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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한국의 도깨비

세상을 여는 잡학

     

도깨비는 신라 시대 때 목수의 신, 생산의 신으로 모셔지던 존재로 유쾌하고 비범한 재주를 갖춘 한국의 전통 요괴다. 신라인들이 길달과 처용을 도깨비로 묘사한 것은 도깨비 문화를 일상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으로, 원래 먼 옛날 신라 땅에서 숲의 정령인 목신(木神)으로 모셔진 도깨비는 사람들이 점차 숲 근처에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며 살자 아예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숲의 나무를 내어주어 집을 짓도록 해주는 등 착한 일을 베풀며 공생했던 존재였다. 도깨비의 어원을 보면 조선 시대 세종 때의 『석보상절(釋譜詳節)』에, ‘돗가비로 인간형 요괴다. 인간적이나 인간은 아닌 신비한 존재다.’로 설명하고 하고 있다.      


고려가 들어서면서 민간 일대에 도교 사상이 많이 퍼졌다. 때에 맞춰 중국 요괴가 도교를 따라 한반도 땅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한국 도깨비가 중국 요괴와 윗자리를 놓고 한 판 붙게 되나 아쉽게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중국식 인해전술, 아니 괴해전술(傀海戰術)에 단기필마로 맞서야 했던 한반도 도깨비가 여지없이 패한 것이다. 그 중국 요괴는 곧 이매망량(魑魅魍魎)이다. 전한 시대에 편찬되어 잡학 관련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과 쌍벽을 이룬 『회남자(淮南子)』에 망량 명칭이 보일 정도로 오래전부터 중국의 통뼈 요괴 가문 출신이었던 이매망량은 이름부터가 산 요괴, 집 요괴, 나무 요괴, 돌 요괴 등을 두루 아우르며 오만 요괴의 통칭이 되고 있다. 이런 이매망량이 한국 도깨비를 무릎 꿇리고는 요괴라는 명칭을 슬그머니 버리고는 도깨비로 개명한다. 즉 원주민이었던 한국 도깨비로부터 이름을 빼앗은 것이다. 

고려 시대 때 활개 치던 이매망량은 유교의 나라 조선이 들어서면서 유림에 의해 퇴출당하고 이에 은인자중하던 한국 도깨비가 부활하지만, 그간의 세월이 유장했는지 한국 도깨비는 이제 요괴보다 한 수 아래인 잡귀로 취급받게 된다. 그뿐 아니라 한때 사람들과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던 존재감마저 박탈당한 채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도망 다니는 나약한 존재로 급전직하하고 만다.

조선 개국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 이매망량은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이 땅에 흔적을 남겼다. 이매망량은 치매망량으로도 불린다. 리(魑)의 다른 발음이 ‘치’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늙으면 자칫 치매에 걸린다. 이 치매가 치매망량에서 나온 말로, 늙어 정신이 흐려져 도깨비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늙어 망령든다는 말도 있다. 이때의 망령(妄靈) 역시 치매망량에서 나온 명칭으로 한자까지 바뀌어 생겨난 말이다. 늙으면 그저 중국 요괴 되지 않도록 각별 조심해야 할 것이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은 자주 한국 도깨비를 일본 도깨비와 혼동하곤 한다. 한국 도깨비와 같은 존재로 일본에는 ‘오니’라는 이름의 도깨비가 있다. ‘한야’라고도 부르는 오니는 어디를 봐도 한국 도깨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요 다른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둘의 생김새를 비교할 때 한국 도깨비를 보면 이렇다. 우선 머리에 뿔이 없다. 석보상절의 돗가비 명칭을 독각귀(獨角鬼)로 풀어 정수리에 뿔 하나가 난 요괴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독각귀는 그저 한자 음차 표기일 뿐이다. ‘돗’은 옛말로 ‘불’ 혹은 ‘씨앗’이라고 한다. 따라서 ‘돗’은 풍요를 의미한다. 

