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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서울 팔경(八景) 다시 보기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관광공사의 통계 발표에 따르면 2022년 2월 기준으로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들은 2019년 2월 대비 94.5% 줄어들었고 해외로 나가는 국민 여행객들도 2019년 2월 대비 97.4%나 줄었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임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에 불이 붙고 있으니만큼 여름 즈음이면 아무렴 지금보다는 한결 나아져서 세상 사람들의 발걸음을 풀어줄 것이라 기대된다. 마침 한국 정부도 여름 이후 백신 접종 증빙서를 갖춘 사람에게 해외여행 길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또 그때 가서 봐야 알 것이겠고 해외여행에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 역시 따분할 것이다. 해외여행 못 나간다고 헌금 덜 걷힌 목사처럼 구시렁거리기만 할 것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피로감 달래기도 할 겸 국내 여행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의 지혜 아닐까 싶다. 전국에 명산이니 유적지이니 관광지이니 하는 곳들이 많으나 그중 서울의 명소들은 조선 시대 내내 유별나게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울은 한강, 청계천, 남산, 북한산 등과 같은 천연의 경치를 품고 있기에 옛 풍류 묵객들은 이런저런 절경들을 앞다투어 선정하곤 했다. 조선 건국 당시에는 정도전 권근 권우 등이 신도팔경(新都八景)이라 하여 한양의 경치 좋은 여덟 곳을 말하고 있고, 성종 때의 풍류 대가였던 월산대군 강희맹 서거정 이승소 성임 등은 한도십영(漢都十詠), 한양의 아름다운 열 곳을 시로 읊었다. 조선 말 고종 때는 국도팔영(國都八詠)도 있었다. 어느 곳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정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남산팔영(南山八詠), 서강 일대의 서호십경(西湖十景) 마포팔경(麻布八景) 양천팔경(陽川八景), 북한산에서의 승가팔경(僧伽八景), 인왕산에서의 황학정팔경(黃鶴亭八景)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옛 서울은 무척 아름다운 도읍지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경치 중에서 많이 선호되는 여덟 곳을 뽑자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첫째, 목멱상화(木覓賞花). 봄날 목멱산은 형형색색 꽃들이 만개하여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지금이 한창때이기에 멀리서 봐도 파스텔색으로 꽃 범벅된 남산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조선 초기의 거유 서거정이 자신의 시집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이 남산 꽃구경을 목멱상화라 칭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한양의 경치로 쳤다.

둘째, 양진낙조(楊津落照). 양화진의 석양이다. 어쩌다 해 질 무렵 즈음 차를 몰고 한강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강변북로를 달리다 보면 양화대교 너머 서쪽 하늘을 붉게 불태우는 석양을 많이들 봤을 것이다. 변산반도의 석양이 국내 최고 장관이라 하지만 이 양화대교의 석양도 그에 못지않다 해도 눈 흘김 받지 않을 것이다. 옛날 한양에서 글공부 좀 한다는 묵객들이 가장 으뜸으로 쳐주던 놀이가 바로 저녁 무렵 한강에 배 띄워 양화진 석양 바라보며 술 한 잔에 시 읊는 것이었으니, 그 풍류가 어땠을지 부럽기만 할 뿐이다.

셋째, 마포귀범(麻布歸帆). 마포 서강 나루로 돌아드는 돛단배이니 황포돛배를 말하는 것이다. 강물에 떠서 살랑 바람 등에 이고 서강을 들어서는 황포돛배의 고즈넉한 풍경이 뭇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던 모양이다. 이 황포돛배는 오래전 서울시가 야심 차게 재연해낸 적 있고 현재는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 때마다 황포돛배들이 등장하여 옛 풍경을 되살리고 있다. 축제 때에만 등장시킬 것 아니라 평소에도 관광 상품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싶다.

넷째, 운횡북궐(雲橫北闕). 이른 아침 인왕산 산기슭에 횡으로 걸쳐있는 구름 속에 고요히 자리 잡은 경복궁 전경을 말한다. 이것을 즐기려면 아침 일찍 남산에 올라야 한다. 남산에서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경치다. 가을 무렵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하니 이 또한 관광 상품 목록에 들만하다.

다섯째, 자각추월(紫閣秋月). 자하문 문루에 걸린 가을밤 달이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만 봐도 멋진 시가 술술 나올 것이다.

여섯째, 사단노송(社壇老松). 사직단 주변에 노송이 우거진 모습이다. 사직단은 조선 때 경복궁 서쪽에 마련하여 국토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모시고 임금이 제사를 올리던 사당이다. 땅을 일구어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것은 생존에의 원초적 근본이기에 사직단은 삼국시대 때부터 존재했다. 잘 단장된 이곳에 들러 휴식을 취하면서 사직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곱째, 율서우경(栗嶼雨耕). 비 갠 후 밤섬의 밭 가는 농부들 모습을 이른다. 밤섬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에 걸쳐있는 작은 섬으로 서강대교가 그 위에 놓여 있다. 철새도래지라서 1999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기에 지금이야 밭 가는 농부들 대신 철새들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현재 한강사업본부에서 밤섬을 생태체험장소로 운영하고 있고, 이곳을 찾아가 람사르 습지 전망, 환경을 주제로 한 VR AR 체험, 생태 교육 등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월산대군이 극찬했던 제천완월(濟川翫月)로, 한강 변 마을인 한남동에서의 달구경을 들 수 있다. 이 달구경은 인조 때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제천정(濟川亭)에서 즐겼던 것이기에 제천완월로 불린 것이다. 제천정은 왕실의 별장이면서 외국 사신들이 한강 경치를 즐기기 위해 찾던 장소였다. 현재는 그 터에 표지석만 있으나 옛 공간을 일부라도 복원한다면 한남동에서의 멋진 달구경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이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곳들을 얘기한 것은 서울의 명소를 되돌아봄과 함께 그 모습들이 시대 차이에 의해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시의를 되살려 향후 관광 상품으로 선제적 개발 혹은 관리에 나서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싶어서이다.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선유봉(仙遊峯)

       



이곳들 외에 지금은 사라져 아쉬운 절경 하나 없어진 얘기를 해 보겠다. 양화대교 남단이 되는 영등포구 양평동에 작은 산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선유봉(仙遊峯)이다. 옛사람들은 이곳의 경치를 선봉범월(仙峰泛月)이라 하여 선유봉 아래 한강 물에 달 띄우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겸재 정선의 선유봉 그림을 보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름마저 선유봉으로 지어 신선이 놀던 산이라고 여겼을까?

그렇게 멋지고 예쁜 산은 왜 없어졌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때 김포에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길닦음 용 돌들을 얻기 위해 선유봉을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선유봉은 거의 훼손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1965년 양화대교가 이곳을 관통하면서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아쉬운 경치 하나를 그렇게 허망하고 야속하게 잃은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문화에는 자연환경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울의 자연생태를 이제는 한 치라도 잃으면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있는 것들을 용케 찾아내어 없애는 데에 혼신 열정을 보여왔다면 이제는 지키고 복원하는 것에 절반 정도라도 힘써 주기 바란다.                    

      

20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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