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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ug 07. 2022

한국인의 선물 문화

세상을 여는 잡학

생명체 중 인간만이 선물이라는 것을 주고받는다. 상대방에게 굴복을 표할 때, 예의를 갖추어야 할 때, 마음에 품은 생각을 표현할 때 어김없이 선물이 앞에 나서는 것이요, 그 선물로 인하여 목숨 부지가 가능해지고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얻게 된다. 선물의 목적은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로써 주는 자와 받는 자 간의 신뢰가 도타워질 때 화합의 속도나 심도는 배가될 수 있다.      


전세계 모든 여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최고의 선물은 다이아몬드 반지일 것이다. 사진 위키백과


부유층 서양인들은 먼 옛날부터 보석 선물을 좋아하였는지 보석마다 의미를 붙이고 그것들을 월별로 분류하여 선물하였다. 1월에는 석류석(사랑, 성공, 명예 상징), 2월에는 자수정(용맹, 총명, 성실), 3월에는 남옥(젊음, 행복, 평온), 4월에는 금강석(순정, 고귀), 5월에는 에메랄드(무궁, 은혜, 행복), 6월에는 진주(건강, 장수, 부귀), 7월에는 루비(애정, 인내), 8월에는 감람석(부부의 행복, 우정), 9월에는 사파이어(성실, 진실), 10월에는 오팔(안락, 덕망, 정조), 11월에는 황수정(희망, 결백, 우애), 12월에는 청금석(성공, 승리)을 선물하는 식이다. 


마이클 콜레오네로부터 목걸이 선물을 받고 있는 아폴로니아(시모네타 스테파넬리 分). 사진 대부 I 스틸컷


진귀한 보석 외에 평소에도 각각의 의미를 품은 이런저런 선물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남녀 간에 주고받는 시계에는 ‘우리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라거나 ‘당신의 시간을 소유하고 싶다’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렇게 서로 눈에 콩깍지 끼어 사랑 타령 부르다가도 마음이 시들어지면 준비하는 선물이 따로 있다. 송창식 윤형주가 50년 전에 외국 번안곡으로 부른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이다. 영화 <대부 I>에서 마이클 콜레오네가 시칠리섬 처녀에게 일견종정(一見鐘情) 첫눈에 반하여 상견례 때 선물로 바친 목걸이에는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가끔 착각하여 선물을 잘못 골랐다가 낭패 볼 때도 있다. 스카프에는 ‘그대를 영원히 사랑한다’라는 뜻이 있어 선물로 주면 환영받을 것이나, 자칫 생긴 것 비슷하다고 목도리를 선물로 주었다가는 곧바로 귀 쌈 한 대 시원하게 날아든다. 목도리에는 ‘그대와 이별하련다’ 뜻이 들어있기에 그렇다.     


나라마다 선물 문화가 다르다 보니 국제적 선물을 할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는 꽃을 선물할 때 짝수가 아닌 홀수로 선물해야 이쁨받는다. 단 13송이는 피하여야 한다. 예수의 죽음에 13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값비싼 선물을 했다가는 뇌물로 취급받아 고약한 인간으로 내몰린다. 인도에서는 혹여 꽃을 바친다고 재스민을 골랐다가는 일가족이 몽둥이 들고 뛰쳐나온다. 장례식 때 쓰이는 꽃을 준다고 분기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인도나 이슬람권에서는 선물을 주고받을 때 반드시 오른손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더러운 것을 잡거나 용변 본 후 뒤처리할 때 왼손을 쓰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선물로 주면 입이 함지박만 해진다. 미국인에게 꽃을 선물할 때 백합꽃은 피하여야 한다. 백합꽃은 죽음을 의미한다. 브라질인은 전자제품을 으뜸 선물로 여긴다. 은광이 많아 은 공예품이 차고 넘치는 멕시코에서는 은으로 만든 선물은 줘봤자 콧방귀만 돌아온다. 프랑스인은 애정 고백할 때나 빨간 장미를 선물로 바치지, 아무에게나 함부로 빨간 장미를 선물하지 않는다.     

 

병원에 입원한 중국인에게 문병 간다고 과일 배를 사가면, “너나 먹어라!”라는 소리와 함께 병문안 간 자의 머리통을 향해 배가 세차게 날아들 수 있다. 배는 한자로 리(梨)이고 이별 리(離)와 발음이 같다. 그런 배를 건네주면, “당신 이제 갈 때가 되었구랴.”가 될 수 있다. 배 대신 사과를 선물하면 사과가 중국어로 ‘핑궈(平果)’라서 ‘핑안(平安)’을 떠올리기에 환영받는다. 중국인은 ‘좋은 일은 겹으로 일어난다(好事成雙)’라는 뜻으로 짝수를 좋아하여 선물도 짝수로 챙긴다. 중국인에게는 재미있는 생일선물이 있다. 고사성어에 ‘육육대순(六六大順),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다’가 있다. 그래서 평생 가장 중요히 여기는 생일을 66세 생일로 친다. 이날이 되면 0.6근의 고기와 66개의 물만두를 직접 빚어 선물로 바치면 인생 66년 살아온 보람을 느끼며 대단히 흡족해한다. 생일선물로 음식이 오고 감을 볼 수 있는데, 선물의 ‘선(膳)’에 ‘반찬’, ‘고기’, ‘요리’의 뜻이 들어있어 있다. 66세 생일선물이 음식인 것은 옛 중국인의 선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물의 나라가 일본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하여도 그것을 축하하고자 선물을 준다. 비싸지 않은 선물을 준비하되 포장만큼은 정성을 기울인다. 일본인은 숫자 2를 행운 수로 여기기에 선물도 꼭 두 개씩 준다. 해산물 천국답게 건어물을 좋은 선물로 여기고 도자기 제품도 선호한다. 일본인은 꽃 선물을 하지 않는다. 꽃을 불운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여 병문안 갈 때 화분이나 화초를 들고 가면 ‘장기간 불운 기원’을 의미하기에 대를 이어 원수지간 된다.      


