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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열대야를 식혀줄 한국의 대표 요괴 5선

세상을 여는 잡학

 

육체 없이 혼으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정령(精靈)이고 우리는 이것을 요괴라 한다. 도깨비는 장구한 세월을 타며 신(神)에서 한때 잡귀로까지 그 지위가 곤두박질쳤으나 대체로 준 인간급으로 인정받았던 존재였던 것에 비해 도깨비 외의 요괴들은 그저 잡귀급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열대야에 시달려야 하는 무더운 여름밤이 이어지는 때인지라 이런 때에는 괴기야담(怪奇野談)이 제맛인즉 그 주인공인 대표적 요괴들을 몇 소개해 보겠다.      


먼 고대 시대를 대표하는 요괴로 두두리(豆豆里)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된 도화녀 비형랑 설화를 보면 당시 귀신으로 여겨지던 사량부(沙梁部. 경북 상주지역) 출신 도화녀가 진지왕과 합궁하여 비형랑을 낳고, 이 비형랑이 성장하여서는 귀신을 호령했으니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따른다. 비형랑이 경주 신원사 북쪽(경주 월남리 일대)을 흐르던 도랑에 다리를 놓을 생각으로 어느 날 귀신들을 집합시키고는 하룻밤 만에 다리를 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것이 귀교(鬼橋)로, 비형랑이 평소 두두리를 모셨다 하여 그때부터 경주 사람들은 두두리를 크게 모셨다고 한다. 


고려에 이르러서 중국 요괴 집단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들어와 토종요괴 도깨비를 무릎 꿇리고 한반도 땅 요괴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와중에 두두리는 경주 땅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런 두두리에 의지하여 권력을 추구했던 인물이 무신정권 때의 이의민이다. 베트남 리(李) 왕조 출신 망명객인 이양혼(정선 이씨 시조) 왕자의 가까운 직계 후손으로 경주를 근거지 삼고 있던 이의민은 자신과 동향인 두두리를 끔찍이 모셨다. 그는 무신정권이 한창 가도를 달리고 있을 즈음 자신의 개성 집에 두두리를 봉안하고 섬겼다. 그래서인지 그는 집권자 경대승이 병사하자 권력을 휘어잡는 데에 성공한다. 그렇게 만사 잘 풀리며 호호탕탕 살고 있던 어느 날 신당의 두두리가 대성통곡하는 일이 생겼다. 이의민이 연유를 묻자 두두리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너의 집을 잘 수호해왔으나 하늘이 이제 재앙을 내리기로 했다. 그러니 더는 너를 보호해 줄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나도 이제 의지할 곳이 없어지기에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다.” 그 직후 이의민은 최충헌에게 참살당하고 두두리가 모셔진 사당은 불에 타 없어졌다. 이의민의 12년 집권이 무너지면서 두두리가 이 땅에서 사라진 것으로, 귀신급으로 인정받아 궁중정재 형태로 생존했던 경주의 처용 신과 고려 왕실과 조선 왕실의 국가 제사를 받으며 생존한 나주의 금성산 산신에 비해 초라한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두두리 토우.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거구귀(조선감로탱화)


두억시니(頭抑神)는 인도 귀신 야차가 통일신라 시대 때 한반도에 들어와 변형된 요괴다. 한때는 도깨비 집단의 수장 자리에도 올랐던 이 요괴는 힘이 장사여서 괴력난신(怪力亂神) 급에 해당한다. 이 요괴는 사람의 머리를 짓눌러 죽인 악인이 죽어 요괴가 된 존재로 요괴가 되어서도 사람을 잡아먹는 악괴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사람이 정신 이상해졌을 때 두억시니에게 씌워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두억시니에 머리 명칭이 들어가는 이유가 설명된다. 조선 후기 야담집 『천예록(天倪錄)』에 기괴한 얘기가 담겨있다. “어느 양반댁에 경사가 있어 친척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데 대청마루 앞마당에 더벅머리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정체를 몰라 내쫓으려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몽둥이로 내려쳐도 움직이지 않자 사람들은 그제야 사람이 아님을 알고 놀라 젊은이 앞에 절을 올리며 빌자 젊은이는 빙긋이 웃고는 집을 떠났다. 집을 나서자 젊은이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고, 다음날부터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병들어 죽어갔다. 그 젊은이가 바로 두억시니였다.” 어떤 무서운 초자연적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두억시니의 짓으로 여긴다. 그만큼 무서운 요괴가 두억시니다. 악한 짓만 한다는 두억시니는 일견 외로움을 타는 요괴인 모양이다. 자신을 잘 모시는 사람에게는 아이를 얻게 해주고 재물도 얻게 해준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러니 어쩌다 두억시니를 만나면 앉혀놓고 음식 호궤부터 시켜주면서 친하게 지내기를 권한다.      


