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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Oct 10. 2022

보검이 사라진 시대

세상을 여는 잡학



왼쪽부터 쯔바이핸더(Zweihander), 플랑베르쥬(Flamberge), 클레이모어(Claymore). 사진 위키백과, 더 위키


고대 유럽인들은 팔뚝보다 짧은 칼로 로마제국을 세웠으나 중세에 이르러서는 장검으로 전쟁에 임하였다. 특히 기사들은 점차 발달하는 갑옷 체계에 대응하고자 대형 칼을 만들어 둔기처럼 썼다. 독일의 란트크네히트하는 전문 용병 집단은 쯔바이핸더라는 장검을 사용하였는데 그 길이가 당시 유럽인의 평균 키보다 더 큰 1.8m였다. 전투에 나선 이 용병 집단이 쯔바이핸더를 휘두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들면 적군은 칼의 크기에 위압감부터 느껴야 했다. 돌진해 오는 기마병을 막던 촘촘한 장창 전열도 이 쯔바이핸더가 한번 휘둘러지면 쉽게 부러져 나갔다. 장창 부대가 무너지면 선두 용병들을 따르던 후위군들이 곧바로 밀고 쳐들어가는 식으로 승리를 취하곤 하였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용사들의 칼 클레이모어는 2m나 되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쓰였던 플랑베르쥬는 1.5m 길이였다. 플랑베르쥬는 실전용보다는 의식용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유럽의 칼들은 점차 화승총이 등장하면서 상징적 존재로 전락하다가 15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우르반 대포의 등장으로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오스만투르크의 메흐메트 2세 술탄은 트란실바니아 브라소브 지역의 화포장인 우르반이 제작한 거포로 철옹성 테오도시우스 성을 격파, 천 년 역사의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유럽을 화포의 시대로 들어서게 만든 것이다. 이후 칼은 권위를 나타낼 때 장식으로 쓰였고 의전이나 지휘용 정도로 기능이 축소되었다. 유럽인들이 남긴 대표적 보검 명검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로마제국 카이사르의 크로케아 모르스,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 훈 정복왕 아틸라의 칼, 신성로마제국 초대 황제 샤를마뉴의 주와이외즈, 보헤미아 공작 볼레슬라우스 1세의 슈체르비에스, 에스파냐 영웅 엘시드의 티조나와 콜라다, 영국 에드워드 왕의 커타나 등이다.


월왕구천검(越王勾踐劍). 사진 baidu.com


외날 환도가 주를 이루던 중국에서는 간장이라는 유명한 칼 장인이 있었다. 그는 오왕 합려로부터 보검을 만들어 바치라는 명을 받고 칼 제작에 임하였으나 매번 실패를 거듭하였다. 아내 막야가, “철이 제대로 녹지 않아 그렇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남편을 위하여 고로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철이 제대로 녹았고 마침내 간장은 보검 두 자루를 만들 수 있었다. 각각 음양을 상징하여 양검은 간장(干將)으로, 음검은 막야(莫耶)라 하였다. 간장은 아내를 기리기 위하여 간장 검만 합려에게 바치고 막야 검은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였다. 이것을 안 합려는 간장을 불러들여 간장 칼로 그를 죽이고 말았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보검 간장과 막야는 그와 같은 비운을 품은 칼이었다. 이 두 보검 외에 중국에는 사대 보검이 따로 있다. 담로검(湛卢劍), 월왕구천검(越王勾踐劍), 진왕녹노검(秦王轆轤劍), 구룡보검(九龍寶劍)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담로검은 월나라 사람 구야자가 사위인 간장과 함께 월 왕 윤상의 명을 받아 담로산에서 만들었다 하여 담로검으로 불렸다. 이 칼은 월 왕 구천을 꺾은 오 왕 합려의 것이 되었다가 훗날 남송의 명장 악비가 소유하였으나 그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중국 일급 보물로 ‘천하제일 검’으로 불리는 월왕구천검은 지금까지도 녹슬지 않은 채 칼끝이 예리하게 보존되어 있다. 진왕녹노검은 자객 형가가 이 칼로 진시황을 암살하려 할 때 썼던 칼이다. 암살은 실패하였고 진시황은 그의 칼을 빼앗아 형가를 직접 참수하였다. 진시황릉박물관에 보관 중인 이 칼은 여전히 날이 날카롭다고 한다. 구룡보검은 청 건륭황제의 순장 보물이었다. 길이가 약 150cm인 이 칼에는 금룡 아홉 마리가 새겨져 있기에 구룡보검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것을 비루한 일자무식 건달 출신으로 청말 군벌 자리에까지 오른 손전영이 유릉(裕陵) 지하 궁전을 도굴할 때 수중에 넣었는데 훗날 국민당 군대에 쫓기는 중에 유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그는 목숨 부지를 위하여 국민당 군 장성 대립에게 뇌물로 바쳤고 1946년 대립이 이것을 지닌 채 남경을 향하다가 그가 타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 폭발하면서 유실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본 칼은 강하고 예리하기로 유명하다. 그들이 임진왜란 초기 승승장구하였던 것은 조총의 위력이 아니라 조선 검보다 월등한 왜검 때문이었다. 대륙 남쪽 내지까지 약탈하였던 왜구의 칼에 명군의 칼은 번번이 부러져 나갔다. 그런 왜검 중에서도 명검으로 치는 칼이 마사무네 검이다. 마사무네 검은 14세기 가마쿠라 막부 말기 사람 마사무네가 만든 칼들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그가 만든 칼들은 무적의 칼이었다. 16세기 초의 무라마사 역시 최고의 칼 장인으로 마사무네와 동급으로 여겨진다. 마사무네의 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철저히 탄압받기도 하였다. 이 칼로 이에야스의 조부 기요야스가 암살당하였고, 아버지 히로타다는 큰 부상을 얻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장남 노부야스가 자결할 때 카이샤쿠(할복한 자의 고통을 없애 주고자 할복 즉시 칼로 머리를 베는 것)에 쓰인 칼도 무라마사의 칼이었고, 심지어 자기 갑옷을 뚫고 부상을 준 것도 무라마사 칼이었다. 이에 이에야스는 전국의 무라마사 칼을 수거하여 폐기 처분시키고 말았다. 일본의 보검은 천왕 가에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천총운검(天叢雲劍)이다. 이 칼은 건국 신화의 주인공인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굽은 옥구슬 팔척경곡옥(八尺瓊曲玉), 청동거울 팔지경(八咫鏡)과 함께 천왕 가에 하사하였다는 삼종신기 중 하나이다. 현재의 천총운검은 복제품이라고 한다. 12세기 말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세운 가마쿠라 막부는 천왕 가를 공격하였고, 천왕의 군대가 지금의 시모노세키인 단노우라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하자 왕실의 니이노아마가 국새와 천총운검과 함께 여덟 살인 외손주 안토쿠 천왕을 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이 가마쿠라 막부 역사서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전해지고 있다.


