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잡학
우리는 1년을 12달과 24절기로 나누어 쓰고 있다. 인류의 역(曆)은 기원전 18세기경 이집트에서 시행한 1년 365일의 태음력에서 비롯된다. 이 이집트 역은 나일강 범람 관찰용으로 ‘1달 30일, 1년 12달+여분으로 남는 날 5일=365일(1년)’ 형태였다. 훗날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은 로마 제국은 그동안 사용하면서 불편해했던 저네들의 1년 304일짜리 태양력을 버리고 이집트 역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집트 역은 항성 시리우스를 기준으로 삼기에 정확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같은 항성이라도 태양을 기준으로 삼는 태양력으로 개발해 낸 것이 바로 기원전 45년의 율리우스 역이다. 율리우스 역은 365일에 12달은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1달을 꼭 30일로만 정하지는 않고 1일 정도씩 차이 나도록 달을 재편하되 4년마다 윤일을 넣어 365일 주기를 유지하는 체계다. 이집트 역보다 한결 진화된 율리우스 역도 애매한 부분이 있긴 있었다. 그것을 인내하며 사용하다가 마침내 16세기에 이르러서 4년마다 윤달을 넣어 더 정교해지도록 한 그레고리 역을 탄생시키니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양력이다. 윤일 혹은 윤달 등이 개입되는 이유는 지구에서 바라볼 때 원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태양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1월 초에는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7월 초에는 가장 느리게 움직인다. 그 변화하는 속도에 맞추다 보면 어느 달은 30일이요 어느 날은 31일이 된다. 그중에서 28일짜리 달에는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해줌으로써 365일 주기가 원만해지도록 한 것이다.
24절기는 주나라에서 생겨났다. 중국인들은 하늘에서 원으로 연주하는 태양 궤적을 황도(黃道)라 이름 짓고는 전체 360도를 15도씩 나누어 24절기를 얻었다. 24절기는 곧 농력(農歷)으로 각 절기의 명칭을 허베이(河北) 지역의 농사 일정과 직결하도록 지었다. 한국과 일본도 농경 문화권에 해당하는지라 고대부터 이를 수용하여 오늘날까지 쓰고 있고. 혹간 사람들은 우리네 명절과 24절기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전혀 다르다. 24절기는 농사가 시작되는 3월 21일 춘분을 기점으로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이고, 명절은 설, 정월 대보름, 단오, 유두, 백중, 칠석, 한가위, 중양 등이다. 또 양력 24절기에 비해 명절은 음력을 좇기에 근본부터 서로 다르다.
일주일 전인 8월 23일이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處暑)였다.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요, 모기들에게는 수난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모기들은 이 처서에 맞춰 죄 입이 비뚤어지기 때문이다. 모기들이 여름철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내년을 기약하며 우리 곁을 떠나가면 그 뒷자리를 이어받는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귀뚜라미다. 귀뚜라미는 알 상태로 땅 밑이나 식물 속에서 월동한 후 번데기 과정을 생략한 채 봄부터 애벌레로 꼬물대며 등장한다. 그렇게 봄 여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인데 평소 우리는 ‘귀뚜라미~’ 하면 가을을 떠올린다. 미안하지만 귀뚜라미는 이미 한여름 때인 칠석 전부터 들에서 울음소리를 낸다. 워낙 번잡하게 들리는 수많은 여름벌레 울음소리들에 묻히다 보니 그로써 존재감을 얻지 못할 뿐이다. 칠석날 견우직녀 전설에서의 직녀 이름이 베를 짜는 처녀라는 뜻이요 이 직녀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으며 서둘러 가족들 겨울옷을 짜기에 중원 땅에서는 귀뚜라미를 ‘베 짜기를 재촉’하는 촉직(促織)이라고까지 부르는 만큼 귀뚜라미를 가을에 불쑥 나타나는 가을벌레로 여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귀뚜라미들이 이제 처서 거치고 백로 지나는 중에 추위를 피해 온기 찾아 조금씩 사람들 사는 인가 쪽으로 다가오기에 그즈음부터 귀뚜라미 존재를 느끼는 것이요 그때가 바로 가을인지라 오해는 그로써 생긴 것이다.
