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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상달은 10월이 아니라 11월이다

세상을 여는 잡학

우리는 10월을 두고 상달이라 하여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음력과 양력의 구별을 무시한 처사다. 10월 상달은 분명 음력으로 헤아린 것이니 양력으로 치면 상달은 11월이 된다. 음력 10월 상달이 양력 10월 상달로 변형된 것은 기후 변화와 농법 발전에 따른 조기 수확, 양력 운영상의 편의성 때문일 것이다.      


11월이 되면 우리 민족은 주로 어떤 것을 할까? 원래의 상달인 양력 11월에는 김장 때가 든다. 김장의 주인공은 당연히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부인들이요 사내들은 그저 국으로 구경만 하다가 막 버무린 김치 한쪽에 돼지고기 수육 얹어 막걸리 한잔 마시는 횡재를 맞는데, 그러려면 김장 며칠 전부터 부인 앞에 자세 가지런히 하고 부인이 시키는 일 있으면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 요즘이야 김치냉장고를 사용하나 옛날에는 집안 마당 한쪽에 김장김치를 담은 독을 땅속에 묻고는 그 위에 나무 기둥을 꽂아 짚 가마니를 움막처럼 걸쳐 덮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김치 광’이라고 불렀다.     


김장도 김장이지만 원래 상달 11월은 고사와 축제 시즌이었다. 먼저 가정에서는 가을 고사로도 부르는 상달 고사를 치른다. 이때가 되면 가정마다 부인들이 햅쌀로 시루떡을 쪄 정화수 한 대접과 함께 상에 올린다. 상달 고사는 주로 식구들의 소원을 빌고 각종 재액을 물리치는 안택(安宅) 성격을 띤다. 김장이든 상달 고사든 부인들이 주도하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을 풍요와 안녕의 주술적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고사 장소는 방안이 아니라 장독대, 우물가, 외양간, 마구간, 뒷간, 부엌 등이니 곧 가신(家神)들인 조왕신(부엌신), 터주신(지신), 성주신(택신), 삼신(마고 소희 궁희)에게 두루 정성을 바치는 것이다. 고사는 원하는 바를 입으로 크게 외우고 성수 3의 민족으로서 세 번 절 올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고사가 끝나면 이웃끼리 고사 떡을 나눠 먹음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감 유지도 잊지 않았다. 농촌의 각 가정에서는 부엌 한쪽에 조왕 단지라는 것을 상비해 두고는 그 안에 쌀이나 정화수를 담아 놓고 아침마다 정성을 빌고, 상달 고사에 이르러서는 햅쌀을 빻아 넣고 식구들이 굶주림 없이 잘살게 되기를 빈다. 경기도 동부와 강원도 농촌에서는 장독대 옆에도 단지를 두고 그것을 터주항아리라 부르면서 상달 고사에 맞춰 그 안에 햅쌀을 빻아 넣는다. 한편으로 친족들이 모여 대개 4대 조상까지 모시는 문중 시제(時祭)를 올린다. 시제는 조상 묘를 찾아가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비가 오면 제실(祭室)에서 지방을 써 올린 채 치른다. 제수를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넓적한 편 모양으로 만든 편병(片餠)을 맑은 조청과 함께 제사상에 올린다. 편병은 집안이 편하게 되기를 바라는 유사 발음상의 주술을 취하는 것이고 조청은 맑음을 뜻하므로, 그 두 가지를 바쳐 조상의 음덕을 받아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비는 의미가 된다. 탕은 올리되 국은 올리지 않고 나물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 말린 북어 껍데기를 밑받침으로 삼아 그 위에 돼지고기 적을 올린다. 제사는 원래 중원의 풍속이었으나 고려 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수입된 이래 유교 문화가 정착된 조선 시대 때 전국적으로 확산했기에 한민족도 조상제사 민족이 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가정 단위를 벗어나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세시가 따로 있었다. 바로 국중대회(國中大會)다. 함경도 사람들이 음력 10월 3일을 단군 탄신 일로 삼아 시행한 향산제(香山祭)는 고조선의 나라 잔치인 국중대회의 흔적이요 오늘날의 개천제(開天祭)다. 부여의 영고, 고고려(古高麗)의 동맹, 동예의 무천, 마한 변한의 계음, 백제의 교천, 신라 한가위, 고려 팔관회 등이 스스로 생겨난 것은 아닌 것이, 그 의미와 계통이 고조선 국중대회에 맥을 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주와 한반도 땅에서 시행된 국중대회의 맥은 훗날 일본 열도에도 이어졌다. 이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저네들의 축제 명칭 ‘마쯔리’다. 부여의 영고(迎鼓) 명칭 뜻을 풀면 ‘신을 맞이하기 위해 두드리는 북’이다. 또 한민족의 큰 북은 대체로 양쪽을 두드리는 북 형태이고 이것을 두드리려면 두 명의 고수가 서로 마주 보듯이 서서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맞보고 두드리기’라는 뜻도 나온다. 어떤 뜻이든 이것이 줄어들어 ‘맞두드리’가 되었을 것이다. 부여 사람들이 백제를 세운 후 일본 관서 땅까지 경영했기에 부여의 ‘맞두드리’가 전해졌고 그 명칭이 ‘마쯔리’로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무엇이든 축소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들의 언어도 무사할 리 없다. 오늘날 저네들이 ‘테레비(텔레비전)’,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 의상연출)’로 쓰는 것과 같은 식이다. 스모판에서 심판이 외치는 구령들은 고고려(古高麗) 말이다. 선수들에게 외치는 심판의 구령에 “다가, 다가!”가 있다. 어서 ‘다가붙어 싸우라’라는 뜻으로 ‘다가’를 외치는 것이다(이영희 『노래하는 역사』). 일본 스모의 뿌리는 고고려의 각저희(角抵戱. 씨름)이기에 구령도 묻어 건너갔음이요 긴말이 줄어들어 ‘다가’만 남은 것이다. 한반도에서 사람과 문화가 건너간 것이니만큼 일본 말의 뿌리에는 한반도 삼국 말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다. ‘사무라이’는 백제 말 ‘싸울아비’가 음운 변화한 것이요, 저네들 말의 어미(語尾) ‘~마스, ~마스까, ~마시다’는 백제 말이다. 일본 왕실의 제례 용어는 신라 문무왕 때 건너간 신라 말이다. 일본 왕실 제례 때 제관은 여신을 초혼한다. “아지매 오게~, 아지매 오게~”.신라 말로 저네들의 여신 ‘아지매’, 아주머니를 부른다.     


