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잡학
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꿈이라 할 것이다. 그 꿈은 다이달로스로하여금 아들 이카로스에게 날개를 붙여주어 하늘을 날도록 극성떨게 하여 애꿎은 이카로스의 목숨만 잃게 만들기도 했다. 이카로스의 실패 이후 서양인들은 수천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저 원망스레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며 살았다. 그랬던 그들에게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난다. 1783년 6월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만든 열기구가 사람 대신 닭, 오리, 양을 실은 채 베르사유 궁전 위를 8분간 비행했고 그해 말에는 사람이 직접 탄 비행까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제 인간도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온 유럽인이 환호했다. 1804년에는 영국의 조지 케일리가 최초의 모형 글라이더를 만들어 시험하더니 죽기 4년 전인 1853년 기어이 유인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했다. 케일리의 비행물체 이론인 중력, 양력, 항력, 추력 원리와 글라이더 형태는 오늘날 비행기 탄생의 기원이 되기에 그는 항공과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바람에 의존하는 열기구나 글라이더와 달리 자체 동력으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복엽 비행기 ‘플라이어’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최초의 동력 비행기 발명가로 여겼으나, 2016년 미국 코네티컷 주지사가 ‘세계 첫 동력비행에 성공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가 아니라 1901년 코네티컷 페어필드에서 동력비행을 성공한 독일 출신 이민자 구스타프 화이트헤드’임을 공식인정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그간의 인식이 뒤집혀 지고 말았다. 동력 비행기 발명 이후 야심 품은 나라들은 비행기를 전쟁 도구로 활용하고자 각축을 벌였다. 한편으로는 민간에서 수송기를 개발하는 움직임도 일어나 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백작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체펠린’이라는 민간인 수송용 경비행기를 만들어 운영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체펠린 백작마저 죽자 체펠린 사업 역시 중단되었으나 이후 후고 에케너가 뒤를 이어 체펠린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독일에서 출발한 ‘LZ 129 힌덴부르크호(號)’ 체펠린이 1937년 5월 6일 목요일,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 해군 항공기지에 정박하다가 화재를 당해 탑승객 30여 명이 죽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면서 체펠린은 영원히 사라졌다.
대재앙이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은 역설적으로 항공 문명 발전에 큰 동력이 되어 오늘날 인류에게 태양계를 넘나드는 우주선까지 거느리게 해주었다. 그렇게 외연 확장이 이루어지는 중에 이제는 일상에서의 첨단 비행물체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근래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IT 연동 무인 비행 드론이다. 인간의 일자리 박탈이라는 우려가 따르나 문명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초음속 여객기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XB-1’과 ‘AS-2’라는 초음속 여객기가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마하 2.2 속도를 내는 ‘XB-1’은 14시간 걸리는 인천~뉴욕 구간을 고작 5시간 만에 주파할 것이라 한다. 사실 초음속 여객기는 이미 존재했었다. 1976년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콩코드’는 마하 2 속도로 파리와 뉴욕 구간을 3시간 이내로 단축했으나 비싼 요금과 엄청난 소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2003년 운행 폐지되었다. 최근에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의 우주 시대 개막을 알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1961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태운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이후 스페이스 엑스라는 민간 기업이 만든 첫 번째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을 성공적으로 우주에 날려 보내고 무사히 돌아오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뉴 스페이스 시대의 도래로, 이제 우주는 탐사 대상에서 관광 대상으로 되어가고 있다.
서양 쪽 풍경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1949년 10월 1일 공군 창설 이래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8월, 해군 중위 조경연이 수상기 ‘NK-1 해취호’를 제작했고, 1952년에는 공군기술고등학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직접 설계한 경비행기 ‘부활호’가 등장했다. 1980년대가 되자 ‘제공호’로 불린 ‘F-5E/F’ 미국산 전투기를 국내에서 조립 생산하며 항공 정비기술과 조립기술을 축적하더니 1991년에는 순수 국내기술로 ‘KT-1 웅비’ 훈련기를 만들어내었다. 웅비에 이어 2005년에는 초음속 훈련기 ‘T-50 골든이글’까지 만들어내었고, 이제는 ‘KF 21 보라매’라는 한국형 4.5세대 전투기를 생산, 한반도 상공을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항공 역사라 할 것이겠으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지구촌 구석구석을 탈탈 털어 최초로 하늘을 날아다닌 사람을 찾아낸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인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임진왜란 때 행글라이더 형태의 비행물체를 타고 다녔기에 인류의 비행역사 시작점은 최소한 유인 글라이더를 만든 케일리보다 2백 5십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경준의 『책차제(策車制)』에 이런 얘기가 실려있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차(飛車)를 만들어 성을 들락날락하며 30여 명을 피난시켰다.”라는. 19세기 초 이규경이 고금의 사물을 고증하는 내용으로 엮은 책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강원도 원주 선비가 새 형상의 비차를 타고 날아다녔다는 얘기를 담고 있다. 이것을 눈여겨본 사람이 또 있으니 바로 19세기 말 풍운아 흥선대원군이다. 그는 서양의 철갑 함선에 대응할 신무기 개발 해법을 날아다니는 새의 깃털에서 찾았다. 두루미처럼 날아다닐 수 있는 신속 이동형 군선을 생각해 낸 것이다. 곧 전국의 두루미를 잡도록 포고령을 내리고는 그렇게 얻은 깃털로 학우선(鶴羽船)을 만들었다. 획기적 발상과 투철한 도전정신으로 세계 최초의 ‘비행 함선’ 제작 성공이라는 기염을 토해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조정 대신들을 합정동 망원정 한강 변에 모아놓고 학우선을 한강에 띄웠더니 배에 태운 수군들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물에 잠긴 것이다. 세계 최초의 잠수 함선이 되어 지금까지 한강 수중을 책임지고 있음이다.
지난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우주로 날아올라 비록 3단 엔진이 46초 일찍 연소하는 바람에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얹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주요 발사단계 이행과 핵심 기술 확보라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전 국민에게 뿌듯한 자긍심을 주었다. 1969년 달에 인류의 첫걸음을 얹은 미국은 2020년에 쓴 예산만 헤아려도 무려 56조 6천억 원이나 되지만 우리는 10년간 우주 개발 연구에 들인 예산을 모두 합쳐도 2조 원에 불과하다. 전담 연구원 수를 봐도 미국은 만 명이지만 한국은 고작 250명이다. 막대한 예산과 엄청난 인력을 앞세우면서도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숱한 이카로스의 실패를 겪었던 미국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순수 국내기술로 임한 첫 발사에 성공률 30%를 깨끗하게 무시하며 대단한 결과를 얻은 것은 국민 평균 지능지수 98인 미국과 106인 한국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짧은 기간 적은 예산으로 업적을 일궈 낸 한국인의 정교한 기술력은 찬사받아 마땅함이요, 그 나라 과학기술력의 총 집결체라 할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세계 7대 우주 강국에 진입한 것을 두고는 나라 잔치를 크게 열어 경축할 만하다 할 것이다.
무엇이든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서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감과 실력으로 끝내 성공을 거두는 대한민국은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우리가 만든 추락하지 않는 이카로스들이 달 화성 가리지 않고 어디든 찾아가 우주 에너지 확보전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한국형 우주 관광을 즐기는 시대가 조만간 올 것이라 믿어 본다.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