정조 때 1777년을 기점으로 향후 100년 동안의 달력을 계산하여 발행된 천세력. 사진 우리역사넷


옛 한국인은 달력 선물을 매우 좋아하였다. 신년 달력으로 각종 세시를 헤아릴 수 있었고 집안 기제도 정할 수 있었다. 이 신년 달력은 지금도 사랑받는 선물이다. 지팡이도 인기 선물이었다. 행보에 걸림돌 없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차(茶) 선물은 고급 선물에 들었다. 차 한 잔으로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라는 뜻의 선물이다. 한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술 사랑 민족이기에 술 선물이 빈번하였다. 한 잔 술로 세상사 고달픔을 잊으라는 선물이었다. 선비 간에는 책이 뜻깊은 선물이었고 임금은 세시마다 신료들에게 세시 선물을 내렸다. 혼례 전에는 비단이나 꽃 자수를 새긴 침구, 바느질 도구 등의 예단이 시댁을 찾았다. 그렇게 보면 우리네 조상들은 의미 깊고 단아하다 싶은 선물 문화를 즐긴 듯하다.     


1966년 삼양설탕 연말연시 선물 판촉 광고. 사진 동아일보 광고지면


1960~1970년대 대표적 집들이 선물이었던 성냥. 사진 인천 동구청


1950년대는 한국 전쟁으로 굶주렸던 참혹함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면서 주로 음식을 선물하였다. 쌀, 밀가루가 주종이었고, 달걀과 고기는 고급 선물이었다. 삶의 숨통이 조금 터지던 1960년대는 설탕, 통조림, 라면, 조미료 등을 으뜸 선물로 쳐주었는데 한 말 크기의 깡통에 담긴 설탕은 최고급 선물이었다. 집들이 갈 때 요즘은 휴지를 많이 선물하나 1960~1970년대는 곽 성냥이 주류를 이루었다. 성냥불이 확 일어나는 것처럼 가세가 번창하라는 뜻을 담은 선물이었다. 1970년대는 식품류에서 기호품이 대세를 이루어 옷, 내의, 화장품, 커피, 주류 등이 각축을 다투었고, 1980년대는 통조림 참치가 인기 선물로 급부상하는가 하면 지갑, 벨트, 넥타이와 같은 고급 잡화제품들도 인기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홍삼, 수삼, 영양보충제와 같이 주로 건강 관련 제품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21세기에 이르면서는 모바일 시대에 맞춰 상품권, 호텔 숙박권, 휴양 시설 이용권 등 비싼 모바일 상품권이 선물의 대세를 이루며 종횡 활약을 펼쳤다. 수년 전 ‘김영란법’ 발동 후부터는 5만 원권 이하의 식품류나 저렴한 모바일 상품권 등으로 전세 역전 현상이 일어나 지금껏 이어지고 있고.


영부인 자리에 오른 권력자에게 '표절논문 철벽 보호'라는 통 큰 선물을 과시하고 있는 국민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사진 각 대학교 홈페이지


오늘날 대한민국의 선물 문화의 일면에는 추한 모습이 배어있다. 일반 국민이야 자신의 처분에 맞추어 선물을 주고받건만 정치판에서는 기괴한 선물 문화가 낯 두껍게 행해지고 있음이다. 예전에는 차떼기 거금이 오가더니, 이제는 권력자 자녀의 취업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그 자녀의 퇴직금으로 수십억 원이 선물로 둔갑하여 오고 가는 식으로 행해진다. 어느 당 대표는 성(性) 상납 선물 받았다는 의혹으로 당권 정지 받고 전국을 방랑하고 있는 초유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엉겁결에 영부인 자리에 앉은 말 많고 탈 많은 여인의 박사 석사 표절학위 논문들에 관해 국민대학교는 문제없음으로, 숙명여자대학교는 쉬쉬하며 구렁이 담 넘기는 식으로 선물 과시를 하고 있다. 권력의 구린내를 좇는 선물이라는 것은 결국 추잡한 뇌물이요 그런 짓 했다가는 언제든 벌 받는다는 것을 과연 이들이 모르는 것일까? 국민 알기를 우습게 여기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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