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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욕(辱)을 욕하지 말라

세상을 여는 잡학

1996년 광주에서 욕 대회가 있었다. “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적인 윤리를 역설적으로 지켜내는 수호자이자 방패가 바로 욕이다.”라는 주장이 담긴 ‘광주민학회’ 주최의 행사였다. 이날 으뜸 상을 받은 욕은 다음과 같다. “날강도 찜 쪄서 안주 삼고, 화냥년 경수 받아 술 빚어 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 사또 변학도와 사돈 맺어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 놈!” 이런 엄청난 욕에 실제 해당자가 있어 들었다면 허파가 뒤집혔을 것이다. 물론 곁에서 듣는 사람들은 배 잡고 웃을 일이겠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민족에든 욕 문화는 있기 마련이다. 인류의 욕 문화는 문명과 함께 도덕 윤리가 성립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욕은 사회성에 어긋나는 관점으로 빚어지기 때문이다. 욕은 저항정신을 기본 성격으로 취한다. 욕은 강자보다 약자의 욕일 때 강렬하다. 지렁이가 밟힐 때 꿈틀하는 것같이 약자는 강자에게 밟힐 때 일단 욕부터 끌어 올려 뱉고 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는 자에게 약자가 줄 것은 분명 욕일 것이다. 그러기에 욕은 ‘약자의 정신 위안을 위한 약(藥)’이라 할 수 있다

욕에는 순기능이 많다. 감정의 골을 메울 때 욕이 용하게 쓰인다. 친구끼리 한바탕 박 터지게 싸우고 나서 서로 화해할 때는 반드시 걸쭉한 욕 한마디씩 해 주어야 속 시원해지고 화해도 제대로 된다. 또 욕은 서로 간의 친근감을 확인하거나 강화하기도 한다. 친구 사이에 주고받는 악의 없는 욕은 우정의 담금질이 될 수 있다. 인성적 사회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일삼는 사람, 즉 늘 욕먹는 짓만 골라 하는 자를 욕감태기라고 한다. 욕감태기에 대한 욕은 야유 조롱이기에 일견 정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욕의 형태는 동서를 막론하고 생식기에 빗대기, 심신의 결점 들기, 패륜 행위 얹기 정도의 비천한 욕이 대세를 이룬다. 그렇다고 이런 욕들 때문에 세상의 미풍양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지나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는 욕은 사회적으로 거부되고 그런 욕을 하는 사람은 욕감태기와 동급이 되어 만인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무엇이든 간에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욕 문화가 있다. 우선 풍자와 해학을 담은 욕이 지천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의 욕을 문학적 경지에까지 올리기도 하는 것이다. “똥 누어 낯짝에 분칠할 놈”, “염병 걸려 땀도 못 흘리고 뒈질 놈”, “행주로 요강 씻을 년”, “고뿔도 남 주지 않을 놈”, “쌀알 세어 밥할 년”, “무등산 호랑이가 사흘은 즐겨 씹다 뱉어 버릴 놈”······. 이런 식의 욕은 고소한 웃음을 남긴다.      

시대적 상황이 개입되는 욕들도 있다. ‘화냥년’과 ‘호로(胡虜)자식’은 같이 놓고 풀어야 한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로 불렀고 이것이 후에 화냥년이 되었다. 또 환향한 여인이 낳은 아이를 오랑캐 자식이라는 뜻으로 ‘호로자식’이라 했다. ‘호로자식’은 ‘후레자식’이 되어 아비 없이 막 자란 젊은이를 이르게 되었고. ‘떡시루에 담아 죽일 놈’이라는 욕은 북쪽 변방에서 나왔다. 버림받아 굶어 죽을 놈이라는 뜻이다. 만주 땅 오랑캐가 약탈을 위해 불시에 쳐들어올 때마다 아비와 어미는 각자 아이 하나씩 몸에 묶고 서둘러 산으로 숲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아이가 둘일 경우에는 문제가 없으나 셋일 경우는 난감해지기 마련, 막내가 되어 체구가 작은 아이는 떡시루로 덮어준 채 도주했다. 떡시루에 난 구멍으로 숨은 쉴 수 있을 것이요, 부부가 살아 돌아오지 못하면 들개에게 잡아먹히지는 말고 차라리 굶어 죽기를 바라는 행위였다. ‘골로 보낼 놈’이라는 욕에는 고려말 때로 역사가 올라간다. 우선 ‘골’은 ‘고태 고을’의 준말이다. 지금의 서울 응암동에 해당한다. 고려말 공훈을 많이 세웠던 무인으로 고태(高太) 장군이 있었다. 나라에서는 그의 공을 높이 쳐서 이 지역에 저택과 땅을 하사해주었으나 고태 장군은 일가 피붙이 없는 독신인지라 재산을 인근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다가 홀로 쓸쓸히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슬퍼하며 고인의 땅에 묘를 세워 묻어준 후 그 일대를 고태 마을로 부르기 시작했고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땅이 고양 군과 한양에서 죽어 나간 망자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골로 보낼 놈~’ 하면 ‘죽여서 고태 고을로 보낼 놈’이라는 뜻이 되니 들어서 살 떨릴 욕이 되는 것이다.      

