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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Oct 17. 2022

한국인의 장례와 제사 문화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인에게는 네 개의 빅 이벤트가 있다. 관혼상제(冠婚喪祭)가 그것이다. 관례와 혼례는 하루 만에 끝내는 일회성이지만 상례는 여러 날 동안 치르는 의식이 따르고 4대조까지 모시는 제례는 평생 시행한다.      


도교는 삶과 죽음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조문 간 혜자가 의아하여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본시 생명이란 없는 것이다. 생명만 없는 것이 아니고 형체니 기(氣)니 하는 것조차 없다. 흐릿하고 아득한 속에 섞이어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가 되고, 그 기가 변하여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생기고 그것이 다시 변하여 기가 되는 것이다. 사계가 운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기에 도교에서는 장례니 제사니 하는 문화는 있을 수 없다. 한국인은 고려 때까지 도교를 크게 품었으나 죽음에 관한 도교식 관념과는 거리를 둔 듯하다.     


불교는 윤회를 말한다. 인간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생으로 윤회한다. 지금까지의 육신으로 살아온 것을 죽음으로 마무리하고 환생을 거쳐 또 다른 생명과 새 육신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불교의 장례는 필요 없어진 사체를 불태우는 화장으로 치러진다. 이어 49일째 되는 날이 되면 사십구재라는 제사를 치른다. 불교에서는 환생으로 얻는 새 삶을 생유(生有)라 하고 죽은 후 그것을 기다리는 과정을 중유(中有)라 한다. 이 중유 기간이 49일이다. 사십구재로 다시 한번 영혼의 명복을 빌며 복된 환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의 인생은 죽음으로 마감하는 일회성이다. 기독교의 사후 세계는 천당과 지옥으로 정의된다. 천당은 구원받아 주님의 우편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행복과 안식을 누리는 곳이요, 지옥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곳이다. 장례는 목사가 집례하여 고인을 하나님께 보내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낸다. 기독교에서는 제사를 일절 시행하지 않는다. 죽은 조상도 우상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 안성기 주연 영화 '축제'의 엔딩 씬. 사진 영화 스틸 컷.

  

유교의 장례와 제례는 전적으로 유족이 도맡아 치른다. “삶도 모르거니와 어찌 죽음을 말하겠는가.”라는 공자의 오금박는 말에 유교는 죽음 이후 세계에 관한 명제 전개 대신 장례와 제례에 열중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 하나 죽는 것에 입 쩍 벌릴 정도로 많은 오만 가지 의식으로 고인의 영혼을 모신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임종을 준비하는 초종(初終)을 시작으로, 운명과 함께 고인의 혼을 불러 사자(死者) 밥을 먹이는 초혼(招魂), 시신의 웃니 아랫니 사이에 각사를 끼워 입 닫히지 않도록 하고 사지 뒤틀림을 방지하고자 손발을 묶는 설치철족(楔齒綴足), 시신을 씻어 정화한 후 수의 입히는 염습(殮襲), 염습한 시신을 관에 넣는 소렴(小斂)과 대렴(大斂), 조문받는 문상(問喪), 관을 모시고 묘지로 향하는 발인(發靷), 회다지 달궁 소리로 관을 땅에 묻는 하관(下棺), 장사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고인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초우(초상 치른 당일), 재우(둘째 날), 삼우(사흘째 날)라는 연속 우제(虞祭) 등의 의식 체계가 줄기차게 가동된다. 옛날에는 이 세세한 과정을 일일이 지키느라고 과로사까지 일어나 줄초상 치렀다는 이야기도 곧잘 나오곤 하였다. 이것으로 장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초상 치른 지 대략 3개월 될 즈음 슬픔 삭이고 곡을 마친다고 하여 졸곡(卒哭), 고인 사망 후 1년 되어 치르는 소상(小祥), 2년 되어 치르는 대상(大祥), 27개월째 이르면 평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담제(禫祭), 만약 고인이 종손이었다면 그 뒤를 이을 새 종손을 정하고 이를 고하는 길제(吉祭), 요즘은 백일 기간을 따르나 옛날에는 3년을 꼬박 지켰던 탈상(脫喪) 이후 고인의 신주를 조상님들 신주 곁에 모시는 부제(祔祭) 등이 서슬 퍼렇게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장례가 끝나면 제례가 이어진다. 장례 기간에도 호출당하느라 정신없었을 고인은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자손들이 고인의 신주를 꺼내 모셔놓고 제사 치르며 좋은 음식으로 호궤하니 그때마다 또 열일 젖히고 달려와야 한다. 그렇듯이 유교문화에서의 죽음은 곧 죽음이 아니요, 유교문화에 흠뻑 젖어온 한국인은 그 덕에 죽어도 최대 4대손 태어날 때까지 살게 된 것이다. 


