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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한국인의 가무악 DNA

세상을 여는 잡학

      

유비가 손권의 오나라를 정복하고자 오와 가까운 대방 백제(2세기 말 무렵 구태가 세운 현재 산둥반도 일대의 중원 백제)를 먼저 쳐 오의 뒷심을 빼겠다고 하자 제갈공명이 말린다. “동이는 세시가 강해 쉽게 취할 수 없습니다.” 동이족은 세시마다 성대한 잔치를 즐기기에 그들의 공동체 결속력이 높은 것이요, 공동체 결속이 높으면 힘으로 제압하기 어려움을 공명은 갈파한 것이다. 이런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중국인들은 일찍이 동이 세시의 힘을 경계했다. 그 힘은 무엇에서 나왔을까? 바로 가무악이다.


고고려(古高麗) 무용총 고분 벽화

                                                          

유불선(儒佛仙)의 조화로 접화군생(接化群生) 풍류도를 구가하던 신라 화랑들의 춤 솜씨는 대단했던 모양으로 신라 왕실은 궁내 잔치를 열 때마다 어김없이 화랑들을 초청하여 현악기와 대금 중금 소금의 연주에 맞춰 추는 그들의 춤에 탄성을 내며 잔치의 흥을 돋우곤 했다 한다. 화랑들이 춤을 잘 춘 것은 풍류도 연마를 위한 선교 커리큘럼 중 하나로 춤을 채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맥궁을 쏘는 한국인은 화살을 날린 후 관중이 되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윽한 자태로 어깨춤을 추며 기쁨을 누린다. 화랑 풍류도의 흔적이다. 

고고려(古高麗)인의 가무악을 무용총에서 살펴보면 창자(唱者)와 연주자, 무용수가 어울려 연희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고려의 연희자들은 주로 정복지에서 차출한 여성들을 수련시켜 운영했기에 대단한 전문가 수준까지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백제의 가무악으로는 일찍이 공명이 경계한 것의 실체는 알 수 없고, 그 대신 6세기 초 미마지가 중원 오나라(위촉오의 오와 동명이국)에서 수입한 기악(伎樂)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인의 산대놀이와 7세기 초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일부 전승되고 있는 것을 토대로 살펴보면 가면극이 중심이 되어 연주와 춤, 노래가 어우러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에 들어서는 왕립기관인 대악서(大樂署), 관현방(管絃坊), 교방(敎坊) 등이 세워져 궁중 가무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민간에도 교방 가무악의 일부가 흘러들어 성행하게 된다. 조선 역시 이런 흐름을 계승하니 조선 건국 초기 세종 임금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속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창작 가무악을 개발했고, 19세기 초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21세 나이로 죽기 전 무려 23개의 창작 궁중정재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민간에서도 다양한 춤이 만들어져 그중 일부는 엄선되어 궁중정재에 포함되는 사례도 있었다. 오늘날 재연되는 조선 시대의 궁중정재를 보면 높은 예술성을 품고 있음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의 옛 가무악은 최상의 공연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래만 따로 뽑아서 봐도 그 전통이 유구하다. 상고시대 때의 노래는 대체로 종교의식 때 무당이 부르는 소리가 주종이었을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악기의 등장으로 종교의식 노래가 아닌 일상의 감정을 부른 노래들이 등장했다. 황조가나 도솔가 정읍사가 그에 해당한다. 고려 시대 때에는 궁중 연희에서 정악이 불리었다면 민간에서는 가요가 불리었다. 쌍화점이 대표적 고려 가요다. 


