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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Sep 26. 2022

춤추는 아리랑 한국인

세상을 여는 잡학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만 감지하고 새길 수 있는 감정이 ‘한(恨)’이다. 한은 외적 요인으로 느끼는 원통함과 원망스러움, 억울함과 같은 감정과 내적으로는 스스로 뉘우치는 감정을 이른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고 부딪히며 사는 존재이고 보니 결국 한이라는 것은 감정을 갖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서로 잘 어울리다가도 감정 어긋나 불편한 일을 겪기 마련이요 그럴 때 한을 품는 것인데, 그렇지만 한은 속으로 원망하고 서운해 하는 내향적 감정 영역에 머물지 끝내 해코지를 가하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품는 외향적 행동에의 인자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인은 왜 서러운 감정, 한을 품고 삭이며 살까?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마을 단위의 집단 정착 생활을 통해 가족 간 이웃 간 정을 쌓고 살았기에 이방인을 배척하고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에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갖는 특성을 갖는다.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원주민에게도 이방인에게도 매우 고통스럽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에는 화학적 물리적 윤리적 사회적 등 복잡한 함수관계를 따지고 살피는 험난한 과정이 따르기 때문이다. 자고이래 가족이나 마을 구성원으로 새 사람 받아들이는 것을 막중대사로 삼듯이 사람끼리 하나 되는 것이 그처럼 어려운 것이요, 또한 그렇게 어렵사리 맺어진 정을 내려놓고 헤어지게 되면 또 다른 슬픔에 빠진다. 그렇게 한국인은 평생을 ‘받아들이고 헤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한국인의 한을 이루는 주요 성분 중 하나가 아니겠나 싶다.       


유랑 소리꾼의 고난과 슬픔을 아리랑 노래와 춤으로 달래는 있는 유봉과 송화. 사진 영화 서편제 스틸 컷


한국인의 노래는 아리랑이다.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아리랑의 기원은 정확한 때를 알 수 없다. 고려가요 청산별곡 가사에 나오는 ‘얄리 얄리 얄라셩’과의 연계설, 밀양의 ‘아랑 전설’과의 연계설 등이 있고, ‘메아리’를 갖다 붙여 ‘노래’라는 뜻으로, 혹은 ‘아리수’나 ‘어라한’을 끌어들여 ‘크다, 위대하다’ 뜻으로 풀기도 한다. 아무 뜻 없는 후렴구 정도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1850년 무렵 이신규가 천주교 신자로 붙잡혀 50년 전 처형당한 친부 이승훈의 유고를 모아 펴낸 『만천유고(蔓川遺稿)』에 <농부사(農夫詞)>가 실려 있다. 가사 중에 ‘아로롱 아로롱 어희야(啞魯聾 啞魯聾 於戱也)’라는 후렴구가 있고 혹자는 이것에서 아리랑 어원의 맥을 찾기도 하나, 책 자체가 오류투성이기에 그 관계성을 말함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리랑의 본격적인 등장은 흥선대원군의 명에 의해 1965년부터 1872년까지 시행된 경복궁 재건 공사 때로 봐야 한다. 이 공사에 필요한 인력은 전국 팔도에서 차출하여 충당하였고 대략 6개월을 기준으로 근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공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계약 기한이 늘어남에 인부들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심심찮게 방화 사건도 일어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흥선대원군이 인부들을 달래고자 묘안을 낸 것이 조선판 <전국노래자랑>이다. 인부들이 참여하는 팔도 민요경연대회를 연 것인데, 이때 우승한 노래가 경상북도 문경 출신 인부들이 부른 <문경새재아리랑>이다. 이 노래는 곧바로 장안의 히트곡이 되었다. 급기야 계약 마친 인부들이 각자의 고향에 돌아가는 족족 고향 동무들과 즐겨 부르다 보니 어느새 전국적인 인기곡이 되기에 이른다. 1886년부터 조선과 인연을 맺은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1901년 자신이 출판한 영문 월간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에 문경새재아리랑 가사와 악보를 채집하여 실었다. 이것이 최초의 아리랑 기록이다. 이후 나운규가 1926년 제작 발표한 영화 <아리랑>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아리랑 노래가 민족의 노래로 우뚝 서면서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전승하고 있던 아리랑 노래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운규 제작 주연의 영화 아리랑이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할 때의 포스터. 사진 arirang.iha.go.kr


