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철학이 이 땅에 정착한 이래 옛 사람들은 오륜(五倫)으로 인간 세상의 덕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조선 후반에 들어 나라에 망쪼가 들면서 수도권 일대의 사대부들은 오륜 중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게쳤다.
그들은 어쩌다 어린 나이에 관직을 얻으면 주위 남녀노소로부터 떠받듦을 받음에 스스로 거만에 빠졌음이요, 권력의 꽁무니를 쫓다보면 두터운 사이의 벗끼리도 신의를 헌신짝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들에 비해 영남의 선비들은 장하게도 오륜 정신을 오래토록 유지하면서 지역사회 안정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 현상을 풀어보면 이렇다.
수도권의 집권세력 사대부들은 노론당으로 뭉쳐 조선 후반기 내내 정권을 독차지하여 권력의 단맛에 빠진 채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와중에 그들의 정신 세계는 결국 붕괴되고 만 것이고, 노론 세력에 밀려난 영남의 남인당 인물들은 시골 구석에 묻혀 오륜 정신을 올곧이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영남 사람들은 어쩌다 중앙의 부름을 받아 정계에 나가봤자 고향 집과 너무 떨어진 것도 그렇거니와 한양과 영남 땅 사이에는 문경새재가 가로막고 있어 왕래가 험난했다는 것이 영남 인사들이 권력 집중지역인 한양에 수월하게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이유가 되었다. 수도권 일대에 저들의 근거지를 만들기 어려웠음은 자명한 일이다.
남인당이 결정적으로 패퇴한 것은 영조 즉위 직후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문이었다.
이때 영조는 남인당 인물들을 역모죄로 다스렸고 이후 남인당 인물들은 정조의 스승 채제공 정도를 제외하고는 조선 말 까지 그저 향촌에만 머물러야 했다.
조선 말 흥선군이 장동김문을 격파하는 데 이황 이언적 등의 후예인 남인당 인물들을 전격 등용하였으나 이미 조선은 국운을 잃고 있었다.
그랬던 영남인들의 한은 20세기 들어 풀어졌다. 박정희의 쿠데타로 영남인들이 권력을 장악, 신 남인당 세상이 만화방창 도래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영남 출신 권력자들은 조상들의 그 투철했던 오륜 정신을 변질시키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부자유친으로 부모자식이 뜻을 합쳐 검은 돈 50억원을 달게 먹고, 군신유의로 검사출신 집권자를 넋이야 있든 없든 국민이야 개돼지가 되든 말든 그저 깎듯 모시는 패거리가 되어 있고, 부부유별로 대통령 서방을 둔 구설수 투성의 여인은 온갖 사치를 누리며 저만의 세계를 즐기고, 표를 구할 때는 구십도 허리를 꺾다가도 권좌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이들로부터 하정배 받으며 거들먹거리니, 장유유서는 개짖는 소리가 되었고, 공천 받기위해 오늘의 동지를 음해하고 비난하는 데 두 눈에 핏줄을 세워 붕우유신을 도끼눈으로 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