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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동양의 마타하리 흑치마 배정자

세상을 여는 잡학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윤옥의 모델로 추정되는 분이 총 잘 쏘기로 유명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열사다. 열사는 남편이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품은 채 1919년 중국으로 망명, 랴오닝성에 소재하고 있던 서로군정서에 가입한다. 이후 1927년 4월 국내 잠입하여 사이토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 했으나 불발에 그친다. 열사는 다시 1933년 만주국 주재 일본 전권대사를 암살하려고 만주 땅을 밟았으나 불운하게 체포되어 옥중 단식 끝에 숨을 거둔다. 슬픔과 실패를 딛고 끝까지 항거하려 했던 대단한 열사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조국 독립에 몸을 던진 여성을 꼽자면 유관순부터 찾고는 그 외 분들은 도통 떠올리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활약을 펼쳤던 수많은 여성 열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근래 들어 각종 증언과 자료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무정과 함께 조선의용군에서 백마 탄 여장군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명시, 국내 여성들을 항일투쟁에 참여시키는 데에 앞장선 이효정, 17살 어린 나이에 만주로 넘어가 독립 열사들의 의식주를 챙긴 허은, 중원 땅에서 조선의용대 정보원으로 활약한 전월순,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한 이희경 등을 비롯하여 2019년까지 정부가 꾸준히 독립유공자로 확인해온 분들은 모두 432명이다. 이 수치는 전체 1만 5천 5백여 명 중 고작 3%에 해당하고 있을 뿐이라 안타까운 일이라 할 것이다. 여성들은 주로 남자들의 뒷바라지 역할에 치중했기에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연대하여 삼일 독립운동을 맹렬히 전개한 전국의 여학생 수가 무려 1천 명이나 되었음을 봐도 432명 수치는 후손 되어 하늘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워질 명백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 땅의 많은 여인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에 자신을 희생했다면 기이하게도 일본을 위해 헌신한 독한 동족 여인도 있었다. 배분남이 본명인 배정자가 그 장본인이다. 그녀는 1870년 김해 아전의 딸로 태어나는데 아비가 흥선대원군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민씨 일족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천민 신세로 전락한다. 타고난 미모가 눈에 띄어 어린 나이에 밀양 관기로 팔려 가나 12살 되던 해 양산 통도사로 도망을 가 그곳에서 중이 된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날 즈음 도주한 관기라는 것이 들통나서 또다시 도망 길에 오른다. 도망 중에 그녀가 찾아간 사람은 아비와 친했던 정병하였다. 정병하는 훗날 밀양 부사가 되는 사람으로 그는 무역상 마츠오를 통해 그녀를 일본 오카야먀에 유학 가 있던 히로부미 히로부미의 식객 안경수에게 보낸다. 그녀는 안경수에 의해 김옥균까지 만나게 된다. 김옥균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녀를 히로부미에게 소개해주었고, 히로부미는 그녀를 수양딸로 삼아 다야마 사다코(田山貞子)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이때가 1887년으로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 여정이 급물살로 펼쳐지고 있었다.


영화 암살 여주인공의 모델로 추정되는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 사진 위키백과


