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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하루빨리 돌려보내고 싶은 21세기 손님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인은 이사 때가 되면 손(損) 없는 날부터 찾는다. 혼인을 치를 때도 가게 개업할 때도 역시 손 없는 날을 택한다. 이 ‘손’은 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우리가 평소 꺼리는 말이다. 그런 ‘손’이 쓰이는 말이 있다. 집이나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을 우리는 ‘손님’이라고 부른다. 가게에 손님이 들면 돈이야 벌겠지만 힘든 치다꺼리를 해줘야 한다. 집에 찾아드는 손님은 돈 벌기는커녕 청소하랴 접대 음식 준비하랴 힘만 더 든다. 오면 불편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해서 ‘손님’인 것이다. 손님의 출처는 조선 시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창(痘瘡)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있었다. 두창을 천연두로도 부르는데 이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들어온 일본식 명칭이다. 두창에는 별호가 있었다. 사람들은 두창을 ‘마마(媽媽. 어미)’로 모시며 조아렸다. 또 다른 명칭이 ‘손님’이었다. 찾아오면 해만 생기는 무서운 존재로서의 손님. 한번 걸리면 온몸에 수포가 일어나 열로 들뜨다가 죽어가는 무서운 손님. 어쩌다 살아남아도 얼굴에 곰보 자국을 실컷 만들었기에 두창은 천형(天刑)이었다. 그래서 오는 듯이 어서 돌아가라는 ‘마마굿’과 ‘손님굿’이 남도굿 레퍼토리에 들어있을 정도였다. 중부 지역에서는 ‘별상거리’나 ‘호구거리’라 해서 찾아든 마마 손님을 지극 정성 접대로 분노하지 않게 하는 굿이 있었고.     

한국인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두창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인류를 위협했던 전염병이었다. 스웨덴의 레나트 버그펠트에 의하면 두창은 기원전 1만 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흔적은 기원전 12세기의 이집트 람세스 5세의 미라다. 미라 분석결과 그는 두창에 의해 병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집트의 두창은 훗날 인도로 넘어가 풍토병으로 정착했고 이어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6세기경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8세기 중엽 무렵 일본에서는 당시 인구의 약 30%가 몰살되었을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한다. 유럽 쪽의 희생은 상상을 초월한다. 18세기 이전까지 해마다 4십만 명씩 죽었다고 하니 기원전 2~3세기부터만 따져 봐도 대략 10억 명이 죽은 것이다. 19세기를 넘기면서 두창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져 2백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3억 명의 목숨을 앗았다. 장구하게 인류를 괴롭힌 두창에 분연히 반기를 든 사람이 19세기 초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였다. 그는 종두법을 개발하여 두창에 맞섰고 마침내 1979년이 되어 두창은 인류의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20세기 초 지석영이 이 종두법으로 맹활약, 수많은 생명을 구했음이다.


조선시대의 호구거리(손님굿). 그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창은 그렇게 사라졌으나 여전히 때를 엿보는 무서운 전염병이 남아있다. 기원전 4세기 초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콜레라 명칭을 쓰고 있다. 그때부터 존재했던 콜레라는 19세기가 지나서야 본격적인 활약에 나섰다. 인도 콜카타에서 크게 일어난 콜레라가 아시아 일대로 퍼졌고 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아홉 차례에 걸쳐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약 5천만 명의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한반도에는 1812년 처음 괴질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다가 구한말 일본으로부터 콜레라라는 이름이 들어오면서 호열자로 불렸다.     

 

17세기 파리에서 페스트를 치료한 샤를 드 롬이 착용한 방역 의상. 이탈리아 베니스 축제의 ‘메디코 델라 페스테’ 가면은 이것에서 생겨났다. 사진 독일의학역사박물관, 두산백과


