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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최고수 채삼꾼 ‘어인마니’ 호칭 고(考)

세상을 여는 잡학

최근 태국에서 한 중년 여인과 어부가 잇달아 수억 원 상당의 용연향(龍涎香)을 주워 횡재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용연향은 수컷 향유고래에 잡아먹힌 대왕오징어가 일부 소화되지 않은 채 담즙과 함께 토해지거나 대변에 섞여 배설된 것인데, 고래 몸 밖으로 유출된 것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대단히 좋은 향을 낸다고 한다. 그러기에 예부터 고급 향료로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진귀한 물건이다.     

용연향이 주로 몰디브 필리핀 태국 영국 바다에서 발견되는 바다의 로또라면 한국인에게는 땅의 로또가 있다. 바로 산삼이다. 용연향이야 어쩌다 운 터진 사람에게 눈에 띄는 것이지만 산삼은 전문 채삼꾼들에 의해 발견된다. 채삼꾼의 원 호칭은 심마니이고. 사전에는 심마니를 은어라고 정의한다. 그런 사전은 미련 두지 말고 단박에 버려야 한다. 순우리말을 두고 은어라니.     

심마니 호칭의 어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심은 삼의 다른 말이고 마니는 삼을 캐는 사람을 뜻한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찾았을 때, “심 봤다!”를 크게 외치는 것은 동료들에게 산삼을 찾았다는 알림이요, 자칫 사람 눈에 띄게 된 산삼이 저 살겠다고 냅다 도망치려는 것을 버럭 소리 질러 놀라게 하여 꼼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한다.     

심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다. 심은 아무 산삼에나 있는 것이 아니고 잎과 뿌리가 봉황과 같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봉삼(鳳蔘)으로 불리는 산삼에만 있다 한다. 봉삼의 뿌리에는 웬만하여서는 이빨로 쉽게 끊지 못할 정도로 철심처럼 질긴 것이 있다. 그것이 심이라는 것이다. 사물놀이 원년 멤버인 이광수가 25년 전 충남 어느 곳 어느 산에서 직접 캤다는 봉삼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때 뿌리 하나를 잘라내어 심을 뽑아 깨무는데 과연 보통 질긴 것이 아니었다.     

봉삼은 산삼 중의 산삼으로 원 호칭은 백선(白鮮)이다. 그런 봉삼이 숨도 쉬지 않고 쫓아가 절 올려야 할 한 끗발 더 높은 형님뻘 봉삼이 따로 있으니 천종봉삼(天種鳳蔘)이 그 주인공이다. 일반 봉삼은 인위적으로 배양할 수도 있으나 천종봉삼은 자연 속에서 숨어 자란다. 일반 봉삼은 한두 번 꺾이면 더는 자라지 않으나 천종봉삼은 열댓 번을 꺾어도 수년 후 다시 몸을 내어 일어선다. 그래서 천종봉삼을 두고 지구상 최고 명약이라 하는 것이다.     

수년 전 어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농심마니 모임. 심마니가 산삼을 캐는 사람이라면 농심마니는 산삼을 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모임은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을 심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었다. 회장을 맡고 있던 분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산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는 박인식 시인이었고. 이분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월간지 『술』을 창간하고자 편집과 취재를 담당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는 언제 즈음 창간한다는 것을 주변에 당당히 공표하고는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내 약속한 때가 되어 창간호가 나왔다. 그러나 표지는 그럴싸했으나 내지는 모두 백지였다. 기사가 일절 실리지 않은 것이다. 이분이나 함께 머리를 맞댄 사람들이나 편집 아이디어 회의하자고 모이기만 하면 아침이고 대낮이고 간에 술부터 퍼마셨으니 언제 취재하고 무엇으로 편집했을 것인가? 결국 창간호는 그들이 평소 단골 삼아 들렀던 장안 술집들에만 돌려져 술값 외상장부로 요긴하게 쓰였고, 이후 더는 잡지가 출간되지 않았으니 창간호가 곧 폐간호가 되었다는 기막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월간지까지 내려 했을 정도로 술을 사랑한 박인식 시인은 원래 산악인이다. 산을 그만큼 좋아했기에 농심마니 모임을 만들고는 산삼을 산에 심는 운동을 그동안 펼쳐 온 것이다.     

