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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초승달은 미래 번영의 상징

세상을 여는 잡학

달은 시시때때로 모습이 변한다. 이 변덕 심한 달에 줄리엣이 발끈한 적 있다. 로미오가 달을 두고 사랑 언약을 하자 걸핏하면 변하는 달 가지고 무슨 언약을 하냐며 로미오를 닦아세운 것이다. 로미오는 초승달을 딱 짚었어야 했다. 이른 저녁 즈음 서쪽 하늘에 떠서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초승달에 사랑 맹세를 얹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가나안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일대 땅을 비옥한 초승달 지대, 퍼틀 크레센트(Fertile Crescent)라 했다. 점점 커진다는 뜻의 Crescent로 초승달을 칭한 것은 곧 초승달을 미래 번영의 상징으로 본 것이다. 로미오가 무도회장에서의 걸 헌팅에 정신 팔기보다 남들 하는 만큼만이라도 학교 공부를 했더라면 이 기막힌 의미의 초승달에 사랑 언약 얹어서 줄리엣으로부터 만점을 받았을 것이다.     

초승달에 그런 의미심장한 뜻이 있다 보니 6~7세기 동안 지중해 패권국 동로마 제국과 자웅을 다투었던 서아시아 패권국 사산 왕조는 초승달을 저네들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훗날 서아시아와 지중해 일대를 호령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아예 초승달을 국기에 담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정복했던 북아프리카 국가들도 저네들의 국기에 덩달아 초승달을 모시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국기를 보면 사실 초승달이 아니라 자칫 그믐달 형태로 보이지만 저네들은 그것을 초승달로 부른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국기 원형은 분명 초승달을 채택하고 있다. 아무렴 스러져가는 그믐달을 국기에 넣었을까.                   


오스만투르크 제국 국기


그렇게 동양에서 생겨난 초승달의 존재감은 점차 서양인들에게도 각인되었다. 초승달 크레센트는 이탈리아 명문가의 성(姓)이 되기도 했으니 로마 크레센테(크레센트) 가문은 이탈리아의 통뼈 가문으로 10세기 중엽부터 11세기까지 교황 갈아치우기를 부침개 뒤집듯 했다.                        

서양인은 달을 경외도 하고 동경도 한다. 스페인어 달 Luna가 영어에 차용되면서 정신이상자 뜻의 Lunatic이 된 것을 보면 아마도 보름달만 뜨면 늑대인간이 미쳐 날뛴다는 전설 때문인가 싶은데 이때의 달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 고흐가 정신질환에 시달릴 때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에는 그믐달이 그려져 있다. 일 년 후 고흐가 맨정신을 되찾고 나서 그린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에는 초승달이 그려져 있고. 사람들이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말하면 고흐는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을 내세웠다고 한다. 정신 이상 때 그린 그믐달을 싫어한 것이다.     

서양인은 한편으로 초승달을 이상향으로도 여긴다. 그들은 피곤한 육신을 잠들게 하는 홈 스윗 홈의 상징으로 초승달을 내세운다. 제임스 베리가 쓴 서양 최고의 동화 『피터 팬(Peter Pan)』에 나오는 팅커벨의 숙소가 초승달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se)』의 주인공도 역시 초승달에 입주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서양인들의 취침용 고깔모자는 한결같이 초승달 모양이다. 여기에 영국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저서 『유토피아(Utopia)』에서 가상의 섬 유토피아를 초승달 모양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보름달을 선호한다. 중국 명절 중에 우리네 정월 대보름과 같은 원소절(元宵節)이 있다. 그들은 둥근 새해 첫 보름달을 바라보며 일 년 내내 모든 일이 원만해지기를 빈다. 중추절에도 보름달같이 생긴 월병(月餠)을 먹으면서 한 해 모든 일이 원만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그만큼 중국인은 둥근 보름달을 선호하는 반면 초승달은 처량한 존재로만 치부한다. 이태백은 자신의 시에 걸핏하면 보름달을 등장시켜 흥취를 돋우었으나 평생 유랑이나 했던 두보는 초승달로 쓸쓸한 신세의 자신을 그려내곤 했다. 그의 ‘밤에 좌씨의 장원에서 잔치하다(夜宴左氏莊)’라는 시에, ‘임풍섬월락 의로정금장(林風纖月落 衣露靜琴張)’이라는 첫 구의 뜻이 ‘숲 바람 불고 초승달 질 때 이슬에 옷 젖은 채 고요히 가야금을 타네’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하고 다니는 꼴 자체가 안쓰럽기만 하거늘 시에까지 초승달을 집어넣어 자신의 불우함을 완판하고 있다.     


