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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ug 20. 2022

해 뜨는 땅 일본(日本)은 백제다

세상을 여는 잡학

2006년 중국 뤄양(洛陽)에서 4행 16자가 음각된 덮개 석과 31행 884자가 음각된 문장으로 구성된 금석문이 발견되었다. 금석문의 주인공은 당에 귀화하여 출세 가도를 달린 백제계 예군으로, 나당연합군에 맞서 웅진성에서 농성하던 의자왕을 당군에 바침으로써 백제를 멸망시킨 예식진의 형 되는 자이다. 이 금석문에 놀라운 표기가 들어있다.

“이때 일본(日本)의 잔여 세력은 부상(扶桑)에 거하여 죽음을 피하여 달아났고, 풍곡(風谷)의 유민은 반도(盤桃)를 의지하여 굳게 저항하였다(于時日本餘噍, 據扶桑而逋誅, 風谷遺甿, 負盤桃而阻固).”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우시일본(于時日本)’이 들어있는 이 문장을 해석하면, “남아있던 ‘일본’ 유민은 목숨을 의탁하고자 왜로 건너갔고, 고고려 유민은 신라에 의지하여 당에 저항하였다.”가 된다. 중원에서는 동쪽에 있는 나라를 일일이 지형적 특징 혹은 방위개념으로 구분하여 불렀다. 고고려를 바람 드센 땅인 풍곡으로, 신라를 복숭아 땅이라는 반도로, 왜를 붉은 해 뜨는 땅이라는 부상으로 불렀기에 금석문에서의 일본은 분명 백제를 칭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재일교포 사학자인 이성시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학술원장과 토오 하루유키 나라 대학교 교수가 이 주장을 한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고 있다.


예군의 묘비 금석문에 보이는 '日本' 명칭. 사진 Baidu.com


‘해 뜨는 곳’이라고 부르는 주체는 해 뜨는 곳을 바라보는 지리적 위치에 있는 제삼자이다. 그렇기에 백제를 두고 중원에서는 백제를 바라보며 ‘해 뜨는 곳’으로 칭한 것이다. 백제계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어 관서 지방에 일으킨 왜 정부와 백제는 오래전부터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런 왜를 백제가 바라보니 그곳 역시 ‘해 뜨는 곳’이 된다. 왜 스스로, “우리는 해 뜨는 곳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왜 땅에서 해 뜨는 곳을 찾으려면 동쪽 태평양 바다의 어느 곳을 뒤적여야 한다. 금석문 해석이나 지리적 위치 여건만 놓고 봐도 ‘해 뜨는 곳’인 일본은 왜가 아니고 백제라는 것이 명백한 것이요, 이에 관해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들도 근거할 의견을 진즉부터 제시한 바 있다. 1907년에 출간된 고명한 역사학자 요시다 토고의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제3부 <국호편>에, “일본 명칭은 원래 한국인들이 일찍부터 사용해 온 것으로 그 이름이 아름다워 우리나라 이름으로 정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호가 되었다.”라는 기술이 들어있다. 요시다 토고뿐 아니라 기무라 마사코토, 호시노 히사시, 반 노부토모 등 또한 ‘일본 명칭의 본향은 한국’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왜가 이전 국호인 왜를 버리고 일본으로 바꿔 표기한 시기는 신라 문무왕 10년인 670년이라고『삼국사기(三國史記)』와 『구당서(舊唐書)』<동이전>이 공통으로 전하고 있으나, 이것은 신라와 중국의 역사서에서만 찾을 수 있고 실체적 흔적을 놓고 따지면 국호를 일본으로 표기한 701년의 다이호오(大寶) 율령 제정 때로 봐야 한다. 그로써 713년 당 서주자사(徐州刺史) 두사선의 묘지문에 비로소 왜를 일본으로 칭하고 있고, 견당사(遣唐使)로 당에 갔다가 귀화 정착한 왜인 정진성이 734년 사망하면서 묘지문에 자신의 근본을 일본으로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군의 금석문에 나온 일본은 백제 멸망 직후 부흥 운동이 한창일 즈음인 660년대 초에 해당하고 있고, 왜가 국호로서 일본을 쓴 것은 701년이 되기에 무려 40년이나 차이가 나고 있음이요, 그런 차이를 뛰어넘어 금석문의 일본을 왜라고 고집부릴 여지가 하등 없게 되는 것이다.      