대략 고려 중엽 이후 생겨났을 것으로 보이는 거구귀(巨口鬼)는 윗입술이 하늘에 닿고 아랫입술은 땅에 닿을 정도로 입이 큰 요괴다. 평소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비범한 사람을 만나면 어린 청의동자로 변신하여 그 사람을 보좌하고 수호해준다. 1926년 편찬된 책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이 거구귀에 대한 전설이 실려있다. 조선 세종 임금 때 젊은 신숙주가 경복궁에서 치르는 과거에 응하고자 궁궐에 이르렀다. 이때 궁궐 문 앞에 거구귀가 자신의 큰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 버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나 신숙주만은 그 거구귀를 알아보고는 버티고 선 채 노려보았다. 그러자 웬 청의동자가 나타나, “저 괴물은 내가 조화를 부려 만들었으니 공은 잘 거두시오.” 신숙주는 거구귀와 함께 입궁하여 시험을 치르니 진사 합격의 영광을 얻게 된다. 그 후 신숙주는 이 거구귀를 평생 곁에 두고 살았고 거구귀도 신숙주를 수호해주었다. 거구귀 덕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신숙주는 늙어 죽기 전 후손들에게 대대로 거구귀 제사를 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는 내용이다. 어쩌다 수상한 요괴를 만났을 때 일단 입 크기부터 잘 살펴보고 거구귀가 맞겠다 싶으면 무조건 노려볼 일이다. 청의동자가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로또복권 골백번 당첨 부럽지 않은 인생을 보장받는다.


어둑시니는 어두운 밤에 나타나는 요괴다. 고려 말 즈음 생겨나 조선 시대에 존재를 인정받은 요괴로 주로 밤에 활동하면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짓궂은 요괴다. 어둑시니가 나타났을 때의 주의 사항이 있다. 한쪽이 이상하게 어두컴컴하다 싶다면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 눈길을 받지 못하면 어둑시니는 저 스스로 사라진다. 그러나 두려움에 쫓겨 어쩌다 눈길을 주면 어둑시니는 사람의 두려움을 먹는 것으로 자신의 어두운 몸집을 크게 불린다. 그러고 나서는 쳐다보고 있던 사람을 와락 덮쳐 기절시킨다. 일종의 관종증 요괴다.

      

조선 성종 때 쓰인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유엽화(遊獵火)라는 요괴가 보인다. 원래 유엽화는 몰이 사냥을 할 때 쓰는 횃불인 것을 요괴가 이 횃불 형상으로 돌아다니기에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 이 요괴는 밤에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어이없게도 이 횃불 요괴들이 사람을 몰이 사냥하는 셈이 된다. 주로 외진 길에 나타나곤 하지만 표적 하나 정해지면 집에까지 쫓아가 그 집 그릇들을 깨는 등 심한 장난으로 집안사람을 기겁하게 만든다. 사람 목숨은 해치지 않으나 어쨌든 만나면 오싹한 요괴이니 밤에 외진 길 함부로 나다닐 일 아니다. 어쩌다 집에 그릇이 저 스스로 깨지면 유엽화가 밖에서 따라온 것으로 여겨도 된다.     


이 밖에도 한반도 땅에는 야광귀, 새타니, 그슨새, 장자마리, 어둑시니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요괴들이 득시글거린다. 요괴는 인간의 공포 혹은 기원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신에게 의탁하는 것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동서 막론, 이런저런 상상으로 별의별 요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요괴는 매사 두려워하는 나약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법이다.

                               

20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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