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잡학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역대 중원 임금들은 미약(媚藥)에 취해 살았던 임금들이 많다. 대표적 인물이 명 휘종이다. 그는 그야말로 성욕의 화신이었다. 명 시대에는 도교 문화가 드세었기에 자금성은 방술사들의 잦은 출입 발걸음에 문턱이 닳을 정도였다. 휘종은 그들에게 성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도록 했고 이에 홍연환(紅鉛丸)이라는 미약이 만들어 바쳐졌다. 휘종은 밤마다 그 약에 취해 궁녀들에 파묻혀 60세까지 살았다. 중원 임금들의 평균 수명이 39.2세였던 것을 보면 제법 장수한 편이다. 임금이 되어 최고 권력자로서의 호사를 누릴 만도 하겠으나 휘종이 취한 미약은 그 제조 비법이 너무도 비인간적이요 추악했다. 그가 상복한 홍연환이 10대 초반의 미소녀 4백여 명의 생리혈로 만들어졌기에 그렇다. 소녀들은 자금성 안 별도 공간에 갇힌 채 마치 누에처럼 뽕나무 잎만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관리되는 소녀들로부터 생리혈이 수거되면 방술사들은 그것으로 미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친 것이다. 중원 땅의 성문화가 이처럼 참혹하고 기괴했음이다.
인도인들은 일찍부터 성에 대한 개방된 문화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대부분이 신봉하는 종교는 3대 신(神) 체계로 이루어지는 힌두교이다. 3대 신은 세상을 창조한 브라마, 세상을 유지하는 비슈누, 세상을 파괴하는 시바이다. 그중 시바는 히말라야 신의 딸 파르바티(Parvati)를 아내로 두고 있는데 이 둘은 각각 링가와 요니로 불리면서 세상의 혼돈과 질서, 파괴와 자비로 이승의 사람들에게 복된 내세를 기약해 준다. 그래서인지 남쪽의 가난한 수드라 계급 사람들과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들이 시바를 더 열렬히 믿는다고 한다. 불교의 윤회 사상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힌두교 신전에는 링가와 요니가 남근과 여근 형상으로 합체되어 있는 조형물이 있다. 링가와 요니의 합체 형태는 곧 속세의 성행위가 된다. 성행위 자체가 시바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인도인들은 예부터 성행위에 대한 관념을 시바와 파르바티에 의해 이루어지는 질서와 혼돈, 파괴와 자비의 조화로 보았고, 궁극적으로 그 조화의 영험을 통해 복된 내세를 갈구한 것이다. 그런 종교문화에 젖은 인도인들인지라 저네들의 성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그 결과물이 인류 최고의 성 교본 카마수트라다. 성교 자세를 무려 108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카마수트라는 사람들의 성 쾌감을 극치로 이끌어주는 욕망의 경전이라 할 것이다.
고대부터 티벳이나 인도 일대 등 서남아시아인들은 성을 탐닉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리섹스를 구가하며 무병장수하는 그들의 이상향 ‘우타라쿠르(Uttarakuru)’가 그것을 대변한다. 어찌 보면 성에 대한 인간적 본능을 솔직하게 추구한다고 봐야 할 것인데 특히 인도인들은 시바를 프리즘 삼아 성에 대한 본능을 종교라는 스펙트럼으로 비추어 성행위를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 최고 행복의 지표로 굳게 믿은 것이다.
힌두교가 인간의 성에 대한 욕망과 본능을 감싸고 돌자 싯다르타에 의해 일어난 불교는 세속적 금욕을 내세우면서 그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막은 것이 바로 성에 대한 욕망이다. 불교는 신을 모시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신 자체가 없다. 다만 깨우친 자만 있을 뿐이다. 싯다르타가 최초의 다섯 제자에게 깨우침에 대해 설법한 내용이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 담겨있다. 그 안에서 싯다르타는 느낌과 지각, 상카라(행동), 인식을 무상하게 여겨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깨우침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감각적 쾌락으로서의 애욕을 가장 엄하게 금했다. 힌두교에서 포용하는 ‘성행위를 통한 인간 행복 추구’가 불교에서는 철저히 배척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속세인들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점차 불교가 외면당했을 것이요, 오늘날 불교의 고향 인도에 불교 흔적이 사라지고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인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여행 중이던 외국 여성이 집단 성폭행당한 것, 여대생이 대중버스 안에서 보란 듯이 집단 성폭행당한 것, 달리트 여아를 같은 마을에 사는 청년들이 집단 성폭행한 후 화장한 것, 30대 청년이 86세 노파를 성폭행한 것 등등 입에 담기 끔찍한 성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상은 분명 인도 남자들의 뇌리에 성행위를 통해 현세적 내세적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바의 잔상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음이요, 그것을 위해 폭력을 구사하는 것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아전인수격 해석 때문 아니겠나 싶다.
인도 남부 땅이 원산지인 후추는 기원전 4세기경 마케도니아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유럽으로의 전파가 원활해지면서 소금과 함께 유럽 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고급 향신료였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집 식탁 테이블에 반드시 이 두 가지를 올려놓았다. 오늘날 레스토랑의 테이블에 후추 통과 소금 통이 올려져 있는 것이 바로 유럽 귀족 식생활 풍습에서 온 것이다. 그 후추가 십자군 전쟁에 한 요인이 된다는 해석이 있다. 중세에 이르러 지금의 터키 땅을 차지한 셀주크투르크 제국 등 이슬람권이 인도 유럽 간의 후추 무역로를 통제하자 이에 성화가 난 유럽 임금과 귀족들이 원정대를 파견한 것인데 그것이 십자군 전쟁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각광 받았던 후추에 이런 얘기가 따른다. 의학적으로 확연하게 소명된 것은 아니나 후추에 정력 감퇴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오늘날 인도인들이 후추를 잘 먹지 않아 성범죄가 만연하게 된 것 아니냐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것만은 아닌 것이, 후추든 뭐든 간에 자주 먹여서 이 사람들의 정력을 감퇴시켜야 참혹한 성범죄가 줄어들 것 아니겠나 하는 것이다.
인도 땅의 성범죄 못지않은 패륜적 성범죄가 며칠 전 우리 사회에 발생한 것에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20대 사내가 자신과 동거하는 여인의 20개월짜리 여아에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될 짓을 하고는 끝내 살해까지 하지 않나 심지어 장모에게까지 욕정을 표현하는 등, 이런 자가 어찌 사람 탈을 썼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여기에 못지않은 조두순 사건이라던가, 혼자 사는 여인 집에 쫓아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던 일이라던가, 흑산도 여교사를 섬사람들이 집단 성폭행한 것이라던가, 그 외 조직 내 위계에 의한 성폭행 등등, 이런 것을 보면 인도인들 얘기하기 전에 우리 한국인들 역시 후추를 됫박으로 퍼먹어도 모자라다.
성결한 성은 종교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답다. 남녀가 좋은 인연으로 만나 서로의 애정을 도탑게 하고자 누리는 성이 바로 성결한 성이다. 그러기에 성결한 성은 만인으로부터 존중받고 보호받는다. 그에 반해 한낱 자신의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의 인생을 처참하게 만드는 추악한 성은 극악무도한 죄이기에 그 천벌 무게에 제한이 없어야 할 것이니 앞으로 성범죄에 대하여서는 경중 불문, 강력한 엄단을 내려 이 땅에서 비인간적 패륜적 성범죄가 견뎌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202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