경주계림로 보검.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학계에서 4세기 중엽 근고초왕이 왜왕 지(旨)에거 하사한 것으로 보는 칠지도. 사진 나무위키


동이족의 칼은 곧게 뻗은 환두대도다. 고고려 백제 신라가 공통으로 쓴 이 칼은 고려를 거쳐 환도를 많이 썼던 조선 시대 때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대단한 보검을 만들기도 하였다. 1973년 경주 대릉원 옆 도로에서 출토된 황금 칼에는 커다란 석류석이 박혀있는데 이는 현재의 불가리아 지역인 트라키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고대 신라와 동로마 제국 간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증거다. 백제는 세계 십 대 보검에도 꼽히는 그 유명한 칠지도를 왜왕에게 하사하였다. 조선 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칼 전어도(傳御刀)는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용머리로 끝을 장식한 손잡이가 돋보이고 칼 길이도 환도보다 20cm 정도 긴 살짝 굽은 환도다. 현재 보존 중인 전어도는 이성계의 칼이 아니고 이방원이 아비 이성계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을 때 아비의 마음을 달래고자 복제품으로 만들어 바친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마지막 왕인 우왕을 참살할 때 전어도에 맞선 우왕의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에 부러졌다는 것이다. 사진참사검은 네 마리의 용이 용족(龍族) 고려 왕들을 수호하는 칼이었다. 이에 조선 왕실에서는 용에 대항하여 호랑이를 앞세운 벽사 칼을 만들었으니 네 마리의 호랑이를 의미하는 사인검(四寅劍.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만드는 칼), 세 마리 호랑이의 삼인검(三寅劍. 왕이 아닌 왕족의 칼)이 그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장군으로 승진하는 군인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사받는 삼정검(三精劍)은 사인검에서 유래하였다. 한민족에게는 그런 보검들보다 더 위대한 칼이 있다. 여전히 웅혼을 느끼게 해주는 충무공 이순신의 2m짜리 대도다.


조선 시대 사인검. 사진 문화재청


“막야 같은 보검을 둔하다고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예리하다고 하네(莫耶爲鈍兮 鉛刀爲銛).” 간신배들의 모략으로 효 문제로부터 좌천당한 진나라 사람 가의가 같은 신세였던 백 년 전의 굴원을 조상하며 쓴 부(賦)이다. 모든 것이 거꾸러진 세상을 한탄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正)은 사라지고 사(邪)와 삼무(三無. 무능 무식 무당)가 활개 치는 세상, 보검은 사라지고 납덩이 칼이 난무하는 그런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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