고고려의 중 도현이 고고려 멸망 직전 왜로 건너가 『일본세기(日本世記)』를 남기면서 ‘일본’ 명칭의 흔적을 남기고 있고 이것이 훗날 720년 완성된 일본서기에는 각주로 삽입되고 있다. 도현이 일본을 거론하며 책을 집필하였을 때가 사이메이(齊明) 여왕 혹은 그녀의 남동생 텐지(天智) 왕이 재위하고 있던 660년 무렵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이미 이때부터 왜가 ‘일본’ 국호를 쓴 것 아닌지 고개 갸웃거릴 수 있다. 그러나 사이메이나 텐지는 학계에서 분명히 공인하고 있는 백제 무왕의 오누이 자식들이다. 그렇기에 ‘백제 분국’으로서의 정체성이 왕성할 때 도현이 표기한 ‘일본’은 왜가 아닌 백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듯이 어떻게 따져 보아도 ‘일본’은 백제의 별칭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고, 백제의 별칭 일본이 왜의 국호로 된 정황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본국인 백제가 망하자 왕족과 귀족들은 대거 왜로 건너가 제2의 조국인 일본 분국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오래전부터 중원에서 지칭한 ‘키가 작고 추하다’ 뜻의 ‘왜’를 버리고 본국의 별칭인 일본을 국호로 쓰자고 당시의 야마토 정부에 제안한다. 그 제안이 훗날 다이호오 율령과 일본서기에 명확하게 반영되면서 왜가 일본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일본 나라현은 백제계 도래인들이 경영하던 곳이었다. 완벽한 백제양식으로 만들어진 나라현 호류사 5층 목탑. 사진 최정철


오늘날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20세기 후반 경제 부국의 자리에 오르자 자만감에 빠져 자신들이 저지른 인류 범죄를 부정 왜곡하는 식으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일본 제국주의 상징의 욱일기를 곳곳에 드러내놓으며 이웃 국가들을 능멸하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와 함께 아시아인들에게 행한 패악질 부정은 물론 한술 더 떠 원폭 받은 것을 앞세워 전쟁 피해국으로 행세하고 있을 정도로 몰염치 행각을 자행하고 있다. 사람도 문화도 일본이라는 명칭도 전승받았듯이 한반도를 젖줄로 삼아 성장하여 오늘에 이른 나라가 일본이다. 과거 변방국으로서 살아남고자 택한 저네들의 생존 전략은 유럽의 르네상스 수혜국들이 취한 문화적 경제적 개발 대신 고대에는 노략질이요 중세에는 침략 전쟁, 근대에 와서는 아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한 것이었다. 즉 강도질로 연명한 셈이다.


2017년 연말 일본을 방문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 대표 홍준표를 만찬 영접하고 있는 에토 세이시로 일본 중의원 의원. 사진 홍준표공식홈페이지


그토록 패악스러웠던 과거 일본의 반인류적 행태는 오늘날 극우 정객들에 의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에토 세이시로 일본 중의원 의원이,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형제국이다. 확실히 말하면 일본이 형님뻘 나라다. 그 이유는 한때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라는 황당한 말을 하였다. 정신 나간 헛소리를 한 것인데, 그런 잣대로 말한다면 ‘한국의 문화적 경제적 수혜국’이었던 20세기 이전 시대의 일본, 고대의 왜는 무엇으로 말할 것인가? 분명 백제를 상전으로 모시던 분국이었고, 고려를 노략질하던 왜구들의 은거지였고, 조선의 문화와 통상 무역을 애걸하다가 끝내 조선을 침략하더니 온 조선 땅을 무참히 헤집고 나서 겨우 도자기나 훔쳐 간 낭인들의 나라였음은 무엇으로 말할 것인가?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한국은 그들에게 아버지뻘 어머니뻘 나라다.


중세의 일본 정부는 강력한 문화전수 채널이었던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였기에 심각한 재정난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은 과거를 가지고 일본은 폄훼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긍심을 갖기에 굳이 겉으로 드러내며 저속하게 상대방을 깔보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 병탄하였을 때 입 바짝 말라가며 노심초사 애쓴 일이 한국인의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한국인의 일상생활에까지 일일이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은 짓이었다. 무력으로는 한국을 제압하였으나 한국인의 저력과 한국 문화의 상대적 위대함, 나아가 한국의 힘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즉 ‘한 수 위인 한국’이 언제 저네들을 다시 옛 시절처럼 주저앉힐지를 두려워하며 ‘자나 깨나 한국 조심’ 식으로 늘 식은땀 흘리며 촉각을 세운 것이다.


아시아인에게 있어서 욱일기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즈(Hakenkreuz)와 같은 전범기이다. 사진 반크 홈페이지


과거의 잣대로 오늘을 재단하는 짓은 부질없는 생트집이다. 한국을 한때나마 힘으로 제압하였다고 틈만 나면 자기네 발아래로 보려는 것은 유아적 발상의 치기 어린 심보요, 아직도 한국에 관한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지라, 이자들이 언제 철들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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