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한민족은 타민족과 비교해서 누가 보아도 월등하다 할 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누렸다. 천지인을 뜻하는 삼태극, 음양(陰陽)의 대립 조화로 생명을 창조하는 율려(律呂), 천인합일 등은 거대 우주적 관점에서의 도(道)라는 큰 정신문화였다면 일상으로 편재되어 살뜰하게 발현되어 온 아름다운 정신문화가 따로 있었다. 바로 선비정신이다.
선비라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훌륭한 존재이다 보니 한국인들은 고대부터 선비를 두고 모름지기 글 읽는 사람들의 표상으로 여긴 것이다. 그랬던 선비에 대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첫째, 선비라는 명칭을 한자어로 알고 있다. 둘째, 선비를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셋째, 선비와 사대부를 동일시하거나 혼동한다.
이것들을 교정하면 이렇게 된다. 우선 선비는 순우리말로 그 어원은 션?요 한글 창제 후 용비어천가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션비·선배로 불리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선비로 굳어졌다. 그다음, 선비는 유학만 수련한 것은 아니다. 조선의 선비야 대부분 공맹 교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유자들이 대거 포진되겠지만 그 이전인 고려, 발해, 통일신라, 삼국시대, 사국시대에까지 소추해보면 유학 외에도 도학, 불학 등도 지식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선비를 유학자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비와 사대부는 엄연히 다르다. 사대부는 사(士)와 대부(大夫)라는 중원 주나라의 관직 명칭이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일으킨 한반도의 사대부 집단으로 이어졌다가 조선 관료 체계에서 정4품 이상의 문관을 대부, 정5품 이하의 문관을 사라고 분류한 것에 이르더니, 훗날 사대부 명칭은 아직 관직을 얻지 못한 양반 지식인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쓰였다. 그렇다면 스스로 사대부라 칭하는 것에는 지식을 앞세워 관직 얻는 것에 성공했거나, 언제인가는 관직을 얻고 말겠다는 강렬한 현세욕망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결코 관직을 탐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학문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기만 하던 선비는 어쩌다 세상이 불러 마지못해 나설 때가 되어 관직에 오르더라도 여전히 선비정신에 입각, 엄정하게 공무를 다룰 뿐이요, 소명을 다하면 곧바로 관직을 내려놓고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1천 년전 동아시아 최고의 사상가였던 최치원. 사진 위키백과
신라 말 9세기의 대 문장가요 동아시아 최고의 사상가이기도 했던 최치원은 자신의 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에서 유불선(儒佛禪) 삼교(三敎)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고, 그 일면이 최치원이 난랑이라는 화랑의 죽음을 기리며 쓴 난랑비서(鸞郞碑序) 비문에 보인다. “유현묘지도 왈풍류. 설교지원 비상선사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祥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뜻을 풀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라 이른다. 이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다. 삼교를 포함한다. 중생과 접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품는 삼교가 만나 또 다른 현묘한 도를 만들어내니 이것이 풍류요 이에 중생이 감화한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서 풍류의 핵심은 삼교의 만남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은 곧 ‘대동(大同)’을 이르는 말이 된다. 그 대동에서 현묘한 도가 나와 중생이 감화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동을 이루게 하려면 삼교마다 어떤 숭고한 정신이 있어야 만남도 대동도 가능해질 것인데, 이 ‘숭고한 정신’이 과연 무엇인가를 짚어봐야 한다.