유교권의 제사 문화와 유사한 것이 멕시코인들에게도 있다. 그들은 해마다 11월 1일과 2일 이틀간 ‘죽은 자의 날(The day of the dead)’이라는 의식이자 축제를 즐긴다. 첫째 날에는 설탕이나 초콜릿으로 만든 해골 모형과 꽃으로 가족이나 친구 등 고인의 묘를 장식하고 이튿날에는 해골 분장을 한 채 거리 행진에 나서 축제를 즐긴다. 이것은 고인의 혼을 불러들여 명복을 비는 멕시코식 제사다.


'The day of the dead' 축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장면. 사진 영화 '007 Spectre' 스틸 컷

      

죽음을 매우 엄중하게 여긴 한국인에게는 죽은 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최대한 보살피는 장례 문화가 강하였다. 청동기 시대 때부터 존재하였던 고대 동이족의 순장(殉葬)제도는 중원에도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맹렬하였다. 6세기 초 신라 지증왕이 법으로 금하면서부터 한반도에서 사라져간 순장제도는 고대 한국인이 사후 세계에 관한 어떤 관념을 가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잣대로 볼 수 있다. 고대국가 때는 지배층 사람들의 장례가 대사였을 것이나, 고려시대 때부터는 서민층의 죽음을 사회적 문제로 여겨 정부가 나서기 시작하였다. 기록상으로 고려 때 처음 등장하는 매골승(埋骨僧)은 유족 없이 죽은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해 주는 중이었다. 그들은 의술과 천문, 풍수 등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습득한 전문인이었다. 고려 때 큰 병 든 사람들은 절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용하다는 매골승의 의술에 의탁한다. 혹여 죽게 되면 매골승이 극락왕생 비는 다비 장례를 치러주었으니 원스톱 서비스 구조로 볼 수 있다. 매골승은 풍수에 맞게 묫자리도 정해주어 죽은 자의 안식과 후손의 안녕까지 살폈을 정도로 장례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려말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신돈도 매골승 출신이었다.     


조선시대 민화의 매골승. 사진 민음사

 

매골승 제도는 조선에도 이어졌다. 그들은 한양 동대문 밖과 서소문 밖 두 곳에 있었던 활인원에 속해져 매달 소금과 곡식, 봄가을로 면포 한 필을 급료로 받았다. 조선시대 때는 역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전염을 두려워한 유족이 시신을 길에 버리고 방치하여 도성 전역에 전염병이 퍼지곤 하였다. 조선 정부는 그것을 막고자 시신을 수습할 인력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매골승으로 충당한 것이다. 그들은 도성 내외를 돌아다니며 방치된 시신을 수습하였다. 실적 좋은 자는 포상이 내려지고 정식 승려 직을 얻을 수도 있었다. 실적 좋은 매골승을 골라 승려 직을 주었다는 것을 보면 이들은 정식 중 신분은 아니었던 듯하다. 비천한 신분과 적은 급료에도 이들은 역병이 돌거나 전쟁 후와 같은 어려운 때에 사회를 위하여 희생과 봉사를 한 성자였다.     


온라인 유통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장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진 마트노조


사람 죽을 때 그 죽음을 갈무리하고 그 죽음에 맺힌 의의를 기리는 의식은 산자의 책무다.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작업 중 목숨 잃은 19살 청년과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24살 청년, 과다한 업무로 쓰러져가는 택배 기사 등으로 가슴에 멍울진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엊그제 제빵공장에서 20살 청년이 기계에 끼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또 일어났다. 모두 재하청 업체 직원이거나 비정규직 직원, 열악한 노동 환경 속의 노동자다. 오늘날 한국인은 이와 같은 사회적 죽음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회적 장례는 어떻게 치를 것이며 사회적 제사는 어떻게 모실 것인가? 이것을 해결할 현대판 매골과 수륙재의 지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나 누구 하나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정치가 나서야 해결될 것인데, 매일같이 손가락질에 남 탓하느라 혀와 손가락이 닳아져 나갈 뿐이다. 정치판에 근본적으로 기대할 것 없는 이 사회는 죽은 사회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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