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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한국인의 보양식은 따로 있다

세상을 여는 잡학

엊그제로 입추를 보냈고 내일은 말복이다. 이즈음이라 하여 한여름 무더위가 꺾여지는 것은 아니니 적어도 8월 말까지는 끈질긴 고온 고습에 시달려야 한다. 한국인은 올해도 그러고 있을 것이 해마다 여름만 되면 보양식에 관심 집중시킨다. 계삼구칠우망흑월(鷄三狗七牛望黑月)이라 하여 닭을 먹어 3일, 개를 먹어 7일, 소를 먹어 보름, 흑어(가물치)를 먹어 한 달 효과를 보려고 한다.     


또 한국 남자들이 별도로 선호하는 정력 강화 음식 역시 보양식 계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남자들이란 동서고금 민족 구분을 떠나 정력 강화 음식에 눈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력 강화 음식에 대한 한국 남자들의 투철한 의지는 맹렬한 것이, 혹 두 번째 가라는 소리라도 듣게 되면 조상님 전 대죄를 짓는 격이 된다. 한국 남자들이 오매불망 염원하는 대표적인 꿈의 정력 강화 음식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략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물 뱀장어 즙이다. 뱀장어를 잡아 마늘 넣고 푹 고아서 베로 즙을 짜내어 마신다. 이 즙을 마시면 마을 일대 전봇대들이 남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국전력이 눈에 쌍심지 켜고 반대할 음식이다. 둘째, 참새 죽이 있다. 참새 세 마리 정도를 잡아 뼈를 발라낸 후 생강 조금에 찹쌀 반 종발 정도 넣어 함께 끓여낸다. 가을 참새 죽이 효능 높다고 하는 것은 참새가 농사지은 쌀을 부지런히 주워 먹고 살을 올리는 때가 가을 무렵이라서 그렇게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 때 궁궐에서는 가을만 되면 궁녀들이 거의 매일 아침 한 명씩 초주검 되어 궁궐 밖으로 실려 나오곤 했다고 한다. 참새 죽을 시도 때도 없이 먹고 기력 왕창 끌어올린 임금이 매일같이 궁녀를 뽑아 화끈한 밤을 보냈기에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으니, 이 참새 죽으로 인해 궁녀들이 가을만 되면 이 악물고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다는 애사가 전해지고 있음이다. 셋째는 돼지코 탕이다. 돼지코를 베어내어 탕을 낸 것으로 중원의 명나라 신종 임금이 자신의 방중술을 이 음식으로 완결했다고 하여 우리네 조상님들도 매우 선호했다고 한다. 돼지코 부위를 썰어서 새우젓 반 숟갈 정도 넣고 끓여내면 된다. 넷째, 메밀국수다. 메밀 면에 조갯살을 넣어 끓여내는 담백한 음식이다. 여기에 순무 김치를 곁들이면 궁합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헌종 임금과 철종 임금이 이 메밀국수를 상시로 먹었기에 켜켜이 쌓은 정력이 대단했을 것이요, 그것으로 밤이면 밤마다 내공 얹은 구들 초식을 발휘하여 궁녀들을 혼절시키곤 했다 한다. 그러나 헌종은 스물세 살로, 그 뒤를 이은 철종 임금은 서른두 살로 단명한 이유가 바로 지나친 방사에 의한 것이라 하니 모름지기 정력 강화 음식을 먹었어도 적당히 힘을 써야 할 것이요, 궁극적으로 모든 보양식은 내적 운기 북돋는 데에 쓰는 것이 일찌감치 염라국 문고리 잡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무 생강 나물이다. 가을 무를 채 썰어서 생강을 조금 얹어 기름에 달달 볶아내면 된다. 해마다 가을에 맞춰 이것을 상식한 조상님들은 슬하 자식 평균 열다섯 명에 수명 칠십을 너끈히 돌파하곤 했다고 한다. 여섯째, 수수떡이다. 수수팥떡이나 찰수수 부꾸미는 중년 넘긴 남자에게 평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음식이다. 일곱째, 볶은 개미다. 21세기 들어서 인류의 미래 대안 먹거리로 곤충이 조명받고 있다. 조상님들이 일찌감치 상식했던 이 볶은 개미를 보면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개미에게는 단백질뿐 아니라 아연, 아미노산, 망간, 구리와 같은 원소들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 아연 성분이 특히 많이 포함되는데 아연은 생명의 불꽃이라 하여 신체 내부에서 효소를 합성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그래서 정력 강화 음식 대열에 충분히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평소 몸 상태의 기본을 갖추게 해주는 진정한 보양식을 따로 두고 있다. 바로 콩이다. 유럽의 주곡(主穀)은 밀이고 동남아시아의 주곡이 쌀인 것에 비해 한반도의 주곡은 콩이다. 한반도 땅 남쪽으로는 쌀농사가 가능하나 절반 위쪽으로는 쌀농사가 어렵다. 