여기서 도깨비 원조 격으로 치우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치우의 머리에는 분명 뿔이 두 개 솟아 있고 생김새도 무섭다며 도깨비의 원래 모습으로 믿고 있다. 미안하지만 치우는 전쟁 신이지 도깨비가 아니다. 전쟁의 신이어야 하기에 생김새부터 무서운 것이고 두 개의 뿔 역시 실제 치우 이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투 용품인 투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치우 도깨비 운운은 그만해야 한다. 또 도깨비는 바지저고리 차림에 패랭이를 쓰고 다니고 온몸에 털이 많아 냄새가 난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도깨비의 결정적 아이템인 나무 방망이다. 이 나무 방망이로 별의별 것들을 만들기에 먼 옛날 이 땅의 목수들이 저네들의 신으로 여긴 것이다. 

도깨비는 일견 어디인가 부족한 어벙한 존재이기도 하다. 아마도 조선 시대 때부터 그런 모습이 얹어진 듯하다. 도깨비는 사람과 내기 거는 것을 좋아하는데 억지 내기가 아니라 공평한 조건으로 내기를 거는 우직함을 보인다. 그리고는 번번이 사람에게 지고 만다. 아마 심성이 착하여 그럴 것이겠다 싶지만 그런 도깨비도 때로는 만만찮게 사람을 골려댄다. 주로 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습한 장난을 쳐서 흠씬 놀라게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중국 송나라의 숲의 요정으로 달의 기운을 받아 영원히 산다는 정괴(精怪)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한국 도깨비. 그림 나무위키

             

일본 오니. 그림 www.yahoo.co.jp


이제 일본 오니 차례다. 우선 이들의 머리에는 뿔 두 개가 보란 듯이 솟아 있다. 게다가 시뻘건 피부를 가지기에 봐서 혐오감만 들 뿐이다. 차림새를 보면 동물 가죽 치마로 사타구니만 가리고 있다. 흉악한 생김새에 살벌한 쇠몽둥이를 들고 다닌다. 이 쇠몽둥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용도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파괴하는 용도로만 쓰인다. 서양인들의 관점도 이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도깨비를 영어로 고블린(Goblin), 즉 생산자이자 장난꾼인 요정으로 번역한다. 같은 종족으로 페어리(Fairy), 트롤(Troll), 지니(Genie) 급으로도 묘사하면서 친근감을 강조하는 반면에, 일본 오니는 데몬(Demon), 악귀로만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도깨비는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요괴이고, 일본 오니는 인간에게 해악만 주는 악한 요괴로 짚고 있다.     


생산의 신이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착한 요괴 한국 도깨비와 달리 살생과 파괴만 일삼는 일본 오니가 한반도에 등장한 시점은 바로 일제 강점기 때다. 그렇게 이 땅에 자리 잡은 오니는 한국이 광복한 후에도 염치머리 없이 저네들 연고지로 퇴거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미적대고 있다. 그렇기에 많은 한국인이 이 오니를 한국 도깨비로 오해하고 있는 까닭에 심지어 한국의 상징이요 한반도의 심장일 경복궁 터에서 한국문화재재단이 궁중문화축전을 치를 때 일본 오니를 나례(儺禮) 의식 재연에 등장시키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고통스러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도쿄올림픽이 강행 개막되었다. 무관중으로 쓸쓸하게 치러지던 개막식 공연 중에 그나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했던 해외 선수들이 나무 씨앗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씨앗들을 홋카이도 땅에 심어 지금까지 성장시킨 나무들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 공연 대도구로 등장한 것인데, 스타디움 그라운드에서 정체 모를 여인의 지휘에 목수들이 나무 방망이로 목재를 다듬어 오륜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만약 한국의 옛 신라 땅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어 그 개막식에서 목수들의 신인 한국 도깨비가 목수들을 부려 나무 방망이로 오륜기를 만들어내게 한다면 한국의 또 다른 이미지, 일본 오니를 능가하는 선한 한국 도깨비가 전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을 것이겠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에 일본 올림픽 개막식 장면에 한국 도깨비 타령을 해 보는 것이다. 

타령하는 김에, 아무쪼록 올림픽이 무사하게 마쳐지고 무엇보다도 한국 선수들이 좋은 결실을 내도록 생산과 풍요의 요괴 한국 도깨비가 좋은 기운을 발휘해 주길 기대해 본다.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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