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여는 잡학
불 내뿜고 쇠 먹어치우며 파괴를 일삼는 불가사리 설화는 고대 한·중·일 삼국에 공통으로 존재한다.『산해경(山海經)』에서는 맥(貊)이 불가사리의 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곰 속(屬)인 맥은 청동을 먹기에 그렇다. 불전 설화를 다룬 3세기경의 대승불교 경전 『구잡비유경(舊雜比喩經)』에는 바늘을 먹고 불로 마을을 파괴하는 괴수 화모(禍母)가 등장한다. 송(宋) 건국 초기에 학자 이방의 주도로 쓰인 『태평광기(太平廣記)』에도 불가사리가 보인다. 여기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어느 지역을 다스리던 고약한 현령이 나녀라는 어여쁜 여자를 빼앗으려고 나녀의 남편인 오감에게 불을 먹고 사는 개 와두(蝸斗)를 잡아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에 성이 난 오감은 와두를 잡아 와 현령 앞에 풀어놓았고 와두는 불을 내뿜어 관아 건물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현령을 잡아먹는다. 일본에서는 나라현(奈良縣) 민속자료집에 불가사리 흔적이 있다. 천황이 한 부부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음에 부부의 원혼이 벌레로 변했다가 쇠를 먹어 괴수로 성장, 끝내 천황에게 복수를 가한다는 설화가 그것이다.
한국 불가사리 설화는 중과 관련된다. 조선 후기 조재삼에 의해 쓰인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민간에 전하기를 송도(松都) 말년에 어떤 괴물이 있었는데 쇠붙이를 거의 다 먹어 버려 죽이려고 했으나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가살(不可殺)’이라고 이름했다. 불에 던져 넣으면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므로 인가로 날아들면 집들이 또한 다 불에 탔다.”라는 기록이 실려있다. 이 이야기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고려 말 요승 신돈이 세상을 어지럽히자 왕은 전국의 중들을 잡아들인다. 이때 어느 중이 관군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속세에 사는 여동생을 찾아가 숨어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다. 오라버니를 골방에 숨겨 준 여동생은 남편에게 관아에 고해 포상금을 챙기자고 꼬드긴다. 남자는 그런 아내를 꾸짖어 내쫓고는 중을 살려준다. 골방에 갇혀 지내는 동안 중은 밥풀로 작은 짐승 형태를 만들어 매일같이 바늘을 먹여주어 생명체로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매제에 의해 골방에 나서게 되자 그 짐승은 중의 품을 떨치고 나가 집안의 쇠붙이를 닥치는 대로 먹어대며 몸집을 불렸다. 집안에 쇠붙이가 더는 없게 되자 이제는 온 나라를 헤집고 다니며 눈에 띄는 대로 쇠붙이들을 몽땅 먹어치웠다. 나라에서는 군사를 풀어 짐승을 죽이려 했으나 도무지 죽일 수 없었다. 그 짐승은 마침내 불가사리가 된 것이다. 그렇게 피해를 보던 중에 군사들이 최후의 방법으로 일시에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오히려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불태웠기에 피해만 더 늘어났다. 이때 도승이 나타나 주문을 외우자 불가사리는 자기가 그동안 먹어치운 쇠붙이들을 전부 토해내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삼국의 불가사리를 비교해 보면, 중국과 일본의 불가사리는 지배층의 횡포와 색욕을 경계하고 있고, 한국의 불가사리는 어지러워진 윤리와 물욕에의 경계를 취함과 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병풍에 새겨넣고 화재를 막고자 굴뚝에 새겨넣는 식으로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도 민속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 것은 인간이 해석해내는 내용이고, 어찌 되었든 불가사리의 기본 속성은 ‘파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불가사리는 고대의 이미지에 머물고 있으나 한국의 불가사리는 20세기가 되면서 새롭게 변모하는 모습을 띠기도 했다. 1921년 현병주는 고전소설 『송도말년 불가사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고려 의종 때 정중부 등의 무신 정변이 일어나자 시랑(侍郎) 관직(지금의 차관급)의 최모는 속세를 떠나 산속 암자에 은거하던 중 어느 비석 밑의 구멍에서 불가사리를 구한다. 