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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Dec 17. 2022

부검(剖檢)의 역사

잡학은 꿀맛이다(남은 한 발)

1991년 알프스 외치 계곡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냉동 미라가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약 5,300년 전 시기에 살았던 중년 남자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학자들은 인간미라 중 가장 오래된 이 미라를 외치라고 부르며 지금까지도 연구 분석하면서 고대 청동기 시대 인류의 생활상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외치는 당시 나이 45세, 키 160cm, 몸무게 50kg, 혈액형 O형, 왼손잡이에 검은 머리털, 갈색 눈 등의 백인 남자로 동맥경화에 의한 다리 관절염이 있었으며, 상처 부위에는 문신도 있었다. 문신이 상처 부위에 새겨진 것은 주술적 의료행위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진단하였다. 외치가 죽은 이유는 산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집단 싸움 중에 왼쪽 어깨 아래에 돌화살을 맞고 대동맥이 파열되어 쓰러지자 공격자가 다가와 둔기로 머리를 내려친 것으로 추정한다. 먼 옛날 사람의 시신을 놓고 이렇게 소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치열한 법의학 때문으로 봐야 한다.      


미국드라마 CSI 시리즈에 나오는 시신부검 장면. 사진 TV화면 갈무리


2000년 첫 시리즈 시작, 2023년 종영 예정으로 보기 드물게 장수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 CBS TV 드라마 CSI(과학수사대)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검시관이 죽은 사람을 부검하는 장면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시신은 말을 한다.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렇게 세밀하게 시신을 살펴 범인 추적의 실마리를 찾아내면 형사들은 곧바로 증거 확보와 범인 체포에 나선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온 이유가 바로 법의학에 따른 ‘과학수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과학수사를 언급하자면 기원전 3세기 무렵 그리스 땅이었던 이탈리아 시칠리섬 시라쿠사 사람인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를 들어야 할 것이다. 당시 시라쿠사를 다스리고 있던 참주 히에로 2세는 금 세공사를 불러 순금을 내주고는 자신이 쓸 금관을 만들도록 하였다. 세공사가 그 금관을 만들어 바쳤을 때 히에로 2세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금관에 은을 섞어 쓴 것은 아닌가 하여 그런 것이다. 무게를 재본 결과 처음 내준 금덩이 무게와 같았지만 히에로 2세는 의심을 접지 못하고는 물리학자이자 공학자인 아르키메데스에게 금관의 비밀을 풀도록 한다. 고민을 거듭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어느 날 목욕탕 물에 자기 몸을 담그는 순간 물이 욕탕 밖으로 내쳐지자 그 순간 해답을 깨닫고는 벌거벗은 상태로 거리에 뛰쳐나가, “유레카(찾았다)!”를 외쳤다. 그가 찾은 답은 바로 밀도와 부력이었다. 순금 관과 은을 섞은 관이 같은 무게라 하더라도 은이 금보다 밀도가 더 낮기에 서로 무게가 같아지려면 은의 양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은을 섞은 관은 부피가 더 커진다. 이제 같은 무게의 순금과 은을 섞은 관을 물에 넣어보면 은 섞은 관이 물을 더 많이 내치게 되는 것이고, 그로써 아르키메데스는 세공사의 죄를 밝혀낸 것이다.     


물론 이것을 과학수사라고 한다면 억지스러울 수 있고, 실질적인 세계 최초의 과학수사는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13세기 중원 송나라 때 검시관이자 법의학자였던 송자는 다양한 피살 시신을 다루면서 체득한 사인(死因) 분석 방법을 『세원집록(洗寃集錄)』으로 펴냈다. 책 제목인 ‘세원’은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을 풀어준다는 뜻이기에 송자의 고매한 정신이 엿보이기도 한다. 

같은 시기의 서양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 시대를 겪고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신봉하듯 죽은 사람의 부활까지 믿었기에 시신을 훼손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유교 문화를 따르던 중원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관심 없다!’라는 공자의 말뚝 같은 말을 따라 장례는 잘 치러 주면서도 시신에 손대는 것은 그다지 금기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에 일찍이 중원 땅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학이 발달한 듯하다. 

