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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한국인의 미인 선발대회

세상을 여는 잡학

세계적인 미인선발대회로 미스 유니버스, 미스 월드, 미스 인터내셔널 등이 있다. 이런 대회에서 입상한 미인들의 주요 임무는 세계 평화와 저개발국 구호사업에 앞장서는 것이다. 미인들의 선한 봉사활동인지라 당연히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음이다. 이들 중 1952년에 가장 먼저 시작한 미스 유니버스가 맏언니라 할 만하겠으나 실은 증조할머니뻘 미인선발대회가 따로 있다.                   

산업혁명 이후인 185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서커스 흥행사업가가 피니어스 바넘이 미인 선발대회를 열고자 했으나 곳곳으로부터의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 1880년대 영상산업이 생겨나면서부터 사진이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것에서 힌트를 얻은 또 다른 서커스 흥행사업가 애덤 포포프가 사진으로 미모를 심사하는 방식을 구상하고는 1888년 벨기에 스파(Spa)에서 ‘콩쿠르 드 보테(Concours de Beauté)’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미인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사회 각계로부터 지탄받았으나 정작 주인공인 여성들은 열렬히 환호했는지 무려 1만 천 명이나 사진으로 응모했다고 한다. 

최종 우승자는 당시 배우였던 루이스 몽테뉴였고. 이 대회에는 실물이 아닌 사진 응모로 치러졌다는 것과 국제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부족함이 있다. 이후 이것을 뛰어넘는 최초의 현대적 국제 미인대회의 원조가 등장한다. 1908년 영국 폭스톤에서 개최된 세계 미인선발대회는 응모자들이 실제로 참가하여 미모를 겨루는 식으로 치러졌다. 미국에서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에 맞춰 1921년 폭스톤 대회 형태를 따른 미스 아메리카가 생겨났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1908년 8월 14일 영국 폭스톤(Folkestone)에서 개최된 최초의 세계 미인 선발대회. 사진 위키피디아


고대 그리스 신화에 여신들의 미신(美神) 선발대회가 한 번 있었다. 네레우스와 도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 테티스의 미모가 출중했기에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가 이를 외면할 리 없어 총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테티스는 아버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들을 낳는다.”라는 신탁을 들은 제우스는 그러면 곤란하겠다 싶어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에게 시집보내고 만다. 훗날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아킬레우스이고. 이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청받는데 오직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명단에서 제외되고 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을 찾아가 황금 사과 하나를 던지고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불화의 여신답게 잔치판에까지 가서 싸움을 붙인 것인데, 이에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나서서 서로 황금사과의 임자를 자처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우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둘째 아들내미 파리스를 심사위원으로 정했고,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다음과 같이 각각 제안했다. 아시아의 왕 자리를 주겠다는 헤라,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해 주겠다는 아프로디테, 전투에서의 승리를 주겠다는 아테나. 평소 미녀라면 사족을 못 쓰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록 여신들 간의 미모 다툼이었으나 인간으로 치면 이것이 바로 지구상 최초의 미인 선발대회라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대회의 후폭풍은 엄청났으니, 훗날 파리스가 얻게 되는 당대 최고의 미녀가 스파르타 왕 메넬레우스의 왕비 헬렌이었기에 인류 고대사와 신화 편 분량을 사정없이 늘린 트로이 전쟁이 그로써 일어난 것이다. 