이에 불가사리는 자신이 동방청제의 아들이라 밝히고는 생명의 은인 최시랑에게 구슬 세 개를 주고 사라진다. 이후 최시랑 가문은 삼대를 거쳐 평안하고 풍족하게 산다. 고려 말이 되자 홍건적이 고려를 쳐들어온다. 이에 이성계가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전장에 나선다. 홍건적과의 전투에서 이성계는 불가사리의 도움으로 대승을 거둔다. 불가사리가 나타나 홍건적의 병장기를 먹어 치우고 불을 내뿜으며 적들을 궤멸시킨 것이다. 불가사리는 이성계가 왜군을 무찌르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다. 현병주의 불가사리는 ‘파괴’라는 속성을 적을 향해서만 시행하고 같은 땅에 사는 인간들을 돕는 선한 존재이면서 조선 건국의 정당화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것은 곧 일제 강점기 당시 한민족 혼을 고취하는 의미가 되는 것인데 일제는 여기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했는지 소설은 무사히 발표되고 있다. 현병주의 불가사리는 시대 환경에 맞춘 윤색형이기에 전승 설화가 될 수는 없다. 1936년 여류작가 박화성도 잡지 신가정(新家庭)에 발표한 단편소설 『불가사리』를 발표하고 있는데 병든 노인이 죽지 않고 연명하고 있음을 불가사리로 빗대어 한탄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불가사리라는 괴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고, 그저 사회를 풍자하는 성격의 소설일 뿐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대 맹수를 다루는 영화는 훌륭한 엔터테인먼트로 인기를 누렸다. 미국이 킹콩을, 일본이 고질라를, 영국은 드래곤을 내세웠다면, 한국은 불가사리로 승부 걸었다. 1962년 현병주의 원본을 각색한 영화 <송도말년의 불가사리>가 김명제 감독 최무룡 엄앵란 주연으로 제작 발표되어 당대 큰 화제가 되었다. 1985년에는 북한으로 납치되어 간 신상옥 감독이 <불가사리> 제목으로 메가폰을 잡고 영화 제작에 임했으나 신상옥은 도중에 탈북하고 그 뒤를 이어 정건조 감독이 완성해서 발표했다. 민중을 위해 선한 일을 한 대장장이에 의해 불가사리가 생겨나고 이 불가사리를 앞세운 민중이 탐관오리와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북한 체제에 맞게 봉건제 타파를 내세우고 있음이다. 탈북에 성공한 신상옥은 1996년 루마니아와 합작하여 <The Legend of Galgameth> 제목으로 같은 영화를 서양식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는 TV 드라마 <불가살>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괴수가 아닌 6백 년을 살아온 불사의 인간을 불가사리로 대체하고 있다. 역시 인연과 윤회를 통해 등장인물 간의 원한을 다루고 있으니 결코 선한 존재는 아니다.
이처럼 불가사리는 고대에는 상상 속의 괴수로, 현대에 와서는 풍자적이거나 기이한 인간으로 투영되고 있으나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불가사리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정약종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풍엽어(楓葉魚), 천족섬(千足蟾) 등으로 소개되기도 한 바다의 불가사리가 있다.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도 죽지 않기에 ‘불가살’이다. 이것들이 떼 지어 바다 밑바닥을 한번 훑고 지나가면 멍게니 해삼이니 조개니 하는 것들이 초토화된다. 인간에게는 식용으로 쓰이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해만 끼친다. 바다 말고 육지에도 불가사리는 지천으로 널려있다. 나라가 어찌 되든 권력만 챙기면 된다는 사악한 정치꾼들, 눈앞의 이익을 좇아 사회 공존을 무너뜨리는 이익단체들,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인들, 형평성 없는 판결로 국민 혈압 올리는 무뇌 사법부, 저네들 슬로건인 정의 질서 평화보다는 구린내 나는 권력만 탐하는 조폭형 검찰기관, 공정 정론 정신은 팽개친 채 권력기관과의 유착 야합만 일삼는 부패 언론사들이 대표적 육지 불가사리들이다. 이 현실의 불가사리들은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버티며 이 시대 우리에게 피해만 주는 파괴적 존재다. 상상 속의 불가사리가 실제로 나타나 급한 대로 육지 불가사리들부터 불로 다스려 몽땅 잡아먹어 주기를 신년 기원으로 빌어본다. 고기는 직화구이가 맛난 법이다.
20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