조선 시대 때 궁중에서는 천상의 소리라 할 가곡이 불리었고 민간 상류층이나 선비들은 가사와 시조를 즐겼다. 일반 백성들이 부르던 민요는 팔도 전역마다 각각의 소리로 발전했다. 북방 인의 애환이 물씬 느껴지는 함경도 소리와 강원도 경상도 소리를 묶어 동부 민요라 했고, 남쪽으로는 제주 소리와 남도 소리가 있었으며 한반도 중심에는 경기민요가 있었다. 평안도 사람들의 호방함이 드러나는 시원한 서도소리에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들을 수 있는 멜리스마 창법이 들어가 있어 인류 문화의 이동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민간의 가무악 장면. 김홍도 풍속화

                       

17세기부터 생겨났다는 판소리는 원래 무당의 사설 풀이와 병자호란 이후 궁궐에서 쫓겨난 떠돌이 광대들이 연희 때 관객을 향해 들려주던 이야기에서 근본을 헤아릴 수 있다. 판소리는 19세기 들면서 전기 8명창과 후기 8명창이 등장하여 세상을 들끓게 했는가 하면, 송흥록의 동편제와 박유전의 서편제, 염달제의 중고제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웃기면서 조선 말 최고의 대중문화가 되었다.

그랬던 한국인의 전통 가무악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지리멸렬해졌고, 광복 후부터 80년대까지는 서양 가무악에 밀려 그 존재감이 더욱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스러져가던 우리의 전통 가무악이 기적적으로 재활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바로 1993년의 영화 <서편제>의 등장이다. 이 영화로 판소리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났다. 여기에 고맙게도 감초 역할을 해준 것이 있다. 김수철이 만든 영화 배경 음악이 그 주인공으로, 새로운 감각의 국악 OST에 온 국민이 감동하고 젖어 들었다. 그로써 판소리에 대한 재조명을 뛰어넘어 판소리를 포함한 국악 전반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일약 증폭된 것이다. 

영화 <서편제>는 국악 발전에의 이정표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전통 가무악에 새로운 불을 붙인 불씨로도 볼 수 있다. 퓨전과 크로스 오버를 만난 신 국악이 분주히 등장했고 창작 한국 춤도 대거 출현했다. 신 국악과 창작 한국 춤의 연동도 활발히 일어났다. 그런 식으로 전통을 기반 삼아 찾아낸 새로운 가능성은 전통 가무악이 거듭 성장할 수 있는 데에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고, 그 자양분을 받은 수많은 젊은 가무악인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으로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를 선도하며 큰 환호를 받았다. 씽씽 밴드, 악단 광칠, 이날치 밴드, 엠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등이 21세기판 한국 전통 가무악의 힘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존재라 할 것이다. 

K팝 아이돌 그룹의 시조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젊은이들을 단번에 휘어잡자 그동안 여과 없이 한국인에게 녹아든 서양 팝 가무악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현상도 서편제 등장 즈음에 함께 일어났다. 1990년대의 한반도 땅에 새로운 문화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음에 전통 가무악이 변화하고 심지어 영화마저 환골탈태하고 있는지라 팝 가무악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조 변화에 맞춰 자력 생존의 길을 개척해낸 한국의 팝 가무악은 마침내 정체성을 갖추었고 21세기가 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그 흐름이 오늘날 BTS로까지 이어진 것이고.      


7월 14일 자 인터넷판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K팝의 성공 요인 분석 기사를 다루면서 BTS의 신곡 <버터>가 빌보드 핫100에서 7주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것에 ‘뇌리에 각인되는 노래와 포인트 안무’가 중심 요인임을 말하고 있다. 기사는 블랙핑크와 싸이,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등의 성공 요인 역시 같은 관점으로 비추고 있다. 팝 음악 본향인 미국에서 세계 유력 언론사를 통해 이들의 가무악을 한때의 유행이 아닌 진정한 실력으로 인정하고 있음이다.      


한국인은 가무악으로 천제를 열어 신인합일(神人合一)을 구현했고 일상에서는 공동체 결속을 도모한 가무악 민족이다. 오늘날에는 K팝 아이돌 그룹의 가무악이 전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옛것을 돌아보고 오늘을 살펴보면 한국인에게는 수천 년을 통해 탁월한 가무악 DNA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20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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