계원필경.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대동을 위한 숭고한 정신은 이타(利他)부터 품는다. 자신보다는 어진 심성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위한다. 그럼으로써 너와 나가 대동으로 함께 태평을 누리고, 대동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고고려의 을파소와 이문진, 백제의 고흥과 왕인, 신라의 강수와 설총, 고려의 정몽주와 길재, 조선의 이황과 류성룡 등은 나라를 위해 온몸을 바친 진인들이었다. 이타와 함께 대동 세상 보존을 위해 목숨을 초개로 여기는 것도 풍류도의 숭고한 정신에 든다. 신라의 화랑들은 평소에는 불교를 숭상하고 무예 익히고 시읊고 노래 부르고 춤 추는 것으로 유불선 삼교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나라를 받들고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외적의 침략이 있으면 전쟁터로 달려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고고려의 선인(先人) 집단 역시 평소에는 도를 닦으며 심신 수련을 하다가 외적이 쳐들어오면 강병 부대가 되어 선봉에 나섰다. 당 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3만 명의 선인들이 떨쳐 일어나 결사 항전, 끝내 당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백제의 오천 명 싸울아비 결사대는 계백을 따라 황산벌로 나가 장렬하게 전사하고 있다. 고려 유신들은 이씨 왕가를 부정하고 강원도 두문(杜門)동에 들어가 불출(不出)했다. 조선의 이순신은 백의종군까지 참아내면서 끝내 왜군을 몰아냈다. 대한제국의 안중근은 조국을 구하고 나아가 동양평화를 이룬다는 명분으로 동양평화 파괴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엄벌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군은 주먹밥을 먹으며 관동군과 대적했고, 열사들은 사진 한 장 남기고 폭탄과 함께 산화해 갔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열혈청년 육철희, 원궁재, 변수환, 김인수, 신현석이 김구 암살범으로 평생을 숨어 살던 안두희를 찾아내어 진실이 담긴 진술을 받아 세상에 알리자 택시 기사 박기서는 손수 깎아 만든 정의봉(正義棒)을 떨쳐 들고 나서서 민족의 이름으로 안두희를 처단하고 법 앞에 당당히 섰다.
안두희를 처단할 때 썼던 정의봉을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하고 있는 박기서(2018년). 사진 위키백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평소 자신의 분야에서 본분을 다하며 이타로 대동 세상을 기리던 중에 혹여 그 대동 세상에 시련이 닥치면 여지없이 몸을 일으키던 사람들. 그들이 바로 배우고 깨우친 바를 실천한 선비였음이요 그로써 풍류도의 일면인 숭고한 정신을 선비정신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유럽에 기사도가 있고 중국에 군자도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고한 풍류도와 선비정신이 있어 한국 정신문화의 요체가 된 것이다.
최치원이 동이족 고유의 현묘한 도를 풍(風)을 들어 말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세상 만물을 이루는 근간 요소는 지수화풍(地水火風), 흙·물·불·바람이다. 여기에 옛 철학자들은 이 네 가지 물질적 원소에 각각 정신적 의미를 부여했다. 흙은 강인함과 의지와 풍요의 의미를, 물은 우연과 깨달음을, 불은 엄격함과 부드러움과 철학을, 마지막으로 바람은 온 누리를 돌아다니는 존재로서 지혜와 상생의 의미를 품는다는 것. 여기에서 바람이 지혜와 상생을 말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한때 대륙에서 동서의 지식과 정신을 두루 고찰했을 최치원으로서는 바로 이 바람의 의미를 꿰고 있었던 것이요, 유불선을 아우르는 현묘한 도를 바람으로 명명한 것은 대단한 철학적 고찰이라 할 것이다.
불체포 특권을 움켜쥔 정치모리배들의 은신처 국회. 사진 대한민국국회
우리 한국인에게는 ‘구분을 두지 않는 통합적 수용’을 앞세운 풍류도의 선비정신이 연연 이어져 왔음인데, 어찌하여 오늘날에는 그러한 선비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지 자탄만 나온다. 선비정신이 무엇인지 들은 바도 없어 보이는 21세기 사대부들은 그저 권력욕과 정쟁에만 눈을 벌겋게 달궈댄다. 그자들로 인해 정파 갈등, 지역 갈등, 나아가 남북 갈등 구조만 고착되고 있고 여기에 일부 사악한 권력 유착 언론사들의 횡포에 한국인이 꿈꾸는 대동 세상은 요원할 뿐이다. 선비를 고립시키고 선비정신을 외면하는 악다구니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것에, 사망 선고받은 사법부를 대신해서 박기서의 정의봉 수천 자루가 앞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 동서고금 역사 신화와 함께 하는 한국인의 인문학『면사포를 쓰는 신화 속 한국 여인』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