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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ug 14. 2022

간신(奸臣)과 나합(羅蛤)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

세상을 여는 잡학

무릇 간신은 갖은 감언으로 군주의 눈 귀를 어둡게 만들어 치정을 흐리게 하고 더불어 자신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자를 말한다. 동서고금 간신이 들끓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간신은 언제 어디에서든 존재하면서 뭇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던 빌런이었다.


3천 년 동안 3백여 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한 중원에서는 걸출한 간신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중국인들은 그중에서 열 명의 간신을 추려 말한다. 기원전 7세기 노나라 15대 왕 환공의 장자(長子) 경보는 환공이 아우 장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장공은 또 자기 아들 반에게 왕위를 내주자 끝내 조카 반을 죽이고 권좌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자 거나라로 망명하였다가 자결로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 기원전 3세기 초 진시황제 영정을 모신 승상 이사는 분서갱유의 조종자였다. 그는 자신보다 능력 출중하여 영정의 총애를 받은 한비를 음모로 자결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런 이사보다 한술 더 뜬 자가 환관 조고다. 조고는 영정이 순행 중 객사하자 이사와 함께 입을 맞춰 유언을 조작, 태자 부소와 그의 측근 장수 몽염을 자결시키고 호해를 황제 자리에 앉힌 후 이사마저 참한다. 황제에의 야망을 품었던 조고는 3년 후 호해를 죽이고는 명망가 자영에게 일단 후계를 맡기지만 자영은 그런 조고를 역으로 죽였다.

기원전 2세기 여동생을 동한 순제의 황후로 들이는 등 27년간 절대 권력을 휘두른 양기도 대단한 간신이었다. 동한의 동탁 역시 간신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어린 헌제를 쥐락펴락하며 황제 이상의 권력을 구가하였으나 자신의 양아들 여포에게 주살 당하였다. 당 측천무후가 황제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운 래준신은 남다른 재물욕을 과시한 자다. 그의 금품 요구를 거절하여 목숨 부지한 사람이 남아나지 않았을 정도다.

중국 역사상 가장 악랄한 간신으로 위명을 날린 자가 당 현종 때의 이임보다. 환관, 후궁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현종의 심기를 수시로 파악할 수 있었던 그는 현종의 입맛에 맞는 의견만 상주하는 식으로 총애를 받으면서 17년간 재상으로 재임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송나라가 영토의 절반을 금나라에 빼앗기고 남쪽으로 밀려나 있을 때 명장 악비가 최후의 보루로 나라를 지키고 있었으나 간신 진회가 악비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악비의 죽음으로 송 휘종은 금나라에 끌려가 처형당하였고, 이후 송은 금의 조공국이 되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며 백여 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몽골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명 세종 때의 엄숭은 아첨의 대가로 재상 자리를 20년이나 누리면서 매관매직으로 재물을 축적하였다. 명 멸망 즈음의 희종 때 환관 이진충(훗날 위충현으로 개명)은 동림당이라는 무리를 이끌고 궁중 내 권력 쟁탈에서 승리를 거둔 후 비밀경찰 조직 동창(東廠)의 수장이 되더니 황제 대신 정무를 직관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청 건륭제의 총애를 받으며 부정부패의 원상이 되었던 니오후루 허션도 대단한 간신이었다.


건륭제의 동성애인으로도 추정되는 니오후루 허션(중국명 화신). 사진 baidu.com

     

이들 열 명의 간신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특수 집단이 있다. 한나라 말의 십상시(十常侍)다. 이들 환관은 당시 황제인 영제 곁을 에워싼 채 어느 신료도 함부로 만나지 못하도록 차단하면서 궁궐 정원 서쪽에 서저(西邸)라는 건물까지 지어놓고는 그곳에서 매관매직을 일삼았다. 이 십상시의 맹활약으로 한나라는 붕괴하기 시작하였고 대하드라마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그로써 탄생하고 있다.     


동이의 나라들도 간신이 없었을 리 없다. 고고려는 봉상왕 때의 원항을 대표적 간신으로 두었다. 권력을 앞세워 남의 부녀자와 땅과 가축을 빼앗거나 칭왕(稱王)하여 거짓 조서를 만들어 명을 내리고, 끝내 반역까지 모의하다가 명재상 창조리에게 참수당하였다. 신라에서는 진성여왕의 숙부로 온갖 권력을 휘둘렀던 각간 위홍이 간신 명부에 든다. 진성여왕의 실질적인 남편이기도 한 그는 어느 날 진성여왕과 뜨거운 밤을 보내던 중 복상사로 생을 마감하였다. 위홍의 패행은 신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백제에는 의자왕 때 김유신과 내통한 좌평 임자가 있었다. 그는 김유신의 첩자 조미압에게 포섭당하여 김유신에게 백제 사정을 계속 전하는 한편 의자왕에게는 간언(奸言)만 올려 신라의 백제 침공에 절대적 공을 세웠다.


