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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고대 한국인의 설은 양력 12월 22일 동지(冬至)였다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음력으로 설을 쇠다가 을미개혁 이후 1896년부터 양력설이 등장했다. 그 후 백 년이 흐른 1989년 비로소 음력설을 ‘설날’로 제정하고 음력 섣달그믐부터 1월 2일까지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488년 신라 소지(炤知) 마립간 때 설을 쇠었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보인다. 이때의 설은 음력설이었을까? 7세기에 쓰인 중국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의하면 신라는 매년 정월원단(正月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기록상의 정월은 과연 어떤 달일까? 음력 1월이 아니다. 양력 12월 22일 동지가 든 동짓달이다. 따라서 신라인들의 새해 첫날은 지금의 음력 1월 1일보다 무려 한 달 전에 해당할 양력 동짓날이 되는 것이다. 보름 축제의 나라였던 신라는 음력 8월 보름과 음력 11월 보름을 각각 한가위 대보름, 동지 대보름으로 부르며 한가위 대보름 때는 가배 놀이를 즐겼고 동지 대보름에는 팔관회를 열었다. 팔관회는 일월신을 모시는 국가 의식으로 온 백성이 곳곳에서 잔치를 벌였던 국중대회(國中大會)였다.


동지가 되면 낮과 밤 길이가 같고 이날 이후부터 낮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음기가 가장 센 달인 동짓달 중에 양기가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날에 의해 추위가 밀려나고 따뜻한 날들이 시작되기에 신라인들은 동지를 설날로 삼은 것이다. 부여도 추수 감사제이자 천제인 영고(迎鼓)를 동이족 역법상의 은력(殷曆) 정월인 음력 12월에 치른 것을 보면 고대 한국인들은 음력 1월이 아닌 음력 11월(신라)과 음력 12월(부여)을 새해 출발점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음력 12월보다는 음력 11월, 즉 동짓달의 동지설이 오늘날 천문학적으로나 역법으로 분석할 때 현재의 양음력설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그런 동지설은 이제 양음력설에 묻히고 말았지만, 아직도 동지 풍속에 그 일면이 남아 전해지고 있으니 동지에 팥떡 팥죽 먹어 액을 쫓아내고 있음이 그것이다.


설은 중국도 일본도 각각 음력 1월 1일과 양력 1월 1일로 쇤다. 날짜는 다르더라도 삼국은 비슷한 설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설음식으로 한국은 떡국, 중국은 탕위엔(湯圓), 일본은 오조니(お雑煮)로 삼국 공히 떡이 들어간다. 여기에 정월 대보름을 세시로 즐기는 것 역시 그렇다. 중국의 원소절(元宵節)과 일본의 소정월(小正月)이 저네들 정월 대보름이다. 중국 원소절은 한무제 즉위 날을 원소절로 불렀으나 민간 풍속으로 정착한 것은 당나라 때 일이다. 일본 소정월은 메이지유신 때 되어서야 비로소 공식화되었고. 그에 비해 신라의 대보름 풍속은 최소한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랬던 신라의 동지설과 대보름 팔관회 풍속은 고려 때 음력 역법이 중심을 이루기 시작할 즈음부터 음력설과 음력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정착되면서 신라 동지설은 별도의 동지 풍속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설은 무슨 뜻인가에 대한 말이 분분하다. 대체로 이렇게 정리된다. 설은 ‘낯설다’의 ‘설’을 어원으로 삼되 새해 첫날을 부를 때의 설은 거리감을 두는 낯섦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해, 즉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날을 뜻한다. 우리는 새로움을 눈앞에 두었을 때 ‘설레다’라고 표현한다. 역시 설이 쓰이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동지섣달의 ‘섣’을 ‘설’의 음운변화로 들고 있다. 이 ‘섣’은 ‘섣부르다(익숙하지 않아 솜씨가 어설프다)’에도 들어간다. 또 설은 새해 첫날만 이르는 것은 아니다. 설 전날인 작은 설이란 뜻의 까치설(아지설의 음운변화) 이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까지를 설로 삼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이것은 동짓달 풍속으로도 알 수 있다. 동짓달인 음력 11월 초를 애동지, 음력 11월 중순을 중동지, 음력 11월 하순을 노동지라 부르는 것이 그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따지면 새해 기간이 한 달을 채우게 된다. 애동지에는 팥떡을 먹었고 노동지에는 찹쌀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중동지에는 둘 중에 편한 것을 먹었다. 팥색은 붉기에 벽사(辟邪)의 색이어서 왕궁 건물이나 절 건물에만 신통(神通)의 색으로 칠해졌고 민가에서는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집태우기. 사진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며칠 전이 음력 정월 대보름이었다. 한국인은 추석 대보름에는 둥근 달을 보았고 정월 대보름에는 둥근 달 보는 것에다 불놀이까지 즐겼다. 둥근 달을 바라보는 것이나 불을 지피는 것이나 모두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의 반영으로, 넉넉한 둥근 달은 풍요를 상징하고, 불은 부정과 사악한 액을 태워 없앤다는 상징이다. 여기서 불놀이란 것은 바로 달집태우기다. 달집은 크게 불이 붙고 오래 타면서 볏단과 함께 불타는 대나무가 처녀 애 하나 정도는 너끈히 떨굴 정도로 크게 뻥뻥 터져야 액이 물러가고 풍년도 드는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달집을 지켜보며 마을 구성원들 간 공동체 단결의식을 돋우는 것이다. 뚜렷한 기록은 없으나 달집태우기 풍속은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열도 어디에서든 유사한 형태의 불놀이가 저네들 민속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이야 어차피 4~6세기경 한반도 땅에서 넘어간 도래인(渡來人)들의 프린지 문화이니 달집태우기는 분명 오래된 우리네 세시풍속임을 알 수 있다.