이 모임에 참석한 그 날 회원들 간에 주고받던 말 중에 묘한 호칭을 하나 들을 수 있었다. ‘어인마니’라는 호칭이다. 능숙한 최고수 채삼꾼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최고’의 의미를 물고 들어가면 ‘어인’은 높은 사람을 뜻하는 옛 우리말 아리 욱리 어루에서 나온 호칭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서(周書)』 <이역전(異域傳)> 백제조(百濟條)에, “(백제)왕의 성은 부여 씨이고 이름은 어라하(於羅瑕)라 한다. (중략) 한자어로 왕과 같다. 처는 어륙(於陸)이라 하는데 한자로 비(妃)가 된다.”라고 했다. 어라는 최고 지위의 사람을 뜻하는 호칭이요, 옛 부여에서 다섯 부족을 칭하는 단위가 가(加)였으니 하는 곧 가다. 따라서 어라하는 부족장의 의미에서 시작된 왕 호칭이요 그렇다면 아리 욱리 어루와 동의어인 어라나 어륙에서 어인이 나온 것이 분명하다. 어인의 현대식 호칭이 곧 어른이다. 어른의 동사형이자 성인들만 행하는 성행위가 바로 ‘어르다’이다. 그래서 혼례를 치러 부인과 ‘얼러서’ 후손을 거느리고 있는 나이 든 사람을 두고 젊은이들이 어른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즉 이래저래 어인의 큰 의미는 ‘높은 지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마니’를 들여다보자. 마니 역시 높은 지위의 사람을 뜻한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은 옛 마한의 제단이요 수도였다.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산이라 하여 마니가 붙은 것이다. 흉노의 일족이 한반도로 건너와 건국한 나라 마한은 곧 마루한으로, 높고 강한 나라의 뜻을 갖는다. 역시 흉노 일족이 세운 계림에서는 17대 내물 임금부터 21대 소지 임금까지 마립간(麻立干)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마립간은 마루한의 계림식 이두 표기이고. 마루한은 마루치로도 부를 수 있다. 한은 흉노족 언어이고 치는 고구려 중심 민족이었던 맥족의 언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루치가 연개소문이다. 그는 태왕을 모시고 다섯 부족을 다스린 맥(막)족의 우두머리, 막리지(莫離支)였다. 한자 막리지는 마루치의 고구려식 이두 표기다. 나라를 칭하면서 왕을 칭하기도 했던 마루한과 마루치, 마루나 마니는 결국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인마니는 옛 시점으로 볼 때 높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이 중첩으로 표기된 것이기에 곧 황제급 호칭이라 할 것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고 있자면 마님이라는 호칭이 툭하면 들린다. 원래 임금 호칭인 마루 마니가 조선 시대 즈음하여서는 고위 관료에나 붙이는 마님 호칭으로 격하된 것이다. 또 조선의 왕비들은 ‘마눌’ 혹은 ‘마눌님’으로 불렸다. 그런 마님과 마눌님이 오늘날 부인을 낮춰 부르는 ‘마누라’가 되어 있다.     

어인은 단순한 어른 호칭으로 변해 있고, 마니와 마눌 또한 그저 삼을 캐는 사람이나 마누라로만 통용되고 있으며 마루 또한 대청마루 들마루 혹은 기껏해야 산마루 정도에만 살아남았으니, 세월이야 장구하게 흘렀다손 치더라도 호칭 의미들의 쇠락이 어찌 이토록 심한가 싶다.

                                                                                                              

20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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