2012년 아리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직후 문경시에서는 아리랑 가사 1만 개를 수집하여 편찬하기도 하였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아리랑은 대략 60종이요 곡목 수로는 3천 6백 곡 정도라고 한다. 대표적 아리랑을 보면 문경새재아리랑을 비롯하여 경기아리랑, 진도아리랑, 영천아리랑, 밀양아리랑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비롯하여 웬만한 아리랑 노래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후렴구 ‘아리랑’과 ‘쓰리랑’에 눈길을 줄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러시아 이르쿠츠크 땅에서 의미심장한 포럼이 개최되었다. ‘한·러 유라시아 문화 포럼’이다. 이 포럼의 화두 중 하나는 ‘아리랑’이었고, 그 주인공은 ‘에벤키 족(族)’이었다. 에벤키 족은 생김새가 한국인과 판박이로 같고 유전자 구조 역시 한국인의 그것과 70%가 일치함으로써 우리와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민족이다. 이들은 현재 인구수 약 7만 명에 불과하나 사는 영역 분포를 보면 러시아 중앙 북부의 시베리아로부터 동쪽 끝 오호츠크 해에 이르며 몽골 북부와 중국 북동부 지역까지 아우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들의 영역 안에는 한국인을 포함하는 몽골로이드의 시원(始原)인 바이칼 호가 들어있기도 하여 어느 모로 보아도 한국인과 에벤키 족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예벤키 족의 언어에 아리랑과 쓰리랑이 있음이요 포럼에서는 이들의 아리랑 쓰리랑 말을 놓고 한국 아리랑 쓰리랑의 기원을 찾고 있던 것이었다. 

이 포럼에서 항공대학교 우실하 교수는 에벤키 족의 아리랑 쓰리랑에 관하여, “에벤키 족의 아리랑(Alirang)은 ‘맞이하다’ 뜻을, 쓰리랑(Serereng)은 ‘느껴서 알다’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느껴서 알다’ 뜻의 쓰리랑은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라는 의미로 북방 샤머니즘의 장례 의식에서 쓰였을 것으로도 추정된다.”라는 의견을 발표하였다. 이 의견을 놓고 이후 학계에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는 만큼, 우 교수의 진단은 누가 보아도 높은 개연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과 유사한 유전자형에 동일 외모를 갖춘 에벤키 족의 ‘아리랑 쓰리랑’은, 한국인의 ‘받아들이고 보내는 고통과 슬픔의 한’과 직통하게 된다.


에벤키(Evenks)족 젊은이들. 사진 etniasdelmundo.com


이러한 결론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있다. 한국인의 춤이다. 우리 전통춤에는 공통으로 들어가는 기본 춤사위가 있다. 양팔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려 왼쪽 오른쪽 순서대로 안으로 꺾고 밖으로 펴곤 하는 동작이 그것이다. 이 춤사위는 ‘받아들이고 보내는’ 동작이요 ‘한을 맺고 푸는’ 동작으로, 거의 모든 한국 춤에 들어있다. 서양의 춤은 발재간 손재간 춤이다. 중국 춤은 의미보다는 저네들 최고의 미학적 관점인 ‘표량(漂亮. 예쁨)’을 받들어 그저 예쁜 몸짓에 머문다. 일본 춤은 모든 양식에 정수(精髓)만 추구하는 저네들의 습성 상 지나치게 간결하여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서남아시아의 춤은 인간적 관념보다는 신 찬양에 더 집중하기에 차라리 종교의식 춤으로 봐야 한다.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원주민의 춤은 사냥에의 포획을 기원하는 주술성이 강렬하다. 그에 반해 한국의 춤은 이처럼 고매한 철학을 품고 있음이요, 한국인은 아리랑 노래와 더불어 그런 춤으로 한을 맺고 풀며 살아온 것이다.      


봉산탈춤의 깨끼춤사위 장면. 사진 국립극장


달포 전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예인들을 초청하여 축제로 펼친 국악 공연 행사가 국악원 우면당에서 개최되었다. 이 축제를 주최한 모 국악재단의 이사장 되는 분의 개막 축사에 아리랑에 대한 언급이 상당 부분 할애되고 있었으나 아리랑의 의미에 관한 진맥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든 간에 이 시대의 여론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전통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면 한국인 본연의 뿌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요, 자칫 오류를 전파하여 뭇사람들이 잘못 알게 하는 일까지 일어나곤 하니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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