최대 2억 명이 넘는 유럽 인구를 증발시킨 페스트는 6세기경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지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치하 시절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에 만 명씩 페스트로 죽었으며 이 유행이 4개월간 지속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사람이 까맣게 변해 죽기에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페스트는 6세기 지중해 일대에 발호하여 약 5천만 명을 희생시켰고, 8세기 중엽 재유행 때는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억 2천만 명까지 사망에 이르도록 했다 한다. 여기까지가 1차 페스트 유행이었고 2차 페스트 유행은 14세기에 일어났다. 모스크바 아래쪽에 킵차크한국을 세운 몽골군은 서유럽 정벌 전초전으로 크림반도의 무역항구 카파를 침공했다. 최강 군사력의 몽골군이었으나 카파를 지키던 군사들도 만만치 않게 버텨 공성전이 무려 3년이나 이어졌다. 오랜 전쟁에 지친 몽골군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불행까지 닥쳤다. 군사들 간에 페스트가 퍼진 것이다. 근래 들어 학자들이 남부 유럽인 DNA를 검사하여 결론 내린 것으로, 이때의 페스트는 시칠리아인들이 크림반도 일대에 병균을 퍼뜨려 확산시킨 것이라 한다. 공성에 실패한 몽골군은 페스트로 죽은 군사들을 카파성 안에 투석기로 날렸고 그 시체들이 숙주가 되어 카파인들을 줄줄이 쓰러뜨렸다. 이에 성안의 생존자들은 배를 타고 탈출, 흑해를 거쳐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페스트를 확산시켰다. 당시 유럽에는 해마다 두창에 시달리는 와중에 1차 대유행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약 7천 5백만 명만 남았는데, 다시 2천만 명을 잃고 말았다. 20세기 중반까지 나라 없이 떠돌며 살던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핍박받은 것은 이때 절망에 빠진 유럽인들이 페스트 유행의 주범으로 유대인들을 지목, 마녀사냥식으로 낙인찍은 것에서 기인한다는 말도 있다. 2차 대유행의 결과는 극심한 노동력 부족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에 노동력, 즉 경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농노들의 입지가 드세짐으로써 장원 제도와 봉건 제도가 몰락했다. 경제 주도권의 하위 이동은 15세기 르네상스 운동 촉발에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3차 대유행은 유럽이 아니라 1855년 중국 윈난성에서 일어나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당시 사망자 수는 중국과 인도에서만 1천 2백만 명을 기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발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은 1918년과 1919년 유럽, 미국, 인도 등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5천만 명을 희생시켰다. 전쟁은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지만 스페인 독감도 전쟁의 조기 종료에 한몫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각 나라는 예방 접종을 시행하여 스페인 독감의 확산을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십수 년 전 세계를 두 번이나 긴장시킨 신종플루가 이 스페인 독감이었다.      


생장로사(生長老死)는 불변의 우주 질서이다. 불로초를 갈구했던 진의 영정은 서복의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샹그릴라와 삼천갑자 동방삭도 인간의 헛된 환상에 불과했다. 인간의 가장 큰 복은 몸 건강히 잘 살다가 죽을 때 되어 잠자는 중에 숨 끊어지는 것이다. 그런 복 받기야 벼락을 쫓아가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으니 사람들은 그저 늙으면 병에 시달리다가 죽어가는 괴로운 길을 밟을 뿐이다. 그렇듯이 인간이 끝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는 언제나 병이 도사리고 있다. 신체 장기에 드는 병이야 한 개인의 희생만 요구할 뿐이지만 전염병은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하기에 그 결과가 전쟁의 참혹함을 뛰어넘을 정도다. 어찌 보면 인류의 생존 역사는 전염병과의 사투로 점철되었다 해도 과언 아닐 것인데 인류는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5백만 명의 귀한 생명을 잃어가며 ‘21세기 손님’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2년 시달린 끝에 이제 세계 각국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은 불안하나 전문가들은 조만간 백신과 치료제 덕으로 감기처럼 코로나바이러스와 공존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고난의 끝이 보이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21세기 손님으로부터 반성의 시간을 요구받고 있다. 반성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의 자만이다. 마스크 착용 의무에 대해 개인의 자유 운운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공동의 약속을 어긴 채 음지에 숨어 모여 이탈 행위를 벌이는 것. 그런 어리석은 자만은 모두를 파괴할 뿐이다. 다 함께 공존 공생에의 지혜를 더욱 굳건히 할 때다.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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