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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Sep 05. 2022

한류 음식의 새로운 선두 주자, 떡

세상을 바꾸는 잡학

며칠 후면 추석이다. 새해 정월에 대보름달 우러르며 풍년과 발복을 기원했으니 팔월에 이르러 대보름달 우러르며 무사 평안과 수확의 기쁨을 감축 올릴 차례다. 한국인이 추석 한가위에 송편 빚어 먹는 것은 이제 지구촌에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중국인은 저네들 음력 8월 15일 중추절에 납작한 월병을 먹고, 일본인은 양력 8월 15일 오봉절에 새알처럼 동그란 당고를 먹는 등 하나같이 동그란 만월 형태의 달떡을 먹지만 우리네 송편은 분명코 초승달 모양을 취한다. 초승달이 갖는 미래 번영 의미를 떡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가위 명절음식 송편(왼쪽)은 중국의 월병(가운데), 일본의 당고(오른쪽)와 달리 초승달 형태를 띈다. 사진 위키백과 & Yahoo.co.Jp


한국인의 주식은 벼를 비롯하여 몇몇 잡곡을 재료로 하는 밥이 분명하지만, 떡이라는 특식 문화가 유별나게 발달해 있다. 떡은 사철마다 시절 의미를 다지고자 해 먹는 음식이다. 음력 정월의 떡인 설날 떡국은 떡과 함께 평소 접하기 어려운 소고기를 넣어 끓여내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것으로 새해 첫날의 잔치 분위기를 돋운다. 한국인의 노동절로 대개가 음력 7월 15일 머슴들이 주인으로부터 용돈 받아 하루를 즐기는 백중 날만 떠올릴 것이다. 고대부터 한국인은 음력 2월 초하루를 봄 노동절로 삼았으니 이름하여 중화절이다. 이날이 되면 주인과 머슴이 너 나 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데 이때 떡이 등장한다. 한국인은 정월 대보름날에 달집 태우고 달맞이 놀이만 한 것은 아니다. 고르고 고른 볏단을 한 줌 분량의 다발로 만들어 그 안에 봄 되어 농사지을 벼, 보리, 조, 기장, 수수, 콩, 팥 등 곡식을 넣고는 촘촘히 묶어 곡식이 빠져나오지 않게 한다. 이것을 볏가릿대라고 하고 가릿은 곡식을 묶어 만든 더미를 이르는 말이다. 이 볏가릿대를 넉넉하게 만들어서는 기다란 장대에 줄줄이 매달아 높이 세운다. 볏가릿대를 높이 세우는 뜻은 풍년을 기약해주는 천신의 기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쐬고자 함이다. 그렇게 보름을 쐬게 하였다가 음력 2월 초하루 날에 볏가릿대를 걷어 들이고는 그 안에 매달아 두었던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주인과 머슴이 함께 나누어 먹었다. 머슴떡으로 부른 이 떡을 제사음식 음복하듯 공식(共食) 함으로써 상하 계급을 벗어던지고 일심동체를 다지니 훈훈하기 그지없는 미풍양속이었다. 이 볏가릿대는 놀이 문화로까지 발전하였다. 주로 옛 백제권인 충청도 일대에서 많이 행해졌고 백제의 영향권이었던 일본에도 이것이 전해졌음이요 오늘날 일본인도 우리와 똑같은 볏가릿대 놀이를 즐기고 있다. 1987년 강릉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축제에서 볏가릿대 놀이로 대통령상을 받은 충남 서산시는 볏가릿대 놀이를 시 대표 민속놀이로서 적극적으로 보존 전승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날의 볏가릿대 세우기 풍속은 주로 백제권에서 많이 행해진 듯하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짧았던 낮 길이가 밤 길이와 같아지는 춘분날이 되면 떡을 만들어 자기 나이 수대로 먹는다. 이 떡을 나이떡이라고 하는데 이 떡 역시 초승달 형태를 띤다. 청명절과 겹치는 등 완연한 봄이 되는 한식날에는 제철 쑥을 넣어 만든 쑥떡을 해 먹는다. 생명력 강한 쑥은 사람 몸의 혈액 순환에 좋고 체내 노폐물 제거에도 좋다. 씁쓸한 맛으로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기능을 발휘하기도 하니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이로운 식재다. 한여름철 단오가 되면 떡 만들 때 들어가는 나물이라 하여 아예 떡취로도 불리는 수리취를 가루 내어 수리취떡을 해 먹는다. 수리취 대용으로 쑥을 쓰기도 한다. 수리는 ‘높은 신’을 칭하는 우리 옛말이기에 수릿날 수리취떡은 신의 날에 신과 직통하고자 먹는 ‘신떡’인 셈이다. 수리취떡을 수리떡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은 괜찮지만 수레떡으로 변조하여 부르면서 수레바퀴 모양과 같아서 수레떡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삼가야 할 망발이다.      


