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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Sep 20. 2022

한국인의 의식 구조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인은 좌식(坐式)문화로 살아왔다. 하반신 전체를 바닥에 온전히 붙여 앉아야 안정을 느낀다. 언쟁 중인 두 사람이 여차하면 멱살잡이로 들어가겠다 싶을 때 제삼자가 나서서 말린다. “자자, 이러지 말고 일단 앉아서 말해 보세.” 앉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격앙된 감정이 절반 정도는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 어지간한 것은 해결되기 마련이고.     


농경 정착 문화권에서 발달한 온돌은 한국인 좌식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옛 조상들은 마을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의 향약을 준수하는 것으로써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어쩌다 누가 규율을 어기면 벌이 내려졌다. 벌인 즉 면벽좌책(面壁坐責), 벽을 보고 앉아서 반성하는 것이다. 벽을 보고 앉게 함에는 격해진 감정을 다스리게 하는 것 외로 특별한 공간에 들어 격한 심사를 가라앉히는 기능도 있다. 이 인간공학적 공간을 에고노믹스(Egonomics)라 하는데,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인간의 자세나 동작을 쾌적하게 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20세기 초 미국 경제학자 토마스 셸링이 만든 용어다. 중들이 면벽 수행하는 것이 에고노믹스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 에고노믹스를 한국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으로 누린 것이다.      

한국인의 좌식문화에는 불편함도 따른다. 현대문명 시대의 한국 사회에 신을 벗고 실내 바닥에 앉아 식사해야 하는 식당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좌식에 익숙하지 않거나 신체적으로 정좌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런 식당 들어서기가 몹시 꺼려진다. 신을 벗으면 자칫 발 냄새를 풍기게 되어서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도 지적 대상이다.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 강원도는 지역 일대에 식당을 대거 신설 혹은 개량하면서 하나같이 좌식 구조를 고집한 결과 외국 선수들과 관광객들의 분노를 샀다는 뉴스가 심도 있게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서양인은 외부인을 만나 접대하여야 할 때 대부분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제공한다. 반면 한국인은 외식으로 해결한다. 음식 준비에 대한 거부감과 부담감도 이유로 작용할 것이겠으나 외부인을 집안으로 들이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표리(表裏)문화다. 예전 한옥 구조에는 사랑방이 있었기에 손님을 그 공간에 들였으나 현대의 가옥 구조에는 응접실 아니면 안방이 손님맞이 공간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 특히 안방은 부부만의 내밀한 공간이기에 친한 사이 아니면 외부인에게는 금단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양인은 외출하였다가 집에 돌아와도 신을 벗거나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한국인은 집에 돌아오면 신을 벗고 옷을 바꿔입는 식으로 변신하여 집 밖의 ‘표(表)’ 사회로부터 집 안의 ‘리(裏)’ 사회를 구분하고, 그런 ‘리’ 공간에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독특한 한(恨)문화가 있다. 사무치도록 원통스러워하는 정신적 슬픔을 이르는 한은 한국인 특유의 정신 유형으로 장구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농경 정착 민족(Settler)의 내향 풀이로 볼 수 있다. 즉, 응어리진 원(怨)을 혼자서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한이 생겨난 것이다. 옛 노래 <울 밑에 선 봉선화>나 <진달래꽃>의 가사는 원통함과 슬픔의 내향적 해소를 말하는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농경 정착 민족이 아닌 이동 유목민족(Nomad)은 우리와 반대로 외향 풀이로 저네들의 슬픔을 해소한다. 구약성서와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Eye for an eye)’라는 법령이 보인다. 이슬람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 법령을 전통으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인은 백의(白衣)가 아니라 소의(素衣)를 입은 소의민족이다. 사진 내셔널지오그래픽

     