고려 때는 목종 친모인 천추태후의 연인이 되어 매관매직으로 재산을 축적하면서 정적들을 모함으로 제거한 김치양이 유명하다. 그는 자기 집 공사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키면서도 노임을 주지 않는 등 숱한 패악질을 일삼았다. 훗날 자신과 천추태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목종의 뒤를 잇게 하여 자신의 왕조를 세우려다가 무신 강조에게 참살당하였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요승 신돈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초기에는 토지개혁과 유림 활성화 등 선정을 펼쳤으나 점점 재물욕과 권력욕을 키우는 중에 공민왕의 의심을 받자 모반의 길로 들어섰다가 마침내 처형당하고 말았다. 이인임은 공민왕 때 신돈과 함께 개혁정책을 펴고 무장으로서도 큰 공을 세웠으나 공민왕에 이어 우왕이 즉위하자 자신이 공격하였던 권문세족의 흉내를 내어 고려에 그의 땅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권세를 누렸다.


흥청(興淸)을 만들어 연산군에게 미녀를 바치며 권력을 취한 임숭재. 사진 영화 '간신' 스틸컷


조선 세조 때 천민 출신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 때 공을 세워 정5품 병조 정랑에 오른 후 출세 가도를 달리더니 예종 때는 남이를 반역죄로 밀고하여 일등 공신 지위에까지 올랐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폐비 윤씨 사건을 상주하여 사림파와 훈구파를 일거에 몰락시킨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연산군 때는 유자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임숭재가 있다. 그는 흥청(興淸)을 만들어 전국 미녀들을 연산군에게 바치는 등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광해군 때의 이이첨은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폐비하는 데 앞장섰다. 광해군의 후궁이 된 허균의 딸이 왕손을 낳으면 권력이 허균에게 쏠릴 것을 우려하여 그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가산 몰수에 능지처참 형을 가하기도 하였다. 인조반정의 일등 공신인 김자점은 인조의 후궁 숙원 조씨와 손잡고 소현세자와 그의 빈 강씨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임경업을 모반죄로 죽게 하였다. 친청파였던 그는 효종 즉위 후 탄핵당하자 유배지에서 청 조정에 밀서를 보내 효종의 북벌 계획을 밀고하기도 하였다. 훗날 숙원 조씨가 낳은 숭선군을 앞세워 반정을 도모하다가 능지처참에 멸문지화 당하였다.      

조선 말 나합(羅蛤. 나주조개)으로 불리며 세도를 휘둘렀던 김좌근의 첩 양씨. 사진 위키백과(보정 최정철)


그 외 한명회, 윤원형, 이완용 등도 거론할만하나 철종 때 안동 김문을 이끌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김좌근의 첩이 있어 가히 들여다볼 만하다. 그녀는 나주 기생 출신 양씨로 김좌근이 함께 국정을 논의하였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였던 듯하다. 청탁은 바지보다 치맛자락 붙잡을 때 효과 나는 법, 많은 이들이 돈다발 들고 양씨를 찾아가 방백 수령이 되곤 하였다. 양씨는 때로 빈객들과 간통하면서 저만의 세력을 다졌다. 그런 그녀를 나합(羅閤. 삼정승 급에 붙이는 합하 명칭을 차용함)이라 하였으나 사람들은 나합(羅蛤), 나주 조개로 고쳐 불렀다.      


대통령 관저 공사 관련 비리를 주장하며 국정감사를 예고 발표하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사진 Fact TV News 화면 갈무리



새 정부 들어 대통령 주변에 윤핵, 육상시(六常侍), 민들래, 비선 실세를 자처한다는 제보 속의 어느 법사, 근본을 알 수 없는 묘한 스승 등에 관한 이야기가 연일 세간에 회자하고 있다. 영부인에 관한 의혹의 불씨도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학위 논문 표절 시비, 친모 사기 사건 연루설, 불법 주가 조작설, 대통령실 인적 구성에의 관여설, 사적 관계에 있는 업체에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공사를 발주했다는 의혹 등등 분분하다 보니, 나합의 환생은 아닐까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세간의 불편한 시선과 영부인 관련 의혹을 하루빨리 해소하여야 선진 국가로서의 진정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나, 끝내 외면만 한다면 자칫 국기 붕괴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과거의 간신들을 호명하듯이 미래의 역사가 ‘21세기 간신열전’을 붓끝에 새길 때 과연 누구를 소환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할 것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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