벽사 주술 의미가 들어있는 팥시루떡. 사진 위키백과


칠석에는 밀전병과 시루떡을 해 먹으며 견우직녀 얘기를 즐긴다. 한가위 추석에 송편 실컷 먹고 나서 가을 수확 마무리하느라 마지막 논일을 끝낼 즈음이면 어느덧 온갖 고사가 행해지는 음력 10월 상달이 된다. 상달은 그야말로 떡 축제 시즌이다. 무를 주재료로 삼는 무시루떡, 붉은색이라 벽사 의미를 갖는 팥시루떡, 늙은 호박으로 만드는 물호박떡, 호박을 넣어 설기떡이나 시루떡 형태로 쪄내는 호박고지떡 등 먹기도 전에 배부를 정도로 차고 넘친다. 오늘날의 시루떡은 팥을 주재료로 삼으나 조선 시대의 요리책 『고조리서(古調理書)』에는 약 스무 가지의 시루떡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의 시루떡 역사는 함경북도 나진만 청동기 유적지에서 패총과 함께 시루가 출토된 고로 무려 청동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늦가을 수확을 마치고 나면 곧 동지가 된다. 옛 한국인은 동지 들어간 달을 한 해의 마지막 시절로 여겼고 동짓날을 새해 초하루로 삼았다. 이날이 되면 새알심 들어간 팥죽과 함께 인절미와 찹쌀떡을 먹는다.  


일찍이 40년 전 주한 외교관 부인들이 그 맛에 일심으로 감탄하였던 빈대떡은 이제 전세계인의 미각을 홀리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철마다 먹는 떡도 유별나지만 하나 더 챙겨야 할 기가 막힌 떡이 있다. 빈대떡이다. 빈대떡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절병(截餠)을 드나 기름에 튀기는 요리법은 빈대떡과 같을 수 있어도 절병은 떡이라기보다는 약과(藥菓)에 가깝다. 중국 콩가루 떡인 알병(餲餠)의 알이 빈대를 뜻하는 갈(蝎)로 변형되어 빈대떡이 되었다는 19세기 말 『명물기략(名物紀略)』의 언급도 일리 있어 보인다. 일본 나라(奈良) 시대 천황가 문서인 『연희식(延喜式)』에도 빈대떡의 흔적이 보인다. 당나라에서 건너간 음식 중에 빈대처럼 타원형 모양의 음식이 있고 그것의 이름을 갈자(蝎子)라 적고 있다. 17세기 말 무렵 사역원(司譯院)에서 편찬한 중국어 사전 『역어유해(譯語類解)』에 병자(餠�)를 들어 빈대떡 명칭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16세기 초의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이미 나와 있는 말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자의 중국식 발음인 빙쟈가 빈자가 되었다가 생긴 모양을 빗대어 빈대로 변형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빈대떡에 담긴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옛날 한양에서는 명절 때마다 장안 부자들이 빈대떡을 잔뜩 만들어 수레에 싣고는 숭례문 밖과 이태원의 빈민들이나 홍제원 주변을 배회하는 행려병자 등을 찾아가 일일이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빈자(貧者)에게 나눠주던 떡이라 하여 ‘빈자떡’으로 불리다가 갈병의 빈대가 얹어져 빈대떡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은 수긍할 만하다 할 것이다. 

전라도에서는 부꾸미, 황해도에서는 막부치, 평안도에서는 녹두지짐이라고 부르는 이 빈대떡은 한국인의 진정한 서민 음식이다. 그것이 이미 40년 전 주한 외교관 부인들이 꼽은 최고의 한국 전통음식에 선정되더니, 이후 한국을 찾는 관광객치고 광장시장 가서 사 먹지 않는 사람 없을 정도로 빈대떡은 이제 세계인의 미각을 홀리고 있다. 그렇게 빈대떡에 맛 들인 외국인은 이제 한국의 다양한 떡에도 눈길 손길을 바삐 주고 있음을 잘 새겨야 할 것이고.      


떡의 기본 속성은 점착(粘着)이다. 그 점착성 높은 음식을 옛 조상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심동체 정신을 다졌다. 아름다운 우리의 지혜이니만큼 그것을 오늘에 되살리는 또 다른 지혜가 절실한 요즘이다. 이웃 간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살며 사회생활에서도 우애를 살피기 어려운 팍팍한 인생을 사는 우리다. 지역 갈등과 정치판 분탕질을 고질병으로 품고 사는 우리다. 과거 어느 정부 때 당시 집권 여당이 시끄러운 적 있었고 모 의원이 새 원내대표 되더니 찹쌀떡을 두루 돌린 적 있었다. 떡의 정신을 알고 있던 듯하여 보기 좋았다. 이참에 정당마다 떡메 하나씩 선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요, 우리네 서민들은 일년내내 시절 떡을 해 먹으며 즐기는 떡 축제를 지역별로 상설화하여 즐기는 것은 어떨까 싶다. 분명 작금의 지지부진한 대한민국 축제에 신선한 활력소도 될 것이요 떡으로 온 국민이 해원 상생으로 하나 되는 아름다운 모습이 따를 것이다. 불고기 김치가 한동안 한류 음식으로 위명을 높였다면 이제 떡 차례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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