배정자(田山貞子 다야마 사다꼬).  사진 위키백과


히로부미는 미모와 명석함까지 갖춘 그녀를 수영, 승마, 변장술, 사격, 국제 예절 등을 배우도록 하여 고급 스파이로 키워낸다. 다야마 사다코는 이제 일본 최고 권력자 히로부미의 권세를 뒤에 업은 채 암호명 ‘흑치마’로 1894년 자신의 집안을 몰락시킨 원수의 나라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조선에 들어와 공식적으로 맡은 직임은 주조선 주재 일본대사관 하야시 공사의 통역사였다. 따라서 그녀는 하야시를 따라 수시로 입궐할 수 있었기에 고종에게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고종은 교양 넘치면서 활동적인 그녀를 아꼈고, 그때부터 그녀는 배정자로 불리면서 고종을 통해 얻은 일급 정보들을 히로부미에게 전송한다. 그중에서 그녀가 올린 가장 혁혁한 공작은 러일전쟁과 관련된 일로, 러일전쟁 직전 친러파는 비밀리에 고종을 모시고 평양으로 천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러시아 땅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한양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고종이 짐짓 흘렸을 수도 있을 이 정보를 곧바로 일본 공사관에 제공함으로써 친러파의 계획을 수포로 만든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히로부미가 조선 통감으로 부임하자 그녀는 친오빠를 한성판윤으로, 친동생은 경무 감독관 자리에 앉히기까지 한다. 1910년 한일 강제 합병을 회심의 미소로 지켜봤을 그녀는 이제 히로부미의 지시를 받아 만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한다. 독립단체가 그런 그녀를 가만둘 리 없었고 이에 일단 조선으로 피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쓰루기치의 지령을 받고 상해와 만주를 무대로 맹활약을 펼친다. 같은 시기 유럽에 마타하리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배정자가 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한통의부 비밀암살단원 박희광이 자신을 노리는 것에 위기를 느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마침내 은퇴한다. 은퇴했어도 그녀는 여전히 조선총독부를 위해 일을 했으니 그중 악랄하다 할 것으로 위안부 관련 일이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 배정자는 일본군부와 조선총독부의 요청을 받아 약 백 명의 조선 여인들을 꾸려 ‘위문대’를 조직한다. 그것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였고 이들을 남태평양 섬까지 직접 데리고 갔다고 한다. 칠십 노구임에도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 것이다.


배정자의 엽기적인 사생활도 세기적이랄 수 있다. 그녀는 밀양 관기로 있을 때 한 사내를 만나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무관 아비를 둔 전재식이다. 배정자가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되어 스파이 교육을 받고 있을 즈음 그는 일본으로 유학 간다. 그곳에서 둘은 감격적으로 재회한 후 결혼까지 하나 전재식은 곧 병들어 죽는다. 첫 남편 전재국이 병사한 후 조선에 들어온 그녀는 친일파 현영운과 재혼한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이 바로 현송자인데 훗날 가정을 둔 유부녀 신분으로 불륜관계를 맺은 연하 남자 이철에게 1933년 오케레코드사를 만들어 준 여자다. 현송자는 또 배정자의 조카로 이 땅에 서양 무용을 최초로 소개한 무용가 배구자와는 외사촌 간이 된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1년 정도 살다 이혼하고 현영운의 친구인 일본 육사 15기 출신 박영철과 결혼한다. 박영철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더니 이혼 후 그녀는 연하의 부잣집 사내들을 조자룡 헌 칼 쓰듯 수시로 갈아 치워 가며 남성 편력을 탐닉한다. 나이 51살 때는 만주 땅 마적단 두목과 동거하면서 각종 정보를 빼냈고 조선에서는 55살 때 아들뻘 되는 25살짜리 일본 순사와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타고난 미모에 농염함을 앞세워 거칠 것 없는 성생활을 즐긴 것이다.

그녀는 광복이 되자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어느 야산에 숨어 살다가 반민특위에 체포당해 법의 심판을 받으나 이승만 정부에 의해 풀려난다. 그리고 한국 전쟁 중인 1952년 서울에서 83살 나이로 병사하니 악독한 인생으로 천수를 누린 셈이다. 


권력자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당하고 천민 신세가 되자 조국을 배신한 배정자. 같은 동족 여인들이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치고 있을 때 일평생 친일에 헌신한 다야마 사다코. 백 년 전에는 자신을 버린 조국에 복수하고자 친일한 배정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호가호위하면서 맹목적 친일에 눈이 멀어 자신의 조국을 깎아내리는 배정자들이 처처에 있다. 공식 석상에서 “우리 일본은~”을 입에 담고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 땅에 주둔해도 된다는 몰지각한 일부 정치꾼들이 ‘토착 왜구’라는 호칭을 얻고 있고, 대놓고 일본을 찬양하면서 그 반대로 좌파 한국 정부 비난하는 데에 사운을 거는 언론사들이 있다.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영혼 부재 식민사관 학자들이나 일본이 한국에의 수출 규제를 시행하자 우리가 일본에 사죄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운 넋 나간 여인들은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21세기 배정자들이 실컷 활개 치도록 해주는 사회 풍토에 엄중한 철퇴가 서둘러 내려지길 바랄 뿐이다. 


202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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