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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종교로 어지러운 나라 대한민국

세상을 여는 잡학

수륙재(水陸齋)는 땅과 물밑을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혼귀(魂鬼)와 굶어 죽은 아귀(餓鬼)에게 음식을 공양하며 천도하는 재(齋)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가족이 번듯하게 장례 치러주고 해마다 제사로 좋은 음식 차려 올리기에 죽는 것에 쓸쓸함이 없을 것이나, 연고자 없이 죽거나 객사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장례를 시혜받지 못한 채 때 되어 제삿밥도 얻어먹을 수 없기에 혹여 원귀 되어 나타나 해코지나 하지는 않을지 산 사람들을 뒤숭숭하게 함은 물론이요, 그로써 민심이 흉흉해질 경우 사회적으로도 뒤끝 영 불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무마하고자 국가적 차원에서 치른 것이 수륙재다.      


19세기 말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에 실린 조선 시대의 수륙재.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륙재는 6세기 무렵 중원 남북조 시대 한족이 세운 강남 양나라의 무제 때인 505년 처음 시행되었다. 불심이 깊었던 무제가 어느 날 잠을 자는데 꿈에 도승이 나타나 인간이든 짐승이든 혹은 굶어 죽은 귀신이든 한없이 고통받고 있으니 수륙재를 시행하여 구제할 것을 청한다. 이에 무제는 직접 의식문(儀式文)과 의식 절차를 만들어 계림(桂林) 땅 금산사(金山寺)에서 수륙재를 치렀다. 이후 중원의 전통 불사(佛事)로 이어지다가 송나라에 이르러 크게 꽃을 피웠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고려는 광종 22년(971년)에 이르러 통일신라 때 염거화상이 창건한 수원 갈양사(葛陽寺)에서 혜거국사 주도하에 ‘무차수륙회(無遮水陸會)’를 올렸으니 이것이 한민족 최초의 수륙재다. 이후 수륙재는 고려의 국가적 의식으로 꾸준히 치러졌고 유교 국가인 조선에도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을 세운 신진사대부들은 고려 왕족들과 고려 유신들을 몰살하다시피 했다. 그런 난폭함에 민심이 좋을 리 없음을 걱정한 이성계는 개성 관음굴(觀音堀), 경남 거창 현암사(見巖寺), 강원도 두타산 삼화사(三和寺)에서 봄가을로 국행(國行) 수륙재를 올려 황망하게 죽어간 자들의 고혼을 위로하는 것으로 민심을 다독였다. 그러나 조선 유림은 불사(佛事)인 수륙재를 곱게 볼 리 없었고, 조선 건국 후 40년이 지난 세종 14년(1432년)에 이르러 마침내 수륙재 반대 상소를 내기 시작한다. 집현전 부제학 설순이 수륙재의 부당함을 든 것이다. 그렇게 수륙재에 대한 불편한 의견이 일어나는 중에도 세조는 함길도의 주요 절과 사원에 향(香)과 함께 신료들을 보내 북방 백성을 위하여 수륙재를 치르도록 하는 등 조선 왕실은 여전히 칠사(七祀. 일곱 가지 국가 제사)로서 수륙재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5세기 말 성종 재위 때에 본격적인 폐지 의견이 대두한다. 이때 성종은 공론으로 수렴하여 수륙재를 멈추었으나 연산군이 보위에 오르면서 재개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워낙 많기에 수륙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인가론이 받아들여지면서 유림의 극렬한 반대는 한때 잠잠해졌으나 현종 조에 이르러 사간원의 강력한 간언(諫言)으로 국가 차원의 수륙재는 폐지되고 만다. 그러나 왕실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치르며 끝까지 이 의식을 고집하였고, 민간에서도 널리 행해지면서 오늘날까지 수륙재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행사로 전승되고 있음이다.      


