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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서울 서대문 독립관에 위병을 세우자

세상을 여는 잡학

유럽인들은 해마다 11월이면 가슴에 개양귀비꽃을 달아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간 군인들을 추모한다. 1915년 캐나다군 중령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의관 존 맥크래이는 전쟁으로 죽어간 젊은 군인들을 추모하고자 <개양귀비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시를 발표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1918년 11월 11일 종전되자 영국과 영연방국가들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날을 영령기념일(Remembrance Day)로 정하고는 국민 모두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게 했다. 지금은 유럽 여러 나라도 이날을 기리면서 양귀비꽃을 조화로 쓴다. 미국의 영령기념일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이지만 조화는 같은 양귀비꽃이다.     

한국의 메모리얼 데이, 즉 현충일은 6월 6일이다. 이날이 무슨 특별한 날이어서 현충일로 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한국 전쟁이 6월에 있었음에 6월 중에서 현충일을 정한 듯하고, 날을 정하는 김에 기왕이면 6이 쌍으로 겹치는 날짜를 선택한 것 아닐까 싶다.


우리 조상들은 조선 시대 때부터 일종의 현충 의식을 치렀다. 여제(厲祭)라 하여 지금의 창의문 너머 위치한 북교(北郊) 제단에서 추모제를 행했는데 유족들로부터 제사 받지 못하는 동좌(東座) 여섯 위(位)의 무사귀신(無祀鬼神), 서좌(西座) 아홉 위(位)의 신원불명 무적귀신(無籍鬼神)들을 위로했다. 무사귀신은 주로 중범을 저지르고 처형당한 죄수들의 혼을 이르는 것이고 무적귀신은 전사자와 후손 없이 죽은 자들의 혼을 이른다. 이 무적귀신의 전사자에는 무명 군인들도 포함된다. 여제는 예조에서 사관(祀官)을 파견했고 한성부윤이 제관으로 의식에 참여했을 정도로 국가에서 신경을 많이 쓴 제사였다.

원래 여제는 중국 주나라에서 최초로 시행했다.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왕이 치러야 할 일곱 가지 제사인 칠사(七祀) 중에 선대 제왕 중에서 후손 없이 죽은 왕들을 위한 ‘태려(泰厲)’가 있었다. 제후와 사대부 역시 유사한 성격의 제사를 치렀으니 이를 ‘공려(公厲)’ 혹은 ‘족려(族厲)’라 했다. 여제가 명나라 때부터 칠사에서 독립하자 그즈음 새로 세워진 조선 정부도 이를 따랐다. 권근이 상주하자 태종은 아예 국조오례의에 포함하여 정부 차원의 제사를 치르도록 했다. 조선 여제는 중국 여제를 따른 것이어도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왕족이나 귀족 층이 아닌 일반 백성들을 제례 대상으로 삼았다. 이 여제를 두고 오늘날의 현충일 격으로 보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여제는 무명 군인들을 포함한 전사자를 제례 대상의 일부로만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여제보다 더 집중도 있게 전사자를 모시던 제사는 따로 있었다. 진주 정충단(旌忠壇)에서 임진왜란 당시에 죽은 사람들을 모셨고, 서울 장충단(奬忠壇)은 조선 말 을미사변으로 죽은 군인들을 모시던 곳이었으며, 고종은 봉상사(奉常司)라는 제례의식 전담 기구를 만들어 조선 팔도의 산천신(山川神)과 더불어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모시도록 했다. 이 정도가 우리네 현충 의식 양상에 갈음될 만하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 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을 추모하는 현충 시즌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6월이 되면 서울 대전의 국립현충원이나 천안 독립기념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등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곤 한다.

