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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엽전과 비트코인

세상을 여는 잡학

조선 시대 사람들은 돈타령을 불렀다. 가사를 보면 여러 종류의 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개성 장사치 발 구린 돈이 나선다. 개성상인들은 장사 길 돌아다닐 때 도적들 무서워 돈을 버선발 밑에 깔고 다녔기에 돈에서 구린 냄새가 난다고 했다. 고생고생하면서 번 돈이라는 뜻이다. 평안감사 마다리 돈이 뒤를 잇는다. 고위 관료 중 누구 하나 탐내지 않는 사람 없었을 정도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지방 관찰사가 바로 평안도 감사였다. 감사가 되어 누리는 호사 중에는 무엇보다도 돈맛을 실컷 봤다는 것인데 감사로 부임하자마자 이자들이 벌인 짓 중 하나가 지역 토호들 불러놓고 벼슬자리를 주면서 벼슬 값을 내놓으라고 윽박하는 것이었다. 그 벼슬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이에 토호들은 “벼슬일랑은 사양하겠으니 대신 그저 정성으로 여기시고 이 돈을 받으시라.” 하며 어느 정도의 돈을 바쳤다. 벼슬을 마다하면서 내는 돈이라고 하여 마다리 돈, 그렇게 부른 것이다. 억울하게 뜯기는 돈의 대명사다. 청계천 꼭지딴 돈도 있다. 예부터 한양 청계천에는 거지들이 몰려 살았고 그 우두머리를 꼭지딴이라고 불렀다. 이 꼭지딴이 거지들로부터 어렵게 어렵게 긁어모은 돈이라 하여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천금 같은 돈이라는 뜻이다. 그다음, 신창청루(新倉靑樓) 해어화채가 있다. 신창청루는 기생이 술을 치는 술집을 말하고 기생은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 불렀기 때문에 해어화채는 몸 팔아 번 돈이다. 눈물 나는 돈이 아닐 수 없다. 홍제원 주모 넉살 돈은 그래도 훈훈하다. 홍제원은 중국으로 가는 조선 사신이나 조선으로 들어오는 중국 사신이 머물던 공관이었고 그 일대에 사람들이 빈번하게 오고 가기에 돈이 제법 돌았을 것이다. 그 덕에 주막이 많이 생겼고 수입 짭짤했을 주모들이 넉살부릴 여유쯤이야 넉넉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주모들의 넉살에 손님들이 웃음 돈을 얹어 주곤 했던 것이니 오늘날의 팁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교사주문의 새까만 돈이 있다. 교사동은 지금의 인사동이 되는 곳으로 경복궁 창덕궁을 지척에 둔 곳이니만큼 세도가들이 몰려들어 대궐 같은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이 집들이 예사 집이 아닌 것이 대문마다 나라에서 금하는 붉은색을 함부로 칠해놓았기에 붉은 문, 주문(朱門)이었다. 그 문을 통해 뇌물이 들어갔기에 교사동 주문의 새까만 돈이 된 것이다.     

옛 선비들은 현금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 때는 쇠젓가락으로 엽전 꾸러미를 집어서 주고받았다. 돈을 더럽게 여긴 것이라기보다는 재물욕을 멀리하겠다는 그런 의지 표현으로 봐야 한다. 선비들은 또 주고받는 돈의 내력을 소급하여 따지기까지 했다. 이 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돈이냐, 그렇게 따져서 돈의 근본이 악한 곳에서 나왔거나 악한 사연으로 만들어진 돈이라면 일절 거들떠보지 않았다. 굳이 받아야 할 때는 그 돈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썼다. 돈을 세탁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국의 선비들은 재물에 대한 치열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돈은 곧 재물의 집약체다. 옛말에 이르기를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災)가 된다고 했다. 재물이 넘지 말아야 할 고개를 넘으면 즉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그 재물은 재앙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제인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가 바로 이 재(嶺)인 것이다.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에까지 치고 들어가서 영세상인 생계를 위협하는 짓, 지나친 덤핑으로 정당하게 장사하는 사람들을 어렵게 만들기, 정경유착으로 이권을 노리기 등, 재물 갖고 폐단 일으키는 인간들 치고 성공한 자 드물다. 한국의 재벌들을 보면 그들의 결말에 좋은 일 하나 따르지 않는다는 것, 쉽게 볼 수 있다. 걸핏하면 재판받고 징역이나 사는 모습들이란.     