며칠 전에 끝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운동 중에 느닷없는 ‘수륙대재’ 논란이 일어나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일이 있었다. 건진법사로 알려진 어느 무속인과 야당 후보와의 밀착 관계를 여당 측이 폭로하는 와중에 이 수륙대재라는 굿 이야기가 드러난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무속에 기대고자 했느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 언쟁으로 전 세계적인 망신을 얻고 말았으니 이런 대선이 언제 다시 있을까 싶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이 의식에는 어이없는 문제가 여럿 들어있다. 먼저 수륙대제라는 명칭 자체가 처음 듣는 명칭이다. 일개 무속인이 굿을 벌인다면 그저 조용히 굿입네 하면서 열심히 치성드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감히 불교의 중요 의식인 수륙재 명칭을 도둑질하고는 ‘대(大)’ 자까지 집어넣어 의식의 위세, 아니 의식을 주최한 무속인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원래 무당들은 화려하고 호사스럽고 이름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자기를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수륙대재든 수륙재든 백번 양보해 주어도 날짜가 잘못되었다. 건진법사는 그 의식을 9월 9일에 치렀다. 오늘날에는 국행수륙재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편의상 10월에 치르지만 원래 수륙재는 조선 태종 이후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에 시행했다. 10월이든 정월이든 어쨌든 간에 9월 9일에 수륙재를 시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9월 9일이라 하여 일견 중양절이라는 세시(歲時)를 떠오르게 하는데, 중양절은 그저 민가에서는 화채와 국화전을 부쳐 먹고 묵객들은 산에 올라 국화주 마시며 시 읊거나 산수를 즐기는 날이지 무슨 수륙재요 굿을 벌이겠는가. 또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에 맞춘 세시요 건진법사의 9월 9일은 양력이므로 이래저래 일호도 연관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수륙재 사칭에 9월 9일이라는 복수(複數)로 사람을 현혹한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그가 진행한 굿 내용도 심각하다. 어찌 살아있는 소의 껍질을 벗기는 잔인한 짓을 굿 행위로 시연하였는가이다. 드물지만 어쩌다 산 닭을 굿판의 희생(犧牲)으로 삼아 입으로 닭 목을 물어뜯어 끊는 살벌한 행위로 자신의 신기(神氣)를 과장하는 하는 무당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살아있는 돼지나 소에게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닭은 성질을 내어도 사람이 한 손으로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나 돼지나 소는 살아있는 중에 자칫 칼 잘못 들이대 성질 돋우면 그 미쳐 날뛰는 것을 마을 사람이 다 달라붙어도 제지할 도리가 없다. 그러기에 돼지나 소는 백정의 손을 거쳐 사체(死體)로 굿판에 들이는 것이다. 백정조차 굿에 들어갈 짐승의 목숨을 취할 때 목욕재계를 하는 등 경건하게 임하여 희생에 격을 얹는다. 그런 것임에 비해 이 해괴한 굿판에서는 소를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서는 산채로 껍질 벗기는 극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그 잔인함에 굿판 찾아왔던 몸주 신(神)도 기겁하였을 것이다. 치유와 기원의 신성한 굿을 그토록 처참하게 파괴한 건진법사라는 자는 무속인이 아닌 정신병자에 불과하다. 그런 병자가 치르는 의식에 연등을 보내는 등 평소 교류를 하는 소위 이 사회의 힘 있는 자들 또한 병자일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기이할 정도로 종교가 맹위를 떨치는 나라다. 정치꾼들부터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얻자고 교회고 절간이고 굿판이고를 가리지 않고 쫓아가 머리 조아리니 거들먹거리는 종교계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남는다. 절대 이슬람교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전도하러 갔다가 현지인들의 분노를 얻어 떼로 붙잡혀 세상의 비웃음을 산 어느 교회 신자들의 어이없는 행각은 아무리 종교적 신심으로 이해하려 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석탄 봉축 의식을 치르고 있는 조계사 앞에서 오직 예수와 우상 파괴를 외친 개신교인들의 철없는 짓도 혀를 차게 한다. 바울이 우상숭배를 탐심이라 했으나 오직 예수만 내세우는 것도 탐심이니 그렇다면 예수상(像)도 우상에 포함될 수 있다. 남 비난할 일 아니다. 거대 광신기독교 집단이 걸핏하면 등장하여 물의를 빚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특히 선거 개입을 하며 정치꾼과 뒷거래하는 극렬 광신 이단 집단들의 만행은 두고두고 개탄할 일이다. 중은 재물 앞에 서면 눈빛이 달라지고 입술을 벌겋게 물들인다. 절간 근처의 안가(安家)에서는 주지급 중들이 모여앉아 패 족보로 경을 왼다. 서로 권력을 탐하니 패거리들이 각목 집어 들어 대웅전 앞마당에서 상대의 민 머리통을 목탁 삼아 두들겨 팬다. 절이 든 산의 통행료를 윽박 하듯 챙기니 산적이 울고 간다.     


신성(神聖)은 물질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잔틴제국은 성상(聖像)을 파괴하였다. 사진 나무위키

                                                      

개신교든 불교든 그처럼 천한 몸부림을 쳐대는 차에 이제는 무속마저 때 만난 듯 기세 떨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종교로 어지러운 중병(重病)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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