형벌에서 나온 저주 형 욕들도 있다. ‘젠장할~’이라는 자기 저주 형 욕은 ‘제기, 난장(亂杖)을 맞을~’의 준말로 범인이 실토할 때까지 계속 장형을 가한다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제기’는 별도로 붙은 패륜 형 욕으로 ‘제 어미와 흘레(짐승의 교미) 붙다’의 ‘제밀할’과 같은 말이다. ‘우라질’은 ‘오라(죄인을 묶던 줄)로 묶을’이기에 포졸에게 붙잡혀 직사하게 고생 좀 하라는 욕이다. ‘육시랄’은 선산에서 뗏장 덮고 누워있는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욕이다.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어 참수하는 육시(戮屍) 형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나온 욕들도 있다. 소금으로 음식을 약간 절인다는 뜻의 ‘얼간’에서 ‘얼간이’가 생겼다. ‘바보’는 ‘밥보’에서 변한 말로 밥만 먹고 하는 일 없이 노는 ‘생겨난 김에 사는’ 잉여 인간이 원뜻인데 둘 다 지금은 어딘가 모자라고 순진한 사람을 이르는 욕이 되었다.     


‘놈’과 ‘년’은 각각 남녀를 칭하는 비속어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양주동이 좌장 격이었던 김동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선배님, 우리가 쓰고 부르는 영어의 He와 She를 ‘그’와 ‘그녀’로 부르잖습니까? 이것을 우리식으로 고쳐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말 중에 놈과 년이 있으니 그것으로 각각 남자 여자의 삼인칭 대명사로 쓰자, 그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동인의 손에서 떠난 막걸리 주전자가 바람을 가르며 양주동의 이마를 향했다고 한다. 양주동은 왜식으로 번역된 말이 싫어서 진보적 선의로 비록 비속어이지만 우리말을 쓰자고 한 것인데 김동인은 ‘놈’과 ‘년’을 끝내 욕으로 여긴 것이다.     

2013년 즈음 ‘전국욕쟁이협회’라는 곳에서 욕 등급을 매긴 적 있다.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욕은 하급 욕, 비속어를 써서 듣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욕은 중급 욕, 비속어를 쓰면서 풍자까지 곁들이면 상급 욕이라고. 사람은 욕과 공생한다. 욕을 하고 싶은데도 참으면 화병 일어나 인명에 지장 생긴다. 그러니 욕은 삶에 있어서 필수조건이 된다. 그렇지만 욕을 하더라도 상급 욕 즐길 것을 권한다. 그래야 사람들 정신건강에 좋다.     


욕을 사회적 언로(言路)로 포장한 것이 소위 비판이다. 그 비판에는 대안을 곁들여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은 하급 비방 욕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어느 단체 대표되는 젊은이로 인해 소란이 있었다. 그 젊은이가 비판이라는 틀을 빌어 욕한 내용을 보면 하급 비방 욕보다 더 심한 왜곡형 저주에 가깝다 하여 청와대는 이것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근래 들어 청와대가 고소를 취하했으나 피고소인이었던 자는 지금도 늦지 않으니 욕이 갖는 진정한 철학을 배우면 어떨까 한다.       

                                                                     

202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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