조선 시대 정조 임금 때 여인의 몸으로 제주도에서 거상이 된 김만덕은 제주도에 큰 흉년이 들자 자신의 곳간 문을 열어서 제주도 사람들을 훌륭히 구휼해 내었다. 김만덕은 재물로 저 혼자만의 영화를 누리려고 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 훌륭한 재물관은 마침내 정조 임금의 부름까지 받아 치하를 받기에 이른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 들어주마.”라는 임금의 물음에 천한 기생 출신으로 역시 천한 장사꾼 신분을 지우고 평민 첩이라도 원하는가 했더니 웬걸, 김만덕은 그저 금강산 구경이 소원이라고만 했다. 경주 부자 최준의 얘기도 널리 알려있다. 소작료를 저렴하게 책정함으로써 소작인들의 생업을 보장해 주었고, 사방 백 리 이내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했던 사람이다. 김만덕과 최준 같은 분들의 숭고한 행위는 오늘을 사는 경제인들에게 반드시 투영되어야 할 한국인의 ‘재상(財像)’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유발 노아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Sapiens)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에서 화폐에 대한 정의를 ‘협력’으로 내리고 있다. 시장은 물물교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활성화하는 것이 곧 화폐이고 그 화폐를 통해 비로소 사람들 간의 협력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화폐는 허상이다. 인류는 그 허상에 얽매여 산다. 물물교환에는 엄청난 불편함이 따른다. 그것을 일소할 수 있는 것이 화폐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어느 학자가 적그리스도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면서 그 상징으로 악마의 숫자 666이 미래의 화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숫자 666을 이용한 암호 코드가 바코드 형태로 사람 몸에 새겨지기에 결국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40년 전 당시의 사람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며 웃어넘겼으나 이것이 오늘날 실제 일어나고 있다. 바로 666이 새겨진 바코드는 아니지만, 암호화된 화폐 정보가 담긴 베리칩(Verichip)을 사람 손에 이식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는 다르지만 같은 암호화폐로서 다양한 가상화폐들이 대거 출현했다. 최근 가격이 6천여만 원까지 오른 비트코인(Bitcoin)을 비롯하여 이더리움, 컴파운드 등 물경 140여 개의 암호화폐가 등장했다. 전 세계 26억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도 최근 글로벌 거래에서 단일 통화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자체 암호화폐 리브라(Libra)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암호화폐는 일상의 거래 수단이 되면서도 마치 주식처럼 투자 대상으로까지 이미 그 위상이 형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왜 이들 암호화폐에 열광할까? 실질 화폐로 은행을 통해 거래하면 수수료가 발생한다. 암호화폐는 자체적 거래가 가능한 기능을 장착할 수 있기에 은행이라는 채널이 필요 없다. 즉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생긴다. 분실이나 도둑맞을 걱정도 사라진다. 그런저런 장점들이 있다 보니 암호화폐가 대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가 되면 장차 은행들은 줄줄이 문 닫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암호화폐에는 폐단이 따르기도 한다. 근래 마약이나 성 착취물을 다루는 다크웹(Dark Web) 등에서 경찰 추적을 피하려고 암호화폐로 거래한 것이 사회 문제화된 적 있다. 다크웹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암호화폐가 악용될 것이기에 이점은 매우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미래 시대에는 분명 암호화폐가 실물화폐를 대체하는 거래 도구가 될 것이다.     

돈은 돌고 돈다, 하여 돈이다, 라는 말도 있다. 돈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살면서 돈에 마음 약해지는 일, 숱하게 겪는다. 돈을 너무 밝히면 인성이 어두워지고 그렇다고 돈을 멀리하면 먹고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진다. 그저 자신의 기량에 맞는 일만 하고 또 그에 맞는 정당한 대가의 돈을 손에 쥐며 사는 것. 그것이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겠다 싶다.                                                                      

20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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