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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고을 원님을 비판하던 욕 바위

세상을 여는 잡학

조선 시대의 언론은 매우 자유로웠던 모양이다. 고을 원님을 눈앞에 둔 채 직접 비판하고 심지어 욕까지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월운동 마을이 있다. 달이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곳이라 하여 월운(月雲)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해석은 훗날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고, 그 시원은 조선 시대에 붙여진 언론리(言論里)가 된다. 언론리가 음운변화를 거쳐 어룬, 어루니와 같이 우리말 발음으로 오랫동안 불리다가, 한자 표기가 필요해지면서 비슷한 발음을 좇아 월운을 취한 것이라 한다. 일제가 1913년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면서 행정 편의에 맞춰 저네들 마음대로 지명을 바꾸던 와중에도 분명 언론리로 표기했던 것을 광복 후 엉뚱한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안창리 일대에는 전설이 깃든 유명한 바위들이 있다. 천상에서 산신을 만나러 내려온 선녀들이 바위 밑 맑은 물에서 목욕을 즐겼다는 선녀 바위, 그런 선녀들을 훔쳐보며 짓궂은 장난을 치던 중이 있어 진노한 산신이 그 중을 거꾸로 매달아 두었더니 바위로 변했다는 중다래미 바위, 어느 선비가 틀어 앉아 고을 원님에게 대놓고 욕을 퍼부었다는 욕 바위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욕 바위 내력 때문에 마을 이름이 언론리가 되었음이다.

                       

이 마을에 성질 불같은 훈장이 있었다. 그즈음 원주 목사로 부임한 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자 마을 사람들의 불만이 일어났고 훈장 역시 분노를 품었다. 그렇다고 일개 훈장 따위가 목사를 찾아가 따따부따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게 저렇게 끓는 부아 달래가며 지내던 중에 갑자기 목사가 새 직책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훈장은 그냥 곱게 보내지 않겠다는 심사로 목사가 거쳐 가는 고갯길 옆 높은 곳에 자리한 바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앉아 목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목사 행렬이 나타났고 목사가 바위 아래에 이르자 벼르고 별렀던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괴이한 욕지거리를 들은 목사가 수행원들을 시켜 바위 위 훈장을 붙잡아 내리도록 했으나, 훈장이 자기가 타고 올랐던 사다리를 거두어 올리자 누구도 바위 위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별수 없게 된 목사는 그 욕을 다 들으며 한양으로 떠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속 시원해했다고 한다. 그 이후 묘한 일이 일어난다. 새로 부임하여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신임 목사가 일 년 중 날을 정해 하소연할 사람들을 그 바위에 오르도록 하고는 자신은 바위 아래에 돗자리 깔고 앉아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위에 오른 사람들은 불만 사항이나 원하는 바를 기탄없이 말하였고, 목사는 그 내용을 챙겼다. 때로는 욕을 해대는 사람까지 있었으나 바위 아래에서 누가 욕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목사였기에 그저 올곧이 듣기만 할 뿐이었다. 또 그로 인한 뒤끝 작렬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의 비판을 감내한 아름다운 지혜를 보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행해지던 ‘욕 바위 소통’을 사람들은 ‘언론’이라 불렀고 바위는 욕 바위요, 마을 이름은 언론리가 되었다. 어쩌다 성질 불같은 훈장 한 사람이 행한 것으로 욕 바위니 언론리니 하는 이름이 생길 리는 만무다. 그러한 소통행위를 부임하는 목사마다 관례처럼 따랐기에 사람들 인식에 널리 심어지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욕 바위 전경. 사진 원주투데이


또 이것을 두고 어느 한 지역에서만 일어났던 특별한 상황으로 볼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목민관뿐 아니라 심지어 임금을 상대로도 할 말 다 하며 살았다. 상소(上疏)가 그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그 훌륭한 기능을 자유롭게 활용한 지혜로운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이 신설되면서 불합리한 사회 현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국민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물밀 듯 일어났다. 청와대 역시 심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응답해 왔다. 현대판 욕 바위의 등장이었던 셈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소통의 민족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전 세계 각국의 언론 규제 현황을 살펴 그것을 ‘세계 언론자유지수’로 발표하는 단체가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그 주인공이다. 이 단체의 조사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전 세계 31위라는 최고 순위를 찍더니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하향,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70위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랬던 것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63위를 찍고 그다음 해부터 43위, 41위를 거치더니 2021년인 작년에는 42위 순위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43위 대만, 67위의 일본, 177위 중국을 뛰어넘는 아시아 1위를 보여주는 것이요, 44위 미국도 능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파 정부 때는 언론 자유 지수가 70위권이었을 정도로 ‘언론 규제’를 받았고, 좌파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42위라는 ‘언론 자유’를 구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른바 3대 메이저급 언론사를 중심으로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언론사들이 한국 언론은 여전히 재갈 물리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내고 있다. 그 이유야 저네들의 정치 성향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언론이 정치 성향을 띈다는 것은 정론으로서의 철학을 외면하는 것이 된다. 그들은 현재의 정부를 좌파 정부라 지목하고는 극우 성향을 보란 듯이 드러내며 언제나 비난 일색의 편향된 기사를 게재할 뿐이다. 심지어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 기사를 마구잡이로 남발하기도 한다. 기사의 영어인 ‘뉴스’의 어원을 살펴보면 N(북) E(동) W(서) S(남)를 취합하여 ‘NEWS’요, 동서남북 온 세상의 소식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언론으로서의 관점을 어느 한 곳에만 머물지 않도록 사방을 잘 돌아보며 균형을 지키라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론사가 되어 정치적 성향을 띈다는 것부터 ‘NEWS’가 지향하는 것을 내팽개치는 것이요, 가짜 기사를 만들어내는 범법 행위까지 머뭇거림 없이 저지르고 있다. TV 드라마 내용을 기사랍시고 게재하는 어이없는 짓 정도는 웃고 넘어갈 수 있으나, 정치적 편향 기사와 가짜 기사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불순한 패악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 적폐 언론사와 권력기관과의 야합이라는 끔찍한 모습까지 목격할 수 있다.     

 

기사를 생산하는 일부 기자들 역시 이미 사회적 병원균이 된 지 오래다. 그들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을 앞세운 채 취재 대상의 인권이고 신상 보호고 뭐고 나 몰라라 하는 식의 폭력적인 취재 행각은 기본이요, 개인의 편향적 관점을 얹어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기사를 싣는다. 중앙을 떠나 지역에서는 표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지자체 선출직을 기회 있을 때마다 압박, 부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1인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도 즐비하다. 기자 정신도 없고 인간으로서의 양심 한 톨도 없는 ‘기자 쓰레기’요 하는 짓을  보면 하이에나가 절을 올릴 정도로 사악할 뿐이다.         


       

기레기들이 만드는 언론 왜곡 현상. 이미지 나무위키

                                       

20대 대선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는 별의별 편향 기사, 가짜 기사, 추측 기사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치고 있다. 게다가 여론 조사라 하여 그 결과를 경쟁하듯 내놓는 언론사들의 행태를 보면 진실의 시대가 우리를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만 엄습한다. 조사 방식도 문제요 돈 주고 여론 조사를 의뢰하는 곳과의 불공정한 뒷거래도 추정할 수 있는 한심한 행각들로 물 더러워진 여론 조사 결과에 우리 사회는 분열과 소란으로 지쳐 있다. 진정한 언론 정신을 훼손한 적폐 언론사와 기자들 앞에 언론리 욕 바위를 불러다 세워놓으면 어떨까 한다. 


20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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