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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ug 27. 2022

표절의 시대

세상을 여는 잡학

인류 최초의 표절 관련 소송이 16세기 초 무렵 르네상스가 활발하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천년 도시국가 베네치아 공화국에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라는 손재주 비상한 청년 화가가 있었다. 그는 당대 거장들의 작품을 똑같이 그려내는 위작으로 유명세를 냈다. 그런 그의 행동에 분연히 들고 일어난 사람이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다. 자신이 만든 36장의 목판화 <그리스도 수난전(受難傳)>을 라이몬디가 자신의 사인 문양까지 똑같이 얹어 동판화로 열심히 찍어 팔아대자 아래턱이 심히 떨린 것이다. 그러나 뒤러는 이 소송에서 패하였다. 당시에는 지적 재산권이니 저작권이니 하는 개념이 없던 시대였는지라 재판부는 ‘작가의 사인 문양만 없으면 문제없음’이라는 판결을 내리고는 손 털고 말았다. 그러자 수많은 무명 화가들이 환호를 지르며 대놓고 유명 작품들을 위작하기 시작하였고, 여기에 원작자들의 항의가 크게 일어나면서 바야흐로 ‘표절’의 문제점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었다.     


알프레히트 뒤러의 '그리스도 수난전' 목판화 중 한 부분. 사진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오늘날에는 지명도 높은 작곡가의 곡 표절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곤 한다. 표절로 의심받으면 법적 소송이 일어나기에 작곡가들은 새 노래를 만들 때마다 신경 바짝 세워서 표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때로는 표절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이 1970년 발표하여 전미 팝 차트 1위에까지 오른 <My Sweet Load>가 대표적 사례로, 4인조 흑인 여성 그룹 더 쉬펀(The Chiffon)이 1963년 발표한 <He’s so fine>과 너무도 비슷하여 소송 끝에 7억 원 정도의 배상금을 주어야 했다. 해리슨은 소송 내내 결단코 <He’s so fine>을 몰랐기에 자신의 곡이 표절 아님을 주장했고 사람들은 해리슨의 과실을 무의식적인 표절, 즉 ‘자기가 지은 곡이 희한하게도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곡과 흡사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해리슨은 배상금 내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시대를 앞서 건넜던 전설의 롹밴드 비틀즈(Beates. 1960년~1974년). 리버풀 애비 로드를 건너는 이 장면은 비틀즈를 상징한다(가장 뒤 조지 해리슨). 사진 bbc.com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유희열의 사례가 이와 유사하다. 그가 <아주 사적인 밤>이라는 곡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을 가져다 썼던 모양으로, 세간의 표절 지적이 일어나자 곧바로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였다.     


안정효 원작 정지영 감독 제작으로 1994년 발표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주인공 병석(최민수 분)은 자신의 천재적 감각을 총동원하여 평생을 걸쳐 완성한 회심의 시나리오를 유망한 영화감독이 되어 있는 어린 시절 함께 영화에 미쳤던 옛친구 명길(독고영재 분)에게 넘겨준다. 주옥같은 대사가 넘쳐나는 걸작의 등장에 비평가와 관객들은 호평 일색이었으나 명길은 병석의 시나리오가 헐리우드 영화들을 부분부분 떼어 내어 모자이크처럼 이어붙인 교묘한 표절 작품이었음을 깨닫는다. 명길로부터 추궁받던 병석은, “나도 나 자신한테 속은 거야. 모든 게 내 창작인 줄 알았어. 나 임병석이가 할리우드 키드한테 속은 거다!”라는 절규를 남기고 좌절 끝에 자살하고 만다. 무의식적 표절의 끝이 얼마나 황망한가를 보여준 영화다.     


헐리우드 영화에 파묻혀 살아온 병석은 자신의 야심작 시나리오가 헐리우드 영화들을 표절한 것이었음에 좌절하고만다. 사진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스틸 컷

 

비슷하면서도 표절 아닌 것들도 있다. 오마주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훌륭한 작품이나 그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유사하게 표현해내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보고 들어서 즐거워지는 아름다운 모방 행위다. 코미디 분야에는 패러디가 있다. 사회 현상 혹은 인물을 희화화하여 사람들로부터 웃음을 유발하는 모방 행위다. 단, 저급하게 표현하거나 본질에서 벗어날 정도로 왜곡하면 명예훼손 등과 같은 법적 문제를 제기당할 수 있다.      


