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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인간의 가치를 외치는 보헤미안 랩소디 퀴어 축제

세상을 여는 잡학

1973년 어느 날 영국 어느 곳, 20세기를 대표하는 팝 음악의 대가가 자기를 찾아온 당돌한 애송이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애송이는 갓 데뷔한 그룹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였고, 그의 노래를 들어주던 대가는 1960년대 전 세계 대중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해산한 비틀스의 존 레넌이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오래전부터 전설이자 우상인 존 레넌을 만나 자신의 음악을 평가받고 싶어 했다. 몇 번의 퇴짜 끝에 마침내 그의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를 얻게 된 프레디 머큐리. 그때 그가 혼신을 바쳐 부른 노래는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그러나 노래를 다 듣고 난 존 레넌은 그것도 노래냐며 면박만 줄 뿐이었다. 

절치부심한 프레디 머큐리에 의해 1975년 퀸의 네 번째 정규앨범에 수록되어 세계적 명곡 반열에 오른 이 노래를 존 레넌은 왜 거부했을까? 노래 가사 때문이다. 한 소년이 동성애자 임을 고백한 후 핍박받는다는 내용의 노래. 그 노래에 혹여 동조라도 한다면 자기 역시 동성애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래에서 소년은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한탄하다가 엄마에게 ‘한 남자를 죽였음(Just killed a man)’을 고백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남성성’을 없앤 것이다. 소년은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고백함으로써 엄청난 고통에 빠진다. 사람들은 소년을 감옥에 잡아넣고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판당고(Fandango)나 춰대는 스카라무슈(Scaramouche)로 몰아세운다. 이탈리아 피에로 스카라무슈가 어찌 스페인의 민속춤 판당고를 잘 출 것인가? 어쭙잖은 짓을 한다는 비아냥이다. 소년은 사회적 관념이 내려치는 무시무시한 천둥과 번개에 몸을 떨면서 두 사람의 이름을 울부짖는다. 갈릴레오와 피가로다. 17세기 유럽 르네상스 문화의 꽃밭을 일구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교회의 갖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동설을 주장했다. 지구는 돈다는 지구의 ‘정체성’을 갈릴레오는 고수한 것이고, 소년은 갈릴레오와의 ‘정체성 고수’ 교감을 나누려고 피를 토하듯 그를 부른 것이다. 소년은 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하마터면 자신의 생모 마르첼리나와 결혼할 뻔한 사내인 피가로를 찾는다. 프레디 머큐리의 뛰어난 문학성이 돋보이는 대목으로, 피가로를 통해 생모와의 결혼을 위한 아들의 ‘Killed a man’을 연상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귀족 부인들을 현혹하는 시동(侍童) 케루비노가 갖는 은유성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케루비노 역은 전통적으로 메조소프라노가 남장(男裝)으로 맡는다. 따라서 케루비노에게는 애매한 성 정체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소년은 ‘남자를 죽여야 하는 남자’와 ‘성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여성’의 복합적 이미지가 깃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그 작품의 주인공인 피가로를 찾아야 했다. 소년은 곧 프레디 머큐리였고 동성애자였던 그는 이 노래로 커밍아웃한 것이다.                                           


크림트가 그린 사포. 사진 위키백과


기원전 7세기 여류 시인 사포는 많은 시를 후세에 전하는데 여제자와의 사랑을 노래한 시도 많았을 정도로 그녀는 엄연한 레즈비언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명칭은 사포가 태어난 섬 레스보스에서 생겨난 것이고. 그리스의 남신 아폴론도 숱한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렇듯 동성애 문화는 고대 서양인 사회에서 일상의 지위를 누렸지만 억압받던 그리스도교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공식화되면서부터는 배척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했던 중세 암흑기 동안에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모진 탄압을 받아야 했던 동성애 문화는 19세기 말 산업혁명 완성 이후 진보적으로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20세기 초가 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만연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한때뿐이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후기산업사회가 시작될 즈음 동성애 문화는 된서리를 맞게 된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국 내에서 동성애가 법으로 금지된 것이다. 


이제 성 소수자들은 외진 술집들을 전전하며 저네들만의 세상을 찾아 헤매어야 했다. 그중에 스톤월(Stonewall)이라는 술집이 있었고 뉴욕 경찰이 이곳을 급습, 격렬히 항거하는 동성애자들을 체포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일은 동성애 문화에 역으로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일이 되었다. 스톤월 사건이 일어난 날인 1969년 6월 28일부터 1년 후인 1970년 6월 28일, 성 소수자들이 모여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을 기리기 위해 뉴욕 크리스토퍼 거리에서 센트럴 파크까지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했다. 성 소수자들이 동성애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행진한다는 의미의 행사였다. 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됨에 경찰도 굳이 단속하지 않았고 연도 시민들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완료된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곧 전 세계 성 소수자들에게 신화적인 이정표가 되었고 그로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퀴어 축제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야말로 숨통 조이던 동성애 문화가 기사회생한 것이다.          

2021 뉴욕 프라이드 퍼레이드. 사진 NBC News TV 화면 갈무리

                             

축제는 주로 스톤월 항쟁이 있었던 6월에 시행되나 시기를 달리하는 나라들도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연중 어느 때든지 수시로 열린다. 물론 그때마다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받고 있음이다. 보름 전 독일 베를린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6만 5천 명이 브란덴부르크 문에 모여 저들의 퀴어 축제인 ‘크리스토퍼 스트릿 데이’를 즐겼다. 아시아 대부분 나라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태국은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국제미인대회를 1년에 두 번이나 개최하고 있다.


한국 역시 2000년 서울 퀴어 축제를 기점으로 삼아 전주 광주 인천 청주 대구 부산 제주 등 주요 도시에서 시행 일정을 각각 달리하며 꾸준히 치러내고 있다. 한 달 전 즈음에 서울 퀴어 축제가 온라인으로 치러졌고, 현재는 제주 퀴어 축제가 7월 초 시작하여 8월 말까지 엄격한 방역 기준에 맞춰 주말 단위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의 퀴어 축제는 이제 영화나 연극으로까지 장르를 확장하고 있으니 퀴어영화제, 퀴어연극제가 그 결과물들이다.

한국의 퀴어 축제는 아직도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수백 년 동안 한국인의 관념을 지배해 온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대중은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개신교의 격렬한 반대가 따른다. 작년과 올해는 비대면 혹은 최소인원 참여 방식으로 치러지기에 큰 소란이 일지 않고 있으나 이전에 시행한 행사의 면면을 보면 항의받을 만한 요소가 분명 있긴 있었다. 바로 서구의 퀴어 축제를 무분별하게 모방한 것이 문제다. 서구 퀴어 축제는 서구인의 문화적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음인데 한국인이 되어 서구 퀴어 축제에서나 볼 수 있는 동성 간의 키스, 혐오감 일으키는 복식 등을 여과 없이 흉내 내기에 당연히 문화적 충격을 받은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시대가 가라앉고 대면 행사로 치러지게 되면 축제장에서의 성행위 묘사나 혐오스러운 분장 복식을 자제하는 등 축제 외양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즉, 노이즈 마케팅으로 세인의 주목부터 받고 보자는 방식보다는 건전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말하는 것으로 사회로부터 격려받는, 지혜로운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그런 식으로 시행하고 있는 전주 퀴어 축제가 모델이 될 수 있다.     


퀴어 축제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 인간의 자유의지를 읽어야 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존중받아야 한다. 사회가 무너져 내리고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동성애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다양성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02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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