그에 반해 우리의 발길과 눈길이 유독 뜸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 시대 때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모화관(慕華館)이었던 것으로 갑오경장 이후 서재필 윤치호 등 독립협회 임원들이 독립관이라는 이름으로 고쳐 쓰면서 당시 일제의 침탈에 대항하고자 했던 독립활동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1996년 옛터에 다시 세워 지은 이 독립관에는 2021년 현재 독립순국선열 2,835 신위가 모셔져 있고, 해마다 순국선열의 날인 11월 17일에 <사단법인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에서 영령 추모제를 시행하고는 있으나 그 규모나 국민의 관심이 6월의 현충일 분위기와 너무도 차이가 있다. 우선 최근에 서훈받은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장소 협소라는 이유로 채 모셔지지 못하고 있음에 장소가 초라하다는 것도 그러려니와 어찌 서훈받은 분들만 순국선열로 모셔지는가를 따져야 한다. 독립관이니만큼 당연히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모두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말 항일투쟁에 나섰던 의병이 10만여 명이요, 만주 무장 항쟁 독립군 4만여 명, 삼일운동과 국내 항일 운동 1만여 명 등 근 15만 명을 훌쩍 넘길 정도다. 그러나 정부의 관점은 그저 기록상으로 확인되느냐 아니냐에만 있는 듯하다. 우리 조상들은 전국 곳곳에 제단을 쌓아 무명의 전사자들도 포함한 모든 혼령을 모셨건만 이 쓸쓸한 독립관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명용사 묘로는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와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무명용사 묘, 그리스 아테네 국회의사당 무명용사 묘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무명용사 묘를 지어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나라는 많다. 오래전 폴란드 바르샤바에 갔을 때 오그로드 샤스키(Ogród Saski) 공원을 방문한 적 있다. 공원 입구에는 1918년 조국 독립을 이끈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안쪽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원래 이곳은 샤스키 왕궁이 있던 곳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왕궁이 파괴되어 건물 회랑 일부만 남게 되자 회랑 기둥의 면면마다 무명용사들의 전투 기록을 새기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근엄한 위병을 세워 폴란드인의 숭고한 자주독립 의지를 굳세게 지키고 있다.                    


바르샤바 오그로드 샤스키(Ogród Saski) 공원내 무명용사 묘를 지키고 있는 위병들. 사진 최정철

      

서대문독립공원의 독립관. 사진 최정철


해외 무명용사 묘가 갖는 특징은 연중 위병을 세워두는 것이다. 기념일에만 반짝 엄숙했다가 돌아서면 잊고 마는 그런 우리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로 비교된다. 김구 이시영 김원봉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같이 당대 인물들만 독립에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분들의 지도력이야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만 무명 항일전사들의 희생 역시 숭고하게 기려야 한다. 6월 호국보훈의 대상은 한국 전쟁으로 숨져간 군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더 위대한 성전이었을 독립전쟁에서 꽃잎처럼 스러져간 무명 군인들까지 뜨겁게 품어야 한다. 차제에 독립관에 우리식의 위병을 세워 연중 교대식을 행하면서 조국 독립을 위해 산화해간 모든 선열을 함께 추모하고, 삼일절이나 현충일, 광복절, 순국선열의 날 등 기념일이 될 때마다 성대하게 추모 행사 치르는 것을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기를 바란다. 조국 독립을 위해 순국한 모든 선열에 대한 깊은 추모를 상시 유지함으로써 민족자주 의식과 교육적 가치도 높일 수 있고 성공적인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면 인근 영천시장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여가 될 것이다.     


‘밴드 왜건(Band Wagon) 현상’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영웅적 행동을 한 사람을 왜건 차에 태우고 거리 행진을 하면 연도 사람들이 꽃가루 날리며 환호하는 것으로 오직 영웅만 추앙하는 현상을 말한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어쩌면 왜건 차에 올라 있는 몇 명의 영웅에게만, 그것도 일 년에 겨우 하루 한 번만 꽃가루 날리고 있지는 않은지 엄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2021.6.21.


※ 개양귀비꽃은 아편의 재료를 내는 '양귀비꽃'과 다르다. 모양은 서로 비슷하나, 꽃대에 털이 많은 것이 개양귀비꽃이고 털이 없는 것이 양귀비꽃이다. 양귀비꽃 열매에 흠집을 내면 즙액이 나온다. 그것을 채취해서 말린 것이 아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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