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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총(銃)은 울리나

세상을 여는 잡학

by 최정철 Jong Choi

인류 3대 발명품 중 하나로 9세기 무렵 중원 땅에서 발명된 화약은 훗날 전쟁 무기 화포의 시발점이 되었다. 몽골군이 유럽 정벌에 나섰을 때 중원에서 획득한 화포를 앞세워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자 유럽인들도 화포를 공용화기로 채택한다. 화포 이후 유럽인은 총포까지 개발했다. 유럽 최초의 개인화기는 짧은 권총 형태였다. 초기에는 고위직들만 권위를 보이고자 차고 다녔고, 일반 병사들은 16세기가 되어서야 개인화기로 총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그것이 화승총이다.


그렇게 등장한 유럽의 총은 16세기 아메리카 중남미 땅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인도항로를 찾겠다고 엉뚱한 방향을 잡아 아이티에 이르러서는 현지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고 노예로 잡아가는 등 아이티 사람들의 씨를 말리고 있을 때만 해도 중남미 본토의 아즈텍 제국, 마야 제국, 잉카 제국은 번듯하게 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 사후 그가 인도 땅으로 착각한 곳이 새로운 신대륙임을 베스푸치에 의해 공식 확인되자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왕국들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앞을 다투어 신대륙 개척에 나섰다. 이때 그들이 손에 쥔 총이 신대륙 사람들의 활에 비해 월등한 전투력을 발휘한 것이다. 카스티야 왕국의 코르테스는 5백 명이 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아즈텍 제국에 이어 마야 제국을 정복하고, 유럽인들에 의해 두창이 확산하여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해도 1백 5십만 명 인구를 보유하고 있던 잉카 제국을 에스파냐 왕국의 피사로가 고작 1백 7십 명으로 정복했음은 총의 위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몽골군을 맞아 무려 30년 동안 항전하는 와중에 몽골군의 화포 위력을 실감했던 고려는 이후 남해안 일대에 걸핏하면 출현하는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화포 개발에 나섰다. 우왕 때 이르러 최무선이 원거리 타격용 화포를 만들어 내었고, 이 화포는 1백 척의 배에 얹혀 왜선 5백 척을 진포 앞바다에 모조리 수장시키는 세계 최초의 함포 대전을 역사에 남겼다. 조선 세종 때는 쇠 폭탄 비격진천뢰를 발사할 수 있는 완구(碗口)와 다연장로켓 발사 화기인 신기전(神機箭) 등 세계 최강급 원거리 타격 화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때까지 한반도에서는 화포라는 공용화기만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은 한국을 활과 총을 잘 쏘는 민족의 나라로 여긴다. 활이야 동이족 명칭의 근간이 될 정도로 먼 고대부터 한국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니 더 말할 것 없을 것이나, 국제 경기의 사격 종목에서 금메달 우선 후보국으로 분주히 불러 다녀야 하는지라 총이 분명 서양 문물이었음에도 한국이 명사수의 나라가 된 것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것이다.


유럽 상인들이 아시아를 찾기 이전부터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중원의 화포에 영향받아 유치한 수준의 총포를 사용하고 있었다. 16세기 중반 말레이시아를 찾은 포르투갈 상인들은 저네들의 화승총에 말레이족이 쓰고 있던 격발 쉬운 총포 기능을 적용해서 이전보다 휴대와 사용이 간편한 총을 만들어 썼다. 이것이 통상을 개시한 일본으로 들어가면서 일본군의 개인화기가 되었다. 일본은 이것을 철포라고 불렀으나 조선과 중국은 조총이라 불렀고.