한국인은 간색(間色) 혹은 무색(無色)을 좋아한다. 옛 조상들은 사치를 배제한다는 심성으로 광목옷을 즐겨 입었다. 탈색 등 가공 과정을 거친 백의(白衣)가 아니라 목화에서 추출한 실 그 자체로 지어 만든 질기고 때 잘 타지 않는 허여멀건 소의(素衣)를 입은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백의민족이 아니라 ‘소의민족’이라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는 이것이 그저 ‘흰색(White)’으로 보였기에 ‘백의를 입는 민족’으로 세계에 소개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인데, 씁쓸한 것은 그런 서양인의 관점에 부화뇌동하여 한국인 스스로 백의민족이라고 내세우고 있음이 그것이다. 옛 조상들에게 있어서 원색은 금색(禁色)이었다. 신당, 절, 궁궐 건물에만 원색인 단청(丹靑) 채색을 입힐 수 있었고, 신명을 대행하는 왕이나 신명을 영매하는 무당만이 원색 옷을 입었다. 관복 중에 홍단령 흑단령 청단령 등이 있으나 이것들은 선명한 원색이 아니라 간색에 속한다. 일반 백성은 특별한 때만 원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딸이 시집갈 때는 원색으로 만든 원삼 족두리를 입혔다. 설날이나 돌에 아이들에게는 색동옷을 입혔다. 원색으로 미리 신명을 불러들여 액운을 막고 악귀 병귀를 물리친다는 맞불 작전을 편 것이다.      


궁궐 전각들에는 왕의 신명을 상징하고 신과 상통한다는 의미로 원색 단청을 입혔다. 사진 위키백과


한국인에게는 물신숭배문화(Fetishism)가 강하게 배어있다. 장승, 부처상, 서낭목, 큰 바위 등등 비상한 형체에 신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그 물신과의 합체를 추구하기도 한다. 한국의 석불들은 콧등이 떨어져 나가기 일쑤다. 코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뺑덕어멈이 코 큰 총각 공연히 떡 사준 것 아니듯이 만만찮은 크기의 석불 코를 여인들이 달라붙어 가루 내어 먹음으로써 정령을 전도 받아 사내아이 갖기를 염원한 것이다. 그런 기자(祈子) 습속은 남녀 차별 관점이 아니라 가계 전승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봐야 한다. 비석은 남자들에 의해 수난을 겪었다. 비석에 새겨진 문무인의예지(文武仁義禮智) 같은 좋은 뜻의 글자들이 갉아 없어진 것인데, 서생들이 과거 급제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경주남산입곡석불두(慶州南山笠谷石佛頭)의 코가 닳아 없어져 있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인에게는 평등반발문화가 있다. 동등한 횡적 관계는 불편하게 여겨 사람들 간 서열을 분명히 한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학번 군번 나이 따져서 윗사람이 되면 그때부터 어깨에 힘 넣고 다리 꼬아 앉는다. 예쁜 여자끼리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공부 잘하는 아이끼리도 친할 리 없다. 경쟁자로 여기는 상대와 어쩌다 눈 마주치면 양쪽 눈가에 쌍심지 세워 불길을 올리고 만다. 상하를 분명히 둠으로써 질서와 화평을 중히 여긴 유교문화의 잔재다.     


한국인의 복심(復心)문화는 타민족에는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마음, 정신은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배의 단전에 깃들여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배를 써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곤 한다. 배짱, 배포,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배가 잘 맞는 사람을 심복이라 부르고, 남녀가 통정하는 것을 배를 맞춘다고 한다. 여인이 정조를 잃는 것을 배알 빼앗긴다고 하고, 상대방을 증오할 때 배알 꼬인다고 한다. 거부할 때는 배 튕긴다고 하고, 혹은 “배 째~!”를 부르짖기도 한다. 인내하는 것은 배긴다, 선악 구분할 때는 뱃속이 희거나 검다로 표현한다. 반면에 서양인은 마음, 정신을 가슴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 시대 때부터 사람의 마음은 머리에 있다고 여겼다. 서양인은 가슴에 손을 대고 맹약한다. 인도인 역시 사람의 마음은 머리에 있다고 여긴다. 힌두 신상이나 불상 머리 뒤의 광배(光背)가 그것을 말한다.     


씨름은 뱃심으로 하는 운동이다. 씨름민족의 나라 한국은 오늘날 유도 레슬링 종목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어있다. 사진 위키피디아(김홍도 민속화)


조선 말 고종의 신임을 얻어 특사까지 지냈던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고,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며, 고난에 빠질 때는 영혼 숭배자다.”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한국인의 의식 구조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 안에는 분명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기도 한다. 나쁜 점은 시의에 맞춰 개선하고 좋은 점은 적극적으로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 참 지혜라 할 것이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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