고대의 한반도와 만주 땅은 목축이 어려웠기에 수렵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다가 점차 정주 농경사회를 이루면서는 주로 콩을 심어 먹었다. 콩 재배의 기원은 학자들의 조사로 5천 년 전인 신석기 시대부터였음이 밝혀졌다. 북한의 회령 등 고조선 유적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것은 대략 기원전 1천 3백여 년 경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청동기 유물과 함께 나온 것이 바로 콩, 팥, 기장이었다고 한다. 20세기 초 미국이 전 세계 식량 종자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조사단이 한반도와 만주 땅에서 몇 개월 동안 전 세계 야생 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3천여 야생 변이종 콩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대개 식물의 원산지를 규정할 때 그 지역에서 변이종이 얼마나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는가로 판단하기에 학자들은 한반도와 만주 땅을 콩 원산지로 자연스럽게 지목한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인은 예부터 콩을 많이 섭취해 왔고 콩 음식의 정수라 할 세계적인 발효음식인 된장과 간장까지 두고 있음이다. 다만 오늘날 대형 제조회사에 만들어내는 시중 판매용 된장 간장은 어떤 기능도 찾기 힘든 향료 개념에 머물 뿐이다. 식용유용으로 기름을 추출하기 위해 압축한 콩, 즉 양분 빠진 콩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땅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성분을 품고 있는 콩은 한국인만의 보양식임이 분명할 것이요, 그로써 한국인이 수천 년을 잇는 장구한 세월 동안 싱싱하게 종족을 유지해 내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콩 덕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눈여겨볼 콩이 하나 더 있다. 평소에 하찮게 여길 정도로 흔한 콩나물이 그 주인공이다. 콩나물에 무슨 영양가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모르는 말씀이다. 콩나물에는 숙취 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산(Asparaginic Acid)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단백질 성분인 이소플라본(Isoflavon)은 여성 호르몬 활성화에 매우 좋다. 폐경 전이나 갱년기 우울증에 따른 생리 불순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단백질이다 보니 골다공증에도 훌륭한 예방 음식이 될 수 있다. 또 칼슘과 칼륨, 철 등의 미네랄 성분은 남녀노소 피로회복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변비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비타민 B, C가 풍부하여 면역력을 강화해 주어 감기를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기에 요즘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시대에 한몫해 낼 수 있다. 또 저열량 식자재인지라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콩나물 음식은 보양을 밑받침하는 훌륭한 건강 음식으로 볼 수 있으니 준(準) 보양식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콩나물은 세계적으로 한국인만 먹는 음식이다. 규슈나 오키나와 사람들도 콩나물을 먹으나 이곳들의 콩나물은 삼국시대 말 도래인, 고려의 삼별초 등이 건너가 재배해 먹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중국인이 먹는 것은 콩나물 아닌 숙주나물이고. 


한국인은 식약동원(食藥同原), 즉 음식과 약을 같은 뿌리로 여겨 약으로 치병하기 전에 음식으로 미리 예방하는 것을 상책으로 쳤다. 평소 부실한 몸에 보양식 먹는다고 갑자기 힘이 불끈 솟을 리는 없고 오히려 주화입마(走火入魔)로 몸을 더 망가뜨릴 수 있다. 일 년 내내 골골대다가 여름 한 철에만 반짝 보양식에 몰려들지 말고 평소에 기본 관리를 잘해야 할 것이다.         

                                                                            

20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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