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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한국인의 물놀이 유두(流頭)

세상을 여는 잡학


예부터 사람들은 물에 정화(淨化)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예수의 외가 쪽 먼 친척으로 예수보다 먼저 하나님의 명을 받아 태어난 요한은 유대인들을 요단강으로 불러 모아 물로 세례(洗禮)를 해주었다. 그의 세례는 사람을 물속에 넣었다가 건져주는 침례(浸禮)였다. 힌두교에서도 침례를 행하니 인도인들은 성스럽게 여기는 갠지스강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불교에서는 관정(灌頂)이라는 세례가 있다. 인도의 왕들이 즉위할 때 왕의 정수리에 바닷물을 부은 것을 불교에서 수용한 것으로, 일정 수행을 마친 승려에게 지혜의 물을 머리에 붓는다. 중국에는 상이계욕(上已禊浴)이라는 세례가 있다. 우리의 삼짇날인 음력 3월 3일을 중국인은 상이절(上已節)로 삼아 이날이 되면 계곡물을 찾아가 몸을 씻은 다음 액(厄)막이 제례를 행한다.      

7월(음력 6월)은 삼복(三伏)이 들어있는 일 년 중 가장 무더울 때이다. 날씨가 후텁지근하고 뜨거워지면 체력고갈이 따른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복날을 맞아 보양식을 먹는다. 그러나 보양식으로 기력 추스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액까지 물리쳐야 온전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대개 7월 중순 즈음에 음력 6월 6일 유두날이 든다. 한국인도 액을 물리는 데 물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물로 액을 물리치는 의식을 행했다. 그 의식이란 맑은 시내를 찾아가 목욕하는 것이다. 유두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들은 특히 동쪽을 향해 흐르는 물(東流水)을 좋아했다. 동(東)의 색은 청색이요 양기가 왕성하기에 그 물에 머리를 감아야(頭沐浴) 제대로 액을 없애고 길고 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은 것이다. 


13세기 초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 김극기가 쓴 『김거사집(金居士集)』에, “동도(東都. 경주)에서는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보다 조금 더 자세한 기록으로 조선 초에 만들어진 『고려사(高麗史)』 명종(明宗) 15년 조에는, “6월 병인(丙寅) 날에 시어사(侍御史) 두 사람이 환관 최동수와 더불어 광진사(廣眞寺)에 모여 유두음(流頭飮)을 마련했다. 나라 풍속은 이달 15일에 동류수(東流水)에서 머리를 감아 불상(不祥)을 없애고 회음(會飮) 한다. 이것을 유두음이라 부른다.”가 보인다. 이외에도 조선 후기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동시대의 김이재가 전국의 읍지(邑誌)를 통합 편찬한 『중경지(中京志)』 풍속 조에도 유두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으며 김매순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고고려(古高麗)의 유두 풍속까지 언급하고 있음을 볼 때, 시행 날짜가 지금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모두 유두를 말하고 있기에 유두는 최소한 삼국시대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세시 풍속으로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유두 무렵에는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문다. 그래서 유두날이 되면 사람들은 먼저 마을 공동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조상에게 갓 수확한 과일과 정갈한 음식으로 제사를 올린다. 제사상에 오르는 것들을 보면 유두면, 건단(乾團), 수단(水團), 상화병(霜花餠), 연병(連餠)에 피, 조, 벼, 콩, 참외, 오이, 수박 등이 있다. 농가에서는 들에 나아가 농사 신에게 고사를 따로 올렸다.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길게 생긴 참외나 생선 등으로 고사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고사를 마치면 일일이 나누어 낸 고사 음식을 각자의 논밭에 묻어서 신기(神氣)를 북돋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것을 유두날에 햇작물을 바친다고 하여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했다. 유두 즈음은 모내기가 끝나고 김매기 할 때인 만큼 농가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덜 바쁘다. 그런 중에 유두라는 절기를 정해 시원한 물을 찾아가 몸을 씻는 유감(有感)으로 액막이도 하고 다가올 무더위에의 마음 다짐을 할 뿐 아니라, 봄 햇작물로 조상과 농사 신에게 제사를 올려 가을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고취한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대처의 묵객 문사들은 가까운 계곡이나 경치 좋은 곳의 정자를 찾아가 술과 음식을 즐기며 시를 짓는 등 여유 있는 하루를 즐겼다. 그러니 전국 팔도가 이날만큼은 일 년 중 가장 태평스럽게 지낸 것이다. 우리 민족의 지혜가 빚어낸 아름다운 세시(歲時)가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제주도의 유두 물놀이 장면. 사진 제주시청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유두 물놀이가 왕성했던 모양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에서 서울의 정릉 계곡, 광주 무등산의 물통 폭포, 제주도 한라산의 성판봉(城坂峰) 폭포를 꼽고 있으나 이곳은 여성 전용 장소였다. 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월탄 박종화의 소설 <금삼(錦衫)의 피>에 삽화를 그려 넣었던 화가 이승만은 자신이 정리한 『생활세시기(生活歲時記)』에서 서울의 이름있는 유두 장소를 지금은 복개된 터 위에 영천시장이 들어서 있는 약수가 흐르던 서대문 악박골, 사직단의 황학정(黃鶴亭. 활터) 부근, 서울 동쪽의 낙산 아래 등으로 꼽고 있다.     


한국인의 유두 물놀이가 풍속형이라면 동남아시아의 물놀이는 종교 성향이 강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국의 쏭크란(움직인다) 축제는 불교 관정 의식이 태국 민간에 퍼져 태국화 된 세례 의식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태국인이 행하는 쏭크란 형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태국력으로 4월 중순에 드는 새해 첫날이 되면 가정마다 우선 집안 어른에게 축원 덕담과 세례를 올리고 가족끼리도 같은 세례를 행한다. 집에서의 세례가 마쳐지면 사람들은 가까운 절을 찾아가 부처상~승려~원로 순으로 세례를 올린다. 그로써 종교의식과 공동체 의식 다지기가 훌륭히 마쳐지면 이제 거리로 뛰쳐나가 본격적인 물놀이를 벌인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거리에 난입하여 넋이야 있건 없건 물총을 쏘아대네, 바가지로 물을 끼얹네 하며 놀자판부터 벌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네들의 전통을 정확하게 준수하고 나서 놀더래도 노는 문화적 힘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기에 행해지는 유사한 물놀이로 미얀마에는 띤잔(변화)이 있다. 라오스에는 삐마이(새해)가 있는데 올해는 국민이 군부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있느라 물놀이도 즐기지 못한 채 넘긴 듯하다. 중국 운남성에도 포수이지에(潑水節)가 있으나 이것은 운남성 소수민족인 태족(泰族), 즉 태국 민족의 동족이 행하는 것이기에 온전한 중국 문화로 보기에는 그렇고 태국 쏭크란의 동생뻘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캄보디아에는 11월에 행하는 본옴뚝(노를 젓는 명절)이 있다. 십여 년 전부터 한국에도 쏭크란을 복사한 물 축제가 여기저기 시행되기 시작했다. 종교적 의미까지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으나 물이 갖는 정화의 의미는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없고 그저 한바탕 유희에 불과하다는 것이 퍽 아쉽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은 유두 세시에 대한 개념, 그리고 기억을 잃었다. 그저 여름이 되면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가 시원함만 즐기려 한다. 쏭크란식 물 축제나 계곡이나 바다 등에서의 시원한 물놀이도 좋으나 물이 갖는 정화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감사하며 풍류를 즐기는, 그런 미덕이 넘치는 유두 세시가 전국적으로 복원되었으면 한다.          

                                              

202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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