한국인의 초승달은 어떨까? 한국인 역시 명절에 보름달 바라보며 풍년 풍요를 기리지만 실은 초승달을 더 쳐 준다고 봐야 한다. 한국인의 조상들과 빈번히 교류하며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투르크족이 초승달을 풍요의 상징으로 삼은 것처럼 한국인 역시 초승달을 같은 상징으로 여겼다. 그 증빙은 지금으로부터 천오백 년 전에 등장한다. 백제가 망하기 직전인 660년, 사비성에서는 밤이면 밤마다 귀신이 돌아다니며 “백제는 이제 망한다!”를 외쳤다고 한다. 화가 난 의자왕의 명을 받든 군사들이 밤에 출동하여 귀신을 쫓자 도망치던 귀신이 어느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구덩이를 팠더니 거북이가 나왔고 거북이 등에 이런 문구가 새겨있었다. ‘백제동월윤 신라여월신(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곧 ‘백제는 작아지는 달이 될 것이고 신라는 커지는 달이 된다.’로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번영을 말한 것이다. 그 문구대로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가 삼국을 제패한 후 천년 역사까지 번영했으니 한국인이 초승달에 두는 의미가 그로써 확연해지는 것이다.                                                

초승달 아래에서 한국인은 남녀의 은밀한 정을 피워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그림에서 애정행각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살리고 있는 것이 초승달이다. 벌건 대낮처럼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는 은밀하고 가슴 콩닥거리는 감정, 천년이 가도 생길 리 없다. 보름달보다 덜 밝고 생긴 모양도 예쁜 초승달 밑에서는 손도 한번 슬쩍 잡아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다음 순서야 좌고우면에 특별한 합의 절차 따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중국 시인들이 처량하게 여긴 초승달이지만 한국 시인들에게는 멋진 시 소재가 되어 왔다. 조선 중기 때의 유명한 문인이요 좌의정까지 지냈던 심희수는 십 대 중반 나이에 유명한 걸 프렌드를 두었다. 일타홍이라는 기생이다. 일타홍은 당대 최고 여류 시인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이런 시를 지어내고 있다.

‘정정신월최분명 일편금광만고청 무한세간금야망 백년우락기인정(靜靜新月最分明 一片金光萬古淸 無限世間今夜望 百年憂樂幾人情). 맑은 밤하늘 초승달은 또렷도 한데, 한 줄기 달빛은 천년만년 맑았겠지. 무한한 세상에 오늘 밤 님과 함께 바라보니, 인생 즐거움과 슬픔은 몇 사람의 정일까.’. 일타홍이 병으로 죽기 전 연인 심희수를 그리워하며 남긴 유시로, 읽고 나서 무릎 내려치고 장탄식 흘리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국세를 보면 20세기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문화적으로 지구촌 선도국이요 군사 경제적으로도 강국이 되어 있다. 늘 오만방자하게만 굴던 중국도 이제는 한국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다. 최근 한미 정상이 만나 발표한 공동성명서에 저네에게 뼈 아픈 부분이 들어가 있음에도 보복이니 하는 언급을 주저하고 있다. 한국의 쿼드(QUAD) 가입이 눈앞에 아른거릴 뿐만 아니라 G7 정상회의에도 당당히 초청받는 한국의 위상 앞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한국에 두루 뒤처지는 소리를 열심히 내고 있고. 한국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예쁜 초승달처럼 길이 번영해 가고 있음에 그저 뿌듯할 뿐이다.       

        

20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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