그런 신화도 있는 만큼 미인 선발대회는 서구 땅에서 분명 오래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오월제를 보면 고대 때 이미 미인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짙다. 15~16세기 때의 오월제에서 왕관 쓴 메이퀸이 축제 행진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면 그렇다. 1904년부터 시행되었다가 1978년 여성의 성(性) 상품화라는 비난을 받고 폐지된 이화여자대학교의 메이퀸 선발대회는 유럽 오월제 메이퀸 선발대회의 코리아 버전이었다. 1952년 출범한 미스 유니버스에 힘입어 생겨난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는 1957년에 그 첫걸음을 떼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도 서구 사회 못지않게 미인 선발대회의 역사가 제법 유장하다 할 것인데 이것으로 그치자면 미안스러울 일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로 추정할 수 있는 미인 선발대회가 있었다. 조선 중기 때 형성된 한양 종로의 육의전이 새해 정월에 전제(廛祭)라는 육의전 축제를 열었다. 이 전제에 앳된 처자들이 각 상점을 대표하여 출전 경합했으니 바로 미인 선발대회가 되는 것이다. 전제는 다음과 같이 치러진다. 종로 거리에 대형 꽃바구니가 매달린 높다란 그네 틀 장치가 마련되고 출전 처자들이 꽃바구니에 순서대로 올라탄다. 처자가 올라타면 사람들이 줄을 당겨 꽃바구니를 상승시킨다. 이때를 맞춰 주변 상인들이 꽃바구니 안에 복전(福錢)을 던져 골인시키며 한해 장사 잘되기를 빈다. 복전을 가장 많이 받은 처자가 곧 미스 육의전이 되는 것이고.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으로 종로 상권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니 이 전제를 현대적 시의로 재연해내어 관광 상품으로 활성화하면 좋을 듯하다.

미스 육의전 대회야 조선 시대로 마감했으나 우리에게는 60년 역사의 현행 대표적인 전통미인 선발대회가 또 있다. 남원 춘향제다. 남원 춘향제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 여인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기 위해 남원 유지들과 평양, 개성, 한양, 진주, 동래의 권번 기생들이 손을 맞잡고 1931년 광한루 바로 옆에 춘향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낸 것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춘향과 몽룡이 1촌 되던 날인 단오에 맞춰 제사를 지냈으나 1934년에 이르러서는 농번기를 피해 춘향 생일인 음력 초파일에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1972년부터는 국악 경연대회가 곁들여져 풍성한 축제로 전통을 잇고 있는 남원 춘향제는 1962년부터 미인을 선발하는 문제의 춘향 선발대회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춘향 선발대회에서 선발된 미인의 운명은 과연 춘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통 한국 여인의 덕을 세상에 비추는지에는 따져볼 일이 분명 있다. 숭고하기만 했던 춘향제에 미인 선발대회가 과연 들어가야 하는지를 자문해 봐야 한다. 미스 코리아뿐 아니라 미스 춘향이 탄생하기 바쁘게 손길을 뻗는 곳이 있다. 연예계다. 최란 박지영 오정해 윤손하 이다해 장신영 강예솔 류효영 등이 대표적인 미스 춘향 출신 연예인이다. 미스 춘향이 되어 연예인 활동을 펼치는 것이 진정 전통 한국 여인의 덕인지 쓴웃음만 짓게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정나라는 봄이 되면 사랑 축제를 열었다. 인간은 봄이 되면 겨우내 움츠렸던 것에서 벗어나 힘껏 활개를 펼치게 된다. 여인네는 봄 냄새에 가슴 콩닥거리겠다, 남정네는 불끈거리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그 끓는 정렬을 어떡하든 해결해야 했다. 축제가 개시되면 청춘남녀들은 강가에 몰려나와 경쟁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을 찾는 노래였다.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으로 남녀 간에 호감이 오고 가면 짝이 맺어졌고 마침내 혼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축제의 동기는 혼인을 통한 후손 번식, 즉 나라의 근본이 될 인구 증대와 풍농을 기원하는 남녀 합일의 주술성이 될 것이다.      

2021년 남원 춘향제가 어제인 5월 16일 열렸다. 남원 춘향제에서 연예인 배출은 그동안 실컷 했다. 어차피 전통 한국 여인의 덕을 찾자는 취지는 진즉에 사라졌으니, 이제는 미인 선발대회보다는 춘향과 몽룡의 가연(佳緣)을 앞세워 과감하게 청춘남녀 간의 사랑 축제로 성격 전환해봄이 어떨까 한다.      


20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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