귀뚜라미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인들은 귀뚜라미를 애완충 삼아 가가호호로 길렀고 심지어 레크리에이션으로 개발해 내니 그것이 바로 두실솔(斗蟋蟀)이라는 귀뚜라미 싸움이다. 작은 원통에 귀뚜라미 수컷 두 마리를 집어넣고 지푸라기로 밀어대며 싸움을 붙여 승패를 가린다. 주위 사람들이 각각의 귀뚜라미에 돈을 거는 식인지라 분명 도박놀이다. 자고이래로 도박판 벌이자면 묘에 들어가 뗏장 덮고 누워있다가도 떨치고 일어나 앉는 중국인들인지라 이 귀뚜라미 싸움은 저네들의 국민 도박으로 성행했음이요, 몽골군에 패해 장강 이남으로 쫓겨간 송나라가 끝내 몽골군 총사령관 바얀에 의해 멸망한 것이 당시 남송의 권력자 자시다오가 귀뚜라미 싸움에 미쳐 놀아났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면 알만하다 할 것이다. 그렇듯 중국인들의 귀뚜라미 정서가 싸움이나 붙이는 호전적이었다면 한국인의 그것은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모기는 창을 쥐고 다니고 귀뚜라미는 톱을 뒷다리에 차고 다닌다. 그런 둘이 처서가 될 즈음 서로 만난다. 귀뚜라미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모기의 몰골을 보고 그 연유를 묻는다. 그러자 모기 왈, “덜떨어진 인간들이 나를 잡겠다고 낯짝이고 허벅지고 팔뚝이고 간에 정신없이 후려치는 것 볼 때마다 하도 웃어대다 보니 입이 이렇게 되었네.” 귀뚜라미가 수긍하는 중에 이번에는 모기가 묻기를, “그나저나 나는 사람 피 좀 빨아먹자고 창을 쓰건만 자네는 어찌하여 톱을 차고 다니는가?” 그러자 귀뚜라미는 이렇게 말한다. “긴 긴 가을밤 독수공방, 임 그리는 처자 낭군들, 애끊으러 가지고 다니는 것일세.”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놓고 임 그리워하는 청춘들의 애를 끊는 단장(斷腸) 톱질 소리로 듣는 것이 한국인의 감성이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인은 대단히 세련된 청각 정서를 보유한 민족이라 할 것이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분명 한국인에 있어서 슬픔을 유발하는 음향 매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무정하고 무뚝뚝한 사내라 하더라도 가을밤 되어 어쩌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처량한 기분에 젖어 시를 짓거나 아니면 술잔 기울이며 떠나간 임을 생각하거나 혹은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옛날, 사내들은 가을 되어 한양에 과거 보러 가거나 일 관계로 잠시 고향 떠나 먼 곳에 갈 일 생기면 집 근처 귀뚜라미를 풀 섶에 담아 행장에 넣고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이나 목적지에 이르게 되면 밤마다 숙소 창가에 그것을 올려놓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다. 굳이 자기 집 귀뚜라미와 먼 타지 길 동행하는 이유가 바로 한반도 땅의 귀뚜라미 소리는 지역별로 각자 달랐음이요, 그것을 헤아릴 정도로 우리 조상들은 뛰어난 청력을 소유했다는 것이 된다. 조선 시대의 한양 성내 주점들은 가을만 되면 긴밀하게 할 일이 따로 있었으니 각 지역 귀뚜라미들을 주문 배달받아 방마다 따로 울게 하여 동향 출신 손님들을 방별로 유치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마다 한양 저잣거리의 가을밤은 연일 팔도 귀뚜라미들 소리로 깊어갔음이라, 상상만 해도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옛날에 군것질거리로 볶은 메뚜기나 볶은 개미, 삶은 번데기를 먹더라도 귀뚜라미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가을밤의 친구 귀뚜라미를 어찌 잡아먹겠는가? 반면 타이완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귀뚜라미 볶아먹기를 무척 즐긴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놓고 불행을 몰고 오는 악령으로 여겨 보이는 족족 멀리 내쫓고. 그에 비해 한국의 귀뚜라미는 가을을 상징하고 사람들로하여금 인간적 정서를 느끼게 함으로써 여실히 사랑받고 있는 예쁜 존재다. 그러니 귀뚜라미도 태어날 나라를 가려가며 태어나야 팔자 편해지는 법이다. 이 가을밤, 아름다운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취해보길 권한다.
202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