젝셀로이텐 뵈그(Sechseläuten Böögg) 태우기. 사진 Switzerland Zurich Guilds


서양판 달집태우기도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매년 새봄맞이 젝셀로이텐(Sechselauten) 축제를 벌인다. 젝셀로이텐은 ‘여섯 시에 울리는 종소리’라는 뜻을 지닌다. 14세기경 취리히에 있던 프라우뮌스터 성당에서 매일 오후 6시가 되면 그날의 일과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고 한다. 이에 취리히 시민들이 밤낮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 날 오후 6시에 울리는 종소리를 기점으로 삼아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춘분 대신 4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일요일에 시행하지만. 이 축제의 주인공은 바로 스위스식 달집인 뵈그(Böögg)로 크기가 5층 건물 높이 정도의 대형 눈사람 조형물이다. 이 눈사람은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을 상징하고. 축제일인 일요일 오후가 되면 전통의상을 입은 마을 아이들의 가장행렬을 선두로 삼아 역시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 단체들이 뒤를 따르는 긴 행진이 시작된다. 취리히 중심가를 행진한 행렬이 뵈그를 세워놓은 젝셀로이텐 광장에 도착하고, 마침내 6시가 되면 취리히에서 가장 용하다는 그로뮌스터 성당에서 종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신호로 삼은 사람들은 뵈그를 올려놓은 나뭇단에 불을 붙인 후 젝셀로이텐 행진곡에 맞춰 노래 부르면서 불타는 뵈그 주위를 돈다. 그러는 동안 불길은 점점 치솟아 올라 뵈그 몸통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불길이 뵈그를 감싸 안을 즈음부터 뵈그 몸통 내부에 장착해 놓은 폭약들이 기다렸다는 듯 하나둘 터지기 시작한다. 달집태우기 마냥 뵈그에도 징크스가 따른다. 폭약들이 큰소리를 내며 제대로 터져야 하고 불길은 뵈그를 골고루 태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일 위쪽의 뵈그 머리가 최대한 빨리 타서 없어져야 추웠던 겨울이 서둘러 사라지고 그와 함께 싱그러운 새봄이 일찍 시작된다고 믿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불놀이에는 논밭에서 노는 쥐불놀이도 있으나 이것은 땅 기운 돋우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끝내지만, 달집태우기는 마을 공동체의 일 년 액운을 점치고 구성원 간 일심단결을 일깨우는 의미 깊은 풍속인 것으로 다개(多個)로 사는 현대인들에게 널리 권장하고 싶은 우리의 소중한 세시 풍속이라 하겠다.


20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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