     

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법의학책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 원나라의 '무원록'을 해설한 책이다.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한반도에는 조선 세종 임금 때 처음 법의학 체계가 등장한다. 세종은 1438년 원나라 사람 왕여의 법의학책 『무원록(無寃錄)』에 주해를 붙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편찬, 검시관이 검시할 때 참조하여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였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살인사건 경우 범인의 자백과 증인들의 기억으로만 판결해왔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필수적인 검시를 통하여 객관적인 판결을 낼 수 있었다. 부검은 삼검(三檢)으로 진행하였다. 현지 지방관이 초검(初檢) 후 상부 관청에 보고하면 상부 관청은 인근 다른 지역의 지방관에게 복검(覆檢)을 명한다. 이때 초검관은 복검관에게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면 안 되었다. 따라서 복검관은 자기 판단으로 검시 결과를 작성하여 하명한 상부 관청에 보고하여야 했다. 이 초검 복검 내용이 일치하면 그것으로 사건을 종결하지만, 만약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면 형조 소속의 5~6품 낭관이 파견되어 지방 관찰사가 지명한 별도의 지방 관원과 공동으로 삼검(三檢)을 실시한다. 이때 관찰사가 지명한 관원은 초검 복검 결과를 참고하여 결론을 내린 후 파견한 형조 관원과 내용을 공유한 상태에서 삼검에 임하였다. 대부분 조사는 삼검 이내로 끝나곤 하였으나, 피해자 유족의 항의가 있을 때는 사검(四檢) 오사(五査) 육사(六査)까지 거쳤고, 그래도 의혹을 풀지 못하면 임금이 최종 결정을 내리곤 하였다. 조선시대 과거 중 율과(律科)는 초시부터 신주무원록을 필수과목으로 삼았음을 볼 때 조선의 형률관은 대부분 법의학을 기본으로 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조선시대 명탐정>에 나오는 주인공이 그토록 사체 부검에 영민함을 보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준근이 그린 살해당한 남자의 검시 장면.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근래 와서는 시신 부검과 별도로 ‘심리 부검’이라는 것을 시행한다. 미국 ‘로스 에인절스 자살예방센터(Suicide Prevention Center)’의 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과 그의 연구진이 1958년 처음 시행한 작업으로,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자가 과연 자살로 죽은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망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정신질환 유무, 주변 요인 등의 분석과 함께 사망자의 유족과 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면접, 사망자가 남긴 개인적 기록 등을 세밀하게 살피는 식으로 사망자의 자살 여부와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여 자살 사망자에 관한 판정 지침이 되도록 할 뿐 아니라, 모든 정보를 자살 예방 정책에도 반영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2006년 ‘군(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심리 부검 자문소위원회’에서 처음 심리 부검을 시행하였고, 2015년 보건복지부 산하단체인 ‘중앙 심리 부검 센터’가 설립되면서 이 심리 부검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태원참사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패륜적 행위를 보이고 있다. 사진 MBC TV News 화면 갈무리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이 일어나 무려 158명이라는 목숨이 어이없이 희생되었다. 사고 방지 시스템은 분명히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정부의 무능이 백일하에 드러난 일임에도 정부는 상부 책임자의 꼬리는 숨기고, 특수수사본부에서는 희생자들에게 마약 사용 의혹을 덧씌우려는 듯 유족들에게 마약 부검 의향을 묻는 황당한 짓을 벌였다. 특수수사본부는 사탕을 먹고 구토했다는 의혹을 해소하고자 참사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검사하여 마약 소지 여부까지 확인한다고 언론 노출을 바라고 법석을 떨었으나, 검사 결과 마약 성분은 일절 검출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그런 식으로 참사 원인을 망자들에게 돌리는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함으로써 비통에 빠진 유족들의 가슴에 ‘마약 부검’이라는 천인공노의 칼을 들이댄 것이다. 여기에 법무부 장관은 한술 더 떠, “현장 검시 검사가 마약 피해 가능성도 고려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철딱서니 없는 변명으로 국민 혈압을 더 높이고 말았다. 참사에 대한 진정성 담은 사과와 반성은 하지 않고, 마약 부검 운운하며 참사 희생자 사십구재 때는 누구도 참석하지 않은, 이 패륜적이고 오만한 현 정부 최고위직들의 정신 상태를 부검할 필요가 있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 남은 한 발, 이것으로 만 2년에 걸친 100개의 컬럼 작업은 마무리 됩니다. 당분간 안식에 들어갑니다. 잡학으로 부르는 인문학에는 쓸 거리가 무궁 존재합니다. 언젠가 다시 시작할 때 있겠죠. 그동안 응원 주신 분들께 고마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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