함경도 향산제의 맥은 1905년 백두산 도인 백봉이 일으킨 대종교가 이었다. 1909년 2대 교주가 된 나철은 대종교를 실질적으로 중흥시키면서 향산제를 개천절로 명칭까지 바꾸어 종교 행사로 거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겨난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을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국경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1949년 문교부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편의상 양력 10월 3일로 변경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때는 누구도 개천절의 참뜻을 몰랐던 듯하다. 개천절을 ‘하늘을 연’ 날, 즉 건국일로만 여기면 의미가 단순해진다. 개천절의 날짜를 따져야 한다. 음력 10월 3일. 10월은 수확 철이요 3일 즈음에는 초승달이 뜬다. 초승달은 돌궐족의 나라 터키가 여전히 민족 상징으로 품고 있는 신영(神影)이다. 초승달이 점차 보름달 되어가듯 미래 번영을 염원하는 것이다. 돌궐과 깊은 연계성을 갖는 만주 땅의 우리 조상님들 역시 이 초승달을 중히 여겼다. 여기에 우리 민족 성수가 바로 3이다. 만물의 결실을 걷어 들이는 상달 음력 10월 초에 초승달도 뜰뿐더러 민족 성수인 3과도 신기하게 연결되는 초사흘 날에 맞춰 천제를 치른 것이 고조선의 국중대회요 함경도 사람들의 향산제요 대종교의 개천절인 것이다. 


양력 10월 3일 개천절이야 이제는 건국 기념일로 굳어졌으나 음력 10월 3일이 드는 양력 11월에는 과거의 상달 천제를 현대적 시의로 풀어내 봄이 어떨까 싶다. 현행 진주개천예술제가 향산제의 맥을 잇는 적자로서 그 기능을 수행해 주기 바라나, 양력 10월에 행하는지라 초승달 의미를 놓치고 있음이 아쉽다. 어느 지역에서든 상달인 양력 11월의 음력 10월 3일을 전후하여 초승달 바라보며 진정한 개천 축제를 풍성하게 시행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뜻깊은 전통을 되살려 보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 후손들에게는 국가의 미래 번영을 기원하고 민족 자긍심을 발열시키는 나라 잔치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희망해 보는 것이다.

                                                                           

20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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