어떤 것을 보거나 듣다 보면 새로운 발상이 떠오를 수 있다. 이를 두고 ‘모티브’를 얻는다고 하는데 이른바 ‘착상’ 혹은 ‘아이디어’다. 모든 창작은 착상에서 시작되다 보니 창작자들은 틈만 나면 책, 영화, 음악, 여행 등 직간접적 경험을 겪으려는 것이요 그것에서 착상을 얻고자 한다. 훌륭한 소재는 여러 가지로 재탕 삼탕 쓰일 수 있다. 같은 소재이지만 전개 방식이 다르면 표절이 아니다. 주제나 개념을 빌릴 수도 있다. 표현 방식만 다르면 무방하다. DMZ 이남의 웬만한 도시들이 ‘평화’라는 공통의 주제로 저마다의 축제를 벌인다.      


가장 빈번하게 표절 시비가 이는 분야가 학문 분야다. 다른 이가 고생하여 정립한 지식을 염치없이 도용하여 자신의 입신양명에 이용하는 짓인데, 예를 들어 정부 요직 후보로 천거된 사람들의 학위 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의혹 지적이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 현실에 국민의 개탄 한숨이 길도록 이어지곤 한다. 학위 논문의 표절 여부는 인용 방식으로 살핀다. 다른 사람의 논문에 실려있는 것과 여섯 개 이상의 단어가 연쇄적으로 일치하면 인용이라 할 수 있음이요, 이것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무단인용, 곧 표절이다. 공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지식이요, 논문이라는 것이 어차피 타인의 지식을 주제와 개념에 맞도록 인용하여 꾸미는 새로운 지식 조합의 하나라 하더라도, 인용하는 지식은 분명 존중해야 하므로 반드시 그 출처를 밝혀주어야 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1970년대 한국 아이들을 사로잡은 애니메이션 영화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 V>는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마징가 제트>의 모방품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중국 방송사들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 모방 제작을 질책하지만, 남 얘기할 것 없다. 한국 방송사들에도 1970년부터 일본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모방하느라 바빴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준 로보트 태권 V는 국민 로봇으로 우뚝 섰고 한국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낯부끄러운 과정을 겪었으나 이제 만국의 찬사를 받고 있음의 근본적 이유는 이것이다. 자기중심이 확고하다는 것. 성장판은 비록 모방으로 다듬었어도 마침내 자기 철학을 세워 주체적 창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진정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의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음이다.      


일본의 마징가Z를 모방하여 탄생, 한국의 국민 로보트로 성장한 '로보트 태권 V'가 2010년 원조국 일본에서 상영되기도 하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타인의 것을 모방하되 자신의 철학과 시의를 가하여 재구성해내는 것이라면 문화예술 분야에서라면 올곧이 생산자가 그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식 분야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인용 참조’는 할 수 있어도 모방으로 지식을 재구성할 수는 없다. 어쩌다 애를 써서 모방하여 정리하였다 하더라도 앞뒤를 비교하여 살펴보면 분명 어색한 것이 보인다. 모방의 어색함을 가리기 위해 남의 지식을 출처 밝히지 않고 인용하는 표절은 그야말로 추한 도둑질이다. 그렇기에 표절에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가혹할 정도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표절 논란이 따르는 김건희 논문에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린 국민대학교 측에 졸업생 2백명이 졸업장 반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CBS 노컷브이(유튜브) 화면 갈무리


우리는 오늘날 어느새인가 표절이 통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느 누가 쓴 학위 논문이 표절률 높은 것으로 판명되어도, 영혼 없이 남의 지식을 닭 모이 쪼듯 톡톡 쪼아내어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복붙’하였어도, 논문 쓴 사람이 혹여 권력 쥔 자라면, 언론이나 집권 여당이나 해당 대학교들은 함구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현재 국내 석박사 학위 논문을 보유한 국회의원 수는 150명이요 그중 31명이 표절 의혹을 받고 있음에도 그들의 금배지는 밝게 빛나고 있기만 하다. 일반인은 자신의 학위 논문이 표절로 판명되면 사과하고 부끄러워하건만 권력자들은 뻔뻔하게 고개 바짝 쳐들고 당당하게 돌아다닌다. 그런 자들이 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설친다. 수치스러운 나라에 사는 우리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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