히데요시가 전국을 평정한 후 임진년 조선을 침공할 때 선봉에 나섰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총부대를 앞세워 생소한 무기 체계에 놀란 조선 방어군을 혼비백산 무너뜨림으로써 초기부터 승기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조선은 평양성 탈환 등 반격에 나서는 와중에조총 개발에 착수, 훈련도감과 속오군에 조총부대를 갖추게 해서 전쟁에 임하도록 했다. 그때부터 한국인도 본격적으로 총을 쏘게 된 것인데, 왜란 당시부터 조선군의 사격 솜씨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훗날 홍타이지의 후금군과의 요동 일전을 눈앞에 둔 명 정부가 조선 정부에 조총부대를 원군으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해 왔음을 보면 알만하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파병 조선군 1만 3천 명은 명군 10만 명과 함께 랴오닝성 사르후(薩爾滸)라는 곳에서 후금 팔기군과 맞닥뜨렸고, 이때 명군이 평지 전투에 약하다는 것을 파악한 홍타이지는 팔기군으로 명군부터 각개격파 궤멸시킨다. 이에 파병 지휘관 강홍립은 방어진을 친 채 팔기군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광해군의 밀명을 따라 이틀 만에 항복한다. 홍타이지는 보병들을 조선으로 돌려보내면서도 조총군 5천 명은 후금군에 배속시켜 중원의 명군을 무너뜨리는 선봉 부대로 삼았다. 훗날 인조반정에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이괄 군대가 관군에 패해 청나라로 도주하자 홍타이지는 그들 중 조총군만 골라 중원 정복에 공을 세웠던 기존의 조선 조총부대에 합류시키고는 조선 팔기군이라는 특수부대를 따로 편성했다. 이 조선 팔기군은 청나라의 베트남 정벌 때도 선봉에 섰을 뿐 아니라 병자호란 때 저네들의 조국인 조선 침공에의 선봉이 되기도 했으니 왜 조선군이 그토록 총을 잘 쏘아서 그런 일을 겪기까지 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조선에 귀화하여 훈련도감 무관이 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박연)는 조선군 조총 개발에 힘썼다. 사진 KBS1TV 역사스페셜 화면 갈무리
조선 후기의 조선군은 조총을 기본 개인화기로 삼았다. 정조의 화성능행차에서 장용영 대장을 따르는 장용영 군사들은 전원 조총을 메고 있다. 그림 원행을묘정리의궤


한국인의 뛰어난 사격 솜씨 DNA는 조선의 호랑이 사냥꾼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무렵 만주 땅에서 남하한 호랑이들이 한양 궁내에까지 들락거리는 등 호환이 막심해지자 숙종 때 착호포수(捉虎砲手) 부대를 각 군영에 설치해서 호랑이를 잡도록 했다. 훗날 착호포수 출신으로 호랑이 전문 사냥꾼들이 등장했고 이들을 산행포수(山行砲手)라 불렀다. 산행포수는 달려드는 호랑이가 불과 열 걸음 정도 앞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착하게 총을 발사, 호랑이 이마를 정확하게 맞출 정도로 대단한 담력과 사격 솜씨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 그들은 대원군의 차출을 받아 병인양요 전투에 투입되어 ‘원샷원킬’로 큰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훗날 의병과 독립군들에는 산행포수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홍범도이다. 동양평화의 원흉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안중근의 사격술도 돋보이는 솜씨였다. 움직이는 대상을 향해 사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도 한 발 한 발 쏘는 족족 히로부미의 몸통을 꿰뚫은 것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명사수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호랑이 사냥꾼. 사진 한국범보전기금


며칠 전 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에서 젊은 사내가 총을 난사해서 21명의 생명이 스러진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중 19명은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한 어린 초등학생임에 더 분노가 인다. 정권을 위해 전미총기협회(NRA)와 결탁, 총기 사용법을 유지하는 미국에서 걸핏하면 총기 난사 지옥 풍경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의 팔자소관이겠다 싶은데, 일반인 총기 사용을 불허하는 한국에서도 근래 들어 어이없는 총기 사고가 일어나 희한하다 싶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 국민에게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비전 제시는 뒷전에 둔 채, 과도한 사과 행각에 당내 기성 정치인들 퇴진 요구 등 지방선거에 도움 주기는커녕 집단 몰락을 부채질하기만 하는 거대 야당 내 20대 초반 여성 선대위원장의 ‘내부 총질’이 그것이다. 당내 사람들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음이요 상대 여당에는 큰 기쁨이 되고 있다 하니, 한국 정치판의 코믹함이 그 끝을 모를 지경이다.


대선에서의 표를 의식해서 전미총기협회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은 트럼프. 사진 전미총기협회(NRA) 홈페이지 www.nra.org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선덴스와 부치는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은 채 막다른 곳에 몰리지만 수백 명의 군대가 포위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마지막 꿈을 찾아 “호주로 가자!”를 외치고는 권총을 쏘아대며 앞으로 뛰어나간다. 비록 둘은 군대의 집중 사격으로 목숨을 잃으나 그들의 총구에서는 아름다운 희망이 발사되고 있음이다. 홍범도의 총과 안중근의 총은 일본군 격퇴와 동양평화에의 웅혼을 발사하고 있고 선덴스와 부치의 총은 내일에의 희망을 쏘고 있건만, 오늘날 동유럽과 미국 한국에서는 누구를 위하여 총이 울리는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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