희일비할 바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라는 시간은 경천동지하는 것 없이 잘만 굴러갈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 걱정에, 앞날에 대한 불안에, 진즉부터 노심초사하며 몸 달아 애달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슬픈 일이 닥쳐오든 결국은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오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이야 그 하루하루에 노쇠해 가겠지만 정신과 의지까지 노쇠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매일 다시 시작되는 하루하루, 그 시작하는 시간부터 얼마든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살았듯 새로운 내일도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날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네 삶은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좋은 내일은 저 스스로 예쁘게 나타나는 것이고,  

좋지 않은 내일은 저 스스로 모양 빠지게 나타나는 것.

좋은 날은 하루 종일 즐기면 되는 것이고, 

좋지 않은 날은 하루만 참고 견디면 뒤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황금 같은 오늘, 

어찌 될지 모를 내일 미리 걱정한다고,  

아닌 말로, 

뭐, 

떡이라도 나옵니까?     


#오늘을 살아야 내일로 갈 수 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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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직전인 2019년 연말의 행적을 여행기보다는 에세이로 쓴다는 생각으로 써본 글들입니다. 2020년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10년전인 2012년에는 동유럽 코스를 돌아다니고 역시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가난뱅이 철이의 동유럽여행기). 이 외에 짧은 북유럽 코스도 돌아봤습니다. 2022년 올 겨울에는 이 짧았던 북유럽 코스를 제대로 뽑아서 갔다올까, 아니면 아직 못가 본 지중해~동유럽 몇 나라를 코스로 뽑아서 갔다올까, 궁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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